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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van Beethoven(1770 본-1827 빈)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의 조상의 발자취는 말린과 루벤(벨기에)의, 농민의 신분에서 시민이 된 사람 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성(姓)이 의미하는 것은 사탕무밭이며 판 van에는 아무런 귀족적인 의미도 없다. 1712년에 최초의 음악가 베토벤 노(老) 루트비히가 태어난 곳은 말린이다. 그는 본으로 이주하여 궁정음악가로서 대주교이기도 했던 선제후를 섬겼다. 그의 아들 중 오직 유일하게 살아 남은 요한이 그의 뒤를 이었으며, 이 궁정 예배당의 테너 가수가 되었고, 1767년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케베리히 Maria Magdalena Keverich와 결혼했다. 그녀도 토리아 선제후의 요리장의 딸이었는데 상냥하고 인내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1787년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의 7명의 자녀 중 성인이 된 것은 세 사람뿐이었다. 둘째 아들인 루트비히는 1770년 12월 16일인가 17일 본의 뒷골목에 있는 그들의 초라한 집에서 태어났다.
조숙한 대천재
모짜르트 같은 신동이 되기를 바랐던 자기의 아들에 대한 요한의 가혹함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전해지긴 했어도 베토벤의 소년시대가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가 초기에 배웠던 교사들은 그때그때에 따라서 일정하지 않았다(순회 악단의 테너 가수였던 토비아스 파이퍼 Tobias Pfeiffer, 바이올린 주자인 로반티니 Rovantini, 궁정의 연로한 오르간 주자인 에기디우스 판 데어 에덴 Aegidius Van der Eeden 등). 그런 베토벤의 최초의 본격적인 교사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에덴의 뒤를 이은 크리스찬 고틀로프 네페이다. 그리고 아들이 그의 엄격한 감독하에서 급속한 진전을 보여 12세 때 궁정 예배당의 대리 오르간 주자를 맡을 정도가 되면서 보수도 받게 되고 맡은 책임도 커짐에 따라 아버지는 더욱 술에 빠지고 타락해 갔다. 베토벤이 아버지의 집에서 점점 떨어져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폰 브로이닝 von Breuning의 집에 기거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브로이닝의 집안은 베토벤에게 있어서 제2의 가정이 되었다.
그의 재능의 개화는 이내 이 친목서클의 밖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새로운 선제후이며 계몽적 군주인 막스 프란츠공의 총신이었던 발트슈타인 Waldstein 백작 덕분에 베토벤은 음악을 더욱 연마하기 위하여 빈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 최초의 빈 체재(1787)에 관해서는 상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모짜르트를 만날 수는 있었으나 병으로 쇠약해진 데다가 돈 조반니의 작곡에 몰두해 있던 그는 이 젊은 천재를 경계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버린 것 같다. 가르침을 받는 것도 인정받는 일도 없이 고작 격려를 받았을 정도일 것이다. 베토벤은 본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의 임종에 입회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완전히 알콜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두 동생인 요한 Johann과 카스파르 Kaspar의 양육은 루트비히가 맡지 않으면 안 되었다(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시대(1790)의 작품으로는 요제프 2세 장송 칸타타와 레오폴트 2세 대관식 칸타타가 있는데, 두 곡 모두 너무 어려워서 연주되지 않았다. 상당히 인습에 사로잡힌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 어색함은 위대한 음악가의 도래를 확실히 예상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본에 갔을 때 그 작품들을 본 하이든은 청년 베토벤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자기한테 오도록 초청했다. 다시 충실한 발트슈타인의 주선으로 1792년 11월 2일 베토벤은 본에 최후의 작별을 고하고 빈으로 떠났다. 발트슈타인은 하이든의 손에서 모짜르트의 정신을 찾아내십시오라고 송별 기념장에 써넣었다.
빈 귀족의 피아니스트
게르만 세계의 수도이며, 궁정과 궁전, 그리고 성 밖 외곽지대인 교외로 이루어진 도시인 빈은 유행과 쾌락의 도시이면서도 완고하게 전통을 지키는, 분명히 피상적인 도시였다. 천재들의 활동무대였던 이 도시는 막 공동묘지에 묻힌 모짜르트에서 그 존재마저 무시되는 베베른까지 고의로 부인하게 된다. 그러한 빈은 우선 베토벤을 호의적으로 맞이했다. 그는 곧 음악을 애호하는 귀족들의 호감을 사게 된다. 리히노프스키 Lichnowsky, 로프코비츠, 슈바르첸베르크 Schwarzenberg, 즈메스칼 폰 도마노베츠 Zmeskall von Domanovecs 같은 귀족들은, 이미 청년 음악가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그 독창성이 특징적이었던 3개의 피아노3중주곡 op. 1(1794~95)의 악보 예약자에 포함되어 있다. 하이든에게 헌정된 3개의 피아노 소나타 op. 2(1795~96)를 끝으로 베토벤은 교사로서의 하이든과는 작별을 고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이든 밑에서의 지속적인 공부가 실제로는 산발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솅크, 알브레히츠베르거, 살리에리 같은 다른 교사들-역시 불규칙한 것이었지만-을 찾아가 이들 밑에서 자기가 필요로 했던 기술적인 지식을 빠르게 획득했다. 그래서 1795년에는 이미 자신의 직업이 요구하는 기술과 개성, 그리고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의 기교를 완전히 몸에 익히고 있었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은 1795년 3월 빈에서 가진 베토벤의 최초의 대연주회였다. 그가 거기에서 연주한 것은, 그가 작곡한 카덴짜를 붙인 모짜르트의 협주곡과 전전날 완성한 그의 최초의 협주곡(후에 협주곡 제2번으로 출판된다)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재능이 이미 압도적이고 저항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이 분명했던 영역은, 당시의 수많은 증언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피아노의 즉흥연주였다. 그는 거기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구사했던 것이다. 그 무렵 베토벤은 리히노프스키 후작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빈의 모든 살롱에 나타나서 청중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그들의 눈물과 흐느낌(체르니)을 이끌어냈다.
