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요결 (擊夢要訣)
《격몽요결(擊夢要訣)》은 율곡 선생이 42세 때 해주(海州) 석담(石潭)에 있으면서 초학자들의 학문하는 방향을 일러주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책 제목의 격몽(擊蒙)은 「주역(周易)」 몽괘(夢卦) 상구(上九) 효사(爻辭)의 말로, '몽매하여 따르지 않는 자를 깨우치거나 징벌한다' 는 뜻이다. 이 내용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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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학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역시 이상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아비가 되어서는 자애롭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하고,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고, 형제간에는 우애롭고,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간에는 신의를 두는 것으로서 일용의 모든 일에 있어 그 일에 따라 각기 마땅하게 할 뿐이요,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이한 것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학문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식견이 좁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글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마땅히 향할 길을 밝힌 연후에야 조예가 올바르고 실천에 중도를 얻게 된다.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 생활에 있는 줄은 모르고 망령되어 높고 멀어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는 자포자기한다. 이 어찌 불쌍한 일이 아니랴.
내가 해산(海山)의 남쪽(해주의 석담을 가리킴)에 거처를 정하자 한두 학도가 추종하여 학문을 청해 왔다. 내가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또한 초학(初學)이 향방을 모를 뿐 아니라, 굳은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면 피차에 도움이 없고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사게 될까 염려되었다.
이에 간략하게 한 책을 써서 대략 마음을 세우는 것,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 부모를 봉양하는 법,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이를 「격몽요결」이라 이름해서 학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아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 즉시 공부에 착수하게 하고, 나 역시 오랫동안 구습에 얽매어 괴로워하던 차에 이것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코자 하노라.
정축 늦겨울 덕수(德水) 이이 씀.
정조임금의 서문
1788년 정조 12년에 정조임금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서문을 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제(御製) 율곡(栗谷) 수초본(手草本) 「격몽요결(擊蒙要訣)」 서문(序文) (정종(正宗) 무신년(1788))
그 사람을 사모하면 반드시 그의 저서를 읽게 되고, 그의 저서를 읽으면 반드시 그의 마음을 추구(追求)하게 되는 것이니, 마음은 바로 그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을 벗으로 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분의 저서를 우선으로 하는 것인데, 이제 사모하는 사람의 저서에다가 그것도 또 손수 자필(自筆)로 자구(字句)를 수정한 필적이라면 그 분의 마음이 필획(筆劃)에 나타난 것까지 아울러 봄으로서 조용히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을 터이니, 그 분 마음을 추구하는 데 있어 더욱 절실하지 않겠는가.
이 문성(文成: 율곡의 시호)은 내가 존모(尊慕)하는 분이다. 그 분의 전서(全書)를 읽고서 그 인품을 상상할 수 있었다. 요즈음 강릉에 그분이 손수 쓰신 「격몽요결」과 남기신 벼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른 가져다가 보았다.
점(點)과 획이 새롭고 시작과 끝이 한결같아 영명(英明) ․ 순수(純粹)하신 뛰어난 품성과 광풍제월(光風霽月) 같은 시원한 기상을 책을 펼쳐보는 순간 은연중 감지할 수 있어, 홀연 이 문성과 200여년의 시대차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으니 그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저 '묘하게 합하매 빨리 쓰는 것 '은 바로 공(公)의 생각의 정밀함이며 '글씨를 바르게 쓰는 이것이 곧 학문이라'는 것은 바로 공의 몸가짐의 경건함이다. 이로 말미암아 추구하면 몸을 닦고 집을 가지런히 하는 공부와, 임금을 요순(堯舜)처럼 만들고 백성을 요순의 백성처럼 만드는 계책은 단지 이를 미루어 확충해 나가는 데 불과한 것이니, 후일에 공을 사모하여 공의 마음을 추구하는 자라면 이 책에 힘입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바로 소학(小學)의 첫걸음이다. 임영(臨瀛: 강릉을 말함.)의 자제(子弟)들이 단지 수택(手澤)1)의 유물에 대해 애완할 줄만 알고 가혜(嘉惠)의 뜻에 대하여는 깊히 연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찌 도리어 이 고을의 수치가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만약 여기에서 더 진취하여 추구하기를 요망한다면 역시 반드시 그 전서(全書)를 읽어보아야 될 것이다.
나는 이로 인하여 특별한 감회가 있다. 지난번에는 영남[嶠南]에서 이문순(李文純: 퇴계의 시호임)공이 손수 쓰신 「심경(心經)」을 얻었는데 이번에 또 이 책을 얻었다. 두 분 현자(賢者)의 태어남이 이미 동일한 시대였는데 두 책이 마침 서로 전후에 걸쳐 발견되었으니, 때를 기다림이 있었던 듯싶고 우연한 일이 아닌 듯하다. 그런데 유풍(儒風)은 점점 멀어지고 성언(聖言)은 날로 사라져 가니, 매양 경연(經筵)에 나아가매 더욱 같은 시대에 태어나기 못한 한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강릉은 바로 공의 외가가 있는 고을로서 공이 사실은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이른바 '오죽헌(烏竹軒)'이라는 곳이 그곳이다. 이곳이 뒤에는 권씨(權氏) 소유가 되어 책도 또한 그 집에 소장되어 있으니, 권씨의 선세(先世)가 공의 이모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여기 이렇게 적고 또 벼루에 명(銘)을 지어서 돌려보내는 바이다.
내가 즉위한 지 12년이 되는 무신년(1788) 초여름에 짓고 이내 각직(閣職)에 있는 공의 방손(傍孫) 이 병모(李秉模)을 시켜서 글씨를 쓰게 했다.
제1장 입지(立志) : 뜻을 세우자
입지란 올바른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는 확고한 마음을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율곡의 입지는 어디까지나 실천도덕의 입지이기 때문에 그의 입지 목표는 당연히 성인에 두고 있는 것이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뜻을 세워 반드시 성인이 되겠다고 결심할 것이요, 조금이라도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 포기하거나 물러서고 미루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개 보통 사람과 성인을 비교해보면 그 본성은 똑같으나, 다만 기질은 맑음과 흐림, 순수함과 잡됨의 차이가 있다. 다만 참답게 알고 실천을 통하여 젖어온 구습을 버리고 타고난 본래의 성품을 회복한다면, 털끝만치 보태지 않아도 온갖 착함이 구비됨에 족할 것이니, 보통 사람이라도 어찌 가히 성인을 스스로의 목표로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입지(立志), 명지(明知), 독행(篤行)
그러므로 맹자는 성(性)이 선하다고 말하시며 늘 요순을 들어 실증하면서 말씀 하시되 '사람은 다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우리를 속이셨으랴. 항상 마땅히 분발하여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성품은 본디 착하여 예나 이제나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구별이 없거늘, 성인은 왜 혼자 성인이 되며 나는 왜 홀로 중인이 되는가? 진실로 뜻이 확립되지 않고, 아는 것이 분명하지 않고, 행함이 독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뜻을 확립시키고, 아는 것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도탑게 하는 것은 다 나에게 있다. 어찌 다른 데에서 구하랴.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려드는 사람은 또한 그같이 된다.' 하였으니, 나도 당연히 순과 같이 되기를 바랐던 것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모습을 아름답게 고칠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세어지게 고칠 수 없으며, 키는 작은 것을 크게 고칠 수 없다. 이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고칠 수 없어서이다.
그러나 심지(心志)는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어질지 못한 것을 현숙하게 바꿀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의 허령(虛靈)은 타고난 것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서이다. 대체 지혜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고 어짊보다 귀한 것은 없다. 왜 그다지도 어질고 지혜로와지려 들지 않고 하늘이 태워 준 본성만 손상하고 있는가. 사람이 이 뜻을 간직하고 굳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거의 도(道)에 가까우리라.
