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8일 흙날 여름이라 해도 좋을 날씨 - 송순옥
며칠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몸은 오늘 아침엔 떨리기 시작한다. 이불 속에 더 있고 싶어하는 몸을 끄집어내서 느릿느릿 씻고 천천히 씹고 아직도 이불 속에 있는 남편을 부른다. 남편 역시 느릿느릿 천천히 2009년 4월 18일의 우리 아침은 늘어진 비디오테잎처럼 시작되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학교로 간다.
8박 9일 일정을 담은 가방만큼 무거원진 몸, 누군가 나를 가방처럼 들어준다면, 살짝 바람을 갖는다. 으슬으슬 추은 몸은 학교차에 싣기까지 줄곧 그렇다. 큰아이들뿐이어서 그런지 아침 시간은 무척 빠르게 움직였다. 차에 올라 한 시간쯤 자고 나니 몸은 가뿐해지고 기분도 한결 좋다. 뜨거운 바깥 바람이 기분을 뜨게 한다.
다훈이도 기분이 좋은지 거친말과 움직임이 보인다. 큰 소리 한 번 내어 다훈이를 가라앉힌다. 참, 작은 말과 짧은 눈빛으로도 아이와 소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다훈이와 나 사아엔 그 만큼의 믿음이 없다. 그렇다고 그 믿음이 쌓일 때까지 아이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큰 소리 한 번 나고 다훈이는 눈물을 글썽이고는 조금 가라앉는다. 말도 애써 가려한다.
여산휴게소에서 아이들이 싸온 도시락과 우동 여섯 그릇을 사서 즐겁고 행복한 점심을 먹었다. 전선생님이 운전하던 차를 재흠이 아버지가 운전하고 5분쯤 가려는데 영웅이가 눈이 가렵다면 비비기 시작한다. 알러지인 듯싶다. 차를 세워 바쁜데로 먹는 물로 눈을 씻게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조금 가서 영웅이가 눈이 부었다고 하소연한다. 살펴보니 결막이 부풀어 흰 동자를 덮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아이, 빨리 병원에 가야한다. 앞서 가는 왕선생님께 병원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아픔으로 몸부림하는 아이를 달래며 전주시내 끝의 아파트 단지로 간다. 아이는 아픈데 왕선생님은 자꾸 자꾸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길을 잘 못 들었나? 하는 생각에 잠시 걱정이다. 내려서 보니 여기가 이다네 동네란다. 때에 맞게 짧은 순간에 일을 헤아리는 힘이 큰 왕선생님!! 참 예쁘다.
덕분에 전주시내 안과를 쉽게 찾았다. 토요일 점심때 들른 병원엔 아픈 사람들로 가득했고 영웅이는 줄곧 괴로워한다. 눈을 비비지 않도록 손을 꽉 잡고 등을 쓸어준다. 안쓰럽다. 어린아이가 간지러움과 아픔을 참기 어려울 텐데, 대신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의사선생님이 영웅이를 보더니 알러지성 결막염이라 한다. 꽃가루와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고 혹시 숨이 가쁘거나 목소리가 달라지면 응급실로 가라한다. 그럴 리 없기를 바라며 약국으로 간다. 약을 먹고 눈에 넣고 아이는 덜 힘들어 한다. 얼굴빛도 훨씬 좋아진다. 마음이 놓인다.
4월 18일 둘째날
어제 잠을 못 이루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며 뒤척이는 정수, 간지럽다면 목을 긁는 영웅, 줄곧 이야기를 하며 다른 아이들의 잠에 헤살을 놓는 다훈, 눈을 멀뚱 멀뚱 뜨고 있는 재명, 첫날 어렵게 아이들을 재우고 잠시 눈을 붙이려하는데 변소에 가는 인지, 다섯 시에 깨서 몸으로 부침을 부치는 정수, 정수는 30분쯤 지나자 명수에게 이야기를 시킨다. 여섯 시가 되자 한 녀석, 두 녀석 깨어 잠집은 술렁인다. 덕분에 잠주머니 속에서 몸을 빼내 밖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 이야기를 한다. 아침에 왜 일곱 시까지 자야하는 지...
다시 들어와 잠을 자려 애쓰지만 이미 저 너머로 잠은 달아나고 몸은 고달프다. 아침을 일찍 먹고 9시가 못돼 매실산으로 간다. 녹차 따러. 왕선생님이 우전 따는 것을 알려주시고 우리는 모두 왕선생님의 손끝을 본다. 차나무 위로 연한 속살을 부끄러운 듯 내 보낸 녀석들, 녀석들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가볍게 힘을 준다. “드악” 차나무에서 작은 외마디 소리가 들린다. 잠시 미안한 마음에 손이 주춤한다.
