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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친구를 이렇게 부른다하네. 지금 나 또한 그대의 친구가 되어 그대 큰 외로움을 나누고 싶소. 우주가 동원하여 그댈 돕고 있으니 그저 고마운 일이지. 그대가 들인 정성만큼만 그대의 품속에 남아있기를 소망하오. 그대 커다란 몸에서 울려퍼지는 웃음소리를 가까이서 듣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볼거나! - 셋넷학교 해남 현장학습 4박 5일 이야기 11월 9일(화) 오전 11시, 사당역에서 13명의 망채들과 1명의 교사, 1명의 고급한 운전수(?)가 김영우선생님이 마련해주신 봉고차를 빌려타고 서해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햇볕은 쨍쨍 찐계란은 풍성' 망채들이 집에서 무지막지하게 쪄온 계란을 먹고 트림하고 또 먹고 방귀 뀌고, 졸지에 닭장차로 변한 봉고차 여기저기에서 꼬꼬댁 꼬꼬꼬, 인간과 닭의 사이는 이렇게도 가까웠던가. 가는 길에 잠시 선운사에 들른다. 가을 선운사의 아름다움에 망채들 하염없이 물든다. 너무 좋아요, 하던 송망채가 흥분한 나머지 최망채의 가슴을 더듬는다. 최망채 기뻐서 비명을 지른다. 거시기망채는 진실게임 때문에 2주 전 키스한 사실을 고백하여 모두들 충격에 휩싸인다. 고급한 운전수로 억지로 따라온 윤짱의 유창한 선운사 설명에 모두들 놀란다. 평소 확인되지 않은 폭력전과로 얼룩져있는지라 혼란에 빠진다. 밤 7시 30분, 유기농을 하시는 땅일군부부 양민숙 김석원님 댁에 도착한다. 마당엔 우릴 오래 전부터 기다려온 모닥불이 먼저 우릴 반긴다. 그 불가에 앉아 달디단 환상의 저녁식사에 넋을 잃고 빠져든다.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화장기 하나 없는 방에서 올망쫄망 낄낄대며 해남의 밤을 뒤척인다. 11월 10일(수) 오전,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두 팔 걷어부치고 해남 땅 속에서 비너스를 캐다. 풍요의 상징인 비너스의 조각을 떠올리게하는 고구마들을 들어 올리며 망채들 황홀한 비명을 토해낸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기만 하다. 우릴 해남에 초대해주신 신기교회 박승규목사님의 고구마 밭에 정신없이 빠져들어갈 무렵 비가 쏟아진다. 쾌재를 올리며 망채들 신기교회 교육관으로 뛰어든다. 신기교회는 아담한 작은 교회다. 하지만 하는 일은 많은 아주 큰 교회다.(지역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 등등) 사물에 대해서 좀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던 최망채가 한마디 던진다. 교회답네요. 자슥, 뭘 좀 알긴아네. 비는 다음날 오전까지 계속된다. 해남 읍을 둘러서 다시 숙소로 옮긴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을 벌인다. 11월 11일(목) 비가 내리지만 망채들의 식탐은 계속된다. 선영이가 중국에서 비법을 전수한 마파두부와 금희가 전생에 기억해 두었다던 신비의 된장찌게에 빠져서 망채들 헤어나오지 못한다. 부풀어오른 배를 어쩌지 못하면서도 망채들의 식탐은 그칠 줄 모른 채 장작불 큰 솥이 선사한 누룽지의 고소한 유혹을 끝내 물리치지 못한다. 과거를 버려라, 자신에 충실하고(충)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며(효) 벗들과 믿음(신)으로 지금 여기에서 세상을 맞이하라. 경쟁으로 촘촘히 엮인 세상을 바보처럼 거스르는 김석원선생님이 땅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망채들에게 들려주신다. 세상 모든 나그네들을 위해 비어두었다는 집에서 흑백사진같은 이야기를 망채들에게 나지막하게 건네는 양민숙선생님의 존재자체가 망채들에게는 생명학교의 커다란 울림이다. 부부이자 친구같고, 배움을 나누는 사제지간인가 했더니 함께 몸을 낮춰 노동을 나누는 길동무더라. '땀과 기름에 절어가며/낡아/빛 바래고/너덜너덜해지는 작업복/벗이여/새로움이란/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네/이렇게/거짓없이 낡아 가는 것이네.(김해화, 새로움에 대하여)' 행복한 이들은 시계를 보지않는다 하더니 두 분의 삶 속에서 세상의 힘겨운 시간들은 하릴 없이 등을 돌릴 밖에. 두 분이 소리없이 보듬어 안는 건 땅의 생명 뿐이 아니더라. 새들도 떠난 세상, 홀로 여윈 시간들을 힘겹게 이어가는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위해서 작은 정성이지만 따스한 정을 담아서 망채들과 함께 그분들의 외로운 시간들을 잠시나마 위로한다. 아웅 졸려서 오늘은 여기까지.....망채들아 잘자!
