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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산행기
-낙오자의 반격-
조 병 섭
‣ 일정 : 2012. 1. 13~25
‣ 대원 : 김상일(인솔자), 강정길, 김명숙, 김미숙, 김우성, 성원징, 유창윤, 이덕춘, 이득우, 장기성, 조병섭, 조영옥 총12명
‣ 경로 : 한국-방콕-케냐 나이로비-탄자니아 아루샤-킬리만자로-아루샤-응고롱고로-세렝 게티-아루샤-나이로비-방콕-한국
‣ 경비 : 505만원 + 250달러(비자, 팁 등) + 용돈
1월 13일 금요일
떠나기 전에 마쳐야 하는 일이 있어서 지난밤에 사무실에서 철야를 했다. 오전 11시가 넘어 간신히 자료를 넘기고 11시 30분, 한전아트센터에서 남상길, 이재정 건축사와 점심을 먹었다. 집에 오는 길에 반찬 가게에 들러 땅콩조림을 사려고 했으나 없어서 사지 못하고 그냥 왔다. 미리 싸둔 가방 속 짐을 모두 꺼내어 확인하면서 다시 짐을 쌌다.
1시 50분, 양재역에서 6009번 광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해서 오후 3시 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3층 D카운터 앞으로 가니 대원들이 거의 와 있었다. 누나와 조카인 창윤이도 보였다.
1달러짜리가 필요할 것 같아 신한은행에서 20달러를 1달러짜리로 환전하였고, 그중 10달러는 같이 가는 누나에게 드렸다. 조금 기다리니 장기성 소장님이 도착하여 대원 모두가 모였다. 다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출국 수속을 밟았다.
출국 심사를 마친 후 탑승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오후 6시가 되자 드디어 대한항공 편으로 방콕으로 출발했다. 방콕 현지시간으로 오후 9시 45분(한국과는 2시간 시차)에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여 케냐 항공으로 갈아타기 위해 대기하다 새벽 1시 15분에 수완나품 공항을 출발하여 케냐 나이로비로 향했다. 수완나품 공항은 태국의 국왕이 동남아 거점 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해 내어준 땅으로 2006년에 개항하였으며 황금의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1월 14일 토요일
나이로비에 현지시간 오전 6시 50분에 도착(방콕과 4시간 시차)하여 입국비자를 받고($50) 밖으로 나오니 혜초여행사에서 이민수 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이민수 씨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Masanja라는 현지인이 모는 소형 버스로 아루샤로 출발했다. 이 나라는 운전대가 오른쪽에 붙어 있고 차도 왼쪽에서 탄다. 중간 접경지인 나망가로 이동 중에 이민수 씨가 사준 오렌지와 바나나 등 과일을 먹었다. 그런데 이득우 건축사가 오렌지를 먹다 그만 앞니가 빠져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에 임플란트를 시작해 임시로 붙여 놓은 이빨인데 난감하다.
가는 중에 킬리만자로의 봉우리가 보이는 곳에서 내려 사진 촬영을 했고, 김상일 인솔자에게 기사 팁과 추후 경비 명목으로 1인당 150달러씩을 걷어서 주었다. 길가의 풍경은 황량한 너른 벌판에 목동이 소나 염소를 몰고 다니며 목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끔 길가에서 마사이족 장신구를 붙인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만약 이런 땡볕에 나가 있다면 얼마 못 가 탈진해서 쓰러지든지 살갗이 벌겋게 달아올라 화상을 입을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땡볕을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돌아다닌다.
10시쯤 국경인 나망가에서 케냐 출국 수속을 하고 곧바로 접경지인 탄자니아에서 입국 비자를 받았다($50). 네 손가락 지문과 엄지손가락 지문을 찍어주고 비자를 받았다.
아루샤 시내로 들어섰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이것저것 복합적인 냄새가 우리를 환영했다. 1시에 아루샤 Impala호텔에 도착하여 맥주를 곁들인 점심을 먹었다. 맥주 6병을 시켰고 주스는 식사에 딸려 나오는 줄 알고 7잔을 시켜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extra charge란다. 맥주와 주스 값으로 52달러를 더 주었다.
