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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quitting the subject of freedom of opinion, it is fit to take some notice of those who say, that the free expression of all opinions should be permitted, on condition that the manner be temperate, and do not pass the bounds of fair discussion.
의견의 자유에 관한 주제를 끝마치기 전에 모든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은 태도가 절제된 조건에서만 허용되어야 하고 공정한 토론의 한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금 언급하는 것이 합당하다.
Much might be said on the impossibility of fixing where these supposed bounds are to be placed; for if the test be offence to those whose opinion is attacked, I think experience testifies that this offence is given whenever the attack is telling and powerful, and that every opponent who pushes them hard, and whom they find it difficult to answer, appears to them, if he shows any strong feeling on the subject, an intemperate opponent.
소위 이러한 한계들이 어디에 두어져야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시험(=의견에 대한 시험)이 자기의 의견이 공격을 당하는 이들에게 모욕이 된다면 이 모욕은 공격이 효과적이고 강력할 때면 언제나 주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세게 몰아붙이고 대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는 모든 반대자는, 그 주제에 관하여 어떤 강한 감정을 보인다면, 그들(=자기 의견이 공격당하는 이들)에게는 과도한 반대자로 보인다는 것을 경험이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But this, though an important consideration in a practical point of view, merges in a more fundamental objection.
그러나 이것은 실천적인 면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이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의 제기로 합쳐진다.
Undoubtedly the manner of asserting an opinion, even though it be a true one, may be very objectionable, and may justly incur severe censure.
의심할 바 없이 어떤 의견을 주장하는 방식은 그것(=그 의견)이 참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매우 불쾌할 수도 있고 심한 질책을 정당하게 초래할 수도 있다.
But the principal offences of the kind are such as it is mostly impossible, unless by accidental self-betrayal, to bring home to conviction.
그러나 이런 유의 주된 모욕들은 우발적인 자기 현시에 의해서가 아니면 확신에 이르기가 거의 불가능한 그러한 것들이다.
우연히 자기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면 그 의도를 알 수 없어서 모욕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그런 모욕들.
The gravest of them is, to argue sophistically, to suppress facts or arguments, to misstate the elements of the case, or misrepresent the opposite opinion.
그것(=모욕)들 가운데 제일 중대한 것은 궤변적으로 토론하는 것, 사실이나 논제를 압박하는 것, 그 논거의 요소들을 잘못 진술하거나 반대편의 의견을 잘못 표현하는 것이다.
But all this, even to the most aggravated degree, is so continually done in perfect good faith, by persons who are not considered, and in many other respects may not deserve to be considered, ignorant or incompetent, that it is rarely possible on adequate grounds conscientiously to stamp the misrepresentation as morally culpable; and still less could law presume to interfere with this kind of controversial misconduct.
그러나 가장 악화된 정도로 이 모든 것이 무지하고 무능하게 여겨지는, 다른 많은 면에서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완전한 선의의 믿음으로 그렇게 계속적으로 행하여져서 그 잘못 표현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것이라고 양심적으로 낙인 찍기에 합당한 근거들 위에서는 거의 가능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법이 이런 종류의 논란이 되는 불법행위에 개입하는 것을 거의 생각할 수 없다.
With regard to what is commonly meant by intemperate discussion, namely invective, sarcasm, personality, and the like, the denunciation of these weapons would deserve more sympathy if it were ever proposed to interdict them equally to both sides; but it is only desired to restrain the employment of them against the prevailing opinion: against the unprevailing they may not only be used without general disapproval, but will be likely to obtain for him who uses them the praise of honest zeal and righteous indignation.
보통 과도한 토론을 의미하는 것, 즉 욕설, 비꼼, 인신공격과 같은 것들에 관하여는,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이러한 무기들을 금하도록 제안된다면 그것들(=이러한 무기들)에 대한 비난은 더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적인 의견을 반대하는 데에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할 것이 요구될 뿐이다. 지배적이지 않은 의견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반감 없이 사용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사용하는 자가 정직한 열정과 옳은 분노라는 칭찬도 얻을 것이다.
Yet whatever mischief arises from their use, is greatest when they are employed against the comparatively defenceless; and whatever unfair advantage can be derived by any opinion from this mode of asserting it, accrues almost exclusively to received opinions.
