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를 보고(2009.08.07-10)
대만의 먼 바다에서 발생한 제18호 태풍 ‘모라콧’의 간접영향으로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이 앞섰다. 전세기가 제 날짜에 뜰까?, 가더라도 비와 안개 속을 헤매다 올 것이 아닌가? 등등. 그럴 것이 7월 말에 다녀 온 김부장의 블로그에 방문했더니 비와 안개 속을 걷는 모습의 사진들을 봤기 때문 날씨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8월 7일 미팅 장소인 제주국제공항에서 회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출국 수속을 한 후 중국남방항공의 전세기에 몸을 실었다. 약 2시간의 비행을 하는 동안 기내식으로 요기도하고 간밤의 모자란 잠을 보충하였다.
선양국제공항
선양의 어느 기차역 앞
선양의 코리아타운인 서탑가 : 선양 최초의 KBS 전국노래자랑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
선양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현지 시간으로 14시(한국시간 15시)였고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 현지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따라다녔다. 마치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닮았다고나 할까.
선양은 중국 동북3성(만주지역의 3성 :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최대도시이면서 요녕성의 성도로서 옛 이름은 봉천(奉天)이다.
10세기까지는 거란족이 세운 요(遼:947-1125)의 중요한 국경지대였고, 여진족(金)에게 점령되었다가 1세기 후에는 몽골(元)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때 ‘선양(심양)’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4세기 명(明)의 지배를 거쳐 17세기초에는 만주족(淸)이 만주전역을 지배하면서 선양을 성경(盛京)으로 개명하여 수도로 삼았다. 청(淸)이 북경으로 천도하기까지 황도의 지위를 누렸던 도시이다.
현재는 인구 8백만의 대도시로 발전하였으며, 조선인 13만명, 한국인 15천명 정도가 선양에 거주한다고 하였다.
코리아 타운에 해당하는 서탑가(西塔街)에는 조선족들이 생활하면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전개하는 곳이다. 과거 일제시대에는 8명의 독립지사 부인들이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할 목적으로 국밥가계를 운영하였는데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독립운동의 중추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홍가량주점에서 점심을 하고 북능공원을 관광하였다.
선양의 북릉공원 정문
북릉의 신도
북릉의 주인인 청태종의 묘
북릉의 주인인 청태종의 묘
북릉공원의 일부
북릉공원(자오링:昭陵)은 청을 건국한 태조(누르하치:릉은 동릉이다)의 8번째 아들이면서 2대 황제인 태종(皇太極)과 황후(孝端文)가 묻힌 곳으로 청조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으로 만주족의 지방특색과 민족 특색이 잘 반영된 곳으로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버스로 4시간 30분을 달려 숙박지인 통화시로 향하였다. 가이드가 말하길 이곳에서는 금방이 2시간이고, 4시간거리는 보통이라 한다. 선양시를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옥수수밭이 끝없이 전개되었고, 얕은 구릉성 산지가 이어지는 것이 강원도 산간을 닮은 풍경이었다.
통화시를 관통하는 강이 홍화강이라 하였는데 고구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비로수’가 바로 이 강이라 한다.
백두산 관광의 기점이라 할 수 있는 통화시는 한창 발전되고 있는 곳이라 하지만 우리의 70년대 초반을 보는 느낌이 드는 도시이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2박을 하였다.
백두산(장백산)의 서파 산문
둘 쨋 날 아침에 출발하여 4시간 30 여분을 달려 백두산 서파입문에 도착하였고, 입장하여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45분을 달려 경사로를 오르니 천지로 오르는 1,380 여개의 계단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천지로 오르는 계단 길에는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로 북적 거려 오르는데 불편하였고,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계단 오른편 울퉁불퉁한 비탈을 오르며 곱게 핀 야생화를 디카에 담았다. 공안원이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올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올라 왔던 그곳은 중국 땅이 아니라 북한 땅이었다.
백두산 서파로 오르는 셔틀버스 차도
천지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날씨가 도와줘서 천지를 볼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 한순간 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리기라도 할까봐 부지런히 디카의 샷터를 눌렀다. 마음 같아선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 천지 물을 만지고 싶지만 참아야 했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것만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보는 것만이라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고맙다고 해야 할 뿐이다. 아무튼 감격이요 감동 그 자체였다.
천지:정면 멀리 보이는 것이 천문봉 그 왼쪽이 달문
천지 : 호수 건너 오른쪽 뾰쪽한 봉우리가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병사봉)
천지:위에서 내려다 본 천지
5호 경계비 뒷면을 바짝 붙여서 흰색 펜스를 설치하여 국경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공안원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땅인 북한 땅으로 넘어가 경계비 뒷면을 디카에 담았고, 천지를 디카에 담기도 하였다. 공안원의 눈길을 피해 3번을 넘나들었다.
국경을 표시한 5호경계비 : 중국쪽
국경을 표시한 5호경계비 : 북한쪽
천지 : 중국쪽
천지 : 중국쪽
천지 :장군봉이 보이는 북한쪽
우리는 백두산, 중국은 창바이산(장백산)이라 부르는 백두산의 최고봉은 2,750m인 장군봉(병사봉)으로 북한지역이라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눈도장만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백두산은 북동남서 방향의 창바이산맥과 북서남동 방향의 마천령산맥의 교차점에 위치한 화산이다. 화산폭발에 의해 회백색의 부석(浮石=경석)이 덮여 있고, 연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 있어서 희게 보이기 때문 우리는 백두산이라 한다.
