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알고 있기를 백수연(白壽宴)이라고 하면 백세(百歲)를 맞이하는 사람에게 잔치를 열어주는 것으로 알고 한문으로 일백
백자를 써서 백수연(百壽宴)으로 표기를 하기 쉬운데 百에서 한 획을 빼서 흰 백자로 쓴다.
그러므로 백수연은 100세에 하는 것이 아니고 99세에 하게 된다.
옛날에는 평균수명이 40~50으로 환갑까지 사는 것이 드물었기 때문에 환갑을 맞이 하면 환갑잔치를 했었지만 지금은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2024년 현재 남자의 평균수명이 86.3세이고 여자의 평균수명이 90.7세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최근에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옛날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두배를 살고 있
다고 보면 된다.
신사임당이 47세까지 살았고 그 아들인 율곡은 49세까지 살았는데 그 사람들은 신분이 상류층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0을 채우
지 못했으니 일반 가난한 서민들은 그보다 더 오래 살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했어도 환갑잔치를 하는 것이 정말 보기 드물었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인해서 수명이 길어지다가 보
니 이제는 100세를 바라보게 되었고 백수연을 하였다는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데 백수연을 그때의 환갑잔치 하는
정도가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도 6월에 장모님 백수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백수연을 맞이하게 되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게 된다.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가 오래 살아서 백수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 받은 것은 틀림없겠지만 그 부모를 모시는 자녀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위의 입장이기 때문에 직접 모시는 입장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찾아 뵙게 되는데 직접 모시는 처남이나 처남댁
을 보게 되면 참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분들도 80이 넘었고 처남댁은 장모님보다 허리가 더 굽어서 그분들도 자녀들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지만 그렇
지 못하다.
그리고 그분들도 그분들의 인생이 있는데 부모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많은 부분을 제한을 받게 되니 처가를 찾아갈 때마다 장모님
이 돌아가셔아 저분들도 해방을 받게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도 온전하고 식사도 잘 하시는 편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것 말고는 다른 큰 문제는 없으니 앞으로도 몇 년 정도
는 더 사실 것 같다.
처남은 어머니가 앞으로도 더 오래 사시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 같
고 처남댁도 그렇다고 말은 하지만 얼마나 자신의 인생이 희생이 되겠는가....
이런 상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오래 사는 것이 참으로 자녀들에게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본인이 오래 살고 싶어서 오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에게 너무 많은 희생이 강요되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는 인지하게 못하고
있고 설령 인지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자녀의 입장도 다른 선택을 수 있는 어떤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게 만들 뿐이다.
옛날에는 거의 대부분이 50을 못넘기고 죽었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을 오복(五福)의 첫째로 여겼었다.
오복이라는 말은 서경(書痙)의 홍범편에 나오는 것으로 다섯 가지의 복. 곧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
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으로 수(壽)가 제일 앞에 나오게 된 것은 그만큼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6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전쟁이나 기아로 죽거나 간단한 상처나 돌림병 심지어는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 경우
가 허다했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을 가장 복이 많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죽는 경우는 없고 어떻게 하면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의술(醫術)이 알려주기 때문
에 스스로 죽기로 작정하지 않는다면 죽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고 그것 때문에 이제 괴로워지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명을 점점 더 길어질 것이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더 커질 것인데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현재까지는 없
다는 것이 문제인 셈이다.
우리가 코로나 19로 인해서 노령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죽게 될 것이라고 예단을 하기도 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했고 젊은 사람
들의 삶만 힘들게 하고 지나갔었다.
오래 사는 문제가 이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 난감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결혼도 하지 않는 것이나 자녀를 낳지 않는 것도 결국은 이 문제와 연동(連動)이 되어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정책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게 된다.
오래사는 것으로 야기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있다면.....
만약 종교계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극락 또는 저세상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어서 그곳이 이곳보다 더 안락
하고 행복한 곳이라면 스스로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곳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시골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에게 가끔 내려가면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에 궁금해하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서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곤 했었는데, 만날 때마다 안심을 시켜 드렸었다.
죽는 순간은 무섭지도 않고 저 세상은 적어도 이 세상보다는 좋은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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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나 이론적으로 죽음 이후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죽는 것이 두렵거나 아쉽지 않게 되며 오래 사는 것
에 대한 미련도 없어지게 될 것은 분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