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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 2016년 8월 5일(금)
아침 7시에 체크아웃하고 호텔식으로 식사를 마친 후 숙소 바로 앞에 위치한 기차역으로 이동하였다. 숙소를 나서면서 기대감과 걱정이 교차한다. 융프라우 산에 오른다는 설렘과 동시에 두 가지 걱정이 밀려온다. 하나는 점퍼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관계로 추위에 대한 걱정, 그리고 또 하나는 고산증(高山症)에 대한 두려움이다. 따뜻한 점퍼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 그래서 아들과 난 이것저것 얇은 옷을 겹쳐 입고 목도리를 배낭에 넣었다. 한국은 지금쯤 폭염(暴炎)으로 고생하는 시기인데 여기서는 추위를 걱정하고 있으니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여서 알프스의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다. 이곳은 한적한 시골 역의 분위기이며,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 산 정상으로 향하는 두 번째 기차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오늘 우리가 오를 융프라우 정상은 다른 산봉우리들로 가려져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여기서 오늘의 목적지 융프라우에 대하여 정리해본다. 융프라우(Jungfrau: ‘젊은 처녀’라는 뜻으로 해발고도 4,166m)산은 주변에 묀히(Monch:4,158m)봉우리와 아이거(Eiger:4,099m) 봉우리를 형제처럼 거느리고 있는데 유럽의 지붕을 이룬다. 아이거는 영화 ‘노스 페이스’(North Face)로도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등산용품 브랜드 ‘노스페이스’와 관련이 있다. 참고로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몽블랑(4,807m: 프랑스와 이탈리아 접경)이며, 그 외에 몬테로사(4,634m), 마테호른(4,478m: 스위스와 이탈리아 접경) 등이 높은 봉우리를 이룬다.
융프라우를 여기서는 ‘유럽의 최고봉’(Top of Europe)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우랄산맥을 경계로 그 서쪽을 유럽이라고 한다면 유럽의 최고봉은 공식적으로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엘브루스(Elbrus: 5,642m) 산이다. 이 산은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에 위치한 카프카즈 산맥에 위치한다.
우리가 오늘 이용하게 될 기차는 세 가지 종류라고 한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레일의 폭을 갖는 기차, 두 번째는 1m 폭의 좁은 레일에 톱니바퀴 선로가 설치된 기차를 타게 되고, 세 번째는 경사가 급하다보니 레일의 폭이 80Cm로 좁아진다고 한다. 급경사를 극복하고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이른바 아브트(Abt) 식 철도에 해당하는 특수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리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특수철도를 이번에 체험하게 되니 설레는 마음이다.
*아브트(Abt)식 철도: 급경사면에 설치된 기어식 철도. 궤도의 중앙에 깐 기어 형 레일과 기관차, 전차에 설치된 기어가 맞물리게 하여 오르내릴 때의 미끄러짐을 방지한다. 19세기 말 스위스의 아프트(Abt, R.)가 고안하였다.
