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연변지방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소감 중 못다한 부분을 전하려 합니다.
1.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이젠 고인이 됐지만 김정구 선생이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은 나의 뇌리에 두만강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두만강을 발원지부터 찾아서
마지막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지점까지 가는 동안 ‘노 젓는 뱃사공’이 과연 어디쯤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아, 저기 쯤이면 노 저을 수 있겠구나’
하는 짐작이 가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차중에서 안내인이나 조선족 기사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아쉽게도 신통한 답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안내인은 그 노래가사는 '현실성이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 말에 공감이 간 것은 우선 두만강 옆을 따라 아무리 내려가도 강폭이 좁아 노를 저을만한
거리가 될 것 같지가 않았다. 하류로 내려 갈수록 다소 넓은 곳이 나오긴 했지만 강 양쪽에
사람들이 건너갈 만한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양국의 접경지역을
흐르는 강에 한가로이 뱃사공이 노을 저어 사람들을 건너가게 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목재운반용 땟목을 타고 사람이 내려가는 것은 얼마 전
까지도 볼 수가 있었다고 조선족 기사가 확인해주었다.
사진은 강폭이 좁은 두만강과 건너편의 북한 땅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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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송정(一松亭)에 얽힌 얘기
‘선구자’ 노래로 유명해진 일송정은 듣던 대로 용정(龍井)의 비암산 기슬에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옛 북간도지방의 우국지사, 독립운동가들이 이 곳 비암산의 한 소나무 아래에
모여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숙의를 했다고 하는데,
원래의 소나무는 그 후 시들어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다시 그 자리에 소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꾼 것이 현재의 나무인데 그 옆에 정자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선구자의 노래 가사를 새긴 비석도 세웠으나 중국당국이 철거해버렸다고 했다.
아마도 가사내용 중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고취하는 부분이 당국의 비위를 건드린 것 같다는 것.
참고로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가곡 '선구자'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우물가에 저녁종이 울릴때
사나이 굳은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최근의 중국당국의 고구려 역사왜곡과 관련하여 전개하는 일련의 사태를 상기하면 이런 일은
충분히 있음직한 그들의 태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같은 구절은 중국 당국의 입장에서 곡해(曲解)할 소지도 있을듯 하다는 느낌도 든다.
사진은 멀리서 찍은 일송정의 모습이라 선명하지가 않다.
3. 윤동주(尹東柱) 생가와 용정중학교 교정의 시비(詩碑)
윤동주 시인의 생가는 용정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명동촌(明東村)이란 곳에 있었다.
이 곳은 북한의 함경북도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너 길을 따라 올라오면 닿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구한말에 처음에 북간도로 올라온 이주민들은 먼저 이 곳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는 김약연 목사(윤동주 시인의 외삼촌)과 문재준 목사(문익환 목사의 부친) 등이
주동이 되어 교회를 지었고 그 옆에 윤동주의 생가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유입인구가 늘어나자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 용정에 모여 살았다. 그래서 용정이
북간도 이주민의 생활 중심이 됐다. 그 후 더 북상하여 연길(延吉)에 모여 지금은 이 곳이 중심이
되어 자치주의 주도가 되어 있다. 이젠 흑룡강성에 까지 올라가 만주 일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다음 용정중학교 교정에 설치된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시는 ‘서시(序詩)’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내용이 순수하고 전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소지가 없는 시라 용인된 것이 아닐까 했다.
끝으로 연변자치주의 조선족은 우리의 동포이고 해외교포이지만 국적은 엄연한 중국인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여 대처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섬세하신 관찰과 답사였읍니다. 너무 수고하셨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선배님이 다녀오신길을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좋은 역사 공부 오늘 많이 하고 갑니다.....감사 합니다.........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