나는 702호실에 여장을 풀고 가볍게 샤워를 했다. porter 2명에게는 1달러씩 팁을 줬다.
그 후 이득우 건축사와 시내 구경을 나갔는데 현지인이 접근하여 계속 말을 걸어왔다.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맞은편에서 동료인 듯한 사람이 돌돌 만 그림을 가지고 오고 있었다. 그는 그림을 펼쳐 보이며 얼마에 사겠느냐며 물어왔다. 그림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또 계속 시내로 가다가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만 숙소로 돌아왔다. 한숨 자고 나니 배가 고파져서 1층 중국식당으로 가 밥과 5가지 요리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요리가 좀 짰다. 대원들도 마찬가지여서 다들 아쉬워했다. 식사 후 수영장의 선탠 베드에 잠시 누워 있다가 방으로 올라왔다.
밤 10시 30분쯤 자기 시작하여 새벽 2시 조금 넘어 잠이 깼다. 이후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5시 조금 못 미쳐 일어나 복근운동 30개를 하고 샤워를 했다. 그런데 샤워커튼을 했는데도 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말이 별 다섯 개 호텔이지 시설이 많이 노후화되었다. 그래도 방 내부 사진을 두어 컷 찍었다.
1월 15일 일요일
기상 후 호텔 2층 콘티넨탈 룸에서 아침을 먹고, 현지인 가이드인 자라관광 소속 루루를 태우고 임팔라호텔을 출발하여 모시까지 갔다. 그는 우리를 가이드 콜맨템바에게 인계하고는 내렸다. 마랑구게이트가 가까워지며 노란색 옷을 입은 주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디를 가는지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아마 교회에 가는 것 같다. 간간히 서양 사람들이 걸어 올라간다.
가파른 길을 좀 더 올라 마랑구게이트(1,970m)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나머지 가이드와 포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와 인솔자가 입산신고를 하고 점심으로 미리 준비해둔 행동식(계란, 빵, 치킨, 주스, 샌드위치, 땅콩)을 먹은 후 만다라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올라가는 내내 나무들이 이끼류의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나름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열대우림 지대를 지나 약 8.2km를 걸어 오후 4시 35에 만다라산장(2,720m)에 도착하였다. 아직까지는 열대우림 지역이다. 숙소는 모두 뾰족한 삼각지붕 형태를 하고 있었다. 침대는 모두 각파이프를 이용해 2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밖에는 원숭이들이 한가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12명을 두 조로 나누어 한 조는 8명, 다른 한 조는 4명으로 나누어 방을 배정하였다.
저녁에는 인솔자 아들인 우성 씨가 끓인 개운한 김칫국을 먹고 이뇨제인 다이아목스를 전 대원이 복용했다. 이뇨제는 고산증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폐수종을 예방하기 위해 복용하는 것으로 들었다. 밤새 깰 때마다 물을 마셨으며 두세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잠을 깊이 잘 수가 없다. 근처 숲속에서는 원숭이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1월 16일 월요일
6시에 모두 기상을 하였고 7시에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겼다. 정길이의 리드에 따라 모두 모여 아침 체조를 하였고 8시가 되어 산장을 출발했다.
열대우림 지대를 지나 계속하여 올라가다 아침에 지급받은 행동식으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길가에는 이러저러한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덕춘이와 장소장님이 연신 꽃 사진을 카메라에 담는다. 열대우림 지대는 이끼류가 무성하였고 나무들이 키가 많이 자라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키가 큰 나무들이 점점 줄어들었고 나중엔 키 작은 나무들만 보였다. 물이 흐르는 계곡가에는 생전 처음 보는 세레시아 킬리만자로카라는 식물들이 꼭대기에 동글동글한 기이한 나뭇잎으로 치장을 한 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잘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던 창윤이는 선두그룹에 끼어 잘도 따라 올라간다.
