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서쪽으로 간 부처, 기독교의 성인이 되다

[옥녀봉아래첨성대]

서쪽으로 간 부처, 기독교의 성인이 되다

글_김 헌 (서울대 서양고전학 강사)

동양과 서양 문화의 교류 역사와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 문화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서 양 문화를 그 자체로만 이해하는 것은 동서 문명권 사이에서 엄연하게 존재해 왔던 교류의 역사를 간과하는 것이며, 기존의 서구 중심 세계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양의 정신문화가 서양 문화에 끼친 영향과 그 과정을 밝히는 작 업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우리는 구체적인 사례로, 인도의 <부처설화>와 그 서구적 전이형태인 <바를람과 조사파트> 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고대와 중세에 동서양 사이에 이루어진 문학과 문화 교류의 한 줄기를 이해하려고 한다.”

서양에서 일고 있는 불교에 대한 관심

부처의 일생과 가르침은 인도에서 동쪽으로 대승불교 형태로 중국, 한국과 일본까지 전해졌고, 남쪽으로는 소 승불교 형태로 동남아 여러 국가로 전파되었으며, 북쪽 으로는 독특한 티베트 불교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불교 와 <부처설화>가 전파된 궤적과 방향을 되짚어보면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부처설화는 인도의 동, 남, 북을 향해 힘있게 퍼져 나갔다. 그런데 인도의 서쪽으로는?”

오늘날 서구 세계는 불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89년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가 티베트의 침략자 중 국에 대해 비폭력 독립운동을 전개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을 받았을 때, 서구인들은 독특한 옷차림의 승려를 호기심 에 가득 찬 눈길로 주목하였다. 그의 저술은 꾸준히 베스 트셀러의 대열에 올랐으며, 티베트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 가 줄을 이었다. <리틀 부다>(1993년), <티베트에서의 7년>(1997년), <쿤둔>(1997년) 등. 1997년 10월호 타임지 에는‘불교에 매료된 미국’이라는 기사가 실렸으며, 할리 우드의 최고 스타 리처드 기어가 불교 신자라는 사실이 알 려져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세계 인 유럽에서도 자신의 설자리를 넓혀나가고 있으며, 불교 가 종교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사람들이 늘어 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소식들은 최근의 소식일 뿐이 다. 과연 서구의 고대, 중세에는 이같은 현상이 없었을까?

서쪽으로 간 부처, 기독교 성인이 되다?

“불교의 교리와 부처의 일생을 담은 <부처설화>는 마니교가 성행했던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을 거쳐, 기독교 지역이었던 그루지야와 그리스를 비롯하여 유럽의 거의 모든 언어권으로 전해졌다. 그것이 바로 <바를람과 조사파트> 이야기이다. 이 텍스트는 <부처설화>가 서구 사회에 잠입하여 기독교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이와 같은 가설을 내세우며‘동서문화교류 연구소(명지대학교)’ 의 연구원들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 아래 흥미로운 공동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부처설화>가 서쪽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불교의 이름을 잃는 대신, 각 문화권에 녹아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되고, 최종적
으로는 유럽 중세의 기독교 세계 속에서 당당히 성인열전(聖人列傳)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좀 더 극적으로
말한다면, 불교를 창시한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가 기독교의 성인(聖人)이 되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유럽에서 기독교 성인 으로 추앙되고 있는‘조사파트(Josaphat)’의 이름은 부처, 즉‘붓다(Buddha)’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또는‘보디삿따(Bodhisatta)’는 페르시아 어로는‘보디사브(Bodisav)’가 되고, 이어 아랍어로는 ‘부다사프 /유다사프’가 된다. 그 리고 그루지야어로는‘요다사프(Iodasaph)’가, 이어 그 리스어로는‘요아사프(Iôasaph)’가 되며, 라틴어로는 ‘조사파트(Josaphat)’가 그리고 서유럽 라틴어 계열 언 어권속에서는최종적으로‘조사파트(Josaphat)’가된다. 이 이름은 예수의 인간 아버지의 이름이었던‘요셉(Iôsêph)’과 도긴밀한관련이있을것이기에더욱흥미롭다.