보통 사람들이 제 자신 뜻을 세웠다면서도 바로 노력하려 들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면서도 실상 배움에 향하려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 뜻이 학문에 두어졌다면, 인(仁)을 행함은 나에게 있어 하려고 하면 이를 수 있는 것인데, 왜 뒷날로 미루겠는가.
뜻을 세움이 귀하다는 것은 곧 공부를 시작하여 미치지 못할가 두려워하여 생각마다 물러서지 않으려 한 까닭에서이다. 만일 뜻이 정성스럽고 도탑지 못하여 그대로 날만 보낸다면 나이가 차 죽는 날까지도 어찌 성취가 있으랴.
율곡은 더 나아가 입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병적 원인이 셋이 있다고 말하면서 첫째는 불신(不信)이요, 둘째는 부지(不智)요, 셋째는 불용(不勇)이라고 한다.
불신(不信)이란 무엇인가?
성현이 우리에게 일깨워 알게 해준 것이 명백하고 친절하여 진실로 그 말의 순서를 따라 점차 나아가면 우리도 성현이 되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고 그렇게 해서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현의 말은 사람들을 권유하기 위한 것이라 하여 믿지 않고 그 성현들의 글만 완독(玩讀: 비판적으로 책을 읽지 않고 다만 마구 읽어나감)하고 몸으로써 실천하지 않고 있으니, 그 읽고 있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만 몸소 실천하는 것은 속된 유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부지(不智)란 무엇인가?
사람이 타고난 성질이 만 가지로 다르나 힘써 알고 힘써 행하면 성공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혜롭지 못한 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의 자질이 부족함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알고 뒤로 물러서서 안일하게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도 심지를 바르게 바꾸고 노력하면 성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열심히 읽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불용(不勇)이란 무엇인가?
성현이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과 우리가 힘써 배우고 실천하면 기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알고 있다해도 항상 하던 버릇이 습관이 되어 힘을 내 일어나지 못한다. 어제 한 것을 오늘 고치기 어렵게 여기고 오늘 한 것을 내일 고치기를 꺼려하며 인순고식(因循姑息: 낡은 폐습을 버리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 바람)하여 한 발 앞으로 나갔다가 열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은 용기 없는 불용의 소치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읽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만, 편안함을 바라는 것은 과거의 폐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장 혁구습(革舊習) : 구습(舊習)을 버리자.
사람이 비록 학문에 뜻을 두고서도 능히 용맹스럽게 앞으로 나아가 성취함이 있도록 하지 못하는 것은 구습이 막아서서 방해하는 까닭이다. 구습의 명목을 다음과 같이 열기(列記)하노니, 만일 뜻을 가다듬어 매섭게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의 바탕은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1. 마음가짐을 게을리 하고 몸가짐을 함부로 하여 다만 편하게 놀기만을 생각하고 절제하기를 매우 싫어하는 것.
2. 항상 일이나 꾸미려 하고 조용히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여 분주히 드나들면서 이야기로 세월을 보내는 것.
3. 함께 휩쓸리기를 즐기고 혼자 다르게 행동하기를 싫어하여 속된 무리들 속에 빠지는 것과, 조금 몸을 닦거나 조심을 해보려다가도 여러 사람들과 틀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왕따에 대한 두려움)
4. 문장이나 보기좋게 꾸며 세상의 명예나 취하려 하고, 옛글을 따다가 화려한 문장이나 꾸며 만드는 것.
5. 편지나 글씨에 공을 들이고, 음악이나 술마시기를 일삼으며, 공연히 놀며 세월을 보내면서 자기만이 맑은 운치를 가지고 사는 체 하는 것.
6. 한가롭게 아무 일도 없는 사람들을 모아 바둑, 장기나 두고 즐기면서 종일토록 배불리 먹고 내기를 다투는 것.
7. 부귀를 부러워하고 빈천을 싫어하여 좋지 못한 옷과 좋지 못한 음식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것.
8. 즐기고 욕심내는 것에 절도가 없어 능히 이를 끊고 억제하지 못하면서, 재물과 이익, 노래와 색(色)을 꿀맛같이 여기는 것.
버릇이 마음을 해롭게 하는 것들은 이같은 것이다. 그 나머지는 다 열거하기 어렵다.
이런 버릇이 사람들에게 뜻을 굳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도탑지 못하게 만들어, 오늘 한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치고서 저녁에 다시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떨쳐서 마치 한 칼에 뿌리째 끊어버리듯 마음을 깨끗이 씻어 털끝만큼도 남음이 없게 하고, 때때로 늘 깊이 반성하는 공을 들여 마음에 한 점 더러운 예전 버릇이 없게 하고서야 진학하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장 지신(持身) :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자.
이 장에서는 자기 몸과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는데 필요한 요목을 말하고 있다.
학문하는 자가 자기 몸을 올바로 갖는데 제일 중요한 것으로 공자는 "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을 주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자가 해석하기를, "사람이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이 없으면 일마다 모두 실상이 없어, 악하여지기는 쉽고 선하여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고 했다. 반드시 충신으로 주장을 삼고서 용맹스럽게 공부를 하고 난 뒤라야 성취가 있을 수 있다. 황 면재(黃勉齋)1)의 이른바, "진실한 마음가짐과 각고(刻苦)의 공부."라는 두 마디가 이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성의를 다하는 마음과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을 가지고 용맹스럽게 공부를 해나간 뒤라야 능히 성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장에서는 구용(九容), 구사(九思)로부터 시작하여 사물(四勿), 즉 네 가지 해서는 안될 일과 칠호(七好), 즉 일곱 가지 좋아해서는 안될 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구용(九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고, 또 학문을 진보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데 있어서는 구사(九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한다.
구용(九容)
1. 족용중(足容重) : 발 거동은 무겁게 하고,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다. 장자(長者) 앞에서 걸을 적에는 여기에 구애될 수 없다.
2. 수용공(手容恭) : 손 거동은 공손하게 하며, 손 놀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손을 모으고 망동하지 않는다.
3. 목용단(目容端) : 눈 거동은 단정히 하고, 눈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바르게 보아야 하며 흘겨 보거나 째려 보아서는 아니된다.
4. 구용지(口容止) : 입 거동을 그치며,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항시 움직이지 않는다.
5. 성용정(聲容靜) : 소리 거동은 고요히 하고, 마땅히 형기를 가다듬어야 하며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어서는 아니된다.
6. 두용직(頭容直) : 머리 거동을 곧게 하며, 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여 돌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아니된다.
7. 기용숙(氣容肅) : 기운의 거동은 엄숙히 하고, 마땅히 숨을 고르게 쉬어야 하며 거친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아니된다.
8. 입용덕(立容德) : 서는 거동은 덕 있게 해야 하며, 똑바로 서고 않아서 엄연히 덕 있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얼굴 거동은 씩씩하게 해야 하는 것들이다.
9. 색용장(色容壯) : 얼굴 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閑談敍話可起風塵 閑談敍話能消風塵
한담서화가기풍진 한담서화능소풍진
한가로이 오가는 말이 가히 풍진을 일으키고, 한가로이 오가는 말이 능히 풍진을 없앤다.
一身收拾重千金 頃刻安危在處心
일신수습중천금 경각안위재처심
자기 한 몸 수습하기를 천금같이 무겁게 하라. 한 순간의 편안함과 위태로움도 마음가짐에 있다.
心深黃河水 口重崑崙山
심심황하수 구중곤륜산
마음을 황하수같이 깊게 하고, 입은 곤륜산같이 무겁게 한다.