만다라에서 11.7km를 걸어 오후 4시 40분쯤 호롬보산장(3,720m)에 도착하였다. 숙소가 제법 많아 보였다. 제법 큰 건물도 보이고 산장의 규모가 꽤 커 보였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CARE TAKER에 입산신고를 하고 6인실 2개를 배정받았다. 우리 방에는 여성 3명과 원징이, 나, 창윤이 이렇게 6명이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오후 6시가 되어 덕춘이가 가져온 깻잎과 여행사에서 준비한 김치, 김, 무말랭이 등 다양한 반찬으로 맛있는저녁 식사를 했다.
1월 17일 화요일
오늘은 7시에 기상을 했다. 지난밤에도 다아아목스 복용으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날이 샌 후 밖에 나와 보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일출 사진을 몇 컷 카메라에 담고 세수를 한 다음 8시에 아침을 먹었다. 간단하게 짐을 꾸려 9시에 마웬지봉을 향해 산장을 출발했다.
오늘은 고소 적응을 위한 예비일이다. 마웬지봉 삼거리까지 갔다 오기로 되어 있다. 길 우측으로 세레시아 킬리만자로카가 그득했다. 아마 계곡 쪽으로 물이 많이 흐르는 듯하다. 황무지에 드문드문 솟아 있는 나무들이 그나마 황량함을 덜어주고 있었다. 길을 벗어나 풀밭으로 조금 들어가니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장소장님께서는 발을 잘못 디뎌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제브라락(4,100m)에 도착하니 바위에 검고 하얀 줄무늬가 바위에 채색을 한 듯 흘러 내려 있다. 제브라락 뒤 바위 능선으로 올라 내일 올라가게 될 키보산장으로 오르는 길을 내려다보았다. 중간에 화장실인 것처럼 보이는 파란 건물 2동이 있다. 먼지가 푸석거려 황량하기 그지없다.
호롬보산장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자유 시간을 가졌다. 침낭에 들어가 자기도 하고 지겨우면 나와서 올라오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근처에 산책도 나갔다. 저녁을 먹고 덕춘이와 정길, 나 셋이서 근처에 산보를 나갔다 돌아왔다. 내일의 산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보리차물을 마시는데도 왠지 속이 거북했다.
1월 18일 수요일
6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하게 세수를 한 후 7시 30분에 아침을 먹었다. 밥맛은 없지만 산에 잘 올라가기 위해 미역국을 다 먹었다. 그런데 잠시 후 갑자기 구토가 나와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뛰쳐나와 토해버렸다. 고산증이다. 더 이상 밥을 못 먹고 화장실에 갔다. 설사가 수반되었다. 제대로 고산증에 걸렸다. 그래도 키보산장까지는 가야 하기에 서둘러 양치를 하고 카고백을 정리했다.
8시 30분에 호롬보산장을 출발하여 키보산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장기성 소장님께서 혈관 확장제를 주셔서 혀 밑에 넣고 녹여 먹었다.
잠시 후 속이 울렁거리더니 또다시 구토가 나왔다. 마지막 샘 근처에 있는 화장실에서 또 다시 설사를 했다. 겨우 몸을 추슬러 다시 출발했지만 느리게 걷다가 누워 자기를 반복하다 결국 다른 대원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 하산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이드에게 이야기하니 한 명을 따라 붙여 주었다.
12시쯤 점심도 먹지 못한 채 호롬보로 하산을 시작했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겨우 산장으로 돌아왔다. 이 날은 한 유럽 남자와 단둘이서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아직 카고백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이드가 임시로 침낭 하나를 침대에 깔아 주었다. 대충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나중에 포터가 카고백을 가지고 왔다. 오리털파카를 꺼내 입고 내 침낭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시간이 좀 지나 가이드가 저녁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차나 한 잔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잠시 후 보온병과 티백, 설탕을 가져왔다. 컵에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설탕 한 스푼을 넣고 저어 천천히 마셨다. 오늘 하루 중에 제대로 먹은 것이 홍차 한 잔인 것 같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유럽 남자가 내가 파카를 입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더니 이너웨어로 갈아입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추위가 싫고 따뜻한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팬티만 입고 침낭에 들어갔다. 자다가 깨어 보니 화장실을 가려는지 바지를 챙겨 입고 있었다. 난 옷을 입고 벗는 게 귀찮아서 입고 자는데 그 남자는 격식을 갖춰서 잠자리에 든 모양이다.
