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파랑길 43코스
가천다랭이마을-빛담촌-항촌-선구마을-사촌해변-유구마을-유구항-평산마을
20211222
남파랑길 43코스는 '다랭이지겟길'로 명명된 남해바래길 11코스와 같은 길이다. 남파랑길 42코스를 마치고서 숨을 돌렸다. 하루에 두 개의 코스를 걸어가기는 내게 벅차지만 산악회 일정을 따라야 하기에 제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출발한다. 응봉산과 설흘산 아래 해안 언덕에 자리한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은, 좁은 농토를 늘리기 위해 층층으로 논배미를 낸 다랭이논으로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다랭이논에 거름이나 땔감, 농작물을 지게에 지고 논두렁을 오르내리는 농부들의 고통이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어 다랭이지겟길 체험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다랭이지겟길 언덕에서 서쪽 항촌마을 방향으로 언덕길을 따라 걷는다. 다랭이논을 내려보고 멀리 노도와 어제 걸었던 41코스 해안선을 바라보며 가천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는 입구로 나왔다.
탐방객들이 '남면로'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위험을 피하도록 남파랑길은 남면로에서 펜션촌 임도로 진입하여 응봉산 자락길과 펜션 단지 '빛담촌'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남파랑길 진행 방향은 어느 곳에서든 대체로 위험한 도로를 벗어나고 그 지역의 풍경을 살필 수 있도록 우회하고 있다. 남파랑길 43코스도 이와 같은 남파랑길 진행 의도를 따라 이어진다. 남파랑길 43코스에서 남면로와 다시 만나는 지점은 사촌해변에서 시루봉 자락을 빠져나와 남면로로 올라섰을 때이다. 이곳에서 유구마을로 진입하는 '소나무정' 식당과 '파인블리스' 카페 앞까지 잠시 남면로를 따라 걷다가 해안 언덕의 유구마을로 진입함으로써 자동차가 질주하는 큰 도로를 따라 걷는 일은 더 이상 43코스에서 없다. 이곳에서부터 남파랑길은 해안로와 산길을 따라 평산항과 평산1리회관까지 이어진다.
펜션, 또 펜션, 남파랑길 43코스는 끝없는 펜션의 길이다. 42코스에서도 펜션들이 많았지만 43코스의 펜션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남서대로에서 응봉산 임도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펜션촌은 응봉산 아래 '빛담촌'에서 절정을 이룬다. '빛담촌'은 수많은 펜션들이 자리한 펜션 단지로 남해도를 펜션의 휴양도시로 이름나게 하는 듯하다. 항촌마을, 선구마을, 사촌마을, 유구마을, 모든 곳에서 수많은 펜션의 이름들이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제각각의 이름을 빛낸다. 독특한 펜션 이름들이 난무하여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 유구항에서 평산항으로 가는 해안의 평산제2항 언덕에 '햇살한스푼' 펜션이 기억에 떠오른다.
그 펜션들의 자본과 화려한 외장에 현혹되는 마음을 씻어주는 사랑이야기가 없었다면 43코스는 허당(虛堂)이 되었을 것이다. 사랑은 자칫 비극이 된다. 그러나 비극을 이겨내는 진실한 용기의 사랑이 응봉산 병풍바위 아래 너럭바위의 ‘용발떼죽’ 전설이다. 응봉산 용(龍)이 마을의 절세미인 처녀를 탐내서 그녀를 잡아갔다. 이 처녀를 마음 속으로 짝사랑만 했던 마을 총각이 이 소식을 듣고 상사병에 걸렸다. 어떻게 용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절망에 빠진 총각은 하루하루 몸이 쇠약해져 죽어가는 꼴이 되었다. 이때 총각은 결단한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 총각은 여인을 찾으러 용의 거처 병풍바위 아래 너럭바위로 갔다. 용이 보거나 말거나 총각은 여인의 손을 잡고 너럭바위를 빠져나온다. 용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총각의 그 진실한 사랑의 용기에 감복하여 용은 여인과 총각을 돌려보냈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성취한 ‘용발떼죽’ 이야기가 있었기에 펜션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펜션의 길을 걷는 길손은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풍경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을까? 화려한 빛담촌, 펜션들의 치장에 있을까? 그것 또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랭이지겟길 언덕에서 바라보는 다랭이논배미와 멀리 앵강만 입구와 41코스의 해안선, 빛담촌을 내려가며 바라본 항촌해안과 선구해안, 선구마을 뒷산 언덕에서, 항촌에서 선구로 이어지는 깨자갈몽돌해변, 항촌마을의 안산과 목도를 바라보는 풍경이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처럼 아름다웠다. 선구마을 뒷산 언덕에서 바라보는 사촌해변과 고동산, 사촌해변 위 시루봉에서 바라보는 사촌해변과 선구마을 당산나무 풍경 또한 일품이다. 그리고 유구마을 언덕에서 바라보는 유구마을, 사촌해변, 고동산과 응봉산 암릉 멀리 설흘산 풍경이 어찌 마음을 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유구항으로 가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와 여수항, 유구항 앞바다의 죽도와 소죽도 그리고 망운산 풍경, 이 풍경들이 43코스를 밝혀주는 빛나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남면 홍현리의 초콜렛 펜션에서 언덕을 넘어 남면 선구리로 들어간다.