구사(九思)
1. 시사명(視思明) : 눈으로 볼 때는 밝고 바르게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물을 볼 때 가리운 바가 없으면 밝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2. 청사총(聽思聰) : 귀로 들을 때는 그 소리의 참뜻을 밝게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들을 때 막힌 바가 없으면 총명하여 들리지 않은 것이 없다.
3. 색사온(色思溫) : 표정을 지을 때는 온화하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얼굴 빛을 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골내고 성내는 기색이 없어야 한다.
4. 모사공(貌思恭) : 몸가짐이나 옷차람은 공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하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5. 언사충(言思忠) : 말할 때는 참되고 거짓 없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를 하더라도 충성되고 신의가 있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6. 사사경(事思敬) : 어른을 섬길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며, 한 가지의 일을 하더라도 공경하거나 조심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7. 의사문(疑思問) : 의심나고 모르는 일이 있을 때는 물어서 완전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 속에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먼저 깨달음이 있는 이에게 잘 물어서 모르는 그대로 두어서는 아니된다.
8. 분사난(忿思難) : 분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어려움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분이 나면 중계하여 이성으로 스스로 견뎌야 한다.
9. 견득사의(見得思義) :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의(儀)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상에서 말한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는 항상 마음속에 두면서 자기 몸과 마음을 살피고 한시라도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사물(四勿)
1. 비례물시(非禮勿視) : 예가 아니면 눈으로 보지 말라.
2. 비례물청(非禮勿聽) :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
3. 비례물언(非禮勿言) :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4. 비례물동(非禮勿動) :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이상 네 가지는 곧 자기 몸을 닦아나가는 요점이다. 이 예와 예가 아닌 것에 대해서 처음 배우는 자는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니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이미 아는 바를 힘써 행한다면 그 생각하는 것이 전체의 예의에 반은 넘을 것이다.
학문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 있다. 만약 평소에 거처를 공손히 하고 일처리를 공경히 하고 남과의 접대에 성실했다면 이는 학문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것뿐이다.
의복은 호화로운 것을 입지말고 추위를 막을 뿐이며, 음식은 감미로워서는 아니 되며 주림을 채우면 그만이며, 거처는 편안하게 해서는 아니 되며 병나지 않게 하면 그만이다. 오직 이 학문의 공과 심술(心術)의 올바름과 위의(威儀)의 법칙에는 날마다 힘쓰고 힘써서 스스로 만족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칠호(七好): 극기(克己) 공부로서 일곱 가지 좋아해서는 안 되는 일
1. 호색호(好色乎) : 색(色)을 좋아하지 않는가
2. 호리호(好利乎) : 이익을 좋아하지 않는가
3. 호명예호(好名譽乎) : 명예를 좋아하지 않는가
4. 호사환호(好仕宦乎) : 벼슬을 바라지 않는가
5. 호안일호(好安逸乎) : 안일한 것을 바라지 않는가
6. 호연락호(好宴樂乎) : 잔치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7. 호진완호(好珍玩乎) : 진기하고 볼 만한 물건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가
극기(克己) 공부가 일용(日用)에 가장 절실하다. 이른바 기(己)라 함은 내 마음에 좋게 느껴진 것이 천리(天理)에 부합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극기 공부는 사욕을 이겨나가는 공부로서 날마다 행동하는 일을 삼가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는 것이다.
말 많고 생각 많은 것이 심술(心術)에 가장 해롭다.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지키고, 남을 접대할 적에는 말을 가려서 간중(簡重)히 하며 말 차례가 되었을 때 말을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말이 간결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 간결한 자는 도(道)에 가까워 질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도(道)에다 마음을 쏟아 외물(外物)에 빼앗긴 바가 되어서는 안되며, 외물의 바르지 못한 것은 일체 마음에 유념하지 말아야 한다. 고을 사람이 모인 곳에서 만약 박혁(博奕)이나 저포(樗蒲) 따위의 놀음을 벌렸거든 마땅히 눈여겨 보지 말고 못본 체 물러나와야 하며, 만약 창기(娼妓)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만났거든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만약 향중(鄕中)의 큰 모임을 당하여 혹 존장(尊長)이 굳이 만류하여 피할 수 없거든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악한 소리나 음란한 여색이 나에게 범접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잔치를 당하여 술을 마시더라도 만취가 되도록 마시면 아니되며 적당할 때 그만 마시는 것이 좋다.
모든 음식은 마땅히 알맞게 먹을 것이요 입맛대로 먹다가 기(己)를 손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며, 말과 웃음은 마땅히 간중(簡重)히 할 것이요 시끄럽게 떠들어서 절도에 벗어나서는 아니되며, 행동거지는 마당히 점잖게 할 것이요 경솔하여 그 위의를 잃어서는 아니된다.
일이 있으면 그 이치로 일에 대응하고 글을 읽으면 정성으로 궁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밖에는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거두어 잡아 이 마음이 고요하여 어지럽게 일어나는 생각이 없게 하고 환히 빛나서 혼매한 잘못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니, 이른바 '경으로 마음을 곧게 한다〔敬以直內〕'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안팎을 한결같이 해야 한다. 어두운 곳에 거처해서도 밝은 곳에 있듯이 하고, 홀로 있을 적에도 뭇 사람이 있는 곳에 있듯이 하여 내 마음을 마치 푸른 하늘에 밝은 해처럼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항시 한 가지의 의롭지 못한 일을 하거나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지라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가슴 속에 간직해야 한다.
거경(居敬)으로 그 근본을 세우고, 궁리(窮理)로 선2)을 밝히고, 역행(力行)으로 그 진실을 실천한다는 세 가지는 종신의 사업인 것이다.
생각에 사(邪)가 없을 것, 공경하지 않음이 없을 것, 이 두 글귀는 일생 동안 받아들여 사용해도 끝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벽 위에 걸어두고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된다.
매일마다 마음이 간직되지 않았는가, 학문이 진전하지 않았는가, 행실을 힘쓰지 않았는가를 스스로 점검하여 있었다면 고치고 없었다면 더욱 힘써 부지런히 하고 게을리함이 없어서 죽은 뒤에 그만두어야 한다.
< 주 >
1) 중국 송(宋)의 황간(黃幹)을 말함. 민현(縣) 사람으로 자는 직경(直卿). 학자들이 면재(勉齋) 선생이라 칭하였다. 젊어서 주자(朱子)에게 사사하였는데 주자는 그의 심지가 견실함을 칭하여 사위를 삼았다. 《宋元學案 卷六十三》
2) 이는 지선(至善), 곧 인심(人心)과 천명(天命)의 본연(本然)을 이르는 하나의 큰 덕목(德目)이다. 「중용(中庸)」20장에 "선을 밝히지 못하면 몸을 성실히 할 수 없다〔不明乎善 不誠乎身矣〕" 하였고 그 주석에 선(善)을 성(性)의 원두처(源頭處)라 하였다.
제4장 독서(讀書) : 책을 읽어서 이치를 구하자.
이 장에서는 독서의 의의와 자세, 그리고 독서의 순서, 방법을 말하고 있다.
1. 독서의 의의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착한 것을 밝힌 뒤에라야 자신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가 뚜렷하게 보여 진보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에 들어가려면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현들의 마음쓴 자취와 착한 일을 본받는 것과 악한 일을 경계할 것들이 모두 이 글 속에 있기 때문이다.
2. 독서의 자세
글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마주잡고 반듯하게 앉아서 공손히 책을 펴놓고 마음을 모으고 뜻을 극진히 하여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연구하여 의의와 취지를 깊이 이해하되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만일 입으로만 읽고서 마음으로도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도 실행하지 않으면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될 것이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3. 독서의 순서
소학(小學)으로부터 읽기 시작하여 오서 오경(五書五經: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과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를 골고루 다 읽은 후에 송나라 성현들이 저술한 성리학에 관한 글을 읽어야 한다.
