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돋아나오는 봄이다. 축축한 땅내음과 훈훈한 바람으로 시작되는 봄이지만 언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봄을 알아본다. 고개 숙여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키 식물이지만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오랫동안 쑥을 이용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엇보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민간에서는 쑥떡, 쑥국, 쑥버무리 등 다양한 음식에 쑥을 활용했다. 우리나라 강화도와 거문도는 강화약쑥, 거문도해풍쑥 등이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돼 상품의 가치가 남다르다. 개똥쑥, 인진쑥, 참쑥, 황해쑥 등은 약재로 이용된다.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이라는 성분을 추출하는 연구로 중국 투유유 교수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도로변이나 오염지역 인근의 쑥은 중금속에 노출돼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하천변과 도로변 쑥의 납과 카드뮴 농도가 중금속 허용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경기 화성시에서 발견한 쑥
<채애도(採艾圖), 공재 윤두서 그림>
쑥을 캐는 모습은 옛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 공재 윤두서의 그림에는 두 아낙네가 쑥을 캐는 모습이 담겨있다. 한 명은 허리를 굽혀 나물을 캐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몸을 돌려 다른 나물을 찾는 듯하다. 먼 하늘에서 날개짓하는 새는 봄의 전령사 제비다. 두 아낙네의 오른편에는 개나리가 보이고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시선에 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 버드나무가 보인다. 쑥을 캐는 두 아낙네, 개나리, 버드나무, 그리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암컷 제비는 봄의 기운을 전달한다. 제비의 날개짓은 공중에서 먹이를 취하는 행동이다. 새싹이 나오고 벌과 나비 등 곤충도 활동을 시작하니 제비들이 찾아온 것이다. 나 역시 그림 속의 아낙네처럼 쑥을 캐면서 촉촉한 땅 기운을 받고 날아가는 제비를 보면서 훈훈한 봄기운을 받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요즘이다.
진흙으로 집을 짓는 제비의 모습
제비는 우리나라 농경과 밀접한 생물이다. 제비는 초가집과 기와집의 처마 아래에 진흙과 지푸라기를 이용해 집을 짓는다. 진흙을 떼알로 하나 하나 침으로 이겨서 동글동글하게 붙여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4~5마리 정도의 알을 낳는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제비에 대한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 제비가 문 앞 처마에 집을 짓다보니 뚤방에 둔 신발에 제비똥이 떨어져 있으면 “올해도 제비가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고무신에 제비똥이 묻으면 물로 씻으면 되지만 새로 산 운동화에 떨어진 제비똥은 여간 마음을 서운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새로 산 운동화를 오른쪽 처마 끝에 나 혼자 뒀지만 뚤방에 둔 다른 형제의 신발은 놔두고 내 운동화에만 제비똥이 떨어졌다. 이를 본 다른 형제들은 나를 보고 웃었고 제비 둥지의 새끼들도 “지지배배, 지지배배”하면서 나를 놀리는 듯했다. 실제로는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오니 반가워서 내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제비 둥지를 관찰해보니 우리 5형제처럼 5형제의 제비가 있었고 친근해진 마음에 제비가 커가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제비를 친한 친구처럼 생각했다.
둥지 속 제비의 모습
필자는 제비의 해충구제 효과를 분석한 적이 있다. 2015년 당시 서울시에는 총 650마리의 제비가 서식했고 총 2000만원어치의 해충을 구제해 제비 한 마리당 약 3만원의 해충구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착한 이에게만 금은보화를 준다는 제비가 모든 도시민에게 가져다주는 혜택이었던 셈이다.
도시가 커지면서 제비를 비롯한 많은 생물이 사라지고 이제 서울에서도 제비를 보기는 쉽지 않다. 흥부와 놀부가 제비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가 삶을 바꾼다는 흥부전 이야기는 판소리와 이야기책으로 전래되고 있으나 정작 제비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을 모른다. 올해 3월 15일에 김호균 님은 충남 아산시 곡교천에서 제비를 관찰한 기록을 네이처링 홈페이지에 올렸다. 어떤 생물이든 생물이 서식하는데 중요한 연결고리를 찾아서 우리가 만들어준다면 생물은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다. 도시에서 제비 마릿수가 늘고 흥부놀부전의 주인공 제비를 어린이와 어르신이 함께 보는 사회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