혁신적 사상
피아노 소나타 op. 7, op. 10(1796~98)에서, 특히 D장조의 소나타에서 베토벤은 그의 천재성의 근대적 성격, 대담함, 불균형, 전대미문의 극적 힘 등을 이미 한꺼번에 들려주고 있었다. 피아노 소나타 op. 103의 라르고 에 메스토는 특히 그것을 놀라운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는 모든 음악적 어법이 몇 개의 새로운 방법에 따라 묶여 있는데, 그 구조에 있어서는 옛 위계질서가 뒤집혀지고 화성적, 리듬적, 역학적 수렴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악 보 삽 입
여기에 이어지는 소나타 비창 op. 13 및 op. 26과 op. 27은 전통적인 양식에 대한 베토벤의 위협을 폭발시키고 있다. 즉, 주제의 이중성과 그것들의 전개 수준에서의 전도(轉倒), 악장 배치에 대한 문제 제기(환상곡풍 소나타 op. 27) 등을 보인 것이다. 또한 1801년 출판된 6개의 현악4중주곡 op. 18(특히 그 중 최초로 작곡된 op. 183)도 그러한 혁신적인 사상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사상은 음악의 역선(力線)을 자유로운 기준성역, 성부, 강도의 대립, 격렬한 대조성, 극도의 세련미 등에 바탕을 두어 결합시키고 있다. 현악4중주곡 제6번(작곡 순서로 보자면 6곡 중 5번째)에서 모든 음악작품 중 가장 감동적인 부분의 하나인 라 말린코니아(우수) La Malinconia라는 제목의 아다지오는 극성(極性)을 지니지 않은 하모니와 서로 상반되는 힘이 환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는 전개를 들을 수 있다. 이 전개는 후기의 베토벤을 예고하는 것이다.
빈에서의 이 최초의 수년간은 베토벤으로서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성공, 귀족의 총애, 베겔러 Wegeler와 리즈, 아멘다 Amenda, 즈메스칼, 그리고 그의 음악의 지칠 줄 모르는 개척자였던 바이올린 주자 슈판치히 등과의 오래 지속된 깊은 우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801년 빈을 떠나 있던 베겔러와 아멘다에게 보낸 6월의 두 편지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베토벤이 얼마 전부터 감추어 오고 있던 것난청(難聽) 증세가 나타나서 진행되고 있었으며, 결국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을 처음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절망은 그의 인생에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출현함으로써 일시적으로 가라앉았거나 소강상태로 연장된 것 같았다. 16세의 줄리에타 구이치아르디 Giulietta Guicciardi의 경박한 매력은 빈을 정복하고 있었다. 베토벤은 월광이라 불려지는 피아노 소나타 op. 272를 그녀에게 바쳤다. 이 연애의 진실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또한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은 것은 전설뿐이다. 어쨌든 줄리에타는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하여 베토벤을 고독과 절망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이 고독과 절망을 전해주는 것이 바로 1802년의 비통한 수기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이다. 자살이라는 생각이 베토벤을 사로잡고 있었다(예술이다. 그것만이 나를 잡아주었다고 그는 적고 있다). 그가 하일리겐슈타트에서의 은둔에 종지부를 찍고 빈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완성한 교향곡 제2번의 악보를 지니고 있었다. 이 곡의 쾌활함과 활기참은 작곡가의 인생과 작품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주해자(註解者)들의 관념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것이었다. 또한 이때에는 교향곡 제3번의 제1악장도 그 스케치가 완성되어 있었다.
교향곡 제1번부터 이미 베토벤은 그 천재성이 지닌 대담한 측면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은 우선 형식에 나타나 있다. 이 곡의 으뜸조 C장조는 긴 12마디의 아다지오로 된 화성의 역정(歷程)을 거쳐 처음으로 출현한다. 이 아다지오는 이제까지 없었던 매우 확실한 도입부로서 교향곡 제2번에서도 볼 수 있다(첫머리의 알레그로에 선행하는 33마디의 아다지오). 그리고 그 대담한 측면은 관현악 편성에도 이어지는데, 관악기를 더 중요시함으로써 지금까지 현악기가 최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을 부정한 것이다(이 점은 비평가들도 인정하고 있으며 베토벤이 군악대용 음악을 썼다고 비평했다). 1804년 초에 완성된 교향곡 제3번에서 오케스트라에 관한 베토벤의 혁신적인 사상은 그 절정에 달하게 된다. 즉, 음향이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음악의 구축 양식속으로 들어가서 하모니의 변용과 결부되어 음색전조(音色轉調)라 불릴 수 있는 것을 형성했다. 여기에 제1악장에서 발췌한 예를 든다.
E♭장조 F장조 D♭장조
첼로 F조관 호른 플루트-바이올린
B♭장조 E♭장조
플루트 2-비올라-오케스트라 전체
저음현
템포가 느린 악장, 즉 장송행진곡 부분에서 음색은 리듬과 결부되어 엉뚱한 혼합물-어둡거나 명확한-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결합이 이 악장의 극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마지막 악장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op. 43의 주제 위에 구축되어 있으며, 론도의 전통적인 형식이 배제된 12개의 변주곡 형식을 취한 오스티나토로 전개된다. 이 걸작을 둘러싼 역사적인 배경은 이미 많이 논의되어 왔다. 거기에 따르면, 1798년 이래 철저한 공화주의자였던 베토벤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로마 공화국 집정관과 동등하게 보았으며 이 곡을 그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라 했다는 말을 듣고 격노하여 헌사를 적은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영웅 교향곡이라는 최종적인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피델리오에서 전원까지
1804년 한해 동안 베토벤은 그의 유일한 오페라 작품 피델리오*를 작곡했다. 당초 레오노레*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던 이 작품의 부부애를 찬미하는 테마는 프랑스의 극작가 부이이 Bouilly에 의한 것인데, 뒤에 트라이추케 Treitschke에 의해서 보완되었다. 1805년에 완성하여 11월 20일 빈에서 초연되었으나, 당시의 빈이 나폴레옹군에게 점령되어 있었기 때문에 객석은 거의 텅텅 비어(빈 사람들은 거의 시내를 빠져 나간 상태였다) 공연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렸다. 친구들의 간청에 따라 베토벤은 구성을 대폭 변경하고 삭제하여 1806년 3월 29일 이 작품을 재상연했다. 이때는 전번보다는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더욱 철저히 개정하여 이 오페라가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은 이로부터 8년 후의 일이다. 피델리오는 근대적인 음악극의 예시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자유로운 성악 파트의 서법과 대사와 음악의 일치, 그리고 오케스트라에 주어진 매우 중요한 역할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오케스트라는 갖가지 소리가 정돈되어 나타나 퍼져가는, 글자 그대로 연극의 장(場)이 되고 있다.
