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도 더위는 우리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밖에서 활동한다는 자체가 모험인 것이다. 오전에는 집에서 보내기로 하고, 오후에 비자림을 방문하고 저녁에제주시로 넘어가는 일정으로 계획하였다.
11시쯤 밑에 동생네 외조카가 휴가나왔다가 귀대 한다고 인사하러 들렸다. 어머니는 주무셔서 뵙지 못하고 그냥 가야 했다. 작년 말에 인덕원에 왔을 때 혜승이가 해군제복을 입은 외조카가 너무 멋있어서 홀딱 반 했었다. 제주에서 다시 보게 되어 상봉의 반가움을 기념샷으로 대신했다.
점심은 냉면을 만들어 먹기로 하였는데 어머니께 물어보니 괜찮다고 하였다. 물냉면 3개와 비빔냉면 1개를 준비하였다. 물냉면 육수는 업체에서 만들어 파는 기성품으로 사용하고, 비빔냉면 양념은 집사람이 준비하였다. 비빔냉면은 양념이 조금과하게 들어갔는지 먹기에 매웠다. 물냉면을 먹던 혜승이가 너무 심심해서 못먹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비빔냉면을 먹을 건지 물어보았는데 먹어보겠다고 했다. 매워서 못먹을 것 같아 조금만 떠서 주었는데 왠걸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이정도는 되야 냉면맛이지' 라고 말하였다. 비빔냉면을 조금 더 떠서 주었더니 맛있게 잘 먹었다. 예전에는 김치도 조금씩만 먹었던 혜승이가 김치는 물론이고 이렇게 매운 비빔냉면도 잘 먹는 입맛으로 성장하였다. 역시 우리의 입맛은 매운 맛인가 보다.
잠시 짬을 내어 어머니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예전부터 진행되어 온 치매증세가 조금씩 더 악화되는 상황이다. 금방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갑자기 화를 내고, 거친 말을 자주 사용하고, 고집이 더 세어졌다. 늘 부정적이고 표정이 밝지 않아 서글퍼진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많은 식구들을 돌보면서도 힘든 농사일을 앞장서서 해나가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이겨내셨는데, 이제는 나이든 여자로 연약해 지신 모습이다. 기억을 잊어버린들 어떠하리. 나이가 많은 들 어떠하리. 나를 슬프게 하는 건 어머니께서 항상 우리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시던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리신 것이다.
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악화되지 않고 지금 이대로 라도 유지되기를 늘 기도해 본다.
오후에는 우려했던 일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일요일부터 3일 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의심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조카들이 어머니 돈을 몰래 뺏어가서 돈이 없어진다고 하면서 욕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있었던 일이라 상황을 전환시키기 위하여 올래길 산책가자고 하였다. 완강하게 버티시다가 결국 집을 나섰다.
동생네 차 두대를 이용하여 비자림으로 출발하였다. 나와 혜승이는 매제차를 이용하여 선 출발하여 비자림으로 향했다. 비자림 입구에 거의 왔을 때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와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어떤 일인지 상황파악을 해 보니, 어머니께서 집에 있지 더운데 왜 나왔냐고 하면서 몹시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날씨도 더운데 하필이면 어머니가 탄 동생차가 에어컨 작동이되지 않아서 더운 바람이 나오는 바람에 짜증이 났던 것이었다. 결국 내가 동생차에 타고, 어머니를 달래면서 비자림에 도착하였다. 더워서 짜증이 난 상태에서 더위속에 걸어가야 한다니까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관절염 후유증으로 다리가 아픈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실은 예전보다 체중이 늘어서 걷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입구에 있는 돌로 만든 의자에서 우리가 산책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비자림은 평대마을에 위치해 있는데 내가 졸업한 세화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고등학교시절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3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나무들은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아서 예전처럼 포근하였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숲길 탐방하는 순래꾼들이 많았다.
비자림 1호 비자나무, 수령이 500여년이 넘는다고 함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서 같이 자라는 연리지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를 비유함
약 한시간의 산책을 마치고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동생내외가 먼저 도착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주차장으로 가 있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에어컨 문제도 해결이 되어 있었다. 에어컨을 켤때는 에어컨 버튼을 눌러야 찬바람이 나오는데, 버튼이 눌러지지 않은 상태어서 온도만 조절하니 더운 바람만 나왔던 것이다.
시원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하는 하루였다. 보이지 않는 것중 대표적인 것이 공기이다. 늘 곁에 있고 흔해서 무료로 사용하지만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일생에는 부모님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십다. 무한한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음에도 느끼지 못하고 언제 그랬냐고 대꾸하니 말이다. 비록 지금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 하여도, 기억의 어디가엔 어린 나를 부르시며 반갑게 맞이 하시던 온화한 마음이 남아 있으리라 믿고 싶다.
받은 것 이상으로 더 베풀고 싶지만 상황이 녹녹하지 않은게 현실이다.
비록 몸으로 다하진 못하지만 마음으로라도 항상 즐겁게,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