11월 11일(목) 저녁과 밤,
숙소를 신기교회로 옮겼다. 그런데....교회에 웬 스님이? 모두들 깜짝 놀란다. 교회에 매일 오시는 노인들의 몸을 살피시고, 아이들에게 다도를 지도해주신단다. 그래도 그렇지, 스님이 교회를 이렇게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참 아름다운 종교의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이런 모습과 심정과 태도로 만나고 서로 협력한다면 신명나는 세상을 살 수 있을텐데....'부처님도 예수님도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광보사 주지이신 자황스님과 마주 앉는다. 스님을 처음 접하는 망채들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이것저것 되는 질문 안되는 소리를 마구 던지지만 자황스님은 인자한 눈길로 품어앉는다. 나는 즉석에서 스님의 거처를 아이들과 방문하고 싶다고, 스님들의 수행방법인 발우공양을 아이들이 체험해보면 좋겠다고, 그럼 내일 저녁에 오라고, 하면서 명쾌하게 인연을 엮었다. 스님과의 뜻밖의 만남으로 인한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목사님과 사모님은 푸짐한 삼겹살과 야채를 던져놓고는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한 시간 후, 우리 모두는 숙연하고 고요하게 식사를 했다. 감히 누가 떠들겠는가 한 점이라도 더 먹어야지. 그렇지? 혁철아! 제발 한 마디만 해다오.
두륜중학교에서 도덕을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빼빼로를 한 뭉치 들고서. 내일 셋넷과 두륜과의 만남의 형식과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서 오시면서 오늘이 빼빼로 데이인데 셋넷아이들은 아는지 하시며 들고 오셨단다. 은선이 좋아서 입이 찢어진다. 해남의 부드럽고 세세한 기운이 훅 느껴진다. 중1,2,3학년이 각각 한 반씩 전교생이 69명인 작은 학교란다. 내일의 만남을 위해 전교생의 설문지를 받아오셨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1. 탈북 과정이 궁금하다
2. 남한에 와서 느낀 인상은?
3. 북한 언어와 남한 언어의 차이점과 그로 인해 곤란했던 적이 있었나
4. 북한의 청소년들은 여가 시간을 어찌 보내나? 빼빼로 데이같은 게 있나? 동방신기 같은 청소년들의 우상이 있나?
5. 북한 아이들의 경제 상태는 어떤지
6. 북한의 남녀 학생이 어떻게 사귀는지
7. 남남북녀라는데 북한에는 미인이 많은가
8. 북한 학교에서는 어떤 과목들을 배우는가, 북한에서는 남한을 어떻게 가르치나?
9. 북한에서는 대학을 가기위해 어떤 시험을 치뤄야 하는가
10.북한에도 얼짱과 같은 말과 문화가 있는가
11.남한에 와서 나쁜 인상과 기억이 있었는가
12.남한에 와서 언제 고향 생각이 나는지
빼빼로 선생님이 가시고 난 뒤, 둘러앉아 이 내용들을 가지고 진지하게 논의한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답변자를 정하면서 우리 또한 이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던져본다.
1. 대학을 가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은지, 그 이유는?
2. 북한 여자 친구를 사귄다면 어떻겠는가
3. 남한에 오니 모두들 공부만 너무 한다. 그래서 뭐할 건가
4. 학급에 북한에서 온 친구가 들어온다면 어찌하겠는가
5. 학교 마친 뒤, 학원을 가지 않을 때 여가생활은 어떻게 보내는가
6.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학교에서는 통일교육을 어떻게 하는가
와글와글 웅성웅성 방구 뽕뽕 우왕좌왕 꺼억(하동자 트림하는 소리) 우웩~밤은 깊어만 간다.
11월 12일(금)
반갑습네다, 반갑습네다!~쿵짜자 쿵짜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 아싸!
신기교회에서 돌보는 할머니들과 망채들 어울려 한바탕 난장을 벌이는디, 한번 겁나게 놀아보드라고 잉!
카메라를 잡고 있던 대갑이 드뎌 참지 못하고 본색을 드러내는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온몸을 야시시하게 꼬면서 순진한 여망채들을 유혹한다. 선희와 하늘이가 참지 못하고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 할머니들, 난데없는 춤판에 어쩔 줄을 몰라한다.