이처럼 결실이 풍부한 시기(1804~08)에 씌어진 작품으로는 우선 교향곡 제4번과 발트슈타인에게 헌정된 피아노 소나타 op. 53이 있는데, 이 op. 53은 색조라는 영역에 있어서 혁명적인 피아노곡 서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어서 장대한 피아노 소나타 열정 op. 57,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의 새로운 제자이자 친구가 된 로돌프 대공에게 바쳐진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이 있으며, 빈 주재 러시아 대사이며 작곡가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주문에 의한 3개의 현악4중주곡 op. 59도 이 시기의 것이다. 이 op. 59에 관해서는 X난해, 복잡, 불협화라는 평을 받았다. 이것은 이들 곡의 구상의 근대성과 연주기술에 관한 엄격한 요구를 의미하고 있다. 특히 이 4중주곡의 세번째 곡 최후의 푸가에서 그러한 경향이 강하며 그 역학(力學), 음역, 속도, 일관성 등에 있어서 개념상의 연주 규범은 전혀 새로워 사람의 눈길을 끄는 것이었다. 내 안에서 정신이 숨쉴 때는 바이올린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교향곡 제5번과 제6번이 1805년부터 1808년 사이에 동시에 작곡되어 1808년 12월 22일 함께 초연되었다. 제5번은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며 제9번과 함께 가장 많은 주석이 붙여진 작품이다. 이 곡은 테마라는 관념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높였다. 이 주제는 3개의 단음(短音)과 1개의 장음(長音)으로 되어 있는 기본적인 리듬 구조로서 세계의 모든 음악과 시, 그리고 베토벤의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교향곡 제5번의 모든 악장에 있어서 갖가지 방법에 의해서 그것을 유일무이한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은 그 X전개이다. 다른 장(場)에서는 묻혀 있던 이 리듬 구조는 작품이 그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여기에서는 운명의 테마가 되었다. 교향곡 제6번 전원의 수법은 이와 전혀 다르다. 제6번은 그 반농담(半濃淡), 세련된 색조, 명상적인 시정에 있어서 자연에서 착상을 얻고 있다. 베토벤은 정경묘사는 불필요하다. 음악에서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베토벤은 표제음악에 대해서, 그의 음악의 너무나 획기적인 해석에 대해서 경계하도록 했는데, 이러한 해석은 음악이 주권을 쥔 다른 세계 autres contrées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피로와 낙담
리히노프스키와의 불화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빈과 그곳에 들끓는 책모에 지친 베토벤은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한다. 실제로 떠난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의 상냥하고 헌신적인 친구 마리 폰 에르되디 Marie von Erdödy 부인의 중개로 작곡가를 숭배하고 있던 귀족들의 반응을 촉진시키게 되었다. 1809년 3월 1일 킨스키 공작, 로프코비츠 공작, 로돌프 대공 등 세 사람이 베토벤에게 연금 4000플로린을 보장하는 명령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 증서는 그들의 상속인들에 의해서 파기되어 버렸다. 한편,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다시 전쟁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의 원고에는 전투를 위한 승리의 노래! 공격! 승리!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것은 기교가 뛰어난 협주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교향곡이라고 할 만한 작품인데, 피아노는 그 자체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적인 울림을 가진 악기였다. 황제라는 별칭은 명명자의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체르니의 피아노 독주로 1812년에 초연되었고, 고별(잠시 빈을 피했던 대공의 귀환을 축하)과 마찬가지로 로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의 생애를 통해 몇 사람의 여성이 스쳐가는데, 그들은 그의 참다운,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사랑을 자기 것으로 하고 있던 미지의 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다. 괴테의 청년시절의 친구였던 베티나 브렌타노 Bettina Brentano, 아말리에 제발트 Amalie Seebald, 테레자 말파티 Teresa Malfatti는 여자친구, 정열적인 우정으로 맺어진 여성들일 뿐이었다. 베토벤의 사후에 발견된 예의 편지가 지목하는 불멸의 연인이 과연 어느 연인을 가리키는지는 아직도 의문에 가려져 있다. 오랫동안 그것이 테레제 폰 브룬슈빅 Therese von Brunsvick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오늘날에는 테레제의 여동생이며 다임 백작의 미망인이던 요제피네 폰 브룬슈빅 Josephine von B.이나 베티나의 사촌인 안토니에 브렌타노 Antonie Brentano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1812년 여름(그 편지는 이때 씌어졌다), 온천지인 테플리츠에서의 괴테와의 면담, 교향곡 제7번의 완성, 리츠 체재 중 교향곡 제8번의 작곡이 이루어졌다. 이 두 작품은 상반된 성격을 가진 한 쌍의 교향곡이다. 제7번의 제2악장에서 느껴지는 우수는 이 곡 전체에 퍼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제8번의 작렬하는 환희가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1813년부터 1819년에 걸쳐서 베토벤은 길고 심각한 위기를 지나온 것처럼 생각되었다. 고뇌가 진정되자 그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고 적고 있다. 그의 창작활동 자체가 실의에 빠져 단지 돈벌이를 위해 소규모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운명에 도전이나 하듯이 몇 개의 걸작이 태어나는데 첼로 소나타 op. 102(1815), 연작가곡 아득히 먼 연인에게(1816), 전통 형식에 정면으로 도전한 피아노 소나타 op. 101(1816), 그리고 1817년부터 1819년에 걸쳐서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op. 106마지막 두 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하머클라비어(해머식의 피아노를 위해서)라고 적혀 있는 작품이다(해머식 피아노는 당시 개량이 거듭되고 있었다. 베토벤이 자신의 소나타를 위하여 지시한 것은 가장 표현력이 있는 당시의 최신형이었다)이 바로 그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op. 106은 베토벤의 걸작 중 하나인데, 단 몇 줄의 글로 이 환상적인 악보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곡은 상반하는 힘이 부딪치는 가운데 생겨나며 자신의 거친 힘을 담은 장대한 푸가로 절정에 이르게 된다. 베토벤의 푸가에 그 예외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 그 자체, 그리고 그 푸가를 유일무이한 창조물로 만들고 있는 것은 결국 서로 맞부딪치게 되는 종류가 다른 엄격함의 부딪침이다. 가능한 것의 한계에서 푸가가 증언하고 있는 것은 엄격한 양식의 상징으로 일관하는 형식과 점점 신랄함을 증대시키면서 해방되어가는 조화적인 관념 사이의 더욱 확실해져 가는 단절인 것이다(P. 불레즈). 이 소나타에서 보이는 고전적인 형식이 후기의 피아노 작품에서는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그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op. 109(1820)와 그 최후의 변주곡에서의 절대적인 자유, 그리고 op. 110(1821)의 상궤를 벗어난 구축 등이다.