‘사랑이 이뤄진다’는 응봉산 밑 ‘용발떼죽’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해 날아간 용 이야기
-열 평 남짓 너럭바위에 선명한 용 발자국 남아
남면 선구마을에서 항촌마을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 가면 한 켠으로는 드넓은 남해바다, 맞은 켠으로는 바다 조망이 뛰어나 등산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응봉산을 마주하게 된다. 산 곳곳에 솟은 바위와 날카로운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응봉산은 형세만 보면 투박한 남성을 연상케 하지만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산머리 아래 8부 능선쯤 지고지순하고 애틋한 남녀의 사랑을 담은 전설이 깃든 곳이 있다. 정성을 다해 산능선과 비탈을 오른 뒤 ‘용발떼죽(용발자국)’을 찾아 빌거나 만지면 청춘 남녀의 사랑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전설을 가진 곳, 남면 여행객들의 휴식처인 빛담촌이 소재한 항촌마을이다.
응봉산 8부능선 속에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아직 선명한 흔적이 남아있는 용발떼죽(용발자국)에 담긴 이야기는 이렇다. 아주 먼 옛날 항촌마을 뒷산(지금의 응봉산, 일명 매봉산) 칼바위 정상 아래 열 평 남짓한 너럭바위에 용 한 마리가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용이 살기 시작하면서 뒷산 칼바위는 짙은 운무에 쌓이는 일이 잦았고, 사람들은 자연히 이 산을 오르는 일을 꺼리기 시작했다.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뵈는 뒷산 칼바위 아래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은 용은 어느날 우물에 물을 길러 나온 이 마을 처자를 보게 됐다. 마을에서도 착한 심성으로 칭찬이 자자했던 이 처자는 마음씨 못지않게 외모도 빼어났던 모양이다. 용이 보기에도 한 눈에 찰 정도로 아름다운 처자는 물을 긷다 용에게 낚여 뒷산 칼바위 밑 너럭바위 위, 용의 보금자리로 잡혀갔다. 처자가 용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은 금세 마을에 퍼졌고, 평소 그 처자를 속으로만 연모해 오던 이 마을 총각은 상사병에 걸려 곡기를 끊었고 병세는 갈수록 깊어갔다. 여느 때처럼 자욱한 운무가 뒷산 칼바위를 덮은 어느날 밤, 용에게 잡혀간 처자를 생각하며 시름시름 앓던 총각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병으로 죽으나 용에게 물려 죽으나 죽는 건 매 한 가지다.”
결심을 굳힌 총각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깊은 밤, 뒷산 가파른 비탈길을 올랐다. 짙은 어둠 속 한 치 앞도 뵈지 않는 산비탈은 오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수풀에 긁히고 넝쿨에 걸려 넘어지고 그렇게 온 몸이 찢기고 상처투성이가 된 채 용이 산다는 너럭바위에 오르자 용과 처자가 그 곳에 있었다. 이미 너럭바위까지 오르는 길에 젖먹던 힘까지 쏟아 부은 총각은 마지막 사력을 다해 용 아래 너럭바위에 앉은 처자에게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밀었다. 총각이 처자의 손을 잡는데 용은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만 볼 뿐 미동도 않았다. 온통 처자 생각뿐이었던 총각은 용이 어떻게 하건 말건 처자의 손을 잡고 다시 남은 힘을 짜내 마을로 내려왔다.
용에게 잡혀 갔다던 처자와 피투성이가 돼 마을로 돌아온 총각의 이야기는 뒤늦게 마을에 알려졌고, 뒤에 마을 사람들은 총각이 처자를 데려가는데도 용이 지그시 보고만 있었던 연유를 깊은 밤 험한 사랑, 결기를 갸륵히 여겨 그냥 보고만 있던 게아닐까라고 짐작했다.
이 일이 있은 뒤 용은 뒷산 너럭바위를 떠나 자취를 감췄고, 이때부터 용발떼죽은 사랑을 이루고픈 청춘남녀가 있다면 이 곳에 올라 용발떼죽에 빌거나 만지면 그 사랑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항촌마을 한 어르신의 설명을 덧붙이면 용이 살았다는 칼바위 아래 너럭바위는 마을 어르신들이 어릴 적 땔감하러 산에 올랐다 평평한 용발떼죽 너럭바위에 지게를 벗어놓고 땀을 식히며 낮잠을 청하며 여유를 만끽하던 곳이기도 했고, 이 곳에 살던 용은 바위를 박차고 날아 올라 전남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로 처소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과거 여수와 왕래가 잦았던 이 마을 뱃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실제 이 마을 용이 날아가 자리잡았다는 여수 돌산읍 우두리 해안 절벽에는 용발떼죽 너럭바위에 남은 흔적과 유사한 모양의 날카로운 것에 할퀸 듯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항촌마을 응봉산 산자락에 숨은 용발떼죽 전설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여수 돌산읍 우두리 해안 절벽은 용발떼죽에서 바로 바다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어 맑은 날 용발떼죽 너럭바위에서 여수 쪽을 바라보면 눈으로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용발떼죽 가는 길 : 남해군 남면 항촌마을 위 빛담촌을 통해 오르면 약 30~40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
-신문과 남해여행닷컴에 게재된 내용 발췌
뒤쪽의 구릉은 선구마을 뒷산, 선구마을 당산목 팽나무가 보인다.
남면 임포리의 사촌해변과 평산리의 유구해변의 경계가 바로 앞 시루봉 아래 개천인 듯
남파랑길은 앞의 산 속으로 들어가 숲길을 우회하여 뒤편에 있는 유구선착장으로 넘어간다.
왼쪽에 고동산, 중앙에 시루봉, 오른쪽 맨 뒤에 응봉산
건너편 위쪽은 광양이다.
남파랑길은 바로 앞에서 U턴하여 왼쪽 산길로 들어간다.
바다 건너편 왼쪽은 여수이고, 멀리 위쪽은 광양이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