동서(東西) 문화 교류 연구에 흥미로운 과제

연구의 총책임을 맡은 이종화 교수(아랍문학전공, 명지대)는이공동연구의의의를다음과같이밝힌다.“ 동양과 서양 문화의 교류 역사와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 문화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서양 문화를 그 자체로만 이해하는 것은 동서 문명권 사이에서 엄연하게 존재해 왔던 교류의 역사를 간과하는 것이며, 기존의 서구 중심 세계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양의 정신문화가 서양 문화에 끼친 영향과 그 과정을 밝히는 작업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우리는 구체적인 사례로, 인도의 <부처설화>와 그 서구적 전이형태인 <바를람과 조사 파트>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고대와 중세의 동서양 사이에 이루어진 문학과 문화 교류의 한 줄기를 이해하려고 한다. 인도<부처설화>가 인접 언어권인 고대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를 거쳐 서양 중세 기독교 문화권으로 전파되며 생성된 <바를람과 조사파트>의 여러 언어(그루지야어, 그리스어, 라틴어, 스페인어)로 작성된 텍스트들을 비교분석하고, 최종적으로는 동서 문화교류의 역사적 현존을 증명하려고 한다.”지난 4월 8일 연구팀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 부산외대 지중해 연구소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이때 발표된 논문들을 토대로 인도의 <부처설화>가 서양의 기독교 성인 설화 <바를람과 조사파트>가 되는 기나긴 여정을 <안띠꾸스>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지적(知的)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인도에서 생성된 부처 설화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름‘부처(Buddha)’는 원래 ‘큰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의 일반 보통 명사다. 석가모니 (釋迦牟尼)는 산스크리트어로 쌰꺄무니(Sakya -muni)인 데,‘ 쌰꺄(Sakya) 씨족(氏族)의 성자(聖者-무니(muni))’ 라는 뜻이다. 불교의 창시자, 그의 개인적인 이름은 고타마 (Gautama) 싯달타( Siddharha)였다. 여기서‘고타마’는 원래 베다의 성인 중 한 명의 이름이었으며, ‘싯달타’는 ‘원하는 바의 목적을 이룬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타마 싯달타는 마야부인의 몸을 통해 왕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에 대해 브라만 예언자들은“아이가 위대한 사람의 32가지 표징을 갖고 태어났으며, 속세에 산 다면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될 것이고, 출가한다면 아라한, 곧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후계자를 원하던 부 왕(父王)은 그를 세계의 지배자로 키우기 위해 출가의 길을 막았다.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시키고, 외출을 금지시키며, 화려한 궁중 생활만을 누리게 했다. 하지만 그는 우연한 기 회에 동서남북의 네 문을 통해 놀러 나가게 되고, 그때마다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인간 실존의 비참 함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고민 하던 그가 네 번째 문을 나서자 출가한 수행자를 만난다. 그리고 곧 출가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수행은 쉽게 결 실을 맺지 못했다. 숱한 기간을 떠돌며 여러 수행자들의 무리와 스승들을 만났지만, 만족스러운 깨달음을 얻지 못 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스승들의 가르침과 수행 방식을 떠나 홀로 큰 보리수 그늘 아래서 의심이 없는 올바른 깨 달음의 경지, 즉 무상정각(無上正覺)에 이르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설법을 행하다가 육체의 무게 를 벗어던지고, 삶과 죽음의 사슬을 끊고 조용하고 평화롭 게 열반에 이르렀다.

이 줄거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 즉 석가모니 고타마 싯달타의 일생이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부처의 생애는 오랫동안 경전의 형태로 정리되지 않았다. 부처 자신이 개인숭배나 신(神)을 대상으로 벌이는종교적 의식과 예배를 금했기 때문이다. 사실 부처의 일생이 규범적으로 정형화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부처설화>는 기원전 1세기경 <라리따비스따라 (Lalitavistara)>와 기원후 1세기경 <붓다짜리따 (Buddhacarita)>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과연 500여 년간 부처의 일생이 과장이나 왜곡없이 입에서 입으로 고스란히 전해졌을까? 도대체 어떻게 <부처설화>는 성립된 것일까?

강성용(인도문헌학 전공)은 부처의 일생을 다루는 기 록들이 경전의 형태로 정착되는 과정을 추적한 연구 결 과를 발표하였다. 특히 그의 관심은 인도 불교 전통에서 사문유관(四門遊觀), 즉 부처가 네 개의 문을 나가 인간이 반드시 겪게 될 병듦과 늙음, 죽음의 운명을 목격하고 출 가자를 만난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불교의 경전 속에 삽입 되었는가에 있었다.

