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로 자동차의 뼈대를 만들고, 무인 항공기 ‘드론’으로 물건을 배달하고, 가정용 로봇이 빨래를 개는 시대다. 하지만 교육은 빠른 변화에 한참 뒤떨어졌다. 책상에 앉아 일방적으로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방식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에게 적합하지 않다. 지금 중·고등학생이 20대 후반이 되어 이끌어갈 미래 사회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이며 경제적 과도기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정지훈 교수가 말하는 미래 인재의 조건에 무심할 수 없는 이유다.
편집부가 독자에게 ...
메디치 효과를 아시나요? ‘메디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명한 가문 이름입니다. 11~12세기경 메디치가문에서 지식인과 예술인을 비롯해 각기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을 집에 머물게 했는데, 그들이 한방을 쓰면서 생각을 나눈 것이 르네상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메디치 효과’라는 말이 파생했습니다. 융합은 미래를 대비하는 생존 기술입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기 다른 영역의 지식을 총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아이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고, 사회적 가치를 고민한다면 융합형 인재입니다. 내 아이를 미래형 인재로, 융합하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 호 테마 인터뷰에서 알려드립니다.
_박헤나 리포터 |
정지훈 교수는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학자이자 융합 전문가다. 의대 출신 미래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2007년부터 우리들병원 생명과학기술연구소장으로, 2010년부터 관동의대 교수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으로 일하며 의료와 다방면의 융합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정 교수는 파워 블로그 ‘하이 컨셉&하이 터치’ 운영자로 다양한 전문 지식을 연결한 칼럼을 선보이고, 예측할 수 없기에 불안한 미래를 포용하고 불확실성을 즐기는 것이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말한다.
한 우물을 파다가 우물에 갇힌다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 고 흔히들 말한다. 돌잡이할 때마다 의사봉이나 청진기를 반드시 준비하고, 의사나 법조인이 되기 위한 로드 맵을 충실히 따르며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머지않아 진단이나 치료에 컴퓨터와 로봇이 큰 역할을 하고, 법조인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200여 년 동안 기계가 빼앗아간 일자리를 떠나, 그 기계가 창출한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거대한 이동을 목격할 것”이라는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말이 과언은 아니다.
융합 전문가이자 미래학자 정지훈(46) 교수는 한 우물 파기에 두 가지 함정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요. 죽어라 한 우물만 파다가 물이 안 나올 수도 있고, 잠시 나오다가 말라버릴 수도 있지요. 그래서 융합이 필요해요. 융합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에요.”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융합은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융합형 인재를 이른바 ‘T자형 인재’ 라고 하는데, 전문성을 하나 이상 갖춰야 한다는 거예요. 한 우물을 깊이 파면서, 동시에 다른 우물과 연결할 수 있는 종합적인 사고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하나만 아는 사람은 유연성이 부족하고 변화에 대응하기 힘들어요.”
의사 때려치우고 융합 전문가의 길에 들어서다 정 교수는 의대 출신이지만, 한 우물 파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딴짓 보존의 법칙’ 이라는 게 있다. 시험공부 하려고 컴퓨터게임을 멀리해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보고, 아침 시간에 모처럼 몰입해서 공부해도 저녁 시간을 헛되게 보내듯, 딴짓의 총량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중 ·고등학생 시절에 그는 공부보다 음악, 만화, 애니메이션, 컴퓨터공학이 재미있었다. 대학생 시절엔 전공인 의학만큼이나 IT와 디지털, 사회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안타깝게도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자율적으로 뭔가 해볼 여유가 없어요. 모든 일상이 학업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시간을 만들어야 해요. 예를 들어 청소년이 기업가 정신을 배우는 ‘어썸스쿨’ 은 방과 후에 수업을 해요. 먼저 딴짓을 할 시간을 만들어야 해요.”
의대 입학은 뜻하지 않은 결과였다. 전기 대학 입시에서 낙방한 뒤 후기 대학 입시에서 가장 가까운 한양대를 선택했는데, 모집하는 학과가 의학과뿐이었다.