밤새 두 번 화장실에 다녀왔다. 새벽녘에 잠이 깨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이대로 주저앉아 대원들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아침에 다시 짐을 꾸려 쫓아갈 것인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이며 과연 정상에 오르기나 할 수 있을까? 호롬보에서 우후루피크 정상까지는 대략 15.3km로 왕복 31km 정도가 된다. 앞서간 대원들처럼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때 키보산장에서 잠깐 잔 다음 자정에 출발해서 정상에 오른다면 온전히 하루가 뒤쳐지게 된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떻게 뒤쫓아 갈 수 있을까? 아니면 대원들이 사파리를 하는 동안 나 혼자 정상에 갔다 와서 마랑구게이트로 하산을 해서 나이로비로 직접 가는 방법은 없을까? 나이로비까지는 어떻게 가지? 교통편은 어떻게 이용하지? 돈은 얼마나 필요할까? 수중에 가진 돈도 얼마 없는데…….
1월 19일 목요일
잠을 제대로 못 이룬 채 아침이 되어 가이드가 차를 가지고 왔다. 다시 올라가야겠다고 말하니 안 된다고 했다.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는 영어지만 나는 지금 최상의 컨디션이며 내가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내 일생에 있어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설명하고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extra charge를 달라고 한다. 얼마냐고 물으니 가이드, 쿡, 포터 3명이 따라가야 하니 300달러를 내라고 했다. 난 포터와 쿡은 필요 없고 가이드 한 명이면 된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200달러를 달라고 했다. 나는 좋다고 말하고 동료에게 돈을 맡겨 놓았기 때문에 지금은 돈이 없으니 나중에 동료를 만나면 그때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침 식사로 준비된 게 있냐고 물었더니 빵이란다. 잠시 후에 그는 식빵 두 조각과 계란 후라이 하나를 가져왔다. 나는 홍차 한 잔을 타서 샌드위치와 함께 먹고 난 다음 짐을 꾸렸다. 가이드가 와서 말하길, 정상에 가 있는 리더와 통화를 했는데 침낭을 준비하라고 해서 침낭을 내어 주었다. 점심으로 식빵과 잼을 준비시키고 물 두 병을 배낭에 챙겨 넣고 잡주머니에 사탕과 초콜릿을 옮겨 담았다. 고산증은 완전히 해소된 듯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8시 5분, 호롬보산장을 출발하여 가이드를 따라 열심히 올랐다. 어제와는 영 딴판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키보산장에 도착하니 11시 45분이 되었다. 그곳 숙소에서 반갑게도 휴식중인 우리 팀을 만났다. 창윤이도 보였다. 혹시 고산증으로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미 정상은 다녀온 듯하여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 대원들은 이미 우후루피크를 다녀와 쉬는 중이었고, 여자 대원 세 명과 원징이만 지금 내려오고 있는 중이란다.
가이드가 갖다 준 멀건 누룽지와 망고 주스 한 잔을 먹고, 12시 15분에 대원들과 헤어져 키보산장을 출발했다. 정상까지 목표는 5시간 안에 오르는 것이다. 잔자갈로 덮인 완만한 경사의 너덜지대를 오르다 누나와 김명숙 선생님을 만났다. 누나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뭐 하러 다시 왔냐며 나무라셨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생이 걱정되어 하시는 말씀이다. 난 누나가 좋다. 항상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에 함께 오게 되어 너무도 행복하고 좋다.
