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당의 모습은 함안 무기연당의 크기보다 크고 고지도에 나오는 것을 종합해볼 때 면천읍성내에 있는 군자정이라는 것이 사미당과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무기연당의 경우 연당이라는 부분을 가지고 접근했고 창원읍성내에 있었던 사미정이나 사미당의 모습을 보았을때에는 면천읍성내에 있는 군자정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아래 이미지출처 면천중학교 총동창회 카페 http://cafe.daum.net/Cafe1000
▼ 사각형의 인공연못안에 군자정을 지어 놓았는데 군자정 주위는 사각형이 아닌 둥근형태로 인공섬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군자정은 원래 팔각형 형태의 팔각정이었는데 지금은 육각형 형태라고 합니다. 군자정을 가기위해서는 자그마한 다리를 지나가야 합니다.
▼ 옛부터 우리 선조들은 도(道)의 본질을 내포한 도체(導體)로 생각했고 따라서 풍광이 빼어난 계류 옆에 정자 짓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궁궐의 정원은 원래의 자연환경을 유지하면서 일부 경물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조성되었는데 이곳의 누정은 정사(政事)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에 비해 지방의 읍성이나 진성안에 있는 누각들은 사신을 영접하거나 (부산진성의 영가대) 벼슬아치들을 접대하는 장소 혹은 여행객들의 휴식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 위의 내용을 기준으로 본다면 창원읍성의 사미당의 경우 정치를 논하거나 접대 또는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창원읍성의 사미당의 경우 충남 당진군 면천면에 있는 군자정과 비슷한 모양이었을까요? 정확하게 답변을 못드리겠네요. 다만 군자정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인공적으로 조성된 섬이 둥근 것이 아닌 사각형이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이 들며 함안군 칠원면 무기연당의 하환정과 같은 정자가 하나 더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여지도에 나온 사미정과 지승지도에 나온 사미당 중 어떤 것이 더 정확한 것일까요? 이것도 무엇이다라고 정확히 이야기 할수는 없고 먼저 정자에 편액을 적으면서 사미정으로 적었고 그후 창원읍성을 다스리는 도호부사가 다시 사미당으로 편액을 적은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후 일제강점기 초에 사미당이 없어지는 것이 아쉬어서 지금의 사미루가 있는 곳으로 사미당의 사미(四美)가 넘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미당의 기능은 위와 같이 정자의 역활을 하였겠지만 사실은 정자의 역활보다 큰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읍성내에 불이 났을 경우 불을 끄는 저수지의 기능을 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일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창원읍성안에 큰 못이 있었습니다. 위치는 현 창원초등학교 옆으로 그곳에 있었던 못이 화재시 불을 끄는 기능을 하였겠지만 그곳 못과 거리가 조금 있다보니 사미당도 위급시 불을 끄는 기능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