경전의 형식으로 정리된 부처의 일대기는 인도 여러 지역과 동과 북, 남쪽뿐만 아니라, 당시 불교, 기독교, 마 니교 등 여러 문화와 종교가 활발하게 교류하던 서아시아 지역으로도 전해졌다. 서기 2세기경에는 인도의 북서쪽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불교 승려들 이 본격적으로 부처를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이점을 고려 한다면 역사적 부처(기원전 6세기경)와 경전 속에서 신격 화되어가는 부처(기원전 1~서기 2세기) 사이에 놓인 거리 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 거리 사이에 편린으로 분 산되어 있는 부처 일생의 다양한 기록들은 부처를 바라보 는 여러 사람들의 독특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다양한 시각들은 부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속한 역사 와 사회, 문화의 배경에 따라 굴절된 빛으로 부처를 비추 었던 것이다.

불교와 마니교의 만남: ‘부처(붓다, 보디삿따)’에서 ‘보디사브’로

인도에서 생성된 <부처설화>는 서기 3세기경, 인도의 북서쪽 중앙아시아 지역, 특히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노로 전해졌다. 이곳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첫 교차점에 해당 하며, 동서 문화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으로 불교가 자연스럽게 전파되었다. 특히 불교를 국가적인 종교로 정립시킨 인도의 아소카 왕은 많은 선교 사들을 서역으로 파견하였기 때문에 불교의 확산은 가속 화되었다. 그곳에는 서기 3세기에 일어난 마니의 사상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불교는 자연스럽게 마니교와 만나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출신인 마니(216~274)는 페르시아의 조 로아스터교 교리와 이단적 기독교의 일파인 그노시스 교 리를 혼합하여 마니교를 세웠다. 마니는 정신과 물질, 선 과 악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인간 정신을 절대적인 선(善) 으로, 물질을 절대적인 악(惡)으로 보았고, 인간의 육체를 정신과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비유하였다. 인간은 육체 의 감옥에서 벗어나 참다운 영혼의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 해야만 한다. 따라서 마니교는 철저한 금욕주의를 실천 지 침으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마니교는 금욕주의적 실천을 권장하는 불교와 깊은 친화력을 가질 수 있었다. 흥미롭게 도 마니는 신의 계시를 이 땅에 전한 인물로 인도의 부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서방 세계의 예수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시대를 향해 신이 보낸 동급의 예언자로 자 칭하였다. 이는 마니교가 다른 종교에 대해 뛰어난 탄력성 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부처설화>가 마니교의 지역으로 들어가 마니교 판본을 형성하였다는 구체적인 자료가 발견되었다. 19세기 독 일의 투르판 원정대는 소그디아노어(고대 페르시아어)와 고대 터키어로 작성된 여러 편의 마니교 관련 문건과 조각 글들을 발굴했던 것이다. 그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소르쿠크에서 발견된 두 개의 단편이다. 6~7세기경의 문서로 추정되는 이 두 단편들 가운데 첫 번째 것은‘보디사브(Bodisav)’왕자가 늙고 병든 노인과 만나는 장면을 기록한 것으로, <치나크가 보디사브 왕자에게 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그리하여 보디사브 왕자는 말의 고삐를 당겨 멈춰 섰 다. 그는 (주의 깊게) 쳐다보면서 치나크에게 물었다 “저기에 저렇게 누워서 아름답지 않게 뒹굴며 있는 자 는 어떤 사람이냐?”치나크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왕 자님, 저 사람은 한때 건강한 전하와 비슷했던 아름다 운 젊은이였지요. 지금 그는 늙고 병들었답니다. 병들 어 저렇게 아름답지 않게 된 것이지요.”그러자 보디 사브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역시 오래 살면 나중 에는 저 사람처럼 늙고 병들어 재가되겠지.”/ 보디사브 왕자가 치나크의 이 말을 듣고 나서, 고삐를 잡아당겨 쥐고서 무거운 슬픔과 큰 비탄에 젖어 돌아온다. 자신 의 도성에 와서 아무에게도 어떠한 말을 하지 않고 온화하게 걱정을 뇌이며 앉았다. 그의 아버지인 왕과 어머니인 왕비가 이 소식을 듣고 둘 다 왕자에게 왔다. 아들에게 어떠한 것을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후 생략)

김선욱(스페인문학 전공)은 이 이야기가 부처의 유명 한 사문유관(四門遊觀) 이야기 중의 하나를 떠오르게 한다 는 사실에 주목하며, 특히 주인공의 이름인‘보디사브 (Bodisav)’는 불교의 구도자로서의 보살(菩薩), 즉 ‘보디삿따(Bodhisatta)/보디삿뜨바(Bodhisattva)’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마니교에서 벌어지던 초혼(招魂) 의식에서‘보디삿뜨바’는 마니를 지칭하 는 여러 명칭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분명 이 조각글은 <부처설화>를 받아들인 마니교 텍스트일 것이다.

