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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원문보기 글쓴이: 돌아온 노둣돌
[4신:오후 6시 30분] 故이소선 여사 모란공원에 안장..."모든 짐 놓으소서"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고인의 아들인 전태삼 씨가 유가족 인사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노동자의 어머니’ 故 이소선 여사의 하관식이 열린 모란공원 묘역에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를 비롯해 노동자, 대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모인 500여명이 함께 했다.
7일 오후 4시께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도착한 이들은 노동자, 대학생 등이 손에 쥔 만장 사이로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하관식이 진행될 묘역으로 향하는 참석자들의 발걸음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故 이소선 여사와의 이별시간이 다가온 것을 예감한 듯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을 비롯해 참석자들의 표정은 더욱 침통해졌다.
추모 행렬의 선두에선 사회자는 “어머니가 아들 전태일 열사를 만나러 간다”라며 “어머니의 마지막길 노동자, 대학생 그리고 이땅의 비정규직들을 비롯한 고통받는 자식들이 함께 간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이소선 여사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이어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우리들은 슬픈데, 어머니는 아들을 만날 생각에 기뻐하실 것”이라며 “이제는 살아 평생 많은 짐들 내려놓으시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故 이소선 어머니의 영정이 모란공원 중턱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양대노총 위원장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하관식이 진행되는 ‘어머니의 묘역’ 주변에는 수십여개의 만장과 참가자들이 모여 故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이들은 “이소선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도 김진숙이 다 죽어가는데 내가 살려야 하는데 라고 말씀하셨다”라며 “모든 노동자가 하나가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묻고 열심히 살아가자”고 말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헌화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故 이소선 어머니의 하관식이 끝난 뒤 유족들을 비롯해 참석자들은 ‘취토’를 하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참가자들의 ‘취토’가 진행된 가운데 모란공원에는 ‘나가거든’이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이소선 여사의 아들인 전태삼 씨를 비롯한 유족드링 헌화를 마친 뒤 돌아서고 있다. ⓒ양지웅 기자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강기갑 의원 등이 헌화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7일 오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故이소선 여사의 민주사회장이 열린 가운데 운구 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청계천 전태일다리에 도착했다. ⓒ이승빈 수습기자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을 마친 참가자들이 청계천의 전태일 다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3신:오후 5시] 전태일 열사 산화한 그 곳에서...이소선 여사 노제 거행
서울 대학로에서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을 마친 추모객들은 이소선 여사의 노제가 열리는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까지 행진을 했다.
이소선 여사의 영정은 아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전태일 다리 위의 전태일 열사 동상 앞에 놓여졌다. 전태일 동상을 중심으로 유가족을 비롯한 2000여명의 추모객들은 전태일 다리를 가득 메웠다.
7일 오후 1시 전태일 다리 위에서 시작된 이소선 여사의 노제는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전북고속버스 노동자들이 투쟁의 물품을 영정 앞에 바치며 승리를 다짐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기륭전자 정리해고 철회 투쟁 당시 입었던 조끼를 영정 앞에 바쳤으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 투쟁 당시 썼던 헬맷과 ‘함께 살자’고 쓰인 티셔츠 그리고 77일간의 투쟁 기록이 담긴 책 등을 바쳤다.
또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투쟁의 결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영정 앞에 놓았으며, 전북고속버스 노동자들은 ‘전북고속 파업 해결하라’ 등이 쓰인 티셔츠를 바쳤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야만의 세월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면서 “이소선 어머니 말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결심을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는 “어머니가 그렇게 바라시던 승리는 못했지만 살아 돌아와 정리해고 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동지들과 함께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꼭 만들어 어머니 걱정을 덜어 드리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소선 여사의 명복을 빌었다.
7일 오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故이소선 여사의 노제가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가운데 쌍용차 노조원들이 인사를 드리고 있다. ⓒ이승빈 수습기자
이어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자은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오종렬 상임고문은 “오늘 이 시각, 어머니는 전태일 다리 위에 계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리해고 멈추라는 희망버스에, 평화를 지키자며 강정마을에, 내 조국강토 독살하지 말라며 캠프캐롤에, 한미FTA 거두라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계신다”면서 “노동자의 어머니와 함께 들고 달려온 그 횃불을 더욱 높게 들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자”고 호소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 예정인 박원순 상임이사는 “어머니가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한 민주주의에 대한 집념과 소명의식을 어찌 잊겠습니까”라며 “이 땅에서 어머니가 당한 슬픔이 다시 오지 않도록 천만 노동자들이 인갑답게 살 수 있는 날을 열겠다”고 전했다.
이어 가수 이씬의 노래가 전태일 다리를 넘어 청계천에 울려퍼졌다. 전태일 다리에서 매일 노래를 불러오던 이씬의 어머니에 대한 노랫말은 추모객들을 더욱 숙연하게 했다.
이날 노제에는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공성경 창조한국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야당 관계자들도 참석해 이소선 여사가 가는 길을 함께 지켰다.