우리 일행을 실은 기차는 산 정상을 향하여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과거엔 증기기관차였겠지만 지금은 전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깨끗한 공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르막을 가기 때문에 기차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곡은 점점 좁아지며, 깎아지른 듯 절벽이 우리를 압도한다. 그리고 절벽 곳곳에는 여름철 빙하가 녹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데, 운해(雲海)와 함께 몽환(夢幻)적 분위기의 선경(仙境)을 이룬다. 모두가 탄성을 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철길 옆을 흐르는 시냇물은 빗물과 빙하가 녹은 물까지 합해지면서 수량이 크게 늘어났다. 물의 색깔은 전체적으로 청록색에 가까운데, 석회암질 암석의 영향인지 뿌연 잿빛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아레나 강의 지류에 해당하는 이곳의 시냇물은 북서쪽으로 흘러 라인 강에 합류된다. 이런 사실은 나중에 구글(Goole) 지도 검색으로 알아내긴 하였지만, 가이드가 이런 지리적인 안내까지 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협궤(挾軌)철도로 갈아탄 우리 일행은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주변 풍경이 달라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보았던 활엽수가 침엽수로 변하고, 그 보다 높은 고지대에 양과 소를 방목하는 이른바 이목(移牧)의 풍경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온의 수직적 변화에 따라 식생(植生)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다. 침엽수지대를 지나 고산식물을 볼 수 있는데, 다양한 색깔의 야생화가 화려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이 중에는 알프스를 대표하는 에델바이스(Edelweiss)도 분명 있을 것인데,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어릴 적 감동적으로 보았던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배경이 떠오른다. 그 영화의 배경은 ‘오스트리아’였지만 어차피 같은 알프스에 해당하는 곳이다. 해발고도 3,000m 이상부터는 추위 때문에 식물조차 자랄 수 없으며, 이곳에 눈이 쌓여 만년설이라 부르는 빙하를 이룬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암벽과 빙하가 나타났는데,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급경사였다. 여기서부터 기차는 암벽을 뚫어 만든 인공터널을 통과하여 정상에 오르게 된다. 암석을 살펴보니 층리(層理)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퇴적암으로 보이기도 하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변성을 받은 편마암(片麻巖)질 암석이라고 한다. 터널 속에는 정차(停車) 역이 두 군데 있었고 그곳에는 신기하게도 화장실과 전망대까지 갖추고 있었다. 일부러 중간에 쉬는 이유는 고산증을 완화하기 위한 배려일 것 같다. 암벽에 구멍을 뚫어 만든 전망대를 가보았는데, 아쉽게도 눈보라 때문에 산 아래 풍경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산악열차가 드디어 마지막 역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융프라우요흐 역(3454m)이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3,571m의 스핑크스 전망대(Sphinx Observation Terrace)에 도착하였다. 융프라우 정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날씨가 맑으면 알프스 주변 국가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쪽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눈보라가 치는 상황이라 주변 풍경을 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고산지대는 날씨가 수시로 변하고 흐린 날씨가 많기 때문에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어려운 일 같다. 전망대는 실내와 실외공간을 갖추고 있었는데, 실내에는 빙하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빙하궁전’ 이라는 동굴이 있다. 동굴 속에는 조명시설과 군데군데 얼음으로 만든 조각 작품도 놓여있다. 암벽도 뚫어 기찻길을 만들었는데 빙하 정도는 더 쉽게 뚫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융프라우(4,166m) 산악철도 코스안내-정차까지 포함하여 편도 2시간 정도 소요: 인터라켄→빌더스빌→라우터브루넨(796m)→클라이네샤이덱(2061m)→융프라우요흐(3,454m)→(엘리베이터)→스핑크스전망대(3,571m)→(하산)→융프라우요흐→클리이네샤이덱→그린델발트→빌더스빌→인터라켄 [인터라켄에서 라우터브루넨까지는 일반열차를 이용함 / 라우터브루넨에서 클라이네샤이덱까지는 협궤철도(폭1m 톱니바퀴)를 이용함 / 클라이네샤이덱에서 융프라우요흐 까지는 바위를 굴착하여 만든 터널임. 터널 안에는 2개의 정차역이 있으며 협궤철도(폭80Cm 톱니바퀴)를 이용하게 됨]
전망대 아래쪽 전시관에는 융프라우 산악철도 건설 당시에 촬영한 흑백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도구를 사용하여 험준한 산악을 극복하고 터널공사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9년 최초로 경인선(京仁線) 철도가 완성되었으니, 스위스 철도의 역사와 기술력이 훨씬 앞선다 하겠다.
융프라우 철도야말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대공사라 할 만하다. 당시 열악한 도구를 감안한다면 그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융프라우 산악철도 중에 가장 경이로운 업적이라 부를 수 있는 구간은 바로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이어지는 약 9.3Km 구간의 험준한 암벽 터널 구간이다. 이것을 처음으로 기획하고 공사를 시작한 사람은 바로 스위스 ‘철도의 왕’이라 불리는 아돌프 구에르첼러이다.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이 융프라우 정상에 올라 자연의 경이로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 분의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착공 3년 만에 병으로 사망하였기에 그 끝을 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도전할 수 없었던 일을 불굴의 의지로 도전하였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꿈은 후손들의 노력이 보태지면서 끝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또 간과(看過)해서 안 될 사실은 값싼 임금을 받고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일을 해낸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다.