먼저 「소학(小學)」을 읽어서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고 군주에게 충성하고 어른께 공경하고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근히 하는 도리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음미하고 힘써 실행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대학(大學)」과 「대학혹문(大學或問)」을 읽어서 궁리(窮理)․정심(正心)․수기(修己)․치인(治人)의 도리에 관하여, 하나하나 참답게 알고 실행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논어(論語)」를 읽어서, 인(仁)을 구하고 자신을 위하여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에 관하여, 하나하나 골똘하게 생각하여 깊이 체득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맹자(孟子)」를 읽어서, 의(義)와 이(利)를 분명히 가리고, 인간의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유지하는 설(說)들에 관하여, 하나하나 밝게 살피고 확충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중용(中庸)」을 읽어서, 성정(性情)의 덕과, 미루어서 이루는 공효와 천지가 안정하고 만물이 생육하는 묘리를 하나하나 완색(玩索)하여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시경(詩經)」을 읽어서, 성정의 사정(邪正)과 선악의 포계(戒)에 관하여, 하나하나 찬찬히 풀어서 감동을 일으키고 징계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예경(禮經)」을 읽어서, 천리의 절문(節文)과 의칙(儀則)의 제정된 차례에 관하여, 하나하나 강구하여 확립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서경(書經)」을 읽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큰 경륜과 큰 법칙에 관하여, 하나하나 요령을 터득하고 근본을 거슬러올라가 찾아야 한다.
다음에는 「역경(易經)」을 읽어서, 길흉․존망․진퇴․소장(消長)의 기틀에 관하여 하나하나 살피고 음미하며 궁구하고 연마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춘추(春秋)」를 읽어서 성인이 선을 상찬하고 악을 징벌하는 억양조종(抑揚操縱)의 은미한 말과 깊은 의의에 관하여, 하나하나 정밀히 연구하여 적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위의 오서(五書)․오경(五經)을 돌려가며 익히 읽고 이해하기를 그치지 않아 의리가 날로 밝아지게 해야 하며, 송대(宋代)의 선현이 저술한 「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심경(心經)」․「이정전서(二程全書)」․「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와 그 밖의 성리학설(性理學說)들을 마땅히 틈틈히 정독하여, 의리가 항상 마음에 젖어듦이 사이 뜰 순간이 없게 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 남은 힘이 있으면 역사책을 읽어서 고금의 역사와 일이 변화하는 이치를 꿰뚫고 모두 알아내어 식견으로 기르되 이단(異端) ․ 잡류(雜類)의 올바르지 못한 글은 잠시도 보지 않아야 할 것이다.
4. 독서의 방법
무릇 독서하는 데는 반드시 한 책을 숙독하여 뜻을 다 알아내고 꿰뚫어 의심이 없고 난 뒤에 다른 책을 바꾸어 읽어야 한다. 많이 읽으려고 바쁘게 책장을 넘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제5장 사친(事親) : 부모에게 효도하자.
무릇 사람이 부모에게 당연히 효도하여야 함을 모르지는 않으나 효도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한 까닭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은덕을 갚으려 해도 하늘과 같아 끝이 없네"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식으로서 삶을 받음에 성명(性命)과 혈육(血肉)은 모두 부모가 끼쳐 준 것이므로 호흡, 기운과 맥박이 서로 연이어져 있다. 이 몸은 내 사사로운 것이 아니고 부모가 끼쳐 준 기(氣)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에 "애달파라, 부모가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수고로우셨네" 하였으니, 부모의 은혜를 무어라 이르랴! 어찌 감히 몸을 제 것으로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하게 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늘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절로 부모에 대한 정성이 생길 것이다.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 한 가지 행동이라도 감히 제 마음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명령을 받고서 행하여야 한다. 만일 당연히 할 만한 일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자세히 말씀드려 승낙을 얻은 뒤에 행해야 하고, 만일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곧바로 제 생각대로 하여서는 안된다.
매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정제한 다음, 부모의 침소에 가서 호흡을 낮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옷이 더우신지 찬지와 몸의 안부를 물을 것이며, 저녁이면 침소에 가서 이부자리를 보아 드리고 따뜻한가 서늘한가를 살피며, 낮에 모실 때에도 항상 부드러운 낯빛과 온순한 용모로 공경히 응대하고, 오른쪽이며 왼쪽 필요해 하시는 곳을 좇아 봉양하면서 극진히 그 정성을 다하고, 나들이할 때에는 반드시 절하고 아뢰고 절하고 뵈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양육되고서도 자기의 힘으로 부모를 봉양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세월만 넘기다가는 끝내 부모를 정성껏 봉양할 시절이 없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살림을 몸소 주관하여 스스로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고 난 뒤라야 자식의 직분을 닦았다 할 것이다. 만일 부모가 굳이 따라주시지 않으면, 비록 살림은 주관하지 못하더라도 당연히 주선해드리고 도와드리면서 힘을 다 쏟아 반찬을 맛있게 할 재료를 구하여 어버이의 구미에 맞게 해 드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생각이 늘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에만 있다면 진미(珍味)도 반드시 얻어질 것이다. 예전에 왕 연(王延)3)이 한겨울 큰 추위에 자신은 온전한 옷을 입지 못하고서도 부모에게는 맛난 음식을 극진하게 해 드렸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과 눈물을 흘리게 한다.
보통 가정에서 부자간의 사랑이 공경보다 넘치고 있으니, 반드시 예전 버릇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존경을 극진히 하여야 할 것이다. 부모가 앉고 눕던 자리는 자식이 감히 자기의 손님을 접대치 않아야 하며,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던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아야 한다.
부모의 뜻하신 바가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당연히 말씀하기 전에 받아들여 조금도 어겨서는 안되고, 이치에 해로운 일일 것 같으면 화평한 기색과 좋은 낯빛, 부드러운 음성으로 간언하되 반복하여 아뢰어서 꼭 들어 주시도록 하여야 한다.
부모에게 병환이 있으시면 마음은 우울해 하고 기색은 꺾여 다른 일은 버려둔 채 다만 의원을 데려오고 약을 짓기에만 힘쓰다가 병이 나으시면 평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날마다 생활하는 중에 잠시라도 부모를 잊지 않고 난 뒤라야 효자라고 이름할 것이다. 저들 몸가짐을 삼가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면서 유희로 날을 보내는 자는 다 부모를 잊은 자들이다.
세월은 물 흐르듯 하여 어버이 섬김도 오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식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마치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이 해야 한다.
옛 사람의 시에 "옛 사람이 하루 동안 그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삼공(三公: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의 부귀와 바꿀 바 아니다" 라고 하였으니 부모에게 날짜를 하루하루 아껴가면서 효도를 다한다는 애일지성(愛日之誠)4)은 이와 같은 것이다.
< 주 >
3) 중국 진(晉)나라 서하(西河) 사람으로 효행이 특히 뛰어났다. 《小學 六〉
4) 효자가 하루하루 세월이 흘러 어버이가 늙어가는 것을 애석해 하여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말이다. 「논어(論語)」이인(里仁)의 "부모의 연세는 ……〔父母之年〕" 주석에 '날짜를 아끼는 정성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愛日之誠 自有不能己者〕'고 하였다.
제6장 상제(喪制) : 상례를 다하자.
율곡은 "대체로 초상이란 그 슬퍼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예법에만 충실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예법에는 부족하더라도 슬퍼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초상 치르는 일이란 그 슬퍼하고 공경하는 것을 다할 뿐이다" 라고 강조한다.