이슬람 세계로 간 부처 :‘ 보디사브’에서‘부다사프· 유다사프’로

8세기경 바그다드. 압바시야 왕조의 하룬 알 라시드 (Harun al Rashid) 치하의 바그다드는 여러 문화권의 사 람들이 교통하던 국제적인 도시였다. 이곳에선 마니교도 들과 페르시아인,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자신 들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을 향유하며 교류하고 있었다. 윤 용수(아랍어학, 언어사회학 전공)의 보고에 따르면, 역사 적으로 아랍인들은 고대의 인류 문명과 문화의 보존이라 는 측면에서 인류 문화사에 크게 기여해왔다고 한다. 사막 에서 유목 생활을 해야만 했던 환경적 제약 때문에 체계적 인 학문을 자체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웠던 아랍인들은 외부로부터 선진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입하였고, 독특한 형태로 융합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 다시 유포시켰 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문화의 용광로였다.

아랍 문명의 교량적 역할은 이슬람 시대(AD 622년) 이 전보다 이후, 무함마드에 의해 추진된 이슬람 포교 활동과 정통 칼리파시대(AD 632~660년)에 시작된 주변 문화권 과의 접촉으로 인해 훨씬 더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아랍 최초의 왕조인 우마이야 왕조(AD 660~750년)부터는 외래문학 작품들에 대한 번역 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 졌다. 국가 규모의 번역 사업은 아랍어를 유연하게 만들어주었으며, 다양한 사상들을 명확하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발전시켰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유통되던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이븐알나딤이 그의 서지서(書誌書)인 <피흐리스트> (987~988) 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 권의 책, 즉 <붓드(Kitab al Budd)>, <빌라우하르와 부다사프(Kitab Bilawhar wa Budhasaf)>,<부다사프 그 자신(Kitab Budhasaf mufrad)>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책들의 제목에 나오는 ‘붓드(Budd)’와 ‘부다사프(Budhasaf)’그리고 같은 이름이지만, 표기만 다른‘유다사프(Yudasaf )’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마니교 조각글에‘보디사브’로 등장하였던 ‘부처’, 바로 그가 아닌가! 부처를 언급하고 있는 세 권의 책은 불행하게도 현재 전해져 오고 있지 않아 그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현존하는 아랍어 판본 가운데 원형에 가까운 대표적인 텍스트인 <빌라우하르와 부다사프>(1888~1889년 지와칸 편집, 봄베이에서 출간)가 그 사실을 보증하고 있다.

<부처설화>와 <바를람과 조사파트> 이야기의 전이 과정에서 마니교 판본과 아랍어 판본의 밀착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인도의 <부처설화>와 기독교 판 본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두 전승 단계 사이에 위치한 마 니교 판본과 아랍어 판본에는 존재하는 이야기다. “술 취 한 왕자가 동굴 속으로 떨어졌다. 너무나 취한 그는 동굴 에 놓여있던 시체를 매혹적인 아가씨로 착각하고 성관계 를 맺는다.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생각하 고 몸서리를 친다.”이 이야기는 육체를 악으로 규정하며 성적(性的)인 욕망을 혐오하는 마니교의 교훈을 담은 것으 로 보이는데, 이 이야기의 존재는 마니교 판본이 아랍어 판본과 직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된다.

