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지 신총 (天王地神塚)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를탄 선인과 함께 그위에 '天王'이라고 쓰인 묵서 (墨書 )가 있다.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 부인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다. 유화부인은 화백의 딸인데 하백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태백산 ( 정확한 지명이라기 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로 보인다)의 연못 속에 살며 세상의 물길을 다스리는 수신 水神이었다. 유화는 만주의 산이나 강, 숲과 초원에서 자라는 버드나무의 꽃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비로움을 간직한 정령이라고 할 수 있다. 광개토 대왕 재임시에 만들어진 모두루총牟頭婁塚에서는 '하백의 외손자이고 해와 달의 자식'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주몽을 성왕이라고 부름과 동시에 그가 해와 달리 자식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이렇듯 고구려 시조를 둘러싼 많은 기록들은 주몽을 인간 세계에서 한단계 끌어올려 비범한 존재로 묘사 하는데 이를 통해 후세의 고구려인들에게 자신들이 천자의 후손이며 신으로 부터 선택 받은 집단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그뿐아니라 주몽의 존재는해모수로 부터 하늘, 하백으로 부터 물, 유화로 부터 땅 등 농경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기들을 담고 있으면서도 인간들과 교감할 수 있는 존재로 그러져 있다. 즉 우주 만물의 총합체가 주몽인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을 건국 시조에 대해 이러한 신화를 간직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늘의 도움을 받아 고조선을 계승하여 나라를 세웠으며 아울러 우주의 선택과 지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들의 뿌리의 정체성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함으로써 자부심을 가질수 있었고 이는 나라에 대한 강한 충성심으로 이어질수 있었다. 알에서 깨어난 주용은 나이가 들면서 총면하고 뛰어난 아이로 성장하였다. 유화부인은 주몽에게 글을 가르치고 활쏘기 등 무술을 가로 치자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일곱살이 되던 해에는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쓸 정도에 이르렀다. 부여의 금와왕에게는 일곱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재주는 모두 주몽에 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