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Z가 국산 만화영화인 줄 알았던 386세대들은 기억하리라. 마징가Z가 숨겨진 곳이 (돔형 지붕의)국회의사당인지, 서울대 모 건물 지하인지를 두고 친구들과 목소리를 높였던 추억을. 헬 박사의 기계군단과 싸우기 위해 지하 격납고에서 수영장 물을 가르며 등장하던 마징가Z는 '로보트 태권V'가 나오기 전까지 이 땅 모든 어린이의 꿈이었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추억의 만화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을 실제로 만들어 보겠다며 일본 기업들이 나선 것. 이름하여 '공상과학 현실화 프로젝트'다.
삼성경제연구소 인사조직실 수석연구원으로 있는 성상현(40) 박사가 일본 마에다(前田)건설 팬터지영업부를 찾은 것은 지난 2월. "이곳에서 마징가Z의 지하기지를 실제로 설계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자초지종을 알아봐 달라"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요청을 듣고서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오수처리장형 마징가Z 지하 격납고: 예산 72억 엔(약 720억원.초합금Z제 조명탑의 제조공사비는 제외), 공기 6년5개월(기계군단의 습격기간은 제외)'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사실 건설업은 하드한 업종이라 뭔가 소프트한 것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기가 막힌 발상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마에다건설은 도쿄만 아쿠아라인 인공섬을 비롯해 도쿄도청사, 요코하마 베이브릿지, 후쿠오카 돔 등 굵직한 대형 공사를 맡아온 일본의 대표적인 종합건설회사. 그런 이곳에 2003년 2월 4명의 직원으로 '팬터지영업부'가 구성됐다. 이들의 임무는 현실에서 쓰이는 각종 건설기법을 활용해 만화영화 속 건축물을 영화에 나오는 그대로 설계하고 이를 토대로 '입찰의향서'를 만들어 '수주'를 기다리는 것.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얼토당토않은 황당한 얘기로 들리지만 마에다 측의 설명은 명쾌하다.
"고도성장기 이후 공공사업이 축소되고 민간기업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건설업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어딘가에 우리가 모르는 큰 시장이 있는 게 아닐까요. 또 혼다가 두 발로 걷는 로봇 아시모를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언젠가 마징가Z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럴 경우 건설업계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로 일반인들이 건설업에 대해 친근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무시못할 소득이지요."
이른바 '블루오션'(경쟁자 없는 새로운 시장)을 노린 이들의 전략은 일본 네티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화려하게 부각됐다.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너무도 진지하게 접근해 가는 '프로'들에 대한 응원이었다. 이들은 '마징가Z의 기지(광자력연구소)가 후지산 기슭 남쪽에 있다'는 한 줄의 단서를 토대로 후지산 남쪽 전체의 지질을 조사하고 지하수를 더럽히지 않는 굴착공법을 연구했다. 또 일본 최고의 지진전문가를 초빙해 '적 로봇 공격에 대비한 내진설계'까지 마쳤다.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음악이 나오는 10초 동안 300t에 가까운 수영장 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마징가Z가 올라와야 한다는 설정. 이 대목에서 잠깐 이들의 토론을 들어보자.
"개폐 속도는 얼마나 해야 될까? 개폐구 한쪽이 4m니까 50초 정도겠지."
"안 됩니다. 그렇게 느리면 기계군단이 그 사이 연구소를 다 파괴한다고요. 시간상으로는 '마징 고'라고 외친 뒤 10초 만에 마징가가 완전히 나와야 하니까 바닥이 열리는 시간은 그보다 짧아야 합니다. 못해도 6초 정도."
"그렇게 하면 초속 약 700mm로군. 유압식이라면 거의 한계속도이므로 매우 빡빡해. 하지만 초대형 제어장치를 쓰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내가 오히려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 속도로 판을 열어버리면 3초 반에서 4초 사이에 물이 다 쏟아져 버려. 그렇게 되면 마징가Z가 올라오는 동안 주변에 계속 물이 떨어지고 있는 만화영화 속 상황과는 모순되거든."
이들의 '진지한' 논의는 2탄 '은하철도 999'로 이어졌다. 우주로 날아가는 '은하철도 999 메가로폴리스 중앙역 은하 초특급열차 발착용 고가철로'의 최고 높이는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에 따르면 지상 99.9m. 하지만 100m 높이의 롤러코스터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만큼 새로운 형태의 철로를 만들기 위해 이들은 또다시 머리를 싸맸다. 그리고 '총 공사비 37억 엔, 총 공사기간 3년3개월(단 비용에서 토지세 제외)'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팬터지영업부는 현재 제3탄으로 전 세계에 4300만 장 이상 팔린 자동차경주 게임 '그란투리스모'의 배경을 재현하고 있다. 게임 배경, 관전탑 등을 재현하고 실제 운전도 가능한 테마파크 건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되자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난 2월 개최한 대학생 취업설명회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로봇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기동전사 건담'이 등장했다. 사내에 건담 열혈팬 50여 명으로 팀을 구성하고 '기동전사 건담을 실제로 개발한다면 수주에서 납품까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영상으로 만든 것. 미쓰비시 중공업이 가진 역량이 실제 어떤 것인지 대학생들에게 쉽게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서기 20××년 달 표면 개발공사에 참가한 미쓰비시 중공업이 거래처와의 협조 등 우여곡절을 거쳐 인간을 대체할 건설로봇 건담을 완성한다는 내용. 이 행사에 참석한 각슈인대 한 남학생은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거기에 근접한 기술과 조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자, 일본이 이러한데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우리의 '로보트 태권V'는 부활할 수 없는 것일까. 태권V 팬클럽 초대 시솝이었던 김영훈 한국진공연구조합 연구원은 "내년은 태권V가 개봉된 지 30년이 되는 해"라며 "우리도 유사한 프로젝트가 시행된다면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에다건설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담은 '마징가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스튜디오 본프리)를 최근 번역 출간한 김승현 대표도 "우주소년 아톰으로 시작된 일본의 과학입국 붐이 재현되는 느낌"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프로젝트가 시작돼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