* 아돌프 구에르첼러(Adolf Guyer-Zeller 1839-1899): 스위스 산업계의 거물인 아돌프 구에르 첼러는 알프스를 산책하던 중에 대담한 구상을 떠올린다. <철도의 왕>이라고 불린 그는 아이거-묀히의 암벽을 통과하는 터널을 뚫어 융프라우 정상까지 톱니바퀴 철도를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1893년, 그는 융프라우까지 가는 꿈의 철도를 처음 스케치하였다. 주민들 또한 큰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계획을 지지하였다. 1894년, 주민들의 지지와 그의 노력 덕분에 스위스 연방의회 승인을 획득하였고, 1896년에 건설을 시작하였다. 먼저, 클라이네 샤이텍-아이거글렛쳐 구간은 삽, 곡괭이 그리고 노동력에 의해 건설되었다. 약 100명의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단지 삽과 곡괭이로 일하였다. 2년 후, 45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아이거글렛쳐역 개통 기념식이 치러졌다. 1898년 터널의 암벽 폭파 작업이 시작되었고, 1899년 2월 26일 화약폭발로 6명의 노동자가 희생되기도 하였다. 1899년 4월3일, 아돌프 구에르 첼러가 병으로 사망하여 후손들이 공사를 계속 진행하였다. 1905년 아이스메르역이 개통되었다. 아이스메르역에 관광센터가 문을 열면서 빙하 세계의 장관이 사람들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철도회사의 재정 상태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융프라우 정상까지 철도를 건설한다는 원래 계획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융프라우 바로 아래인 해발 3454m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요흐를 종착역으로 삼기로 한다. 공사기간은 계획보다 길어져 16년이 걸렸고, 드디어 1912년 종착역 융프라우요흐까지 개통하였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동양인들의 자세와, 자연이란 얼마든지 인간의 의지로 극복하며 살 수 있다고 보는 서양인들의 태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고 열등한 것은 아니고,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니 사고방식의 차이는 당연지사라 하겠다.
스핑크스 전망대에 도착하여 우리는 유럽의 최고봉(Top of Europe)이라 쓰여 있는 글씨 앞에서 가족별로 기념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알프스의 눈보라를 체험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보았다. 몇 초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과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여기서도 어렵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의 알레치 빙하(Aletsch Glacier)는 알프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빙하로 폭이 1.6km, 길이가 24㎞이다. 융프라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융프라우 정상 부근의 스핑크스전망대에서 눈보라를 맞고 있는 아들의 모습
산악열차에서 바라보는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
이곳 스핑크스 전망대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고 특히 한국인과 중국인 등 아시아인들이 꽤 많아 보인다. 이곳 매장에서는 여러 가지 음료와 간식을 팔았는데 커피와 컵라면이 많이 팔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컵라면의 경우 한국의 대표상품 ‘신(辛) 라면’이 잘 팔리는 것 같다. 평지보다 훨씬 비싼데도 불구하고 사먹는 것은 허기와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 외에 각자 특별한 장소를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들과 난 한쪽 구석에 앉아 스위스에서 구입한 초콜릿으로 당분을 보충하였다. 아들은 우려했던 고산증세가 약간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뛰는 것 같다고 한다. 곧 하산(下山)한다는 말로 위안을 하였는데,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다른 뾰족한 처방이 없기도 하다.
한참을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낸 후 가이드님의 안내에 따라 열차에 올라 하산을 하게 되었다. 평지를 가는 기차만 타다가 이렇게 산악지대를 수직으로 오르내리니 그 느낌은 달랐다.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는 느낌도 들었다. 내려 올 때는 비가 그치고 운해(雲海)가 산마다 걸려있으니 또 한 번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올라갈 때 코스와 다르게 여러 마을 거치며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바깥풍경 감상을 위해 기차의 창문은 충분히 넓었지만 기차는 느리지만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에 어려움이 느껴진다. 파란 하늘과 산정상부의 하얀색 그리고 산 아래 푸른 초원이 어울리니, 이 여름이 알프스 관광에는 최적의 시간인 것 같다. 만약에 겨울이라면 이곳은 온통 눈 세상이 될 것이니, 여름보다는 훨씬 단순한 풍경이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융프라우의 관광열차는 협궤철도로 레일에 톱니바퀴 장치가 있어 급경사를 오르내릴 수 있다.