해발고도 1,800m 까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순상화산이나 1,800m 이상 부터는 종상화산체를 이루며, 백두산의 중앙부엔 칼테라호인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2,500m 이상의 봉우리가 16개 있다. 그 중 6개는 북한에(최고봉 : 장군봉2,750m), 7개는 중국에(최고봉 : 백운봉2,741m), 3개는 국경에 걸쳐 있다. 천지 수면에서의 장군봉의 비고는 600m 이다.
천지(天池)는 1,200년 전 화산 분출로 인해 부석이 쌓이고 화구 중심의 함몰로 직경 5km 의 칼데라(caldera)호가 형성된 것이다. 물이 없다면 울릉도의 나리분지와 같은 칼데라분지가 되었겠지만 물이 있어 칼데라호이다.
천지의 남북 길이는 4.85km, 동서 길이는 3.35km 이며, 천지의 둘레는 13.11km, 수면은 해발 2,194m, 평균 깊이는 204m 이다.
천지는 두 나라의 경계호이면서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백두산 서파(서쪽 사면)에는 비로용담, 호범의 꼬리, 화살곰취, 바위구절초, 산오이풀, 하늘매발톱, 수리취 등의 야생화가 피어나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어 디카에 담고 담았다.
장백산대협곡( 금강대협곡)
하산길에 화산폭발로 용암이 흘러 내려 형성된 V형의 장백산대협곡을 구경한 후 버스로 4시간 반을 달려 통화시 숙소에 도착한 것이 밤11시 넘은 시간이었다.
왕복 10시간을 버스를 탔지만 좋은 날씨에 천지를 볼 수 있었던 기쁨 때문에 피곤함을 잊게하였다.
5호묘의 봉분(위)과 석실 천정 벽화 일부(하) : 20기의 고구려 벽화고분 중 유일하게 벽화 관람이 허용 된 곳
셋째 날에는 고구려 유적 답사를 위해 지안(集安)으로 이동하였다. 고구려 유리왕 때 축조하여 두 번째 수도로 삼았던 국내성,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국내성터를 차창 넘어로 둘러 보았고,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볼 수 있는 5호묘(사신총:四神塚)의 내실로 들어가 현지 가이드의 벽화 해설을 들으며 감탄하였다. 현무(북), 주작(남), 청룡(동), 백호(서)의 4신의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광개토왕비 : 비의 보호를 위해 내부 촬영금지 됨
광개토왕릉
5호묘를 나와 광개토왕릉비가 있는 태왕촌대비가로 이동하였다.
‘호태왕비’라고도 하는 이 비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의 훈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 장수왕이 세운 비석이다(414년). 묘호(廟號)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에서 뒤 세글자를 본떠서 일명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비의 보호를 위해 중국식 건물에 유리벽으로 쌓여있다.
비는 사면석비(四面石碑)로서 높이가 6.39m 되는 거대한 비석이다.
비의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태왕릉이 상부가 훼손된 채 보호되고 있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당의 이세민이 고구려를 정복한 후 고구려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허물었다는 것이다.
장군총(장수왕릉)
장군총(장수왕릉)
장수왕 후비의 묘
호태왕비의 동북쪽 1.5km 지점에 장군총(將軍塚)인 우산하1호분(禹山下一號墳)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장수왕릉이라고 알려진 이 릉은 고구려 기단식돌방돌무지무덤(基壇式石室積石塚)이다. 무덤 앞으로는 통구평야가 펼쳐있고 그 너머로 압록강이 흐른다.
무덤은 화강암 장대석을 이용하여 7층으로 쌓고 제4층 단의 한 가운데에 석실을 설치했다고 한다. 무덤 중심부의 높이는 11.28m, 밑변 한변의 길이는 29.34m이다. 1100 여개의 장대석으로 외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장수왕은 25명의 비를 두었다고 하는데 그 후궁의 묘 5기도 주변에 있어 그 중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지안시(집안시)의 압록강 유원지:강 건너편 오른쪽 북한
지안시(집안시)압록강 : 중국쪽 유원지에서 쾌속정을 타고 압록강 상류를 달렸다. 북한의 압록강변 국경지대는 중국쪽과는 달리 민둥산이다.
이번 답사기간에 잊지 못할 특종(?)이 있는데 그것은 압록강에서 쾌속정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북한땅 가까이 가 봤다는 것이다. 중국쪽의 압록강변은 유원지로 활용하고 있어 주민과 관광객이 찾는데 비해 북한쪽 강변은 경비초소가 보일 뿐 한적 하였다.
중국쪽 산에는 나무가 울창한데 비해 압록강 넘어 북한의 산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으로 일부는 개간한 것 같이 보였다. 강넘어 땅이 우리 땅인데도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눈에, 그리고 디카에 열심히 담았다.
버스로 6시간을 달려 선양의 서탑가에서 불고기로 만찬을 한 후 숙소인 신세계반점(뉴월드호텔)에 들었다. 내일 아침 채크 아웃은 5시30분이고, 비행기출발시간이 7시50분이어서 마지막 밤이라 아쉽지만 서둘러 취침하였다.
광활한 만주 땅,
현재는 중국 땅이지만, 일직이 고구려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첫댓글 참으로 좋은 곳을 다녀왔네요. 그것도 선명한 날씨에..... 부러워요. 나도 언젠가는 ....^.^
나도 엔제 가보나앞으로 금강산으로 ,,개성으로,, 백두천지가 볼 관광이면 가질건가 너무 잘보았수다.글발좋고,사진좋코이네 중앙고 토요오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