완만하던 길이 점점 가팔라지고 바닥은 흙과 자갈로 덮여 있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푹 빠지며 밀려난다. 헛심 팽기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한참을 올라가다 원징이 부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길이 가파르다 보니 지그재그로 오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가다가 배가 고파 식빵과 잼을 달라고 했다. 식빵 한 조각에 잼을 발라 물과 함께 먹었다. 딸기잼이 별로다. 잘 펴지지도 않고, 덩어리째 빵 위를 굴러다닌다. 어젠 고산증으로 쫄딱 굶고 오늘 먹은 것도 변변치가 않다. 20분 오르고 30번 큰숨 쉬기를 반복했다. 가능한 위는 쳐다보지 않았다. 위를 보면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가질 것 같아 힐끗힐끗 위를 보며 가이드 발뒤꿈치를 따라 올랐다.
어느새 한스마이어 동굴에 도착했다. 다시 식빵 한 조각을 먹고 출발했다. 이제 더덜지대는 거의 끝난 모양이다. 돌길이 이어진다. 키보를 출발한 지 3시간 40분 만에 드디어 길만스포인트에 올랐다. 오른쪽으로 분화구가 내려다보이고 저 너머 만년설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저 멀리 정상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금방이라도 오를 것 같다. 눈과 얼음길을 엣지스텝으로 조심스레 올랐다. 자칫 미끄러지면 낭패다. 저 아래 계곡으로 미끄러져 곤두박질칠 것 같았다. 가이드도 잔뜩 긴장한 듯했다. 한참을 더 오르니 스텔라포인트다. 이제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흙길을 오르다 정상 가까이에서 윈드재킷과 오버트라우저를 꺼내 입었다. 마지막 어렵지 않은 길을 따라 오르니 저 앞에 정상 표지판이 보인다.
5,895m 우후루피크에 오른 시각이 오후 5시 15분이었다. 기념촬영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정상은 흙으로만 덮여 있었다. 만년설은 저 아래 단애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과거에는 정상까지 만년설이 덮여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의 눈은 녹아 없어지고 주변의 만년설은 정상을 벗어나 아래쪽으로 서서히 밀려난 것 같다. 오히려 정상보다 저 멀리 단애가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시간이 많다면 가까이 가서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곧 해가 질 것이다. 잘못 지체하다간 내려가는 눈길에서 위험한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하산을 시작하여 쉬지 않고 스텔라포인트를 지나 길만스포인트에 도착했다. 식빵 한 조각을 먹고 곧 어두워질 것에 대비해서 헤드랜턴을 준비했다. 가이드가 여분의 배터리가 있냐고 묻는다. 있다고 하니 달라고 한다. 다행히 키보에서 정길이가 준 배터리가 있었다.
하산을 시작하여 너덜지대로 들어설 즈음 다시 구토가 나왔다. 직전에 먹은 빵을 모두 토해냈다. 그렇지만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몸은 그럭저럭 움직일 만했다. 다시 출발하여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스키를 타듯 신나게 미끄러지며 내려왔다. 급경사를 거의 다 내려올 때쯤 어둠이 짙어졌다. 그제야 랜턴을 켰다. 키보산장에 다다르니 저녁 7시 30분이 되었다. 내려오는 데 불과 1시간 55분이 걸렸다. 고산증이고 뭐고 오로지 빨리 올라갔다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포터들이 쉬는 쉼터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기름 냄새가 지독했다. 망고 주스 두 잔을 먹고 잠시 쉬다가 저녁 7시 53분에 산장을 출발했다. 이제 호롬보까지는 9.26km의 편안한 하산길이다. 굴러가도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끝까지 체력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까지는 잘 버텨 주었는데 말이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구토가 나왔다. 모두 토해낸 후 다시 랜턴을 켜고 걷고 또 걸었다. 배고픔도 잊고 오직 빨리 내려가 오늘의 고행을 끝내고 싶었다. 한참을 내려가니 낮에 오르다 보았던 마지막 샘터가 나왔다.
호롬보산장에 가까워지니 다른 포터 2명이 마중을 나왔다. 이곳 포터들의 세계도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는 것 같다. 선배들의 배낭을 받아 들고 앞서 내려간다. 호롬보에 도착하니 저녁 10시 25분이 되었다.