융프라우 관광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그림같은 스위스의 산촌 풍경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기에 오전 일정인 융프라우 기차여행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맞추어 숙소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모두들 허기진 상태에서 한국식 된장찌개가 제공되니 모두들 행복한 표정이다. 스위스에서 먹는 된장국은 정말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식사 후 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호텔 매장에서 쇼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다양한 스위스 제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스위스제 시계, 다용도 칼(맥가이버 칼) 등이 눈에 띠었다. 숙소를 나와 버스 주차장까지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는데, 조용한 시골마을 집집마다 창가에는 제라늄으로 보이는 화분을 올려놓았다. 알아보니 이 화초에는 특별한 향이 있어 벌레를 쫓는 목적으로 베란다에 놓아둔다고 한다. 실용적 목적도 있겠지만 시각적으로 주택을 한층 더 예쁘게 보이려는 심미적 목적도 있으리라. 생활 속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스위스 인들의 심성이 느껴진다.
이제 아쉽지만 아름다운 융프라우를 뒤로하고, 전세버스에 올라 다음 나라 이탈리아를 향한다. 오후 3시에 출발한 버스는 인터라켄에서 루체른을 거쳐 남쪽을 향해 달린다. 루체른 호수를 지날 때 가이드님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Sonata)를 언급한다. 베토벤이 이곳에 머물면서 호수에 비친 달빛을 보고 영감(靈感)을 얻어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광이 있었기에 위대한 피아노 음악이 탄생하였으리라.
오늘 숙소인 이탈리아 밀라노까지는 약 280km를 가게 된다고 한다. 가는 도중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감동적이다. 가이드님의 친절한 설명과 아울러 알프스와 관련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배경음악을 들려주니 그저 행복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지니 감성(感性)이 최고조를 이룬다.
난 우리 가이드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마치 FM 음악방송을 듣는 것 같다. 타고난 좋은 목소리에 센스 있는 진행은 여행업계의 베테랑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이것 또한 우리 일행들에게는 행운인 것이다. 여행에 대한 만족도를 결정하는 것은 여행지와 더불어 가이드의 품격이라고 본다. 이번 유럽여행은 여행지 자체가 주는 만족도와 더불어 가이드의 품격이 더해지니 여행에 대한 만족도가 급상승하는 것 같다. 또한 함께하는 일행들 중에 특이한 행동과 불미스런 행동하시는 분이 없으니, 이 또한 모두에게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 관광가이드는 관광지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음악, 미술, 영화 등 문화 예술적 소양까지 갖추어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와 달리 관광객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행업계가 대응했다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여행업계의 무한경쟁 속에서 소비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는 업체가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산허리를 돌고 터널을 지나면서 길은 이어진다. 쾌적한 관광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잘 관리되고 있었다. 스위스가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겨울철 제설작업도 세계최고의 수준을 보인다고 한다.
산과 구릉지마다 초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농부들의 모습이 잘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모든 농사작업을 기계로 하다 보니, 들판에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 축산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방목(放牧)의 특성상 작업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다. 농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없었는데, 운 좋게 축산 분뇨(糞尿)차가 초지에 분뇨를 뿌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친환경적인 목축업의 과정으로 보인다. 스위스에서 가축들은 기본적으로 너른 초지에서 방목으로 길러지니, 최적의 조건에서 건강한 식품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스위스는 선진국답게 사회복지(社會福祉)에 더하여 ‘가축의 복지’까지 달성한 나라인 것 같다. 깨끗한 공기와 물, 아름다운 자연과 순박한 인심, 그리고 체계화된 사회복지 시스템까지 더해지니 국민들은 저절로 장수할 것 같고 행복지수는 최상일 것 같다.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라 하겠다. 이런 천혜의 자연은 그들에게 행운이라 하겠지만, 높은 경제적 수준과 공정한 사회 시스템 구축은 스위스 인들이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라는 말처럼.......
