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사람이 만들어 내지만 본래는 그 지역의 삶의 문화에서 시작되고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같은 음식이라도 얽힌 스토리가 양념처럼 배어야 절박한 맛이 더 느껴진다.
물회, 명태칼국수, 새치국 같은 음식들처럼 말이다. 녹진한 삶과 그 삶을 일생의 업으로 잇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중하듯 담묵하게 만들어내는 본류적인 음식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음식이 지금은 잊혀지고 사라진 ‘잿놀이’라고 하는 농경음식이다. 모내기를 할 때, 헐출해진 일꾼들에게 점심으로 먹이던 ‘못밥’이다. 문뜩 그 정겨웠던 ‘잿놀이’의 정체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리워진다. 잿놀이를 내갈 쯤, 오독오독한 소리까지 잘 익은 솥뚜껑만한 누룽지를 먼저 차지하고도, 알불에 굽는 기름기 자박한 고등어나 새치 앞을 떠나지 못하던 후각의 유혹은 슴슴하게 무쳐 낸 나물만 외면하더니, 이내 설탕을 뿌려놓은 쇠미역 튀각을 눈치껏 만지작거리다 낼름 하나를 집어 정지 밖을 도망쳐 나오게 하던 음식이 바로 ‘잿놀이’였다.
◆향토음식연구가 진혜련씨의 손맛=어느새 인가 잊혀지고 사라진 정겨운 농경음식 ‘잿놀이’를 명태가 사라져 밥상까지 허전해진 고성의 한 농경음식전문점에서 상차림하고 있다. 고려 공양왕과 사대부들이 고성에 정착하면서 만들어 먹었던 음식 중에서 ‘잿놀이’가 당시 우리지역 최고의 음식이었던 점에서 착안하여 지난 10월에 <설악떡>으로 널리 알려진 향토음식연구가 진혜련(51)씨가 문을 연 <잿놀이(T637-0118)>이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황토집이나 어느 농부의 손때가 퀘퀘하게 묻은 탈곡기, 풍로, 절구통 같은 농기구는 그렇다 치고 상호가 참 마음에 든다.
이곳의 대표메뉴는 ‘잿놀이 밥상’으로 묵직한 황금빛 놋그릇에 담아내면서, 상차림의 격식은 고성의 바다와 땅, 산에서 나고 자란 재료를 기본으로 하여 차려 낸다. 전통 방식으로 삼삼하게 무쳐 낸 간장양념 문어무침은 바다의 것이고, 궁중조리법의 갈비찜은 땅의 것이고, 슴슴하고 담백한 맛의 나물은 산의 것으로 3위의 식재료를 고성 잿놀이 밥상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못밥으로 짓는 팥밥 또한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액땜의 의미로 팥과 그 숫자만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조를 함께 섞어 짓는다.
◆봄 순으로 시각적 미감까지=못밥에 따른 찬품도 격하
지 않게 담담하면서 소박한 포인트가 미각을 돋운다. 집 간장에 들깨가루와 들기름만으로 무쳐 뒷맛이 짜지 않고 감칠한 맛이 차분하게 깊은 취나물, 다래순, 고사리나물 중심에 지누아리 장아찌를 담고, 노릇하게 지진 코다리에 양념한 더덕을 볶아 얹은 ‘코다리 더덕구이’는 황태구이와는 맛의 질감이 또 다르다. 이곳의 찬품들이 설겅스럽지 않다는 것은, 단풍이 든 깻잎을 따서 특유의 쌉사래한 맛과 향을 한번 우려내고 담근 짜지 않고 연한 맛의 깻잎장아찌에서도 알 수 있다. 더욱이 봄 순을 뜯어 음식마다 헤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