기독교 세계로 간 부처 : ‘부다사프·유다사프’에서 ‘요다사프’로

<부처설화>의 아랍어 텍스트 <빌라우하르와 부다사프>는 자연스럽게 이슬람 세계의 서쪽으로 전해지는데, 그 첫
지점이 바로 그루지야다. 역사적으로 그루지야는 동쪽으로 아랍 세계와 서쪽으로 비잔틴 세계 사이에서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부처설화>가 서방 유럽 세계로 전이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바로 이곳에서 <부처설화>는 최초로 기독교 성인열전의 형태를 갖게 된다. 그루지야인들은 약 330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 치하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교회에 소속되었다. 칼케돈 공의회 이후로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으나, 607년 이후로는 비잔틴 그리스 정교회에 충실했다. 그루지야어 알파벳이 나타난 것은 기독교 영향 아래 있던 5세기경이며, 이때부터 성서와 초창기 신부들의 경건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 그루지야어로 번역되었다. 이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유입된 시리아어와 아랍어 등으로 작성된 이교적인 문서들은 기독교적인 색채를 입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특히 9~10세기 사이에는 아랍어로부터 그루지야어로의 번역이 팔레스티나 지역과 산 사바스 수도원과 시나이 산 근처의 수도원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김선욱은 이들이 번역한 책의 목록 속에는 당시 바그다드에 널리 퍼졌던 아랍어 판본 <빌라우하르와 부다사프>이 들어있을 개연성은 아주 높으며, 그루지야어 텍스트 <발라바르의 지혜>는 아마도 아랍어 판본을 기독교적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과 이야기 구조, 선택된 우화들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발라바르의 지혜>가 발견된 이후, 그 책보다 두 배 정도 되는 ‘정신적 스승 발라바르가 개종시킨 인도의 왕 아베네스의 행복한 아들 요다사프의 삶’이라는 문헌도 발견 되었다. 이 책 역시 8세기 무렵에 바그다드에 널리 퍼졌던 아랍어 판본인 <빌라우하르와 부다사프>을 그루지야어로 각색한 11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서 부처인 ‘부다사프’는 ‘요다사프’가 되며, 비로소 기독교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루지야어 판본과 그리스어 판본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오래된 것이며, 원형인가의 문제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
되었다. 현재는 아랍어 판본에서 그루지야어 판본으로, 그리고 그루지야어 판본에서 그리스어 판본으로의 연결을
정설로 인정하는 추세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아랍어의 ‘빌라우하르(Bilawhar)’는 그리스어의 ‘바를람 (Barlaam)’ 보다는 그루지야어의‘ 발라바르(Balahvar)’에 보다 가깝고, 아랍어의 ‘부다사프(Budhasaf)’와 ‘유다사프 (Yudasaf )’는 그리스어의 ‘요아사프(Iôasaph)’ 보다는 그루지야어의 ‘요다사프(Iodasaph)’에 더 가깝다는 주장이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루지야어 판본에 나오는 14개의 우화들은 하나만 제외하고 정확하게 아랍어 판본에 나오는 우화의 내용과 순서와 일치하는 반면, 그리스어 판본에 나오는 우화의 수와 순서는 아랍어 판본과 그루지야 판본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도 아랍어 판본과 그루지야어 판본의 인접성을, 따라서 그리스어 판본에 대한 그루지야 판본의 선행성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동방기독교속으로간부처‘: 요다사프’에서‘요아사프’로

인도에서 생성된 부처 설화는 서쪽으로 마니교 판본과 아랍어 판본, 그리고 그루지야 판본을 거쳐 마침내 그리스
에 도달한다. 그리스어 판본 <바를람과 요아사프>에서 ‘부처’는‘요아사프(Iôasaph)’로 나타난다. 물론 기독교 인으로서 말이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인도. 이 당시 인도는 예수의 제자 도마(Thômas)의 선교 활동에 의해 기 독교가 널리 퍼져있었다. 하지만 아베나르가 등장해 기독교를 핍박하였다. 그런데 오랫동안 자식이 없던 아베나르왕에게 한 왕자가 축복과 기대 속에 태어났다. 왕자의 이름은 요아사프. 왕자의 탄생 기념 축제에 참가한 점성술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왕자의 미래에 관해“왕자는 왕의 왕국이 아닌 다른 왕국에 속하게 될 것이며, 왕이 핍박하는 기독교를 포용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다. 이 예언을 듣고 고민하던 왕은 왕자 요아사프가 세상의 즐거움만을 누리며, 기독교를 알지 못하도록 왕궁 생활만 시켰다. 하지만 왕궁의 화려한 생활에서 벗어나 외출할 기회를 갖게 된 왕자는 성 밖에서 장님과 병자, 노인을 목격하게 되고, 실존의 고통과 허무함에 고뇌하기 시작했다. 인생에 관한 진실과 구원을 갈망하던 중, 기독교 수도사 바를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요아사프 왕자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쳤다. 이 가르침에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 왕자는 기독교를 탄압하던 아버지마저 개종시키고 출가했다. 헛된 세속적인 가치를 모두 버리고 참된 삶을 찾아 고행과 순례의 길을 떠난 것이다. 개종 이후에도 기독교의 진리와 실천에 목말라하던 그가 찾는 것은 자신에게 삶의 진리를 가르쳐준 스승 바를람이었다. 갖은 고통과 시련의 방랑생활 끝에 스승 바를람과 재회한 왕자는 스승과 더불어 기독교의 금욕적인 생활을 실천하다 생을 거룩하게 마감한다.

