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는 언덕
미우라 아야꼬
1. 용서는 용서받은 자가 할 수 있다.
온 몸을 바쳐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여인과 결혼하였다. 변변한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한 결혼이었다. 그러나 2달이 지나자 이 남자는 원래의 모습이 나왔다. 술을 멈출 수 없었고, 매일 밤 친구와 술과 함께 있다가 여인을 홀로 두었고, 심지어 화를 내기도 하고, 집에 돈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으며, 친구와 아내의 사이를 질투하였고, 결혼하기 전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수도 없이 가졌으며, 심지어 자기를 통하여 임신한 아이를 죽이라고 했으며, 결혼한 후에도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졌으며, 아이도 갖게 되었다. 당신은 이런 자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놀랍게도 이 여인과 이 가족은 그를 용서한다. 어떻게 그런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 놀랍게도 이 여인과 가족은 그를 용서하지 못하였음에 도리어 회개를 한다. 진심으로 그 남자를 사랑하지 못하였다고, 용서하지 못하였다고 다른 이들 앞에서 고백한다. 우리는 다른 이를 용서할 수 없다.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몇몇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용서의 단계에 서 있는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용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인이 본인을 딸을 계속해서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위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자신의 죄를 용서한 아내 덕이다. 그러나 더욱 이 사람이 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삶을 돌이키게 된 것은 자신을 용서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그린 마지막 그림은 바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계신 예수님 밑에서 그분의 긍휼을 바라는 자신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자비로운 얼굴로 바라보시는 용서의 예수님을 표현한다. 바로 그는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용서는 용서받은 자가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살면서 어찌 용서하는 일이 쉬우랴! 그럼에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분에게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2. 진정한 회개는 에너지를 바꾸는 것이다.
료이찌는 진정으로 회개한다. 그는 자신의 지난날 잘못에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그것만이회개가 아니다.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이 회개가 아닌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원래의 자리로의 회복이다. 료이찌는 바로 원래 자리인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갔다. 술을 끊고, 여자를 끊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을 전하였다.
마귀가 하는 짓은 바로 잘못된 회개를 이끌어 에너지는 낭비하는 것이다. 나오미는 자신의 잘못에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러나 그것이 에너지는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슬픔 에너지는 평생 부모 사랑 없이 힘들어하고 있는 고아원에서 봉사하게끔 바꾸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참된 회개인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에너지를 바꾼다.
유다와 베드로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가? 죄에 인한 슬픔의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것이다. 유다는 자살을 하였다. 즉 에너지를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자살으로 결말을 내린다. 그러나 베드로 보라. 예수님의 증인의 사역을 감당한다. 슬픔의 에너지는 사명의 에너지로 바꾸었다. 진정한 회개로 인해 바른 에너지를 사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