우리 팀 숙소를 찾아 대충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물 한 잔 먹지 않았는데도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런데 우스운 건 두 번이나 방을 잘못 찾아 들어갔다. 산장 모양이 비슷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남자 둘이서 자고 있는 방이었다. I'm sorry! 하고는 얼른 나왔다.
1월 20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뱃속이 여전히 매스껍고 거북했다. 식사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알 몇 톨과 스팸 한 조각을 잘게 썰어 간신히 입에 밀어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처음 산에 들어왔을 때와는 정반대가 되었다. 무엇이든 잘 먹던 내가 마치 패잔병처럼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있다. 산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남은 부식으로 잔뜩 준비한 소시지며 스프, 밑반찬 등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도 이렇게 깨작거리고 있다니. 간신히 두어 숟가락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산장(HUT)으로 돌아와 양치질을 하고 카고백을 정리했다.
8시가 되어 호롬보산장을 출발하여 지루한 하산을 시작했다. 힘이 없어서 그런지 그다지 흥이 나질 않았다. 올라올 때 하룻밤 머물렀던 만다라산장에서 잠시 쉬었다. 뱃속이 거북하여 대장님께 소화제 두 알을 달라고 하여 먹었다. 다시 한참을 가는데 머리가 띵 하며 걸음걸이가 신통치 않았다. 이틀 동안 별로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혈당이 떨어진 듯했다. 서둘러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걷기가 한결 나아졌다. 내려가면 콜라나 한 병 사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중에 길가 나무 위에서 원숭이 두 마리가 한가로이 놀고 있었다.
호롬보산장에서부터 19.9km의 지루한 하산을 마치고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하여 먼저 내려온 대원들과 만났다. 플라스틱 상자에 준비된 점심을 준다. 하지만 그보다는 쉼터 테이블 위에 놓인 콜라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남은 콜라를 단숨에 비우고 정길이에게 3달러를 주어 콜라를 더 사오도록 부탁했다. 다시금 콜라 한 병을 비우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다. 평상시에는 눈여겨보지도 않던 콜라가 이렇게 원기를 돋을 줄이야. 고맙다, 콜라야.
가이드에게 샘가에서 머리를 감아도 되느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비누를 꺼내 머리에 비누칠을 한 후 두어 번 헹구고 나니 묵은 때를 벗겨내서 그런지 머리가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제야 식욕이 조금씩 돌아온 듯하여 도시락 통 속에 있는 계란도 먹고 닭튀김과 땅콩도 먹었다. 역시 고산증이 무섭긴 무섭다. 천하의 조병섭이 고산증에 속수무책 맥을 못 추다니…….
셔틀버스를 타고 아루샤로 이동 중에 가이드 캡틴인 콜맨을 중간에 내려 주었다. 아루샤 임팔라호텔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빨래를 한 후 1층 중국식당에 모여 요리와 전원 등정을 축하하는 의미로 대장님이 준비한 위스키와 포도주로 건배를 하며 등정을 자축했다. 식사를 마친 후 8층 홀에 마련된 휴게실에 모여 국내에서 가져온 소주와 컵라면으로 2차 축하파티를 열었다. 흥에 취해 얘기하다 보니 소리가 커졌나 보다. 아래층에서 2차 킬리만자로 혜초 팀의 지경희 가이드가 소란스럽다며 항의를 했다. 목소리를 낮춰 남은 얘기를 마저 하고 소주와 안주를 먹어 치우고 밤 11시 가까이 되어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1월 21일 토요일
일찍 잠이 깼지만 뭉그적대다가 7시 10분에 식당에 갔더니 벌써 식사를 마치고 올라가신 분도 있고 몇 분만이 남아 식사하는 중이었다. 밤새 선풍기를 켜놓고 자서 그런지 머리가 조금 무거웠다. 입맛이 없어서 빵 두 조각에 시리얼과 과일 조금으로 아침을 때웠다. 서둘러 방에 올라가 짐을 정리해 복도에 내어 놓고, 이틀간 못 갔던 화장실도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무사히 해결했다. 로비에 내려오니 다들 내려와 계셨다.