그리고 op. 111의 피아노 소나타(1821~22)는, 제2악장과 최종악장의 멋진 아리에타의 온화한 반향음 속에 소나타에의 고별(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을 적고 있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무너져간 고전주의의, 고도로 체계화된 구축물의 하나인 동시에 새로운 여러 형식의 창출로 열려진 시대의 개시인 것이다.
최악의 궁핍
1817년과 1818년은 베토벤의 생활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질병폐질환, 황달과 난청으로 인한 고독, 몇 통의 편지가 반영하고 있는 은밀한 고뇌에, 가족에 대한 걱정거리와 집을 자주 나가는 조카 칼 Karl(그의 동생이 죽기 전 아내와 형에게 그 후견을 부탁한 아이)의 존재가 겹쳐진 것이다. 베토벤은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으나 논란이 많았던 후견인 자격에 관한 소송은 그에게 더 많은 고통을 가져왔다. 그러나 4년에 걸쳐서 마무리한 한 작품이 그를 이러한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 작품은 바로 장엄 미사였다. 이것은 로돌프 대공이 올뮈츠 대주교로 취임하게 되어 그 임명식에 사용할 곡을 베토벤에게 의뢰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베토벤은 다시 작곡에 몰두했다. 후기의 피아노 소나타와 병행하여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가 탄생했고, 새로운 교향곡의 스케치가 모습을 나타냈는데 이것이 바로 제9번이다. 이 불멸의 두 작품의 어느 쪽을 보더라도 그것은 교회의 연주회라는 테두리를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미사도 제9번도 미사곡이나 교향곡이라는 용어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전자는 전례용 기능이 강해서 오늘날에는 성대한 제전 때 사용하는 음악이 되었으며 후자는 전인류의 송가가 되었다. 미사곡은 큰 블록을 단위로 하여 작곡되어 그 광대함과 중량감, 통일성이 세부를 지배하고 있다. 종교음악의 모든 관념에 도전하는 듯한, 거의 극장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양식에서 세부적인 것이 중요성을 되찾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크레도뿐이다. 인 비탐 In Vitam의 푸가가 이 작품을 그러한 연주성에서 분리시켜 본래의 구축적인 배경 속에 내놓고 있다. 그리고 도나 노비스 파쳄에 의해서 작품은 온화한 결말을 맞이하고 있다.
교향곡 제9번 op. 125는 베토벤의 창작활동 전기간에 걸쳐서 그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792년 이래 베토벤은 실러의 환희에 부쳐에 심취해 있었으며, 1817년에는 성악을 도입한 오케스트 작품을 스케치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이 교향곡의 작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1822~23) 인성에 의한 피날레는 단념하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1823년 말에 드디어 종합된다. 실러의 환희에 부쳐는 1824년 5월 7일 공연된 이 작품의 최후를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곡의 처음 3악장은 각기 그 악장을 상기시키는 도입부에 의해서 최후의 악장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환희의 주제는 여기서 소극적으로 등장하고 저음의 현악기에 의해서 매우 부드럽게 불려지다가 점차 확산이 시작된다. 이 주제는 각종 음악 중에서 전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인데 그야말로 작곡자의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 얻어진 것이며, 이 주제의 200개 이상의 상태가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베토벤은 대부분의 작품의 방대한 양의 스케치 중에서 한 주제의 발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체가 되는 상태를 추구해 왔다. 그러던 것이 이 작품에서는 반대로 변화를 받는 일도 없으며 스스로 변화하는 일도 없는 무수한 노래에 의해서 항구적인 이상적 상태를 추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피날레의 발전부는 실제로는 전혀 발전이 아니라 똑같은 것의 확대이며 어떤 이념의 찬미이자 주문인 것이다. 그래서 이 피날레는 연주회장을 초월하여 송가(頌歌)라는 운명을 지게 된다.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된 한 기념비적 작품이 미사와 제9번 사이에 존재한다. 바로 디아벨리의 왈츠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op. 120(1823)이다. 이것은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상식을 초월한 작품이며 주제라는 관념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변주곡이라는 관념을 부정하고 있다. 이 장대한 행정(行程)에서도 전편이 주제이며 변용이기도 하다. 이 행정은 기본이 되는 화성의 서식만을 편재하는 근본 주제로 가지고 있으며, 이 화성의 기본 서식은 작품을 통하여 33개의 상상력의 섬광을 이끌어내는 동일한 동인력(動因力)이 되고 있다.
