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학생들은 이 작품을 '난쏘공'이라고 불렀다. 공장노동자와 도시빈민 등 소외계층의 피폐한 삶을 다룬 12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난쏘공》에 가장 먼저 관심을 표명한 것은 문학도가 아닌 사회과학도들이었다. 《난쏘공》은 80년대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 《아미자》(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등과 함께 대학 새내기들의 '시각교정용 필독서'로 꼽혔다. 하지만 《난쏘공》이 80년대 내내 젊은이들에게 시대를 읽는 교과서의 하나였을 때, 정작 조세희는 자신의 언어를 찾지 못해 침묵했다. '말이 10개라면 그 중에 5~6개밖에 쓸 수 없었던' 5공화국의 억압적 분위기 아래서 그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글은 없었다. 작가는 다시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 속에 침잠했다.
'말이 10개라면 그 중에 5~6개밖에 쓸 수 없었던' 5공화국의 억압적 분위기 아래서 그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글은 없었다. 작가는 다시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 속에 침잠했다. 그 사이에 소설집 〈시간여행〉과 사진에세이집 〈침묵의 뿌리〉 등 단 세 권의 작품집을 낸 것이 30여 년을 '작가'로 생활한 조세희 문학 이력의 전부다. 그런 가운데 그가 선택했던 것이 사진이다. 1979년 사북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는 사진 찍는 친구들에게 제발 그 기록을 남기라고 쫓아다니며 부탁했다. 아무도 그의 말을 안 듣자 홧김에 카메라를 한 대 사들고 필름을 끼운 뒤 현장으로 들어갔다. 《사진의 첫걸음》이란 얄팍한 책 한 권으로 사진찍기와 만들기를 사흘만에 깨우친 뒤였다. 이때의 작업은 후에 《침묵의 뿌리》라는 제목으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
1997년 계간 《당대비평》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다시금 세상을 향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작가 박완서가 그를 두고 `너무 맑은 물`에 비유했듯이, 조세희의 글들은 여전히 `현실의 탁류`와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다.
"20세기를 우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 보냈다. 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헤어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죽었다. 선은 악에 졌다. 독재와 전제를 포함한 지난 백 년은 악인들의 세기였다. 이렇게 무지하고 잔인하고 욕심 많고 이타적이지 못한 자들이 마음놓고 무리지어 번영을 누렸던 적은 역사에 없었다."
《당대비평》 창간사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조세희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난쏘공`의 난장이가 꿈꿨듯이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리는` 세계, `사랑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 줄기에까지 머물게 하는` 그런 세계가 조세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조세희의 〈난쏘공〉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 원래 맞춤법으로 보면 표준어는 '난장이'가 아니라 '난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말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평론가들조차 '난장이'라고 적는다. 조세희의 〈난쏘공〉이 남긴 흔적이다.
◇아직도, 아니 지금도 우리는 난장이와 조세희를 말한다
조세희는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3세에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없는 장선〉으로 등단했으나 "소설가로서의 한계를 느껴" 창작활동을 중단하고 10년 동안 침묵기를 갖는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체제가 들어서고 개발독재가 절정에 이른 1975년, 작가는 침묵을 끝내고 《문학과지성》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시작한다. 당시 잡지사에 다니던 그는 직장 부근 다방에서 소설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 〈뫼비우스의 띠〉를 필두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잇달아 발표했고,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한권의 단행본으로 묶어냈다.
그는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 칠십년대는 파괴와 거짓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고 말했다. 그가 한 사람의 작가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경제적 핍박자들이 모여 사는 재개발 지역동네에 가 집이 헐리면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되는 세입자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데 철거반들이 철퇴로 대문과 시멘트담을 쳐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철거반들과 싸우고 돌아와 작은 노트 한 권을 사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제는 현대 한국문학의 고전이 돼버린 12개의 연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렇게 태어났다. 현실과 미학의 뛰어난 결합으로 평가된 이 작품집으로 조세희는 1979년 제15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주도 그의 화두였다. 그는 91년 광주문제를 다룬 장편 〈하얀저고리〉를 계간지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그후 9년째 미완으로 남겨두고 있다.
1995년 11월에는 프랑스의 파리에 가서 모든 공공 부문 교통 수단이 일제히 멈추어 버린 노동자 총파업을 지켜본다. 그곳에서 그는 '권력의 폭거에 저항하며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본다.
1997년에는 진보적 계간지 《당대비평》의 편집인을 맡는다. 1999년 3월부터 경희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로 임용돼 대학원생들에게 '한국현대문학사상사'를 강의하고 있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철거민 촌에 사는 난장이네 집에 어느날 '철거 계고장'이 날아온다.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지기는 했으나, 아파트로 들어갈 돈이 없다. 입주권을 팔아야 하는 형편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입주권이 팔리고 집이 헐리는 중에 아버지 난장이와 영희가 행방불명된다. 그들을 기다리다 남은 가족이 딴 곳으로 이주해 간 사이에, 영희는 입주권을 산 사내를 따라가 그의 아파트에 머물다가, 그가 잠든 틈을 타 그를 약에 취하게 하고서 돈과 자기네 입주권을 훔쳐 아파트 입주 신고를 한다. 그리고 평소 난장이 아버지에게 잘 대해주던 옆동네 아주머니인 신애를 만나 그의 가족들의 소식을 듣는다.
행방 불명이 되었던 아버지는 벽돌공장 굴뚝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남은 가족들은 성남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가 죽은 후 살기 위해 난장이 아들딸은 은강시로 이사가 은강그룹 계열사에 취직한다. 하지만 멀리 서울에서 살면서 근로자들에게 일한 만큼 대우를 해주지 않고 막대한 이윤을 취하는 회사의 높은 사람들에게 점점 분노를 느끼고, 마침내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은강그룹의 경영주를 죽이러 서울에 올라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