또 부모의 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여 생명을 잃는 것이 큰 불효라며 경계하고 있다.
상제는 의당 한결같이 주 문공(朱文公:朱熹)의 「가례(家禮)」를 따르되 만일 의심나고 모를 것이 있으면, 예를 아시는 선생이나 어른에게 물어서 반드시 예를 다하여야 옳다.
복(復)5)할 때에 세속에서 으례 이름을 부르는데 이는 예가 아니다. 젊은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도 있겠으나, 어른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이니 생시에 부르던 호칭대로 부르는 것이 옳다. 부녀자라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욱 마땅하지 않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상주(喪主)가 되어, 모든 축문에 다 지아비가 아내에게 고하는 식례를 써야 한다.
부모가 처음 돌아가시면 처 ․ 첩과 며느리 및 여자들은 다 머리를 풀고, 남자들은 머리를 풀고 웃옷섶을 띠에 끼우고 버선을 벗어야 한다. 소렴(小斂)을 하고서는 남자는 왼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으며 부인네도 머리를 묶는다 만일 남에게 양자간 아들이나 시집간 딸은 다 머리를 풀거나 버선을 벗지 않는다. 남자는 관을 벗는다.
시체가 방에 있고 아직 빈소를 차리기 이전 남녀가 시체곁에 있을 때에는 그 석차가 남쪽이 웃사람의 석차가 되니, 시체의 머리가 두어진 곳으로 윗자리를 삼아서이다. 빈소를 차린 뒤에는, 여자는 여전히 당상에서 남쪽을 윗자리로 하고 남자는 뜰에서 북쪽을 윗자리로 해야 하니, 빈소가 있는 쪽이 윗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발인(發引)할 때에는 남녀의 석차가 다시 남쪽을 윗자리로 삼으니, 영구가 있는 곳이 윗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위치를 바꾸면서도 각기 예의가 담겨져 있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예를 모르고서, 조객이 위문할 때마다 전혀 일어나 움직이려 않고 단지 엎드려 있기만 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예가 아니다. 조객이 영좌(靈座)에 절하고서 나오면 상주는 당연히 상차(喪次)에서 나와 조객에게 재배하고 곡하여야 한다. 조객도 답배하여야 한다.
상복은 질병이나 일할 때가 아니면 벗을 수 없다.
「가례(家禮)」에, 부모의 상을 당하면 성복(成服)6)하는 날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卒哭)하는 날 비로소 소식(蔬食)에 곱게 봐?않은 곡식으로 지은 밥. 물만 마시고 국을 먹지 않음. 채소․과실은 먹지 않다가, 소상(小祥) 뒤에 비로소 채소와 과실을 먹는다. 국도 먹을 수 있다. 하였다. 예문(禮文)이 이와 같으니 병이 없으면 예문대로 따라야 한다. 어떤 사람은 예에 지나쳐서 3년토록 죽만 먹는 이가 있으나 만일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서 조금도 억지로 하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면, 비록 예에 지나치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고 부모를 속이는 것이다. 절대 삼가야 한다.
지금 예를 아는 집에서는 흔히 장사지낸 뒤에 반혼(返魂)7)한다. 이것은 정말 바른 예이다. 다못 세속 사람들이 잘못 본따 여묘살이8)하는 풍속을 폐지하고 반혼한 뒤에 각기 제집으로 돌아와 처자와 한데 거처하여서 예법을 크게 무너뜨리니 매우 한심하다. 모든 부모상을 당한 사람은 스스로 헤아려보아 하나하나 예문에 따라 조금도 부족이 없을 자신이 있으면 예대로 집에 반혼하고, 혹시 그렇지 못하면 옛풍속대로 여묘살이를 하는 것이 옳다.
어버이의 상에 성복 전에는 울음이 입에서 그치지 않고 기진하면 하인이 대신 곡하게 한다. 장사지내기 전에는 때를 정하지 않고 슬퍼지면 곡하며, 졸곡 뒤에는 아침과 저녁 두 때만 곡한다. 예문은 대개 이러하나, 만일 효자가 정이 지극하다면 울음이 어찌 정한 횟수가 있으랴. 초상에 애통이 부족하고 예절이 넉넉한 것보다는 차라리 예절이 부족되고 애통이 넘치는 것이 낫다. 상사는 애통과 공경을 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증자(曾子)의 말에, 사람이 스스로 그 극진한 정성을 다할 자 있지 않으나 반드시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정성을 다한다." 하였으니, 상사는 부모를 섬기는 큰 예절이다. 여기에 정성을 쓰지 않으면, 어디에 정성을 쓰겠는가. 예전에 소련(少連) ․ 대련(大連)이 거상(居喪)을 잘하여, 3일 동안 게을리하지 않고 3개월 동안 늦추지 않고 1년 동안 슬퍼하고 3년 동안 근심하였으니9) 이것이 바로 거상하는 방법이다. 효성이 극진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이렇게 할 수 있으나 미치지 못하는 자는 힘써 이것을 따라야 한다.
거상하는 사람으로서 간혹 자질은 훌륭하나 배우지 못한 자가 그저 대대로 지키는 것만이 효도인 줄만 알고 몸을 상하는 것이 바른 도리를 잃은 것인 줄 몰라 지나친 슬픔으로 몸을 상해 병이 벌써 생겼는데도 권도(權道: 임시 변통의 방법. 병이 나면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를 차마 따르지 못하다가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는 사람이 혹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슬픔에 몸을 여위어 생명을 손상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고 한다.
무릇 복을 입을 친척의 상사를, 만약 객지에서 부음을 들었으면 위패를 마련하고서 곡을 해야 한다. 만일 분상(奔喪)을 하게 되면 집에 와서 성복하고, 만일 분상을 못하면 4일 만에 성복하고, 만일 재최복(齊衰服)10)이면 아직 성복하기 이전의 3일 중에는 조석으로 위패를 뫼시고서 곡하여야 한다. 재최복으로서 대공(大功 : 9개월)11)으로 낮추어진 자도 이와 같다.
사우(師友)로서 의리가 중한 이와, 친척으로서 복은 없지만 정분이 두터운 이와 서로 사귀는 교분이 친밀한 이는 모두 부음을 들은 날 만일 길이 멀어서 갈 수 없으면 위패를 마련하고서 곡하여야 한다. 스승은 정의(情義)의 엷고 깊음에 따라 혹 심상(心喪)12)으로 3년 하기도 하고 1년 하기도 하고 9개월 하기도 하고 5개월 하기도 하고 3개월 하기도 하며, 벗은 가장 중하게 하여도 3개월을 넘길 수 없다. 만일 스승의 상에 3년이나 1년의 복을 입으려는 자가 분상하지 못하면 조석으로 위패를 마련하고서 4일간 곡하다가 그쳐야 한다. 4일째 아침에 그친다. 정이 중한 자라면 이 한정에 구애되지 않는다.
무릇 복을 입게 된 자는 매월 초하룻 날 정하여진 복을 입고서 회곡(會哭)한다. 사우(師友)에는 복이 없으나 역시 이와 같다. 복을 입을 달수가 다 차면 다음 달에 회곡하고 복을 벗는다. 그 사이에도 슬퍼지면 곡하는 것이 좋다.
무릇 대공(大功)13) 이상의 상사에 장사하기 이전에는 일 없이 나들이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남에게 조상하는 것도 옳지 않다. 늘 상사를 주선하고 예문을 강구하기를 일삼아야 한다.