하지만 그것들을 사용함으로부터 생겨나는 어떤 피해도 상대적으로 무방비한 자들에 대항하여 사용될 때에 가장 크다. 그리고 그것을 주장하는 방식으로부터 나온 어떤 의견에 의해서 도출될 수 있는 불공정한 이익이 어떤 것이든지 받아들여진 의견들에 거의 배타적으로 축적된다.
The worst offence of this kind which can be committed by a polemic, is to stigmatize those who hold the contrary opinion as bad and immoral men.
격렬한 논쟁에 의해서 저질러질 수 있는 이런 것 가운데 가장 최악의 공격은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을 악하고 부도덕한 사람들로 낙인 찍는 것이다.
To calumny of this sort, those who hold any unpopular opinion are peculiarly exposed, because they are in general few and uninfluential, and nobody but themselves feels much interested in seeing justice done them; but this weapon is, from the nature of the case, denied to those who attack a prevailing opinion: they can neither use it with safety to themselves, nor, if they could, would it do anything but recoil on their own cause.
이런 유의 비방에는 인기 없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특별히 노출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소수이고 영향력이 없고 그들 자신 외에는 누구도 그들에게 행해지는 정의를 보는데 많은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무기(=반대의견을 가진 이들을 악하고 부도덕한 사람들로 낙인찍는 것)는 그 사안의 본질상 지배적인 의견을 공격하는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반동으로 자기 자신의 사건으로 되돌아오는 어떤 것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In general, opinions contrary to those commonly received can only obtain a hearing by studied moderation of language, and the most cautious avoidance of unnecessary offence, from which they hardly ever deviate even in a slight degree without losing ground: while unmeasured vituperation employed on the side of the prevailing opinion, really does deter people from professing contrary opinions, and from listening to those who profess them.
보통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의견들과 반대되는 의견들은 세심하게 계획된 언어의 절제와 근거를 잃지 않으면서 경미한 수준에서조차도 거의 벗어나지 않는 불필요한 공격의 조심스러운 회피에 의해서 듣게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지배적인 의견을 가진 측에 원용된 한정 없는 비방은 실제로 사람들이 반대 의견들을 주장하는 것과 그것들을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듣는 것을 단념시킨다.
For the interest, therefore, of truth and justice, it is far more important to restrain this employment of vituperative language than the other; and, for example, if it were necessary to choose, there would be much more need to discourage offensive attacks on infidelity, than on religion.
그러므로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이러한 비방의 언어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예를 들어 선택할 필요가 있다면 신앙에 대해서보다는 불신앙에 대한 모욕적인 공격들을 훨씬 더 막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It is, however, obvious that law and authority have no business with restraining either, while opinion ought, in every instance, to determine its verdict by the circumstances of the individual case; condemning every one, on whichever side of the argument he places himself, in whose mode of advocacy either want of candour, or malignity, bigotry, or intolerance of feeling manifest themselves; but not inferring these vices from the side which a person takes, though it be the contrary side of the question to our own: and giving merited honour to every one, whatever opinion he may hold, who has calmness to see and honesty to state what his opponents and their opinions really are, exaggerating nothing to their discredit, keeping nothing back which tells, or can be supposed to tell, in their favour.
하지만 법과 권위는 제한하는 데에는 관련이 없는 것 역시 분명하다. 반면에 모든 경우에 의견은 개별적인 경우의 환경에 의해서 그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가 자처하고 있는 쪽이 논쟁의 어느 쪽이든지, 그의 지지의 방식에서 솔직함의 결여나 앙심, 편견이 그 자신들을 드러내는(=...편견을 통해서 그 자신들이 드러나는) 모든 이들을 정죄하면서,
<한 개인이 취한 쪽이> 우리 자신들과는 그 문제의 반대편에 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악덕들을 한 개인이 취한 쪽에서부터 추론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들의 불리함에 대해서 전혀 과장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혹은 말할 수 있을 듯한 어떤 것도 숨기지 않으면서‘
자기의 반대자들과 그들의 의견들이 정말로 무엇인지 보는 진중함과 진술하는 정직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합당한 존경을 표하면서.
This is the real morality of public discussion: and if often violated, I am happy to think that there are many controversialists who to a great extent observe it, and a still greater number who conscientiously strive towards it.
이것이 공공 토론의 참된 도덕이다. 그리고 종종 위반되기는 하지만 그것을 최대한 준수하는 많은 논객들이 있고 그것을 양심적으로 추구하는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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