<부처설화>와 기독교 수사(修士)인 <바를람과 요아사프 왕자의 이야기>를 비교한 독자는 많은 점에서 유사성 을 발견할 것이다. 요아사프 왕자의 일생은 부처의 일생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왕자로서의 탄생과 화려한 왕국 생 활,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한 삶에 대한 깊은 회의, 인생의 고통스런 실상에 관한 깨달음, 이어지는 신실한 수행
생활, 깨닫는 자 부처로서 열반에 이른다는 내용의 <부처설화>와 위에 소개된 요아사프 왕자의 기독교 설화를 비
교한다면, 누구라도 <바를람과 요아사프> 기독교 성인설화의 원형은 다름 아닌 <부처설화>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부처가 스스로 삶의 진리를 깨닫고 올바른 수행에 이른 반면, 요아사프 왕자는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할 스승이 필요했고, 절대자의 은총을 기다린다는 사실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김헌(서양고전학, 고전그리스어 전공)은 <부처설화>가 어떻게 <바를람과 조사파트>라는 기독교 성인설화가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리스어 판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스 판본의 중요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지 적한다. 첫 번째 사실은 바를람의 가르침은 성경의 직접적인 인용이거나 요약, 부연 설명을 상당량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삭제할 때 남는 내용은 뼈만 남은 생선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바를람과 요아사프>가 기독교의 경전과 사상을 바탕으로 부처 설화를 새롭게 각색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생겨난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두 번째 사실은 아테네의 철학자 아리스티데스가 쓴 기독교 호교론이 그리스어 판본 <바를람과 요아사프> 제 27
장에 고스란히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호교론은 그리스 사상과 문학, 신화와 종교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내 용이 근거 없는 무신론(無神論)이나 어리석은 다신론(多神論)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결국 오류임을 논증하는 가운데, 우상 숭배자들을 공격하고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의 진실성을 부각시킨다. 이 부분은 불교-마니교- 이슬람교를 거치며 보존 및 변형된 <부처설화>의 골격이 고스란히 기독교 성인의 일대기라는 틀 속에 유지되면서도, 어떻게 그리스적 문화를 비판하며 서구 기독교 안으로 편입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서방기독교속으로간부처‘: 요아사프’에서‘요사파트’로

그리스어 판본의 텍스트는 서 유럽 기독교 속으로 전이 되면서 가장 먼저 라틴어 판본의 텍스트로 정착된다. 라틴 어 번역은 그리스어 텍스트를 원본으로 1048년 콘스탄티 노플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판본의 서문에는 라틴어 판본이 만들어진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어느 날 레오라는 사람이 저자를 찾아와 하나님의 뜻을 널리 알리 고 바를람 성인의 깨달음과 행적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 알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후세에 길이 남겨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어로 된 바를람 성인의 이야기를 라틴어로 번역하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이 라틴어 판본 속 에서 바를람의 제자인‘요아사프’(그리스어)는‘요사파트 (Iosaphat)’가 된다.