이정희 대표는 “어머니, 작년 가을 노동자 대회에서 또렷한 목소리로 ‘모든 노동자는 하나다. 힘을 하나로 모으면 승리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하며 이소선 여사의 영정을 연신 바라봤다.
이어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바라고 인권과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시민들이 어머니를 존경하고 마음의 사표로 생각했다”면서 “남은 저희들은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며,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뜨겁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공성경 대표는 “소수의 권력과 자본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고 창조적인 변화와 혁신으로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당신의 품을 떠나 제발로 걸을 수 있을 것”이라며 “모두의 가슴 안에 살면서 힘을 불어넣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유시민 대표는 “아드님의 희생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씨앗이 되었고, 어머님의 사랑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줄기가 되어 자라났다”며 “이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울 수 있는 날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남아있는 저희들의 몫”이라고 밝혔다.
노제는 가수 우리나라의 노래 공연으로 무르익어갔다. 우리나라와 함께 추모객들은 ‘아침이슬’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추모객들의 헌화를 끝으로 노제는 오후 2시10분께 마무리됐다. 오후 4시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이소선 여사의 하관예배와 안장식이 이어진다.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사람들이 이소선 여사의 영정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7일 오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故이소선 여사의 민주사회장이 열린 가운데 영결식을 마치고 노재를 위해 전태일다리로 이동하는 운구행렬을 풍물패가 이끌고 있다. ⓒ이승빈 수습기자
[2신:오후 1시 30분] 서울 대학로에서 영결식 엄수
7일 오전 서울 종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소선 여사의 빈소에서 고인의 아들인 전태삼 씨가 이소선 여사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어머니! 이렇게 가시면 안되는데, 이렇게 가시면 안되는데!"
"희망버스, 강정마을...다 따라가려다 너무 빨리 가셨어요.."
"죄스럽습니다. 그러나 다짐합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감사'와 '그리움', '반성'과 '다짐'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초가을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7일 서울 대학로에서 오전 10시부터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민주사회장 영결식에서 추모객들은 때로는 흐느끼다, 때로는 팔뚝질을 하며 결의를 다졌다.
"자식을 따라 죽고 싶었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영결식 개식 조사를 낭독하기도 전부터 눈물을 훔쳤다.
"87년 8월 12일 이소선 어머니를 처음 뵙고 괴로움에 지쳐 자식을 따라 죽고 싶었던 저는 이후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와 함께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어찌 유가협에 등을 돌리시고 그렇게도 훌훌 더나실 수 있습니까! 야속하고 슬픕니다 어머니!"
조사에 앞서 "이소선 어머니의 뜻은 비정규직, 해고 없는 나라를 양대노총이 하나되어 만드는 것"이라고 외쳤던 배은심 회장은 조사에서도 "오늘 어머니의 장례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모십니다. 어머니! 기뻐하세요"라고 위로했다. 배은심 회장은 "할 말이 너무 너무도 많은데 이제는 조사로밖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더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어머니, 고맙습니다. 잘 사셨습니다"라고 조사를 맺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열린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양지웅 기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인쇄된 장문의 조사 대신 "물푸레 회초리를...이명박, 조남호, 악덕 재벌 다 피투성이 되도록 매를 들어야 하는데..희망버스, 강정마을...다 따라가려다 너무 빨리 가셨어요"라며 "아 이소선 어머니!"를 외치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소선 여사의 구술을 받아 '전태일 평전'을 쓴 고 조영래 변호사의 부인 이옥경 씨도 조사에서 "중환자실에서 뵙고 나오며 '아! 아직은 가시면 안되는데..조금만 더 계셔주세요. 최소한 제가 어머니께 도리를 할 수 있는 시간 만이라도 주세요...그러나 가셨습니다"라며 흐느꼈다. 이 씨는 "부족했던 저는 어머니 영전 앞에서 그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역경 가운데도 어머니는 씩씩하고 유쾌하셨습니다. 어머니와 조 변호사가 티각대각 장난치며 농담하던 모습이 참 우습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전태일과 조영래와 만나 재미있게 노시라는 말씀만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나란히 함께 영결식 단상에 오른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연이은 조사에서 "정리해고 없는 세상,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생전에 그토록 원하시던 노동자의 단결과 통일을 보여드리지 못한 불효가 심장에 박혀 눈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흐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이소선 어머니께서 그토록 하나되길 바라시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서러운 국화꽃을 들고 있습니다"라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어우러지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힘을 모아 차별없는 세상,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노동자들은 누구를 의지해 합니까"라고 외치며 눈물을 글썽이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던 날 태일이가 살아온 것처럼 기쁘다고 하시던 어머니께 죄스럽다"며 "그러나 다짐합니다. 민주노총이 싸우겠습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싸우겠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라는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죽어 작은 창구멍 하나 낼 테니까, 노동자 학생들과 힘을 합해 그 창구멍을 조금씩 넓히는 데 힘을 보태주세요.' 태일이 그 말을 듣고, 내 몸이 가루가 돼도 너와 약속한 것은 지키겠다고 울부짖었어"
1970년 11월 13일 분신한 전태일 열사에게 했다는 마지막 얘기가 육성으로 나오는 가운데 "모든 죽은자의 어머니였고, 산 자의 어머니"였던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마무리됐다. 팔뚝질을 하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던 추모객들과 고 이소선 여사는 노제가 열리는 청계천 '전태일 다리'로 향했다.