평온과 고독
생애의 말기에 이르러 베토벤은 기묘한 균형상태에 이른 것 같다. 이 무렵부터 그의 생활은 완전히 내적인 것이 되어 최후의 창작활동으로, 몇 편의 현악4중주곡이 그의 말년에 작곡되고 있다. 성공에 무관심해지고 복장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사람을 싫어하게 된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필담장(筆談帳)을 통해서만 하게 되었다(베토벤의 하인이었던 제자 신들러는 이 필담장의 파괴와 삭제를 자행했다). 장 질환과 시력 감퇴가 그다지 심하지 않을 때는 은(銀)의 백조정(白鳥亭)에서 친구들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오랫동안 독백처럼 떠드는 베토벤의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었다. 거기에는 철학이나 정치에 대한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이 많았는데 그가 이상으로 삼고 있던 영국인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베토벤의 칼에 대한 배타적이고 질투 어린 애정(베토벤은 칼의 어머니를 미워했다)은 그들 사이를 더욱 나쁘게 하여, 조카는 끊임없는 충돌로 정신의 안정을 잃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극도의 낙담, 그리고 화해, 두 사람의 그나이크센도르프에 있는 동생 요한의 집에서의 체류는 형제간의 언쟁을 초래했고, 머리끝까지 화가 나 비가 오는 데도 마차를 타고 빈으로 간 베토벤은 이미 폐렴에 걸려 있었다. 그는 1827년 3월 26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그래도 고독 속에 세상을 떠난 그의 장례 행렬에는 2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최후의 창작활동
최후로 작곡된 몇 개의 현악4중주곡은 베토벤의 내면세계를 아주 잘 나타낸 걸작이다. 이들 작품 번호는 실제의 작곡 순서와는 다르다. 현악4중주곡 제12번 op. 127(1825)과 그 거울의 유희에 이어지는 것은 작곡 연도에 따르자면 op. 132에 해당하는 제15번이다. 리디아 선법으로 씌어져 있는 이 작품의 제2악장 감사의 노래 Chant de reconnaissance는 음악의 한 정점을 이루고 있다. 1826년 완성된 제13번은 6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그 제5악장의 멋진 카바티나에서는 쉼표가 음표와 같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또한 이 작품을 끝내는 것은 대푸가일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베토벤은 대푸가를 이 작품에서 제외시켰다. 이는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역시 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처럼 대규모이고 더욱이 놀라운 화성적 긴장에 지배된 이 유기물(有機物)이 도대체 무엇에 접합될 수 있었을까? op. 133의 대푸가는 이 곡이 거기에 어울리게 보이는 이상 더욱 격렬하게 고전적 도식을 부수고 있는데, 이 말이 가진 모든 의미에서 고립된 걸작이다. 1826년 완성된 현악4중주곡 제14번 op. 131은 형식면에서 이 작곡가의 가장 대담한 작품이다. 성격이 아주 다른 7개의 악장이 작품 전체의 통일은 무시하고 있지만, 처절한 압력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처럼 그것을 성취하여 버리는 것이다. 최후에 작곡된 현악4중주곡 제16번, op. 135(1826)는 특히 여러 주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 원인은 최종 악장의 첫머리에 적혀 있는 유명한 명구(銘句)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Muss es sein?이렇게 해야 한다 Es muss sein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운명에 관계된 비극적인 물음이 아니라 단순한 농담의 문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에 선행하는 조용한 휴식의 노래, 평화의 노래 속에서, 그리고 그 멋진 변주 속에서 베토벤은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고별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만년의 현악4중주곡, 디아벨리 변주곡, 후기의 피아노 소나타 등은 베토벤의 사상을 최고로 달성시키고 있는데, 이들 작품은 그의 창작활동의 초기에 씌어진 걸작들에서 이미 명확해진 혁신적 정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전통적인 어법의 기초가 이미 초기 작품에서, 음악적 위계질서나 형식에 있어서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구조에 있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op. 103에서 op. 53까지, op. 57부터 op. 111까지 현악4중주곡의 제3번 op. 18부터 라주모프스키 제3번 또는 대푸가에 이르기까지 개개의 작품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재료를 새로운 구축물에 제공했던 것이다. 베토벤의 창작활동을 분명히 구분지어 2기, 3기, 또는 4기(뱅상 댕디에 의하면 모방기-변천기-반성기)로 구분하는 것은 그 분류가 진보라는 조잡한 관념, 예술에 있어서는 기만이라 할 수 있는 관념을 포함하는 것인 만큼 더욱 잘못된 것처럼 생각된다. 자기의 창작활동의 내부에서의 분류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범주 내에서의 분류도 불가능하다. 베토벤은 사람들이 고전파나 낭만파, 이 두 부류 증 하나에 그를 집어넣으려 하는 것을 거침없이 초월하고 있는 듯하다. 두 정신세계의 경계 지역에서 그의 작품은 그 본성에 의해서 역사를 일탈하고 있다. 즉, 현재에도 끝없이 독창적이며 항구적인 베토벤의 작품은 근대적이며, 근대성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정의하고 명확하게 하며 구현한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어법으로 그러한 관념을 명백하게 서술하고 재창조하고 가공했던 것이다.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이 베토벤의 작품과 함께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것도, 그리고 그 작품이 영원히 새롭고 혁신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도 이러한 대화 속에서인 것이다.
A. B.
주요 작품
킨스키 할름 KinskyHalm의 작품 목록인 WoO(Werke ohne Opuszahl[작품 번호가 없는 작
품]) 번호는 작품 번호가 없는 것의 분류 때 사용되어 왔다.
[피아노곡]
◇소나타
▶3개의 선제후 소나타 3 Kurfürstensonaten WoO 47(1782~83)
▶피아노 소나타 제1번, 제2번, 제3번 op. 2(1795~96)
▶제20번 op. 492(1796)
▶제4번 op. 7(1796~97)
▶제5번, 제6번, 제7번 op. 10(1796~98)
▶제19번 op. 491(1798)
▶제8번 "비창 Pathétique" op. 13(1798~99)
▶제9번, 제10번 op. 14(1798~99)
▶제11번 op. 22(1799~1800)