장지연(서양고전학, 중세라틴어 전공)의 보고에 따르면, <바를람과 요사파트>는 중세의 라틴어‘ 레겐다 (legenda)’장르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때‘레겐다’는 현재 영어의‘레전드(legend)’가 가지고 있는‘설화, 전설’ 의 의미가 아니라, 기독교 성인들의 전기나 수난기, 신앙고 백록, 순교, 기적 등을 기록한 모든 문헌을 포함하는 광범위 한 개념으로, 넓은 의미의 성인전(hagiography)에 더 가까운개념이다.‘ 레겐다’는예배나기도시간에사람들앞에서 낭독되었던‘렉티오(lectio)’와는 달리, 개인이 자신의 신앙 생활을 위하여 읽던 것들이었기에 중세 기독교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바를람과 요사파트>의 라틴어 판본은 11세기에 처음 나온 이후로 다른‘레겐다’작품과 유사한 발전 양상을 보인다. 소네(J. Sonet)가 확인한 62개의 통속 필사본 중에서 12세기에 필사된 것이 20개로 제일 많고, 13세기에 속하는 것은 15개, 14세기에는 14개, 15세기에는 10개 그리고 16세기에 속하는 것은 1개가 있다. 또 12세기 내지는 13세기로 추정되는 다른 필사본이 2개가 있다. 이 작품의 요약본과 발췌본들은 13세기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하며, 이 요약본 및 발췌본들을 수록하고 있는 현존 필사본들 중에는 14세기에 필사된 것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장지연은 이 가운데 단 하나의 필사본으로만 전승되고 있는 나폴리 판본과 아주 많은 수의 필사본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통속 필사본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지금껏 직선으로 전해져 오던 <부처설화>는 라틴어 판본을 정점으로 11세기 이후 유럽의 거의 전 지역을 향해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나간다. 라틴어 판본을 원형으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를 포함한 라틴
어 계열 언어들, 그리고 영어, 아일랜드어, 독일어, 네덜란드어를 비롯하여, 덴마크어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계 언어들과 러시아어를 포함한 슬라브계 언어들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다양한 <바를람과 요사파트> 텍스트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 다양한 판본들 가운데는 라틴어를 거치지 않고 그리스어 판본을 원형으로 삼아 직접 번역된 판본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며, 라틴어로부터 직접 오지 않고 인접한 언어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전승의 도미노 현상에 의해 생성된 것일 수 있겠지만, 상당수의 판본들은 라틴어의 번역이거나 각색본, 요약본 내지 발췌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가 갖고 있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뚜렷이 보여주는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럽의 서단 스페인에 간 부처 :‘ 요사파트’에서 ‘조사 파트’로

백승욱(스페인 중세문학 전공)은 라틴어 판본 <바를람과 요사파트>가 스페인 문학에 수용된 과정을 상세하게 정리 보고해 주었다. 그 전승과정에 있어서 가장 선행된 단계 라고 할 수 있는 번역은 일차 번역(직역)과 이차 번역(의역) 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차 번역(직역)의 범주에는 (1) 바를람 이야기에 대한 중세 라틴어 판본(16세기)을 직접 번역한 아르세 솔로르세노 판본(1608)이나 (2) 자크 드빌리의 라틴어 판본(1548)을 까스띠야어로 옮긴 산따 끄루스 신부의 번역본(1692)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 밖에도 (3) 축약형태 즉 보베 판본(13세기)의 15장에서 유래한 스트라스부르 판본(15세기)과 (4) 보라지네의 성인열전 (13세기)에서 옮겨온 번역본(15세기)을 포함시킬 수 있다. 한편, 이차 번역(의역)에 속하는 판본에는 (5) 뻬드로 오르띠스의 판본(15세기)과 (6) 가양고스 판본(15세기)이 속한다. 이것들은 중세 라틴어 판본에서 일차 번역된 까스띠야어 판본(13세기)을 여러 지역의 필경사들이 재정리한 것(15세기)이다.

이 가운데 뻬드로 오르띠스의 판본(5)의 내용은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이 판본은 다른 판본들에 비해 훨씬 정
밀하게 사건과 내용을 전개시키고 있어, <부처 설화>가 인도에서 시작해 중세 서구 기독교 세계로 전해진 최종 단계의 텍스트임을 쉽게 확인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 판본에서 기독교화 된 부처인‘요사파트’는‘조사파트’가
된다. 101편의 장으로 구성된 이 판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골격의 줄거리를 갖고 있다. ①기독교의 정당성을 밝힌 서론 ② 조사파트의 탄생과 격리된 성장 ③ 궁전 바깥 외출을 통해 생사병노(生死病老)를 목격하고 인생무상과 인생의 번뇌를 깨달음 ④ 수도사 바를람과의 만남과 조사파트의 개종 ⑤ 궁궐 안에서의 조사파트의 갈등의 심화 ⑥ 바를람과 조사파트의 이별 ⑦ 조사파트 왕자와 부왕(父王) 아베나르의 갈등 ⑧ 종교적 대립과 기독교의 승리 ⑨ 여성의 유혹을 극복하는 조사파트 ⑩ 종교 논쟁과 승리 ⑪ 왕국의 분할과 정치적 성공 ⑫ 수도자의 길을 위한 출가와 금욕주의적 고행 ⑬ 바를람과의 재회 ⑭ 기적과 평온한 죽음 ⑮ 성지의 탄생이다. 이 내용은 우리가 살펴보았던 그리스 판본 <바를람과 요아사프>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핵심적인 부분에서 인도의 <부처설화>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부처설화>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바를람과 조사파트> 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영향은 스페인의 중세 교훈담집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지식인을 위한 지침서>(12세기), <깔릴라와 딤나>(13세기), <센데바르>(13세기), <지팔 기사에 관한 이야기>(13세기), <루까노르 백작> (1335), <예법에 관한 책>(14세기 중반), <알파벳순으로 쓴 교훈담집>(15세기 초), <고양이들에 관한 책>(15세기 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후반기에 들어서도 <바를람과 조사파트>의 원작을 번안하거나 개작한 새로운 형태의 작 품들이 상당수 출현한다. 특히 1608년 아르세 솔로르세노에 의해서 바를람 이야기가 처음 인쇄된 후 급속하게 일반인들 사이로 퍼져나갔고, 다수의 모방작들이 출현하였다. 또한 16세기 후반에는 예수회에 의해서 <타니스도로의 비희극>이라는 제목의 연극작품으로 각색되어 상연된 바 있다.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역사 한림원 도서관’에 소장된 이 필사본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타니스도로는 인도 왕자 조사파트와 상당히 닮은 인물이다. 이 작
품을 1611년에는 스페인 황금세기 국민연극의 창시자인 로뻬 데 베가가 원작의 제목과 동일한 제명(題名)의 희극
으로 각색해 공연한 바 있다.