“의대에 진학해 전공 공부를 성실히 했고 의사가 되는 것을 의심해본 적 없어요. 당시 컴퓨터 기반 의과대학 시험 시스템을 개발해 의학 교육 저널에 실린 적도 있죠. 그런데 본과 3학년 때 벽에 부딪혔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좋아하는가’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했죠. 그리고 본과 3학년 종합병원 임상 실습 때 붕어빵처럼 똑같아지는 선배들의 삶을 보면서, 나 역시 그렇게 살기는 억울했어요. 내 선택과 상관없는 삶이 눈앞에 놓인 것 같았죠.”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을 강화하라 공중보건의 시절, 그는 보건소 전산화와 전염병 관련 시스템 구현, 교육 등 의료와 컴퓨터 기술을 접목한 일을 하며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융합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앞으로 융합이 꼭 필요한 시대가 올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불확실한 길을 가려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예방의학 교실의 신영전 교수를 찾아갔어요. 그가 예방의학과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교훈을 들려주더군요.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을 갖춰라. 남과 비교하지 마라.’ 그런 마음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잖아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최저 생계비로 살아갈 각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정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서 보건정책관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의공학·의생명과학을 공부했다. 2007년 귀국한 뒤 우리들병원 생명과학기술연구소장으로, 2010년부터는 가톨릭 관동대 교수와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으로 일했다. 작년부터는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통섭형 인재, 협업형 인재, 네트워크형 인재
“미래에 어떤 직업이 유망한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미래는 불확실하니까요. 다만 미래를 지배할 인재는 통섭형 인재, 협업형 인재, 네트워크형 인재라고 할 수 있어요.”
통섭형 인재는 자기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를 묶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범주를 넘나드는 유연성을 갖춘 사람이다. 협업형 인재는 생각과 소질이 다른 사람이나 조직과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네트워크형 인재는 연결 고리가 많아서 조직을 이끌 수 있고, 문제 해결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라는 책에서, 미래가 하이 콘셉트 (High Concept)와 하이 터치(High Touch)의 시대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미래에 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이 컨셉 & 하이 터치’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을 ‘미래 작가’라고 칭한다.
“하이 콘셉트는 분야를 넘나드는 재능을 갖추고, 분석보다 가치를 알아보고 사회문제를 찾아내는 능력이에요. 하이 터치는 감성이에요. 남의 아픔을 공감하고, 내가 즐거워하는 걸 남에게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죠.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갖출 수 없는 두 가지가 하이 콘셉트와 하이 터치입니다. 기계는 문제를 풀 줄 알아도, 문제를 발견할 줄은 몰라요. 기계와 소통이 아무리 많아져도 인간 사이의 소통과는 다르죠.”
실패와 좌절로 단단해지게 하라 “하이 콘셉트이나 하이 터치는 책상에 앉아 일방적인 수업을 듣고 필기하며, 내용을 암기해 시험을 치르며 길러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은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한 채, 경쟁의 스트레스로 가득 채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어요. 무엇이든 직접 해보는 게 중요해요. 학생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야 미래 사회를 이끌 수 있지요.”
정 교수는 아버지로서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자녀에게 자유롭게 탐색할 소재를 던져주고, 자기 인생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 역할을 해왔다. 놀이와 열정을 연결하는 교육을 지향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게임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게임 중독일까 봐 걱정해요. ‘심스(Sims)’라는 인기 게임을 디자인 한 윌 라이트는 “게임은 실패에 기반을 둔 학습”이라 말해요. 게임에서 실패는 일종의 즐거움이죠. 실패했다고 실망하기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시 도전하고 노력하잖아요. 인생에서 겪을 무수한 실패와 좌절에 대해 무조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의연히 다시 일어서게 하는 자세를 가르쳐주죠.”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수한 게임을 접하게 하고, 게임으로 아이들의 학습을 유도했다. 예를 들면 세계사를 공부해야 게임을 잘할 수 있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자료가 영어로 제시되는 종류의 것들. ‘에이지오브엠파이어(Age of Empire)’ ‘토탈워(Total War)’ ‘문명(Civilization)’ 등이다. 영문판을 사주니 영어사전을 뒤지며 매뉴얼과 해외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았고, 영어 공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 교수가 학부모들에게 당부한다. 자녀에게 최소 생활비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라고. 따뜻한 집이 아니라 허름한 비닐하우스 밖에서 자녀를 키우라고. 좌절하고 실패하며 단단해지게 만들라고.
“미래는 사회 변동성이 커져요. 자동화와 IT 기술, 디지털 기술의 영향력이 커지고, 경제 시스템의 과도기로 큰 기업이 몰락하고 듣도 보도 못한 기업이 급부상할 거예요. 급격한 변화에 기가 꺾이지 않으려면 좌절에 강해지는 연습을 해야 해요. 자꾸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실패하고 또 실패하세요.”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