▶제12번 op. 26[장송 행진곡 Trauermarsch 딸림](1800~01)
▶제13번 op. 271[환상곡풍 소나타 Sonata quasi una fantasia](1800~01)
▶제14번 "월광 Mondschein" op. 272[환상곡풍 소나타](1801)
▶제15번 "전원 Pastorale" op. 28(1801)
▶제16번 "부점 La Boiteuse", 제17번 "템페스트 Tempest", 제18번 "메추라기 La Caille" op. 31(1801~02)
▶제21번 "발트슈타인 Waldstein"(L'Aurore[F]) op. 53(1803~04)
▶제22번 op. 54(1804)
▶제23번 "열정 Appassionata" op. 57(1804~05)
▶제24번 "테레제에게 A Thérese" op. 78(1809)
▶제25번 op. 79[독일 무곡풍으로 alla tedesca](1809)
▶제26번 "고별, 부재, 재회 Lebewohl, Abwesenheit, Wiedersehn" op. 81a(1809~10)
▶제27번 op. 90(1814)
▶제28번 op. 101(1816)
▶제29번 "하머클라비어 Hammerklavier" op. 106(1817~19)
▶제30번 op. 109(1820)
▶제31번 op. 110(1821)
▶제32번 op. 111(1821~22)
◇변주곡
▶가곡 "Ich hatt'ein Kleines Hüttchen nur"에 의한 8개의 변주곡 Peters 298b
▶드레슬러의 행진곡 주제에 의한 9개의 변주곡 9 Variationen über einen Marsch von E. C. Dressler WoO 63(1782)
▶스위스 노래의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WoO 64(1790경)
▶리기니의 아리에타 "연인이여 오라 Venni amore"의 주제에 의한 24개의 변주곡 WoO 65(1791, 제2판 1802)
▶디터스도르프의 빨간 두건 Es war einmal에 의한 13개의 변주곡 WoO 66(1792)
▶하이벨의 발레 "방해받은 결혼 Le nozze disturbate"의 "비가노의 미뉴에트 Menuet a la Vigano"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68(1795)
▶파이지엘로의 오페라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La Molinara"의 아리아 "시골의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Quant'e piu bello"의 주제에 의한 9개의 변주곡 WoO 69(1795)
▶파이지엘로의 오페라 "물레방앗간의 아가씨"의 2중창 "이제 내 마음은 이제 텅 비어 Nel cor piu non mi sento"의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WoO 70(1795)
▶브라니츠키의 발레 "숲 속의 아가씨 Das Waldmädchen"의 러시아 무곡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71(1796)
▶그레트리의 "불타는 정열 Une fievre brulant"의 주제에 의한 8개의 변주곡 WoO 72(179697)
▶살리에리의 오페라 "팔스타프 Falstaff"의 2중창 "바로 그대로 La stessa, la stessissima"의 주제에 의한 10개의 변주곡 WoO 73(1799)
▶빈터의 오페라 "중지된 봉헌제(奉獻祭) Das unterbrochene Opferfest"의 4중창 "아들이여, 조용히 쉬어라 Kind, willst du ruhig schlafen"의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WoO 75(1799) ▶쥐스마이어의 오페라 졸리만 2세, Soliman II에서의 3중창 "장난과 농담 Tändeln und Scherzen"에 의한 8개의 변주곡 WoO 76(1799)
▶창작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WoO 77(1800)
▶창작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op. 34(1802)
▶발레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의 주제에 의한 15개의 변주곡과 푸가(에로이카 변주곡 EroicaVariationen) op. 35(1802)
▶"신이여 왕을 지켜 주소서 God save the King"에 의한 7개의 변주곡 WoO 78(1803)
▶"룰 브리타니아 Rule Britania"에 의한 5개의 변주곡 WoO 79(1803)
▶창작 주제에 의한 32개의 변주곡 WoO 80(1806)
▶창작 주제에 의한("아테네의 폐허 Die Ruinen von Athen" 중 터키 행진곡에 의한) 6개의 변주곡 op. 76(1809)
▶디아벨리의 왈츠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op. 120(1823)
▶바가텔, 소나티네, 무곡, 기타 소품
▶론도 WoO 48(1783)
▶론도 WoO 49(1783)
▶미뉴에트 WoO 82(1785경)
▶전주곡 WoO 55(1787경)
▶피아노 또는 오르간을 위한 2개의 전주곡 op. 39(1789)
▶소나티네의 2개의 악장 WoO 50(1790경)
▶미완성의 소나티네 WoO 51(1791~92경)
▶론도 아 카프리치오 Rondo a capriccio(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 Die Wut über den verlorenen Groschen[D]Le Sou perdu[F]) op. 129(1795경)
▶론도 op. 51[제1번(179697), 제2번(1800)]
▶간주곡바가텔 Intermezzobagatelle WoO 52(1796~98)
▶알레그레토 WoO 53(1796~98)
▶소곡 "유쾌와 비애 Lustigtraurig" WoO 54(1797경)
▶7개의 렌틀러 WoO 11(1798)
▶알르망드 WoO 81(1800)
▶7개의 바가텔 op. 33(1802)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위한 2개의 카덴짜 WoO 58(1802경)
▶안단테 파보리 Andante favori WoO 57(1803~04)
▶바가텔 WoO 56(1804)
▶6개의 에코세즈 WoO 83(1806경)
▶환상곡 op. 77(1809)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 Für Elise" WoO 59(1810)
▶폴로네즈 op. 89(1814)
▶최후의 악상 WoO 60(1818)
▶2개의 작품[WoO 61(1821), 61a(1825)]
▶11개의 새로운 바가텔 op. 119(1821~22)
▶6개의 바가텔 op. 126(1823~24)
▶왈츠 WoO 84(1824)
▶왈츠 WoO 85(1825)
▶에코세즈 WoO 86(1825)
◇피아노 연탄곡
▶발트슈타인 백작의 주제에 의한 8개의 변주곡 WoO 67(1791경)
▶소나타 op. 6(1796~97)
▶가곡 "그대를 생각하며 Ich denke dein"과 6개의 변주곡 WoO 74(1799~1804)
▶3개의 행진곡 op. 45(1802~03)
▶"대 푸가" op. 133의 편곡 op. 134(1826)
[실내악곡, 각종 기악곡]
◇피아노와 바이올린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의 "백작께서 춤을 추신다면 Se vuol ballare"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40(1792~93)
▶론도 WoO 41(1793~94)
▶6개의 알망드 WoO 42(1795~96)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제2번, 제3번 op. 12(1797~98)
▶바이올린 소나타 제4번 op. 23(1800~01)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 Frühling" op. 24(1800~01)