1635년에는 로뻬 데 베가의 연극을 토대로 깔데론 델라 바르까가 <인생은 꿈>을 제작했다. 진실이라는 개념의 상대성을 주제로 삼은 이 극작품에서 인생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놓고 고심하는 주인공 세지스문도는 삶 자체의 허
구성과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인도의 왕자 조사파트와 거의 동일한 인물로 보인다. 17세기 말에 와서는 디
에고 데 비야누에바와 조셉 데 루나가 <바를람과 조사파트>의 원작을 상당 부분 개작한 <사막의 왕자와 궁전의 수도사> 라는 제목의 희곡을 썼다. 총 삼막 형식의 이 극본은 로뻬데 베가의 작품과는 다른 독자적인 형태이며, 바를람 이야기가 스페인 문학의 한 중요한 소재로서 바로크 시대 후반 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그리고 현대 서구 사회가 명실공이‘불교’와‘부처’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단순히‘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어쩌면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져왔던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조명되어야 마땅한‘지속적인 현상’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불교와 기독교 사이 : 부처의 메시지는?

여러 문화와 종교의 다양한 지평과 역사의 여러 층을 뚫고, 인도의 서쪽으로 유럽의 스페인까지 전해져간 <부처설화>. 독자 여러분들은 이 기나긴 여정을 통해 <부처설화>가 비록 기독교 성인 설화로‘변신’했지만, 그 기본적인 메시지는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누구나 병들고, 늙고, 죽게 된다. 그 고통의 굴레는 이 세상의 어떤 쾌락의 조건으로도 벗어날 수 없다. 과연 구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이 물음은 부처가 던진 질문의 핵심이며, 그의 수행에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이 질문은 불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부처의 일생에 관한 소문은 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서 모든 인간들에게 유효한 것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리라.

인도의 부처는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해탈) 절대 평정의 상태(열반)에 이르렀으며, 서양으로 간
요사파트는 세속적인 쾌락을 포기하고, 자신의 연약하고 참혹한 상태를 인정하며, 절대자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맡겨 완전한 평온을 얻으려 하였다. 그들이 파악한 인생의 본질과 그들이 택한 구원의 길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까? 여러분들은 쉽게 그 둘 사이에‘스스로의 깨달음’과 ‘절대자에의 의존’ 또는 ‘신의 은총’ 이라는 구원의 방식에 차이까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구원의 방식에는 정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지의문이생긴다.“ 스스로의 깨달음” 뒤에는 삶과 죽음의 고된 굴레를 벗어나 개인적인 자아를 넘어서 자신을 지우는무아(無我)의상태가있는것은아닐까?“ 절대자에의 의존”에도 역시 구체적인 개인의 이기적 한계를 벗어나, 절대자 안에서 자신을 지워 나가며 절대자와 하나가 되어가는 궁극적인 단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불교와 기독교 안 에서 구원은“한갓된 자기를 지워감”에서 마침내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부처설화>와 <바를람과 조사파트>는 ‘다름’이 너무나도 분명한 두 종교 사이에서‘같음’의 계기를 깊이 숙고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