두륜중학교로 가는 길에 마산초등학교 용전분교에 들른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는 적막했다. 그래도 다시 불씨를 되살리며 한 반 정도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사랑의 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생활한복을 입고 다도를 배우던 중에 아이들은 온몸을 눈으로 만들어서 낯선 이방인들을 호기심으로 바라보지만, 이내 정답게 감겨온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망채들의 얼굴이 환히 빛난다. 최고의 인기는 단연 성일이다. 아이들이 오리들처럼 성일이 뒤를 졸졸 좇아다닌다. 아이들도 아는가 보다. 자기들과 수준이 맞는 사람이 누군지(?)
두륜중학교는 수목원인지 학교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쁘다. 강당(실은 교실 두 개를 텃다. 하지만 창문 너머 두륜산이 보이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교실이다)에서 만난 아이들은 생명으로 충만한 학교를 쏙 빼 닮았다. 우리와의 만남을 위해 학교 시간표 일정을 조정했단다. 분단 이래 처음으로 갖는 평화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준비된 각본과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신화도 없다. 분단을 넘어서서 아주 오래전 하나였던 기억들을 더듬거리며 어색하지만 따뜻하고, 황당하지만 넉넉한 만남을 열어간다.
몹시 바람부는 넓디넓은(완벽한 축구장이 하나 버티고 있고, 건너편에는 울타리도 없이 싱겁게 커다란 나무들이 빈둥거린다)운동장에서 소리치며 뛰놀고, 학교식당에서 마주앉아 착한 웃음들로 배를 채운다. 언니, 오빠의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를 받아 적는다. 오늘은 광혁이의 날이었다! 쫓아와서는 쭈빗쭈빗 손을 마주 잡고는 달아나며 깡충깡충 뛰어오른다. 교실 창문 여기저기서 얼굴들을 보일락 말락 훔쳐보며 꺄르르 낙엽처럼 가벼운 웃음을 흘리는 해남땅 태양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투명한 기쁨으로 온몸이 나른하다.
삼십 분도 채 안되어, 우린 일만 오천 년의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우항리 공룡 화석지에서 상상력을 발휘해보지만 무지막지한 바람때문에 번번히 날라가버린다. 남아있는 발자욱으로 잠시 위대했을 존재의 슬픔을 더듬어본다. 인준아! 찍어라,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
황산면 고천암 철새도래지에서 만난 철새들의 장엄한 하늘쇼에 나와 대갑이, 송림이는 기어코 이성을 잃고 만다. 나머지 망채들은 춥다며 차 안에서 애꿎은 무만 갈아먹는다, 특히 양미와 하늘이. 금희와 선영이는 말할 것도 없지. (확인해본 결과, 하도 무를 먹어서 해남 이후 이들의 다리가 그렇게 되었다지 아마)
광보사는 여느 절과 사뭇 달랐다. 속세의 편리와 수련공간의 엄격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정갈함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경계 모를 자황스님의 너른 품이 다가온다. 발우공양(망채들아, 발우다. 사전 찾아보그라. 낼 검사할끼다). 내가 턱 없이 제안하고도 자신이 없다. 이눔의 망채들이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한 때 생존의 의미로, 지금은 쉼과 여가로만 겪어온 식사가 극도의 수련과정으로 다가서는 불교의식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런지...하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망채들 발우공양이 주는 감동에 빠져들기까지 한다. 스님 옆에서 마음과 정성을 모아 공양에 참여하시는 박목사님을 보면서 잠시나마 이 땅의 참 평화를 느껴본다. 자황스님은 하늘 높이 뜨고 망채들은 출가준비를 서두른다. 나도 미련 없이 확 밀어버려? 도깨비같은 눔들!
11월 13일(토,떠나는 날)
새벽 5시 반, 망채들 땅끝에 서다. 어둠 속 고요히 파도소리 앞에 무심하게 서서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기억해낸다. 조건 없이 그 소중함들에게 고마움으로 함께 한다. 저 멀리서 하늘이 서두는지, 바다가 보채는지 이룰 수 없는 꿈을 날마다 좇으며 붉어진 가슴을 기어코 드러낸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선희는 눈물을 글썽이고, 아득한 고향땅 온성에서 삼천리 거리에 운명처럼 서 있는 송림이도 눈빛이 투명하다. 두 손을 모으고, 허릴 낮추어 떠오르는 해를 향해 선다. 하나 두울 셋 넷, 당당하게! 유연하게! 내가 곧 평화다.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