▶바이올린 소나타 제6번, 제7번, 제8번 op. 30(1802)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크로이처 Kreutzer" op. 47(1802~03)
▶바이올린 소나타 제10번 op. 96(1812)
◇피아노와 첼로
▶헨델의 "유다스 마카베우스 Judas Maccabeus"의 "보아라, 용사는 돌아온다 See, the conquering, hero"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45(1796)
▶첼로 소나타 제1번, 제2번 op. 5(1796)
▶모짜르트의 "마적 Zauberflöte"의 "처녀인가 부인인가 Mädchen oder Weibchen"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op. 66(1798)
▶모짜르트의 "마적" 중 "사랑을 아는 사나이들은 Bei Männern"의 주제에 의한 7개의 변주곡 WoO 46(1801경)
▶첼로 소나타 제3번 op. 69(1807~08)
▶첼로 소나타 제4번, 제5번 op. 102(1815)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한 3중주곡
▶피아노3중주곡 WoO 38(1790경)
▶피아노3중주곡 제1번, 제2번, 제3번 op. 1(1794~95)
▶피아노3중주곡 제4번 op. 11(1798)
▶창작 주제에 의한 14개의 변주곡 op. 44(1800)
▶7중주곡 op. 20을 작곡자가 편곡한 3중주곡 op. 38(1803)
▶"교향곡 제2번"에서 작곡자가 편곡한 피아노3중주곡 op. 36bis(1805)
▶피아노3중주곡 제5번 "유령 Geister", 제6번 op. 70(1808)
▶피아노3중주곡 제7번 "대공(大公) Erzherzog" op. 97(1811)
▶피아노3중주곡의 악장 WoO 39(1812)
▶밀러의 징슈필 "프라하의 자매 Die Schwestern von Prag"의 "나는 양복공 카카두 Ich bin der Schneider Kakadu"의 주제에 의한 10개의 변주곡과 론도(1815경)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3중주곡
▶현악3중주곡 제1번 op. 3(1792)
▶세레나데 op. 8(1796~97)
▶현악3중주곡 제2번, 제3번, 제4번 op. 9(1796~98)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한 4중주곡
▶3개의 피아노4중주곡 WoO 36(1785)
▶5중주곡 op. 16을 작곡자가 편곡한 4중주곡 개정판 op. 16(1796)
◇현악4중주곡
▶현악4중주곡 제1번, 제2번, 제3번, 제4번, 제5번, 제6번 "로프코비츠 Lobkowitz" op. 18(1798~1800)
▶"피아노 소나타 제9번"을 작곡자가 편곡한 개정판 현악4중주곡 op. 141(1801~02)
▶현악4중주곡 제7번부터 제9번 op. 59[라주모프스키 Rasumowsky](1806)
▶현악4중주곡 제10번 "하프 Harfe" op. 74(1809)
▶현악4중주곡 제11번 "콰르테토 세리오소 Quartetto Serioso" op. 95(1810)
▶현악4중주곡 제12번 op. 127(1822~25)
▶현악4중주곡 제15번 op. 132(1825)
▶현악4중주곡 제13번 op. 130(1825~26)
▶대 푸가 Grande Fugue op. 133[본래 현악4중주곡 op. 130의 끝곡으로 작곡](1825)
▶현악4중주곡 제14번 op. 131(1826)
▶현악4중주곡 제16번 op. 135(1826)
◇현악5중주곡
▶현악5중주곡 제1번 op. 4(1795~96)
▶현악5중주곡 제2번 op. 29(1801)
▶현악5중주곡 제3번[피아노3중주곡 제3번 op. 1의 작곡자 및 그밖의 사람들에 의한 편곡] op. 104(1817)
▶5중주 푸가 op. 137(1817)
◇관악기를 포함한 곡
▶피아노, 플루트, 바순을 위한 3중주곡 WoO 37(1786~90)
▶클라리넷과 바순을 위한 3개의 2중주곡 WoO 27(1790~92)
▶관악8중주곡 op. 103(1792)
▶관악8중주를 위한 론디노 WoO 25(1792)
▶플루트2중주곡 WoO 26(1792)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2대의 호른을 위한 6중주곡 op. 81b(1794)
▶2대의 오보에와 잉글리쉬 호른을 위한 3중주곡 op. 87(1794)
▶플루트,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 op. 25(1795~96)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5중주곡 op. 16(1796)
▶관악6중주곡 op. 71(1796)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 Don Giovanni"의 "자, 그의 손을 La ci derem la mono"의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WoO 28[2대의 오보에와 잉글리쉬 호른을 위한](1796~97)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를 위한 3중주곡 op. 11(1798)
▶현악기와 관악기를 위한 7중주곡 op. 20(1799~1800)
▶피아노와 호른을 위한 소나타 op. 17(1800)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를 위한 3중주곡[7중주곡 op. 20을 편곡] op. 38(1803)
▶6개의 관악기를 위한 행진곡 WoO 29(1807경)
▶4대의 트롬본을 위한 3개의 에클레아 WoO 30(1812)
▶피아노와 플루트를 위한 6개의 주제와 변주 op. 105(1817~18)
▶피아노와 플루트를 위한 10개의 주제와 변주 op. 107(1817~18)
▶11개의 빈 무곡 "뫼틀린 춤곡 Mödingertänze" WoO 17[현악기와 관악기에 의한 7중주를 위한](1819)
◇그밖의 악기에 의한 실내악곡 및 기악곡
▶오르간을 위한 푸가 WoO 31(1783)
▶2대의 바이올린과 저음 악기를 위한 6개의 미뉴에트 WoO 9(1795경)
▶피아노와 만돌린을 위한 소나티네와 아다지오 WoO 43(1796)
▶피아노와 만돌린을 위한 소나티네와 변주곡 WoO 44(1796)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2중주곡 WoO 32(1795~98경)
▶피리 시계를 위한 5개의 곡 5 stücke für eine Flötenuhr WoO 33(1799)
▶6개의 렌틀러 WoO 15[2대의 바이올린과 저음 악기를 위한](1802)
[관현악곡]
◇교향곡
▶제1번 op. 21(1799~1800)
▶제2번 op. 36(1801~02)
▶제3번 "영웅 Eroica" op. 55(1802~04)
▶제4번 op. 60(1806)
▶제5번 op. 67(1807~08)
▶제6번 "전원 Pastorale" op. 68(1807~08)
▶제7번 op. 92(1811~12)
▶제8번 op. 93(1812)
▶제9번[합창 딸림] op. 125(1822~24)
◇서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Die Geschöpfe des Prometheuse op. 43(1800~01)
▶레오노레 Leonore 제1번 op. 138(1805)
▶레오노레 제2번 op. 72 개정판(1805)
▶레오노레 제3번 op. 72 제3판(1806)
▶코리올란 Coriolan op. 62(1807)
▶에그몬트 Egmont op. 84(1809~10)
▶아테네의 페허 Die Ruinen von Athen op. 113(1811)
▶슈테판 왕 König Stephan op. 117(1811)
▶피텔리오 Fidelio op. 72(1814)
▶명명축일 Zur Namensfeier op. 115(1815)
▶헌당식 Die Weihe des Hauses op. 124(1822)
◇발레음악