< 주 >
5) 사람이 막 숨졌을 때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었던 저고리를 들고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저고리의 동정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저고리의 허리춤을 잡고서 죽은 사람의 평소의 호칭을 세 번 부르는 초혼의식. 이미 떠난 영혼이 행여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시이다. 세속에서는 혹 그 옷을 지붕 위에 한참 그대로 두기도 하나 이는 잘못이며 지붕에서 내려올 때 그 옷도 가지고 내려와 시체를 덮는 것이 옳은 일이다. 《四禮便覽 喪禮 復》
6) 사람이 죽은 지 나흘 째 되던 날 새벽에,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복을 차려 입는 것. 3년․ 1년․ 9개월, 5개월․ 3개월 등의 차등에 따라 입는 옷도 서로 다르다 《四禮便覽喪禮 成服》
7) 묘소에서 신주를 몸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이 신주를 3년 동안 모시고 제를 올린다. 《四禮便覽 喪禮 反哭》
8) 묘소에 움막을 짓고서 3년 동안 지내는 일. 이 때는 물론 반혼(返魂)하지 않으며 또 남자만이 이 움막에서 거처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예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자공(子貢)이 공자가 돌아가셨을 때 시행한 것이 기록에 보이고 그 뒤로는 한․ 당(漢唐)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孟子 文公上》․《四禮便覽 喪禮 反哭注》
9) 이 대문은 「예기(禮記)」잡기(雜記) 하에 보인다. 소련(少連)․대련(大連)은 어느 때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동이족(東夷族)이라고만 밝혀져 있다.
10) 여기에는 3년과 1년․5개월․3개월 등의 나뉨이 있다. 곧 1년을 이른다. 《四禮便覽 喪禮 成服》
11) 원래는 1년 복에 해당하나 어떤 경우로 9개월로 낮추어 진 것을 이른다. 그것은 양자간 사람이나 시집간 사람들의 경우에서만 생겨난다. 본래 양자가지 않고 시집가지 않았으면, 으례 1년을 복상(服喪)하여야 할 사람들에게 환경의 변화로 한 등급을 내려 입음을 이른 것이다. 《四禮便覽 喪禮 成服》
12) 스승의 죽음에 제자들이 마음으로 입는 상(喪)이다. 부모의 상과 똑같이 하면서 오직 바깥으로 드러난 옷가지 등의 예절이 없어 붙여진 말이다. 《禮記 檀弓 上》
13) 9개월 복을 이른다. 4촌 형제가 그에 해당한다. 《四禮便覽 喪禮 成服》
제7장 제례(祭禮) : 제사에 정성을 다하자.
제사는 의당 「가례(家禮)」에 따라, 반드시 사당을 세워서 선대의 신주를 모시고 위토답(位土畓:제전)을 마련하고 제기(祭器)를 갖춘 다음 종자(宗子)가 이것을 주관하여야 한다.
사당을 주관하는 이는 매일 새벽에 대문 안에서 재배하고 주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관하는 사람을 따라 함께 뵙는 것도 무방하다. 나들이 할 때는 반드시 고하여야 한다.
혹 수재(水災)나 화재(火災)가 생기거나 도둑이 들면 먼저 사당부터 구하여 신주와 물려온 책들을 옮기고 다음으로 제기를 치우고 난 뒤에 집안의 재물을 구하여야 한다.
설날 ․ 동지․ 초하루 ․ 보름에는 사당에 참례하고, 단오 ․ 추석 등 풍속상의 명절에는 그 계절의 음식을 올려야 한다.
시제(時祭)14)에는 산재(散齋)를 4일 하고 치재(致齋)를 3일 하며, 기제(忌祭)에는 산재를 2일 하고 치재를 1일 하며, 참례(參禮)15)에는 재숙(齋宿) 1일을 한다.
산재라는 것은 조문하지 않고 문병하지 않고 육식(肉食)하지 않고 술마셔도 취하기까지 하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길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을 갑자기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나들이하지 않고 전심으로 제사 받을 부모나 조상만을 생각하여, 거처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웃고 말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좋아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즐기시던 음식을 회상하는 것을 이른다.
이렇게 하고서야 제사를 드릴 때에 형용이 보이는 듯하고 음성이 들리는 듯할 것이다. 정성이 지극해야 신이 흠향하신다.
대체로 제주(祭主: 제사의 주장이 되는 사람)는 사랑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정성을 다할 뿐이다. 가난하면 집의 형편에 어울리게 하고, 병이 있으면 자신의 기운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야 한다. 재물과 자신의 기운이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의당 의식대로 행해야 한다.
묘제(墓祭)와 기제를 세속에서 자손간에 돌려가며 지내는데 이것은 예가 아니다. 묘제는 비록 돌아가며 지낸다 하더라도 모두 묘소에서 제사를 올리니 그런대로 괜찮으나 기제는 신주(神主)에 제사 지내지 않고 지방(紙榜)에 제사를 지내야 하니 매우 미안한 일이다. 비록 돌아가며 지내더라도 제물을 갖추어 가묘(家廟)에서 지낸다면 거의 괜찮을 것이다.
상제(喪祭)는 두 가지 예절에는 자손으로서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할 부분이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는 다시 봉양할 수 없으니, 만일 초상에서 예를 다하지 않고 제사에서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 영원한 애통을 붙일 곳이 없고 흘려버릴 만한 때가 없을 것이다. 자식된 정의에 어떠하겠는가. 증자(曾子)의 말에, 신종(愼終:초상에 예를 다함)하고 추원(追遠:조상을 추모하여 제사 지내는 것)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간다." 하였으니, 아들된 자는 의당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요즈음 풍속에서 흔히 예를 몰라, 제사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다르니 심히 가소롭다. 만일 예법대로 한번 제재하지 않게 되면 끝내는 문란하고 질서가 없어 오랑캐의 풍속이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에 제례를 초록하여 뒤에 부록으로 붙이고 또 그것을 위해 도식을 마련했다. 자세히 살펴 본떠 행하되 만일 부형이 들어 주시지 않거든 곡진히 아뢰어서 기필코 바르게 되도록 해야 한다.
< 주 >
14) 사시제(四時祭)가 원 말이다. 사시제는 매 계절의 중간 달에 정침(正寢)에서 지내는 제사로 육갑(六甲)으로 따져 천간(天干)에 정(丁)이 드는 날이나 지지(地支)에 해(亥)가 드는 날을 가려 지낸다. 세속에서 5대가 넘어 묘제(墓祭)로 지내는 제사를 시제(時祭)라 하니 잘못이다. 《四禮便覽 祭禮 四時祭》
15) 이는 설날․동지․초하루․보름 등에 사당을 참배하는 예절이다. 이때 조상들에게 새로 난 과실들을 올리기도 한다. 《四禮便覽 祭禮 祠堂》
제8장 거가(居家) : 집안을 편안히 하자.
집에 있을 때 다스리고 또 지켜야 할 일을 열거하고 있다.
무릇 집에 있을 적에는 신중히 예법(禮法)을 지켜 처자와 집안 사람들을 거느려야 한다. 직분을 나누고 일을 주어 성공을 책임지우고, 재용(財用)의 씀씀이를 제정하여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하고, 가산(家産)의 정도에 맞추어 위아래 사람들의 의식(衣食)과 길흉의 비용을 충당하되 모두 품절(品節)을 두어 고르게 해야 하고, 낭비를 줄이고 사치를 막아 늘 조금의 여분을 두고 뜻밖의 일에 대비하여야 한다.