이소선 여사는 지난 7월 18일 밤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뒤 치료를 받아 오던 중 3일 오전 8시 50분께 별세했다. 향년 81세.
7일 오전 서울 종로 대학로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의 영정과 운구행렬이 영결식 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양지웅 기자
7일 오전 서울 종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이소선 여사의 대형 영정과 유해가 영결식이 열리는 대학로로 이동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1신:오전9시]영결식 아침, 이소선 여사 추모 예배 거행
"가진 것 없이 다 주시는 언제나 편안하고 기대고 싶은 어머니...이제 우리들은 어머니 말씀대로 더 가난한 사람들, 더 힘든 사람들, 더 고통받는 노동자들, 더 억눌린 자들에게 가겠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분에게 감동.생명을 주신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전태일의 생명의 불을 꺼지지 않는 역사의 불로 승화시켜 우리 가슴에 남아 있게 하셨습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이소선 여사의 발인 예배에서 고인의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노동자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즐겨 부르던 찬송가 '샤론의 꽃 예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들어섰다. "자신의 아들을 노동자들에 제물로 바치고 자신의 몸을 던져 살아 온" 이소선 여사의 유가족들과 추모예배에 참석한 300여명의 추모객들은 하나 둘씩 얼굴을 훔쳤다.
이소선 여사가 다니던 창신교회 김영복 장로는 추모기도에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많은 고생과 눈물, 참기 힘든 일을 겪으시다 예수님이 계신 참 평화의 안식으로 가셨다"며 애써 복받치는 감정을 삭였다.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전태일재단 이사장)가 이날 추모예배 설교에서 전한 성경구절은 신약성서 디모데후서 4장 7~8절이었다.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받던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인 디모데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조 목사는 "이소선 어머님은 특별한 유언을 남기시진 않으셨지만 삶 전체가 유언이셨다"며 "어머니야말로 사도 바울의 말대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을 받으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분에게 감동.생명을 주신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전태일의 생명의 불을 꺼지지 않는 역사의 불로 승화시켜 우리 가슴에 남아 있게 하셨다. 예수를 믿고 부활을 믿는 사람의 참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인간.노동.생명의 중요성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조 목사는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갈릴리는 80년대 광주, 또 오늘의 강정마을과 같은 곳이었다"며 "이소선 어머니도 자신의 뜻을 이어가라고 하셨다. 강정마을, 청계천, 포이동...곳곳의 노동현장과 철거현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기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명예의장은 이어진 조사에서 "야만에 맞선 전태일은 분신했고, 어머니는 실천하는 전태일의 화신이 됐다"고 회고했다.
특히 박 명예의장은 "이소선 어머니는 제발 쪼개지 말고 하나가 되라고 하셨다"며 "단결"을 강조했다.
"우리는 자기성찰에 매우 인색합니다. 잘못에 부끄러워함이 필요합니다. 어설픈 현학적 사회과학의 논리는 잠시 접어두자.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신자유주의 앞에서 우리의 분열은 상상할 수 없는 재앙으로 올 것입니다. 몇 년에 한번 치르는 투표권 한 장 밖에 가진 것이 없는 우리의 단결 여하에 따라 명운은 달라질 것입니다. 스스로 투항해 노예 되기를 거부한다면 이 발인의 자리가 결속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수호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조사를 낭독하면서 2005년 비정규직법안 투쟁 당시를 떠올렸다.
이 전 위원장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같이 단식할 때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이용득 위원장과 저를 같이 끌어안으면서 '고마워요...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렇게 하나로 뭉쳐야지'라고 하셨다"며 "그 말속에 하나로 뭉친다는 건 서로 이해해고 용서하고 용서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또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흘러내리던 눈물로 보여주고 가르쳐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어머니 말씀대로 더 가난한 사람들, 더 힘든 사람들, 더 고통받는 노동자들, 더 억눌린 자들에게 가겠다"고 흐느끼며 말했다.
고인이 좋아하던 '샤론의 꽃 예수'가 다시 울려퍼지는 가운데 위패와 영정은 추모예배식장을 나섰다. 영정과 고인의 시신은 서울대병원에서 이화사거리, 혜화동 사거리를 거쳐 영결식이 열리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으로 향했다.
"내 생명이 참 사랑의 향기로 간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고통하며 근심하는 자에게 크신 힘과 소망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