▶기사 발레를 위한 음악 Musik zu einem Ritterballett WoO 1(1791)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Die Geschöpfe des Prometheus op. 43(1800~01)
◇부수음악(합창이 딸린 부수음악은 합창곡을 참조)
▶에그몬트 op. 84(1809~10)
▶쿠프너의 "타르페이아 Tarpeja"를 위한 개선행진곡과 제2막에의 서주 WoO 2(1813)
◇그밖의 작품
▶12개의 미뉴에트 WoO 7(1795)
▶12개의 독일 무곡 WoO 8(1795)
▶6개의 미뉴에트 WoO 10(1795)
▶12개의 미뉴에트 WoO 12(1799)
▶12개의 알르망드 WoO 13(1799~1800경)
▶12개의 콩트르당스 WoO 14(1800~01)
▶12개의 에코세즈[분실] WoO 16(1806경)
▶폴로네즈 WoO 18, WoO 19, WoO 20(1810)
▶웰링턴의 승리, 또는 비토리아의 싸움 Wellingtons Sieg, oder Die Schlacht bei Vittoria op. 91(1813)
▶축하 미뉴에트 Gratulations Menuett WoO 3(1822)
▶군대음악을 위한 행진곡, 기타 작품 WoO 22, WoO 23, WoO 24(1809~16)
[협주곡]
▶쳄발로 또는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협주곡 WoO 4(1784)
▶바이올린 협주곡의 단장 WoO 5(1790~92경)
▶피아노 협주곡 제1번 op. 15(1798)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 19(1794~95;개작 1798, 1801)
▶피아노 협주곡 제3번 op. 37(1800~02)
▶바이올린을 위한 로망스 제1번 op. 40(1802)
▶바이올린을 위한 로망스 제2번 op. 50(1802)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협주곡 op. 56(1803~04)
▶피아노 협주곡 제4번 op. 58(1805~06)
▶바이올린 협주곡 op. 61(1806)
▶피아노 협주곡[바이올린 협주곡 op. 61을 편곡] op. 61 개정판(1807)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Kaiser" op. 73(1809)
[성악곡]
◇오페라
▶레오노레 Leonore[초판](1804~05)
▶레오노레[개정판](1806)
▶피델리오 Fidelio[레오노레 제3판] op. 72(1814)
◇오라토리오 및 미사곡
▶올리브 산의 그리스도 Christus am Ölberg op. 85(1801~03)
▶미사 C장조 op. 86(1807)
▶장엄 미사곡 D장조 op. 123(1819~23)
◇합창 딸린 부수음악
▶아테네의 폐허 op. 113, op. 114(1811)
▶슈테판 왕 König Stephan op. 117(1811)
▶게르마니아 Germania WoO 94[징슈필 좋은 소식 Die gute Nachricht을 위한 피날레의 합창](1814)
▶연합한 왕후(王侯)들에의 합창 Chor auf die verbündeten Fürsten WoO 95(1814)
▶레오노라 프로하스카 Leonora Prohaska WoO 96(1815)
▶모든 것은 끝났다 Es ist vollbracht WoO 97[개선문 Les Arcsde triomphe을 위한 피날레의 합창](1815)
▶조용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Meeresstille und glückliche Fahrt op 112[칸타타](1815)
▶"헌당식"의 합창곡 WoO 98(1822)
◇칸타타 및 그밖의 합창이 딸린 작품
▶요제프 2세 장송 칸타타 Kantate auf den Tob Kaiser Josepfs II WoO 87(1790)
▶레오폴트 2세 대관식 칸타타 Kantate auf die Erhebung Leopolds III WoO 88(1790)
▶푼스 주(酒)의 노래 Punschlied WoO 111[제창 합창](1790경)
▶자유인 Der freie Mann WoO 117[제창 합창](1791~92경)
▶피아노, 관현악, 합창을 위한 "환상곡" op. 80(1808)
▶칸타타 "영광의 순간 Der glorreiche Augenblick" op. 136(1814)
▶맹우(盟友)의 노래 Bundeslied op. 122[독창 2명, 3부 합창, 6개의 관악기를 위한](1822)
▶로프코비츠 칸타타 Lobkowitzkantate WoO 106[소프라노와 3부 합창을 위한](1823)
▶봉헌가(奉獻歌) Opferlied op. 121b(1824)
◇관현악 반주 딸린 콘서트용 아리아와 무대음악
▶키스의 시도 prüfung des küssens WoO 89[베이스를 위한](1790경)
▶아가씨들과 사이 좋게 Mit Mädeln sich vertragen WoO 90[베이스를 위한](1790경)
▶아아, 불실한 자여! Ah perfido! op. 65[소프라노를 위한](1795~96)
▶"오 이 무슨 인생인가! O welch ein Leben!"[테너를 위한]과 "꽉 끼는 구두가 싫으시다면 Soll ein Schuh nicht drücken" WoO 91[소프라노를 위한](1796)
▶첫사랑 Primo amore WoO 92[소프라노를 위한](1800)
▶아니요, 걱정하지 마세요 No, non turbarti WoO 92a[소프라노를 위한](1801~02)
▶"북은 울린다 Die Trommel gerührt"와 "기쁨과 슬픔으로 가득 차 Freudvoll und leidvoll" op. 84[소프라노를 위한 에그몬트의 부수음악 중 클레르헨의 노래](1809~10)
▶무신앙을 저주하며 Tremate, empi tremate op. 116[소프라노, 레너, 베이스를 위한](1814) ◇가곡과 중창곡(독일어 가사에 의한 것이 80곡 이상, 이탈리아어에 의한 것 약간, 프랑스어 가사로 된 것도 몇 곡 있다)
▶우리만의 세계여행 Urians Reise um die Welt op. 521(1785경)
▶아델라이데 Adelaide op. 46(1795~96)
▶작별 La Partenza WoO 124(1797~98)
▶겔레르트의 시에 의한 6개의 노래 op. 48(1803)
▶우정의 기쁨 Das Glück der Freundschaft op. 88(1803)
▶희망에 부쳐 An die Hoffnung[2판; op. 32(1805), op. 94(1813)]
▶이 어두운 무덤 속에 In questa tomba oscura WoO 133(1807)
▶먼 나라의 노래 Lied aus der Ferne WoO 137(1809)
▶타향의 젊은이 Der jüngling in der Fremde WoO 138(1809)
▶사랑하는 사람 Der Liebende WoO 139(1809)
▶6개의 노래 op. 75[괴테, 할렘, 라이시히의 시에 의한](1809)
▶괴테의 시에 의한 3개의 노래 op. 83[X슬픔 속의 기쁨 Wonne der Wehmut, 동경 Sehnsucht, 물들인 리본으로 Mit einem gemalten Band](1810)
▶전사의 이별 Des Kriegers Abschied WoO 143(1814)
▶비밀 Das Geheimnis WoO 145(1815)
▶아득히 먼 연인에게 부치는 6개의 노래 6 Lieder an die ferne Geliebte op. 98(1816)
▶저녁의 노래 Abendlied WoO 150(1820)
◇그밖의 성악곡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의 민요 편곡이 약 200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반주가 딸린 것(181018)
▶2중, 3중, 4중창곡의 작은 연작이 여러 편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어 가사
에 의했으며 피아노 반주가 딸려 있다.
▶기타 카논, 소곡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