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접종 기(記)
素欣 이한배
코로나 백신 예약하는 날 아들한테서 카톡이 왔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행한 코로나 백신접종 예약 통보서다. 아들은 내게 사전에 연락도 없이 제 맘대로 신청했다. 그것도 백신접종 첫날인 5월 27일이다. 사실 그것이 발표됐을 때 나는 며칠 뒤에 맞아야겠다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내가 맞아야 할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A.Z.)인가 본데 다른 백신보다 부작용이 커서 미국 FDA에서도 승인이 안 났다. 따라서 좀 시일을 두고 상황을 보면서 맞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것도 첫날 떡하니 신청하고 잘했다고 아들이 카톡으로 보낸 것이다.
사실 요즘 스트레스를 받는 것 중 하나가 내가 할 수 있는데 ‘어르신 제가 대신해드릴게요.’ 하는 거다. 밖에 나가서 일을 볼 때면 부쩍 노인네 취급받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나를 생각 해줘서 그런 것이란 생각에 말도 못 하고 혼자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그런데 제 나름대로 부모를 위한답시고 아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 또한 뭐랄 수도 없고 어쩌랴 그냥 넘어가야지….
그렇게 예약하고 나니 백신 부작용에 대한 뉴스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나와 친한 지인의 아버지가 백신 맞고 3주째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맨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다. 뉴스는 그래도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내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렇다고 하니까 더 크게 관심이 갔다. 뉴스마다, sns에서 코로나 백신 이야기만 나오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듣는다. 그러면서 매년 맞는 독감백신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불안은 여전한 것이 TV 뉴스에 나오는 시사평론가들의 말이다. ‘그건 통계일 뿐 그런 부작용이 나에게 오면 나는 100%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덜 안전한 A.Z.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 나를 더욱 불안케 한다.
도대체 정부는 그런 것 하나 제대로 확보 못 하고 자기들 맘대로 이거 맞으라, 저거 맞으라 하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국민에게 알려야 할 것인데 모든 게 베일 속에 있다. 매일 백신을 맞춰주고 있다고 발표하고, 백신은 계속 들어온다고 하는데 백신접종 누계는 한 달이 지나도 한 자릿수를 넘기지 못하고 있으니 갑갑하기만 하다. 또 며칠 전엔 백신은 있는데 주사기가 모자란다고 한다. 백신도 못 구한 주제에 세계에서 제일 좋은 주사기를 생산한다고 떠벌리더니 이제는 주사기가 모자란단다. 그 갈팡질팡이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여태까지는 어떻게 하면 코로나에 안 걸릴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처음에는 정부에서 발표하는 코로나 방역 수칙을 시키는 대로 했었다. 그러나 점점 그것이 믿을 만한 것이 못 됨을 느끼게 되었다. 2m를 띄워라, 다섯 명 이상 모이지 말라 하지만 그런 규칙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아무도 안 만나고 접촉을 안 하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그 또한 장기화하다 보니까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둘이 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이 적고 안전한 곳이 어딜까? 궁리 끝에 찾아낸 곳이 자연휴양림이었다. 대전 근교나 좀 멀더라도 검색해보고 좋다 싶으면 달려갔다. 그것도 주말이나 휴일에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평일에만 갔다. 친구들 모임도 못 하고 만날 수도 없다 보니 아내와 둘이 갑갑하게 집에 있기보다는 걷기운동도 하고 바람도 쐬고 아주 좋았다. 올봄에는 야생화에 빠져 둘이 재미있게 보냈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나름 지혜가 생긴 것이다.
백신을 예약하고 나니 이제는 백신 맞은 뒤에 후유증을 걱정하게 되었다. 코로나 대책마저 정부의 발표가 신뢰를 잃다 보니 많은 것이 오리무중처럼 갑갑하다. 결국 내가 스스로 찾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보고 듣는 것이 다 다르니 맞든 틀리든 내가 종합해서 판단해야 했다. 심지어 유서를 써놓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불안했다.
백신 맞기 하루 전에 불쑥 아들이 내려왔다. 다니는 회사 창립일이 겹쳐서 27~28일 휴가를 얻어 일요일까지 같이 있겠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보니 제 맘대로 예약해서 괘씸했던 마음이 풀린다.
27일 2시에 유서는 안 써놓고 부부가 같이 백신 맞으러 지정병원엘 갔다. 하필이면 유성 오일장이 열리는 골목에 있는 병원이다. 병원 입구도 허름하니 낯설기 그지없다. 게다가 평소에는 있는지도 몰랐었던 병원이라 꺼림칙했다. 병원마저 나를 불안케 한다. 병원문을 열고 들어서니 먼저 온 사람들이 몇 명 앉아 있는데 아는 사람도 있다. 문진표를 작성해 제출하고 기다리며 아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와 비슷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순서대로 불려 들어간다. 우리 부부와 또 한 사람 더해서 세 명이 함께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사가 앞서 들어 간 사람의 문진표를 보고 몇 마디 하더니 우리 부부의 문진표까지 내주면서 접종하란다. 나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해서 약을 계속 먹고 있다. 그래서 문진표에다 먹는 약 이름을 빼곡히 적었다. 독감백신 맞을 때도 물어보는데 이번에는 물어보기는커녕 문진표를 들여다보지도 않다니 순간 황당했다. 끌려(?) 나오면서 간호사한테 물으니 아까 제출 했을 때 의사가 미리 보았단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내 차례가 되어 얼떨결에 백신 주사를 맞았다.
왼쪽 어깨가 따끔하다 싶었는데 다 놨다고 한다.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자기도 A.Z.를 맞았다며 경험담을 자세히 들려준다. 두통이 나거나 열이 날 수 있는데 그때는 해열진통제를 알려 주며 먹으란다. 이미 알고 있어 준비해놨지만, 자세하게 말해 주니 고맙기도 하고 안심이 되었다. 한 10여 분 앉아서 있다가 집으로 왔다. 지옥에 끌려갔다 온 느낌이다.
잠시 후 형제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먼저 맞았어야 할 위로 누님 두 분은 예약했는데 연기됐다 하고는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형제 중에 백신을 제일 먼저 맞는 결과가 됐다. 최초의 경험자에게 괜찮은지 어떤지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친구들 카톡 방에도 올렸더니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본다. 그만큼 국민은 불안한 것이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는 것은 정부의 인센티브 발표 때문이라고 한다. 또 황당한 뉴스를 내보낸다. 그 알량한 인센티브 때문에 목숨 내놓고 불확실한 백신 맞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백신을 맞은 것은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고 빨리 코로나로부터 해방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 인센티브도 혜택을 받으려면 백신접종을 했다는 증명서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백신접종을 하면 그 자리에서 증명서를 써주면 좋을 텐데 안 써줬다.
밤 열 시쯤 되니 아내는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데 나는 약간의 두통과 미열이 났다. 얼른 타이레놀 500㎎을 두 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개운하다. 형제들에게 ‘나 살아 있어’ 하고 문자를 보내니 모두 웃는다. 오후가 되니 또 미열이 있어 타이레놀을 먹고 억지로 낮잠을 자고 났더니 괜찮았다.
또 하루가 지나 3일째 되는 지금은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다. 다만 독감 때처럼 주사 맞은 곳이 뻐근할 뿐이다. 오히려 독감 때는 몸살 기운도 있고 해서 다음날은 조금 힘들었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가볍게 지나가나 싶어 다행이다. 아내는 해열제도 안 먹고 나보다 더 쉽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