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긴 긴 겨울밤-. 정유년 새해 7일 자시(子時)에 한편의 고전 영화를 감상했다.
평생 영화를 시청하다가 중도에서 하차한 기록 또한 처음이리라.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끔찍한 장면들의 연속이 아리고 쓰렸기 때문이다.
전쟁이 있는 곳은 어디에나 학살이 자행된다. 악명 높은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생체실험, 가스 살포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 인간으로 참을 수 없었다. 고귀한 인명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영화를 60년대 이후 특히 유태인 학살을 세계적으로 홀로 코스트라고 칭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쉰들러라는 독일 사업가가 전 재산을 바쳐 유태인 1100여명의 목숨을 구해 고향 체코로 피신시킨 실존인물이다. 따라서 더욱 실감을 자아낸다. 영화감독은 쥬라기 공원을 제작한 스필버그다. 고전의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1993년 흑백영화로 만들어 제작비의 10배를 벌어 흥행에 대성공한 세계 명작이다. 우리나라 역시 2000년 초에 들어와 쥬라기 공원보다 더 많은 시청률을 올렸다고 전한다.
유태인의 학살, 가스총으로 사냥하듯 유태인들을 죽이는 독일장교-. 아내는 일찌기 EBS에 채널을 고정하자 이내 건넌방으로 가서 최근 한창 쏟아지는 석류알 같은 세계 여행 명소들을 택하였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유태인들 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사유재산 몰수 그리고 집단수용, 강제명령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선량한 유태인은 히틀러의 증오의 대상으로 강제노동 중에 학살한다. 너무 끔찍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린이 노인, 여자 생체실험 가스로 집단 살인 등은 익히 알고 있었다. 허지만 처음에 쉰들러라는 고마운 나치 친위당원이 있다는 사전 정보로 꾸역꾸역 인내하며 감상해 나갔다.
근면, 노력을 생명처럼 존중하는 독일인들, 독재자들의 끝없는 고역과 살인-.쉰들러는 임금 지불 없이 군수물품 공장을 인수받아 그릇을 만들면서 비참한 학살을 직접 목격한다. 거기서 유태인을 도와주려는 인간애가 싹터 죽음으로 가는 유태인 포로 1100명의 목숨을 구해 고향 체코로 가서 공장을 세운다. 공장 직원으로 유태인을 채용하고 인간답게 잘 대접해 준 위대한 분이다. 그는 일부러 분량을 오래 채우기 위해 군수공장에서 생산된 군수물품을 하나도 납품하지 않는다. 여자, 술 담배 등을 나치 독일군장교들에게 뇌물로 바치면서-.따라서 이 소설 원 제목은 쉰들러의 방주이다.
집단 학살을 위해 차에 오를 때 몰래 도망쳐 쓰레기통, 큰 소파 밑, 심지어는 화장실 오물 속에 빠져 얼굴만 내놓고 숨어야 하는 어린 아이들이 눈물겹다. 참으로 전쟁은 비참하다. 특히 아이들과 여자들-. 방 청소를 하고 돌아가는 유태인 소년을 총으로 사냥한다. 신의 작품인 여성의 나체를 보고도 사랑하지 않고, 나치사상에 젖어 마구 학살하는 아몬 친위대장교-. 피를 뿌리며 죽어가는 유태인들, 죽기 전에 공포감에 떠는 비극적인 인간 모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나치의 폭력성, 실눈을 뜨고 그런 장면을 보며 치를 떠는 심약한 독자가 어디 나뿐일까?
요즘 우리나라도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로 소란스럽다. 하지만 주인공 쉰들러는 유태인을 살리기 위해 빼내는 착한 리스트였다. 숫자대로 뇌물을 전하는 쉰들러-.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한숨을 돌리는 수용소 유태인들, 유태인을 집단 학살하는 벌판엔 시체가 많아 요즘 AI로 매몰되는 닭시체 같다. 컨베이어 벨트로 이동해 태우니 그 인육 내음이 천지를 진동한다.
그 장면까지를 보고 나는 더 인상 인내 못하고 채널을 껐다. 무엇을 더 볼 것인가! 1945년 종전되면서 쉰들러가 전범으로 몰리자 유태인들이 앞장서 진정서를 제출하며 금이빨을 뽑아 그에게 금반지를 증정했다고 한다. 그 때 주인공은 왜 나는 더 많은 유태인들을 구해내지 못하였는가 후회를 하며 끝난다고 전한다. 3시간 정도-. 이스라엘에 지금도 그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탈무드 글이 써있다고 한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
독일에서 최대 최악의 욕이 "파울'이라고 한다. 게으르다, 근면하지 못하다.
그런 정신은 어디서 싹텄을까? 신의 저주가 왜 쓰나미처럼 독일, 일본을 범람하지 않았을까?
우리 조상들도 일제식민지 때 얼마나 말살과 학살을 당했을까 다시한번 고엽처럼 씹어본다.
유태인 마을을 소탕할 때 바흐곡이 설상가상으로 학살 장면을 더 잔인하게 그려 나쁜 인상이었다.
비록 영화지만 내방에 와 누웠지만 애들처럼 분통이 가라앉지 않고 편치 않다. 혈압이 스멀거린다.
고마운 쉰들러씨-. 지금쯤 당신이 구한 영혼들이 천국에서 귀하게 당신을 대접하고 있겠지요.(끝)
글쓴이-德田 이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