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감독에 의해 잔혹동화로 재탄생된 <레드 라이딩 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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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옛날에…”로 시작하는 동화들의 공통점은, 비현실과 상징으로 가득 찬 세계가 배경이 된다는 점과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교훈으로 끝맺는다는 점이다. 이야기에 늘 목이 마른 할리우드가, 마녀와 요정이 등장하고 왕자와 공주가 사랑하고 인어가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보고, 결말에 숨겨진 교훈보다는 환상적인 표면에 집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최근 이 경향은 (동화가 원작은 아니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라푼젤> <마법사의 제자> 등 판타지 장르로 둔갑한 일련의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첫편의 메가폰을 잡았던 캐서린 하드윅 감독의 신작 <레드 라이딩 후드>도 이 트렌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늑대를 늑대인간으로, 소녀를 로맨스가 가능한 성년의 여자로 변형시킨 이 영화는, <빨간 두건>이라는 잘 알려진 유럽의 전래 동화를 할리우드적 상상력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결과물이다.
영화의 무대는 중세 유럽의 작은 산촌. 오랫동안 늑대의 침입을 견디며 살아온 이 마을은 어른 키만한 높이의 사다리로 오르내리는 집을 짓고, 보름달이 뜨면 늑대의 먹이가 될 가축 새끼를 문밖에 매어둔다. “숲에는 혼자 가면 안돼.” 어릴 때부터 어머니(버지니아 매드슨)의 주의를 듣고 자란 발레리(아만다 시프리드)에게 숲은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연인 피터(샤일로 페르난데즈)와 밀회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부잣집 아들 헨리(맥스 아이언스)와 발레리의 결혼이 정해진 날, 둘은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한데 발레리의 언니 루시가 늑대에게 죽임을 당하며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더이상 당할 수 없다며 늑대 사냥에 나선 마을 남자들이 하루 뒤 늑대의 머리가 꽂힌 창을 들고 돌아오자 사람들은 축제를 시작한다. 한데 때맞춰 마을에 찾아온 ‘파더 솔로몬’(게리 올드먼)은 “적은 늑대가 아니라 늑대인간”이라며,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늑대의 본성을 감춘 채 인간의 거죽 아래 숨어살고 있었다고 말해 마을을 동요시킨다.
<레드 라이딩 후드>는 소녀와 늑대에 대한 민화의 구석구석에 할리우드에서 인기를 끌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덧칠한 판타지 호러다. 영화는 상영시간 110분 동안 잔혹 동화, 로맨틱 스릴러, 범인이 누구인지를 소거법으로 밝히는 ‘후던닛’(Whodunit) 등 다양한 장르로 옷을 갈아입는다. 어린이용으로 윤색된 하드커버 동화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간의 어두운 단면들은 이 장르의 변용을 통해서 드러난다. 늑대와 말을 했다는 이유로 ‘마녀’로 지목된 발레리가 붉은 두건과 가면을 쓰고 마을 공터에 묶인 장면은, 마녀사냥, <주홍글씨> 등에서 사람들이 자행해온 ‘희생양 만들기’가 잔인한 형벌이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시킨다.
재료는 같지만 패러디를 통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빨간 모자의 진실>과 달리 <레드 라이딩 후드>의 플롯은 오리지널에 충실하다. “할머니 눈은 왜 이렇게 커요? 귀는 왜 이렇게 뾰족하죠? 이빨은 또 왜 이렇게 큰가요?”라는 유명한 대사와 늑대의 배에 돌을 채워 꿰맨 뒤 수장시키는 결말 등이 특히 그렇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PG13(13세 미만 보호자 동반 관람가) 등급을 위해 전체적으로 수위가 상당히 조절됐다는 점이다. 동화의 이면에 숨겨진 잔혹함과 윤색과 각색으로 사라졌던 야만스러운 섹슈얼리티를 부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한 느낌이다.
다음은 2011년 3월3일, <레드 라이딩 후드>의 캐서린 하드윅 감독과 아만다 시프리드, 게리 올드먼 등 출연진과 나누었던 인터뷰의 일부다. 캐서린 하드윅 감독은 등장부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듯 힘차게 문을 열며 인터뷰 장소에 ‘입장’한 감독은 시종일관 신나고 들뜬 10대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어른에게 늑대는 위험한 섹슈얼리티의 상징감독 캐서린 하드윅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한 동화가 뭔가. -할리우드가 동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레드 라이딩 후드>가 당신에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뭔가. -의상과 세트 디자인은 어떻게 준비했나. -음악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트와일라잇>과 <레드 라이딩 후드>의 풍광은 비슷하다. 겨울과 숲을 좋아하는 것 같다. -<13> <독타운의 제왕들> 등 당신의 초기작과 비교하면 <트와일라잇> <레드 라이딩 후드>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초기 작품들이 그립지는 않은가. 시대극과 코스튬, 새로운 경험이었죠주인공 발레리 역의 아만다 시프리드 -어렸을 때 좋아한 동화가 있나. -<레드 라이딩 후드>에 출연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헨리라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선택이 눈앞에 있는데, 발레리가 피터를 놓치 못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팀 피터’, ‘팀 헨리’ 중 당신은 어느 쪽인가. -어렸을 때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팬이라고 들었다. <레드 라이딩 후드>의 제작자로 만난 그는 어땠나. -지금까지 배우로 살면서 꼭 하고 싶었던 역할이 있나. -의식하는 또래 여배우가 있나. 할리우드 B무비의 일면을 떠올리게 해파더 솔로몬 역의 게리 올드먼 -당신이 연기한 캐릭터 ‘파더 솔로몬’은 어떤 사람인가. -<해리 포터>에 이어 <레드 라이딩 후드>도 코스튬을 입는 영화다. 당신은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나. -<해리 포터> 시리즈 덕분에 당신의 아이들에게는 인기있는 아버지겠다. -그래도 몇년 뒤엔 아이들에게 <드라큐라>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좀 다른 판타지다. -<레드 라이딩 후드>에 출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