잠시 후 사파리 차에 나누어 타고 응고롱고로를 향해 출발했다. 차창을 통해 보이는 밖의 풍경에 누나와 나는 연신 탄성을 발했다. 초원 한가운데 드문드문 자리 잡은 울타리가 둘러쳐진 마사이족 부락과,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뜨거운 땡볕 아래 가축을 몰며 이곳저곳 다니는 마사이족의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바로 옆으로는 동물들이 지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는 맹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했다. 호숫가 주변에 있는 마사이족 부락도 지나쳤다. 지루한 줄 모르고 왼쪽 오른쪽 고개를 돌려가며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누나도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며 내가 언제 이런 곳에 와 보겠냐며 좋아하셨다. 저 아래 마니야라호수 국립공원을 바라보며 지나쳤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입구에서 잠시 내려 출입신고를 하는 동안, 길가 원숭이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에 무관심한 듯 제 볼일만 본다. 다시 차를 타고 산중도로를 올라 풍광 좋은 정점에 세워진 Sopa lodge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 종업원들의 유니폼이 좀 특이했다. 각자 정해진 방에 짐을 푼 후, 식당에 모여 맥주와 콜라로 목을 축이고 점심 식사를 맛있게 했다.
다시 차량을 타고 분화구로 사파리 드라이브를 떠났다. 얼마 안 가 길가 원주민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를 보자 둘째손가락을 세우고 쫓아 뛰어온다. 1달러를 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1달러쯤이야 못 줄 것도 없지만 원주민들이 너무 속물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경사진 도로를 따라 분화구로 내려가다 보니 제일 먼저 물소가 우리를 반겼다. 처음이라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이후로 만사가 귀찮다는 듯 길가에 누워 있는 암사자와 짝꿍과 애정표현을 하는 얼룩말, 머드팩을 하여 회색빛을 띤 허연 이빨 두 개를 드러낸 멧돼지, 그리고 늘씬한 자태를 뽐내며 한가롭게 풀을 뜯는 가젤과 물소보다 조금 몸집이 작은 누, 분화구 호수 언저리에 빼곡히 자리한 홍학 떼, 먼발치에서 소풍 나온 듯 느리게 움직이는 코뿔소 두 마리, 외롭게 혼자 서 있는 코끼리 한 마리, 크레인(학), 코리버스터드, 길가 근처에서 단체로 누워 여유를 만끽하는 일곱 마리의 라이언 형제들…….
잠시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하더니 산언저리에 우리를 반겨주듯 무지개가 걸렸다. 지나온 길 뒤편으로 구름 사이로 가녀린 햇살이 뚫고 나와 천지창조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반나절 잠깐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정말 원 없이 많은 동물들을 만나 보며 자연의 신비함과 오묘함을 느꼈다. 하지만 평소 TV의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것 같은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로지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식당에 모여 그간의 환담을 나누며 긴 시간 저녁 식사를 했다. 숙소로 돌아와 장갑과 상의 한 벌을 빨아서 수건에 돌돌 말아 엉덩이로 깔아뭉갠 후 라디에이터에 널고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 속에는 어느새 핫팩 하나가 들어 있었다. 직원이 넣어둔 모양이다. 침대 위에 지갑을 놓고 나갔었는데 그대로였다. 잠을 자려는데 옆방에 있는 누나와 김명숙 선생님께서 이야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모처럼 핫팩의 온기를 느끼며 달콤하게 잠이 들었다.
1월 22일 일요일
준비를 마치고 로비에 나오니 8시 5분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사파리가 계속된다.
어제 둘러보았던 분화구를 내려다보며 응고롱고로를 서서히 빠져나오며 마사이족 부락과 구릉을 지나쳐 올두바이 계곡에 도착했다. 인류 최초의 발상지를 둘러보며 헌신적으로 유물을 발굴했던 몇몇 선각자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곧이어 세렝게티 쪽으로 출발했다.