1. 형제에 대하여
형제는 같은 부모에게서 몸을 물려받은 자들이니 모두 한 몸과 같은 것이다. 당연히 저와 나의 간격이 없이 생각하여 음식과 의복을 있고 없는 대로 모두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만일 형은 굶주리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는 추운데 형은 따뜻하다면, 곧 한 몸 가운데서 팔다리와 몸이 한 군데는 병들고 한 군데는 건강한 것이다. 몸과 마음이 어찌 한 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 사이에 서로 우애하지 않는 것은 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만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에게 만일 착하지 못한 행실이 있으면 의당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진정으로 규간하여 차츰 이치를 깨달아 기어코 감동케 해야 한다. 갑자기 성난 기색과 거슬리는 말을 나타내 화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2. 부부에 대하여
부부사이에도 잠자리에서 흔히 정욕에 방종하여 위의를 잃는다. 때문에 부부가 서로 버릇없이 굴지 않고 잘 서로 공경하는 이가 매우 적다. 이와 같고서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바로잡으려면 어렵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지아비는 따뜻하면서도 의(義)로써 규제하고, 아내는 유순히 올바르게 받들어 부부간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아야만 가정의 일이 다스려 질 수 있다.(부부유별) 만일 이제까지 서로 버릇없이 굴다 갑자기 서로 공경하려면 그것은 쉽게 행하여 지지 않는다. 모름지기 아내가 만일 나의 몸가짐과 말이 한결같이 바른 것을 보게 되면 반드시 차츰 미더워하면서 순종할 것이다.
부부간에 너무 지나치게 친밀하다보면 위엄있는 몸가짐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수가 많으니 친밀한 중에도 서로 공경하는 생활을 반드시 해야 한다.
3. 자식에 대하여
자식이 자라서 조금 지식이 있게 되면 마땅히 착한 길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고 벌써 성장하여 버리면 그른 것에 물들고 마음이 흩어져 가르치기 매우 어렵다. 가르치는 차례는 당연히 「소학」에 따라야 할 것이다.
무릇 한 가정에서 예법(禮法)이 성행하고 글을 읽고 글씨 쓰는 이외의 다른 잡기(雜技)가 없으면 자제들도 밖으로 쏠리거나 학문을 버리게 되는 염려는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도 내 자식과 같으니, 그를 사랑하고 교육하는 것을 당연히 균일하게 하여야 할 것이요, 경중(輕重)과 후박(厚薄)을 두어서는 안된다.
4. 가난에 대하여
집안이 가난하고 궁색하면 반드시 이 가난에 쪼들려 괴롭기 마련이다. 이래서 필경 자기 자신이 지켜왔던 올바른 마음을 잃는 수가 많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궁해도 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말 것이요, 가난해도 취하지 못할 물건은 취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군자는 도(道)를 터득하지 못하였음을 걱정하고 가난을 근심하여선 안된다.
만일 집이 가난하여 살아갈 수 없으면 당연히 곤궁을 구제할 계책을 생각하여야 하나, 굶주림과 추위를 벗어날 뿐 쌓아두고 넉넉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두어선 안된다. 또한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속에 담아 두어선 안된다.
예전의 은자(隱者)는, 신을 삼아서 먹고 산 자도 있고, 나무하고 고기 잡아 살아간 자도 있고, 지팡이를 꽂아 두고 김을 매던 사람도16)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귀가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까닭에 이같은 생활에도 마음이 편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해와 빈부를 헤아리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겠는가.
학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벼이 여기고 빈천을 지키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살아가기가 구차하면 반드시 가난에 시달려 그 지킬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학자는 바로 이 점에 노력하여야 한다. 옛사람의 말에, "곤궁할 때에 그가 하지 않는 바를 보고 가난할 때에 그가 취하지 않는 바를 보라." 하였고, 공자는 이르기를, "소인은 궁하면 도리에서 벗어난다." 하였다.
그러니 만일 가난하고 궁색한 것에 마음이 동요되어서 의리를 행하지 못한다면 학문을 해서 무엇에 쓸 것인가?
5. 벼슬아치가 남을 도와주는 경우
벼슬아치가 국가에서 받는 봉급을 자기가 쓰고 남아서 남의 급한 일에 돌봐주는 것은 좋으나 공금(公金)이나 공곡(公穀)을 가지고 남을 위하여 쓴다면 이것은 받는 사람까지도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율곡은 경계하고 있다.
무릇 사양하고 받으며 취하고 주는 경우에 반드시 의로운가 아닌가를 냉정하게 생각하여, 의롭거든 취하고 의롭지 않거든 취하지 않아 털끝만큼도 허술히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견득사의) 친구 사이에는 재물을 통용하는 의리가 있으니 주는 것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 다만 내가 못살게 가난하지 않은데 주는 쌀이나 옷감이면 받을 수 없다. 명분에 서는 것은 상사에 부의, 여행에 노자, 혼사에 부조, 양식이 없을 때에 보조하는 따위들이다.
이와 같더라도 만일 대단히 약한 삶으로서 내 마음에 더럽고 미웁게 여겨지던 사람이라면, 그가 주는 것에 명분이 서더라도 그것을 받으면 마음이 불안할 것이다. 마음에 불안하면 억지로 받지 않아야 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하지 못할 일을 하려 말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것이 곧 의(義)를 행하는 방법이다.
중국에서는 각 읍의 수령에게 사봉(私俸)이 있으므로 그 여유를 남겼다 남의 곤궁을 도와 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령에게 따로 사봉이 없고 다만 공곡(公穀)으로 일용의 수요를 이바지하므로, 만일 개인적으로 남에게 주면 다소를 막론하고 다 죄책이 따른다. 심하면 장죄(贓罪)를 지기까지 하여 받은 자도 그렇게 된다.
선비로서 수령이 주는 것을 받는 것은 곧 금지된 령을 범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의 나라 국경에 들어가면서 금하는 법령이 무엇인가를 묻는다고 하였다. 그 나라에 살면서 어찌 금하는 법령을 범하랴. 수령이 주는 것은 대체로 받기 어렵다. 만일 관고(官庫)의 물건을 개인적으로 주거든, 그 사람과의 친의와 명분의 유무와 수량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말고 모두 받지 않아야 한다. 친분이 두터운 수령이 도와 준다면 받을 수도 있다.
< 주 >
16)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자로(子路)가 뒤쳐져 지팡이로 삼태기를 멘 자를 만나 선생님을 보았느냐고 묻자, '손발을 움직이지 않고 오곡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스승이란 말인가' 하고 지팡이를 땅에 꽂아 두고 김을 매더라고 하였다. 이 말을 공자께 아뢰자 공자는 '은자(隱者)'다고 하였다" 했다.
제9장 접인(接人) : 대인관계에 공경을 다하자.
이 장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경우를 말하고 있다.
1. 연령에 대하여
무릇 사람을 접대함에는 온화하고 공경하기를 힘써야 한다.
나이가 자기보다 스무살이 위이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섬기고, 10년이 위이면 형으로 섬기고, 5년이 위라도 조금은 공경하여야 한다. 가장 몹쓸 것은 자신의 학문을 믿고서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 기운이 세다고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2. 친구를 택하는 것에 대하여
친구를 선택하는 데는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착한 일을 좋아하며 방정하고 엄숙하고 곧고 진실한 사람을 골라서,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규제(規戒)를 허심(虛心)으로 받아들여 나의 결함을 다스리고, 만일 게으르고 장난을 좋아하며 유약하여 말이나 잘 꾸미고 정직하지 못한 자와는 사귀지 말아야 한다.
마을 사람으로서 착한 자와는 반드시 친근히 하며 서로의 사정을 얘기하고, 마을 사람으로서 착하지 못한 자라도 나쁜 말로 그의 비루한 행위를 드러내지 말며 다만 범연히 대접할 뿐 서로 왕래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전에 서로 알던 사이라면 만날 때에 안부나 묻고 다른 말을 주고 받지 않으면 자연히 차츰 멀어지되 원망이나 성을 내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다.
