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서 배운 조직신학은 목회현장에서 쓸모없는 죽은 지식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술 더 떠서 “우리가 도대체 신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자조적(自嘲的) 넋두리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목회현장에서 필요한 지식을 다시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여기저기 세미나를 뛰어다니면서 목회 자료와 각종 신학지식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 이처럼 신학교의 교육을 불신하는 풍조는 비단 조직신학과 같은 이론신학뿐 아니라, 실천신학 분야에까지도 널리 퍼져있는 듯하다.
우리가 조직신학을 경원시하거나 불필요한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이유는 조직신학 그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 원인은 조직신학의 원리와 주제들을 목회현장에서 제대로 응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 목회현장에서 담임목사의 권위가 지나치게 위압적이기 때문에,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는 신학생들의 호소가 적지 않게 들린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호소를 했던 이들도 기성세대에 동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목회현장은 그 문제를 반복하며 대물림하게 된다. 오염된 강물을 살리려면, 자체 정화를 하거나 새롭고 신선한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건강하지 못한 목회현장도 스스로 정화하거나 아니면 참신한 젊은 세대가 그 물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학 경시풍조’ 때문이라는 견해는 대단히 일리가 있다. 이학준은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은연중에 목회와 신학은 별개의 것이라거나 한술 더 떠서 신학이 목회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학에 대한 이해가 아주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신학은 우리의 사역이 필요로 하는 모든 자원들을 착상, 설계, 제작하는 연구소”와 같고, “사역은 신학적 자원을 현장에 접목시켜 실제적인 성과들을 도출해내는 공장”과 같다고 설명했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