가는 중에 무수히 많은 가젤과 물소 떼, 얼룩말, 새들을 목격했다. 12시가 조금 넘어 Nabbi hill에 도착하여 Sopa lodge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전망 좋은 뒷동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시 차가 출발하여 세렝게티 평원을 달리는데 동물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어쩌다 보이는 게 멧돼지 가족과 새, 하마, 기린, 표범, 원숭이, 임팔라, 물소 등이 가뭄에 콩 나듯 보였다. 운 좋게도 표범을 발견했는데 사진 찍는 데 실패하여 겨우 뒷다리와 꼬리 쪽만 찍혔다. 표범이 풀숲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오후 4시 30분쯤 세렝게티 산 중턱에 자리 잡은 Sopa lodge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앞 발코니에 어린 원숭이 한 마리가 놀러왔다. 잠시 사진을 몇 장 찍어 주었다. 호텔 주변을 둘러보다 대원들을 하나둘씩 만나 결국 여자들만 빼고 수영장 옆 쉼터에 모두 모여 맥주 2병을 사다가 한 모금씩 마시며 그간의 정담을 나누었다. 저녁 7시 30분이 되어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식당 입구에서 직원들이 춤과 노래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잠시 후 아래층 홀에서 네 명의 남자 아크로바틱 단원과 두 명의 여성 무희, 네 명의 악단으로 이루어진 민속공연이 펼쳐졌다. 한참을 관람하다 팁으로 1달러를 모자에 넣어주고 방으로 돌아와 쉬었다.
1월 23일 월요일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깨어 뒤척이다가 5시가 되자 일어나 짐을 정리하다 보니 아침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갔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8시에 다시 사파리 차량에 탔다.
어제 들어왔던 길을 따라 다시 초원으로 나아갔다. 나가는 길에 토피와 임팔라가 눈에 띄었다. 이리저리 운전수의 의지대로 돌다 보니 가끔 멧돼지도 보이고 물소 떼도 보였다. 시간이 되어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기장을 포함해 모두 20명을 태우고 경비행기가 가볍게 이륙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이 발아래 펼쳐졌다. 군데군데 울타리를 한 마사이족 부락도 보이고, 경사진 곳에 계단식으로 경작한 밭이 일부러 채색을 한 것처럼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온통 그린필드였다. 개발되지 않은 원초적인 초원의 모습이 공해에 찌든 우리네 삶에 비추어 봤을 때 축복받은 땅으로 여겨졌다.
한 시간 가까이 날아서 아루샤 인근의 비행장에 착륙했다. 다시 임팔라호텔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나이로비로 이동했다. 저녁때가 되어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5층 식당에서 혜초의 이민수 씨가 미리 예약해 둔 저녁을 먹었다. 이민수 씨가 고맙게도 모두에게 케냐 커피 한 봉지씩을 선물했다. 공항 로비로 이동해 출국수속을 밟은 후 밤 10시 50분에 나이로비를 이륙했다.
1월 24일 화요일
낮 시간이 되어 방콕에 도착, 입국수속을 마치고 혜초여행사에서 나온 엄희수 씨와 시내 관광을 나갔다. 먼저 예약해둔 태국 전통 마사지를 받았다. 반은 졸면서 받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갔다. 다시 방콕 최고층의 바이옥타워로 이동하여 뷔페 식사를 하고 전망대에 올라 태국 시내를 둘러보았다.
비행기 시간에 쫓겨 서둘러 타워를 빠져나와 공항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쉽게 갈 수 있었다. 밤 11시 15분에 수완나품공항을 이륙했다.
1월 25일 수요일
인천공항에 가까워지니 발아래로 하얀 눈이 희끗희끗 보인다. 현재 기온이 영하 8도란다. 새벽 6시가 조금 안 되어 무사히 공항에 착륙했다. 짐을 찾는데 다소 시간이 지체되었다. 마지막으로 로비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헤어졌다. 공항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 돌아오니 9시가 되어간다.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반긴다. 사랑스런 나의 가족들아!
첫댓글 고산증 때문에 고생을 조금 하셨지만,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을 남기셨네요.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ㄳㄳ
산행기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