소리가 같으면 서로 응하고, 기상이 같으면 서로 찾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내가 학문에 뜻을 두면 내가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게 되고, 학문하는 선비도 역시 나를 찾을 것이다. 저들 학문한다고 내세우면서 집에 잡된 손님이 들끓고 시끄러이 날을 보내는 것은 반드시 그가 즐기는 것이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절하거나 읍(揖:)하는 것에 대하여
무릇 절하고 읍(揖: 손을 마주잡고 머리 위까지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예)하는 것을 미리 정할 수는 없다. 대개 아버지의 친구이면 절하고, 동네에서 나이가 자기보다 15세 위인 사람에게는 절하고, 벼슬이 당상(堂上)에 오르고 나보다 10년이 위이면 절하고, 마을 사람으로서 나이가 20세 위인 사람이면 당연히 절해야 한다. 그 사이에 높이느냐 내리느냐의 세세한 결단은 때에 따라 맞출 것이지 꼭 이 등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생각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 옳다. 「시경」에, "다사롭게 공손한 사람이여, 덕의 기틀이고녀." 하였다.
4. 남이 나를 헐뜯는 경우에 대하여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만일 나에게 참으로 비방받을 만한 허물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꾸짖어 마음 속으로 시비를 가려 잘못을 고칠 것이요, 만일 나의 허물이 매우 작은데도 그가 주워모으고 덧붙였다면 그의 말은 비록 지나친 것이나 내게 실상 비방받을 근거가 있었으니, 역시 전의 잘못을 매섭게 끊어 털끝만큼도 남기지 말아야 하고, 만일 내게 본디 허물이 없는데 헛된 말을 꾸몄다면 그는 망령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망령된 사람과 무슨 거짓과 참을 따지겠는가. 또한 그런 헛된 비방은 마치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구름이 허공을 지낸 것과 같다.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처신하여 비방이 생겼을 때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써 노력할 것이니,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게 유익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듣고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시끄러움도 마지 않고 기필코 자기가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 하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은 더욱 늘어난다.
옛날 어떤 사람이 남에게 비방을 듣지 않는 방법을 물으니 문중자(文中子:수나라의 왕릉)가, "그것은 자기 몸을 스스로 닦는 것이 제일 좋다." 하였으며, 덧붙여 주기를 청하자,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이야말로 배우는 사람이 본받을 법이라 할 것이다.
5. 기타에 대하여
무릇 선생 ․ 장자(長者)를 모시고서는 의리의 깨닫기 어려운 점을 질문하여 학문을 밝히고, 향당(鄕黨)의 장로(長老)를 모시고는 공손히 조심하며 함부로 말하지 말고 묻는 것이 있으시면 공경히 사실대로 대답하여야 한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에는 도의를 강마(講磨)하고 글얘기와 의리만을 말할 뿐이지, 세속의 비루한 말, 당면한 정치의 잘잘못, 수령의 어짊과 그름, 남의 잘못은 일체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고장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에는 묻는 데에 따라 응답은 하더라도 끝까지 비루한 말을 꺼내지 않아야 하며, 점잖은 몸가짐을 유지하면서도 절대 스스로 높은 체하는 기색을 가져서는 안된다. 오직 착한 말로 달래어 기필코 이끌어 학문에 향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
어린이들과는 차근차근 효(孝)․제(悌)․충(忠)․신(信)을 설명하여, 착한 마음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를 마지않으면 고장의 풍속은 점점 변화할 것이다.
항상 온화하고 공손하며 또 자애스러워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사물을 건져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남을 침해하고 사물에 손해끼치는 따위 일은 터럭만큼도 하지말고 마음에 두지도 말아야 한다. 무릇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롭다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기까지 한다. 때문에 학자는 먼저 이욕을 끊고서야 인(仁)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시골에 사는 선비는 공무나 의례상 뵙거나 마지못할 일이 아니면, 관부(官府)에 드나들어선 안된다. 수령이 비록 가까운 친척이라도 역시 자주 가서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친구도 아닌 바이겠는가. 의리에 어긋나는 청탁은 일체 하지 않아야 한다.
제10장 처세(處世): 처세는 자신을 수양하고 천명에 순응하자.
이 처세장에서는 주로 과거와 벼슬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특히 벼슬을 하기 위해 과거 공부에만 매달리는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전 학자는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학문이 성취되면 웃사람이 들어 등용하였다.
대개 벼슬이라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이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예전같지 않고 과거(科擧)로 사람을 뽑아 비록 하늘을 관통하는 학식과 남이 따르지 못할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고서는 도(道)를 펼 직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때문에 아비가 자식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에게 권하는 것이 과거 밖에 다시 다른 방법이 없게 되었다. 선비의 습속이 변한 것은 주로 이 때문이다.
다만 요즈음의 선비로 흔히 부모의 희망과 문호(門戶)의 계책을 위해 과거 공부를 면치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수양하고 때를 기다려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천명에 맡길 것이요, 탐내고 조급하고 애태워 그 뜻을 잃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공부가 거치적거려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였다.고 하나, 이것은 핑계의 말이요 성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다. 옛사람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몸소 농사를 지은 자, 품팔이를 한 사람, 쌀을 지고 다닌 이가 있었다. 농사짓고 품팔고 쌀을 등에 졌을 시절에 그 노고가 심하였을 것이다. 어느 겨를에 글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어버이를 위하여 친히 노력하며 자식의 직분을 닦고 남은 힘으로 글을 배워 덕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 선비들은 옛 사람같이 부모를 위하여 친히 노력하는 자를 볼 수 없다. 다만 과거 공부 한 가지만이 그 부모의 바라는 것으로서 이에 벗어나지 못하고 공부해야 한다. 과거 공부가 비록 이학(理學)과는 다르나, 역시 앉아서 글을 읽거나 글을 짓는 일이다. 농사 짓고 품 팔고 쌀을 등에 지기보다는 편하기가 백배 뿐 아닐 것이다. 더구나 남은 힘으로는 성리(性理)에 관한 서적을 읽을 수도 있음이랴.
다만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으례 득실에 마음이 동요되어 항상 조급하므로 도리어 힘을 들이는 일이 심술을 해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의 말에, 공정(功程: 공부하는 과정)에 방해될까 염려가 아니라, 뜻을 빼앗길까 걱정이다.고 하였다. 만일 능히 과거 공부를 잘 해내면서도 마음에 지킴을 잃지만 않는다면, 과거 공부와 이학(理學)이 병행하여도 서로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은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힘을 쏟지 않고, 이학을 한다하면서 실지로는 마음 쓰지 않고 있다. 만일 과거 공부를 책임 지우면 나는 이학에 뜻을 두어서 그것에는 잘 마음 내키지 않는다 하고, 만일 이학을 책임 지우면 나는 과거 공부가 거리적거려 진실된 공부에 힘을 쏟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편리한 두 곳을 차지하고서 일 없이 날만 보내다 마침내는 과거 공부와 이학 두 가지 모두 성취된 바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늙고 나서 뉘우친들 어떻게 되돌이키랴. 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벼슬하기 전에는 벼슬만을 급급해 하고 벼슬에 오른 뒤에는 또 잃을까 걱정한다. 이같이 골몰하여 본심을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찌 두렵지 않으랴.
벼슬이 높은 자는 도를 행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도를 행할 수 없으면 물러가야 한다.
만일 가난하여 생활을 위해 벼슬하지 않을 수 없다면, 모름지기 중앙의 관직을 사양하고 지방의 관직을 구하며, 높은 지위를 사양하고 낮은 지위를 구하여 굶주림과 추위나 면해야 한다. 비록 생활을 위한 벼슬이더라도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공무를 받들어서 직무를 다하여야 하며, 직분을 헛되게 하고서 놀고 먹기만 하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