산악지대의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은 ‘스위스 용병(用兵)’을 탄생시켰다. 중세시대 가난한 나라였던 스위스의 젊은이들은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주변 나라의 용병으로 자원하여 돈을 벌어왔다. 그리고 그 종자돈을 이용하여 산지를 개간하고 목초지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 용맹성과 성실성이 진가(眞價)를 드러낸 것은 두 가지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1527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프랑스 연합군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로마를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 다른 군대는 모두 스페인군에 항복을 선언하였으나 최고의 용병으로 구성된 스위스 용병만큼은 달랐다. 187명 가운데 147명이 전사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교황을 보호하며 피신시키는 데 성공한다.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과 충성심에 감동을 한 교황은 이때부터 바티칸 교황청 근위대를 스위스 출신 청년들로 구성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사건은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다. 1792년 프랑스 혁명군이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를 붙잡기 위하여 궁궐을 공격한다. 이 때 수비대는 모두 도망갔지만 스위스용병 780명은 남의 나라 왕과 왕비를 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전원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시민 혁명군이 퇴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도 스위스 용병은 '계약기간이 수개월 남아 있다.'는 이유로 그 제의를 거절했다.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에는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스위스 용병의 신화는 다시 스위스 은행의 신화로 이어진다. 용병들이 송금했던 돈을 관리하는 스위스 은행의 금고는 그야말로 신앙처럼 지켜야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이 나라의 은행은 안전과 신용의 대명사가 되어 세계부호들의 자금을 관리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스위스는 산악 국가이기 때문에 수직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였다. 여기에는 산악철도와 케이블카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지형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터널을 많이 뚫었는데, 이 분야의 기술은 세계적이라고 한다. 1882년 고타드 철도 터널(15km)이 개통됐고, 1980년에 자동차를 위한 고타드 터널(Gotthad Tunnel 16.9km)이 개통되었다. 하지만 2001년 고타드 터널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한 화재로 11명이 사망하였다. 이때 통행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통행방식을 개선한 후 다시 통행이 재개되었다. 터널 안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입구에서부터 5대씩 통과를 시키고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인 것 같다. 터널을 통과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15분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최근에 이곳에 또 하나의 터널이 뚫렸다. 우리 가이드도 전혀 모른 듯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바로 스위스 ‘고타드 베이스 터널’ 대공사가 17년의 대장정을 마치고 2016년 6월 1일 개통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지상으로부터 가장 깊은 철도 터널, 고타드 베이스 터널(GBT)의 길이는 총 57km, 가장 깊은 지점의 깊이는 2300m다. 스위스의 독일어권인 취리히주와 이탈리아권인 티치노주를 연결하는 이 노선은 최대 시속 250km로 달리며 57km의 터널을 20분 만에 주파한다. 새로운 철도터널의 개통으로 기존 철도터널은 아마 관광용으로 이용될 것 같기도 하다. 지형적 장애를 극복해주는 터널은 이후 문화적 차이도 크게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고타드 산맥을 극복하기 위한 터널이 3개나 만들어졌지만 별도의 자동차 고갯길(Gotthad Tunnel Path)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한니발이나 카이사르 같은 정복자들이 넘나들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만약에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을 때 이런 터널을 이용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고타드 터널을 통과한 후 이탈리아에 가기 전 마지막 휴게소에 들러 한참을 쉬었다가 출발한다. 가이드님은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휴게소마다 에스프레소를 시음(試飮)해볼 것을 권하였다. 지역마다 그 맛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비교해 보라고 한다. 커피와 관련된 이름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어이다. 에스프레소(익스프레스), 마끼아또(점), 카푸치노(거품), 라떼(우유), 아메리카노(미국식) 등등........ 개인적으로 커피음료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동안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커피와 관련된 명칭의 뜻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