둘, 셋씩 짝을 지어 아이들이 일을 한다. 수다 반, 녹차 반, 비닐봉지 가득 수다가 들썩인다. 녹차가 춤을 춘다. 땀 흘려 애써 일하는 아이들, 조금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저 아이들 작은 몸 구석 구석에 땀의 가치가 스며들고 있다. 아이들 삶에 저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그 가치가 스며 어른이 되었을 때 그것을 꺼내 펼쳐 삶을 풍요롭고 단단하게 하리라.
점심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산자락 아래 바람이 얼굴을 시원하게 어루만진다. 목을 스치는 바람, 턱으로 흐르는 바람, 시끄럽게 흐르는 아이들의 웃음, 참 넉넉한 이 곳.
점심 먹기 전까진 즐겁게 조잘거리며 녹차를 따던 아이들이 이제는 하나 둘씩 지루함에 그늘 아래 수다로 숨어버린다. “선생님, 반 봉지만 채우면 돼요?” “선생님 대나무 베러 언제 가요?” “선생님 몇 시까지 따야 돼요?” 4월 봄볕 아래, 고단함이 스물스물 아이들을 늘어지게 한다. 소리 지르는 아이, 우는 아이,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로 바람 숨소리조차 잠자던 성두마을 녹차밭이 술렁인다. 그럼에도 줄곧 일하는 맛에 빠져 한 자리에 앉아 녹차나무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세 시까지 딴 녹차가 커다란 양은 대야로 하나 가득하다. 참 대견한 아이들,
잠시 쉬었다가 4시부터 녹차를 덖기 시작했다. 커다란 솥을 달구어 녹차 잎을 넣고 타닥타닥 소리가 나도록 볶는다. 뜨거운 녹차 잎을 알사탕만한 크기가 될 만큼 집어 손바닥으로 동글동글 비비면 녹차진이 빠지며 손에 초록녹말이 묻어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땀이 나고 팔이 아프다. 사실 속이 울렁거리기도 한다. ‘아, 눕고 싶다.’ 살짝 빠져나와 아이들 몰래 냉장고에 기대어 잠깐 몸을 쉰다. 시간은 여섯 시를 넘어 배고픔에 고단함에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일곱 번만 볶자는 왕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아홉 번을 다 하자고 한다. 시작한 일, 끝을 보려는 아이들이 참 자랑스럽다. 아홉 번 손이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아홉 번이 이렇게 많은 정성과 애를 써야 할 것이라는 것은 몰랐다. 쉽게 사서 쉽게 마시던 차, 차를 만든 이들 모두에게 고마움이 든다. 딸 땐 몰랐던 녹차 향이 볶으니 참으로 진하고 상큼하다. 오늘 덖은 차를 우려 마셨는데 참 그향이 옅으면서도 깊고, 색은 맑고 맛은... 모두 마셔봐야 이 맛을 안다.
4월 19일 셋째 날
곡우, 마른 땅에 갈증을 풀어주는 봄비가 내린다. 센 바람에 악양들판 보리는 은빛 머리를 흔들어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둔다. 저마다 비옷을 입고 지리산 피아골 가운데 연곡사에 발걸음을 멈춘다. 국보 두 개, 보물 여덟 개를 가진 절, 동부도와 북부도 탑 끝에 자리한 날개 활짝 편 이름 모를 새가 비를 가슴으로 맞으며 날고자 한다. 발걸음 빠른 아이들은 조잘 조잘 앞서 가고 아이들 뒤로 바위와 하나 된 나무가 높은 하늘을 그리워하며 자라고 있다. 옆구리 한 귀퉁이를 바위와 한 몸으로 붙인 자작나무 한 그루. 전생에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랑의 여인을 찾아 지리산 자락에 날려 바위가 된 그녀 옆에서 싹 텄을까? 둘의 사랑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를 한 듯 꼭 끌어안고 있다. 세월도 그들을 떨어트리진 못하리라. 세월이 갈수록 그들의 사랑은 더 단단해지리라.
북부도를 보고 돌아내려 오는 길,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도토리나무를 타고 작은 폭포가 떨어진다. 어머니 젖을 기다리는 아이마냥 그 아래 서서 한 참을 올려다본다. 두 손 오므려 떨어지는 폭포 물을 받아 마신다. 어머니의 몸을 타고 나온 젖이 어머니의 냄새를 주듯 도토리나무 냄새가 손 안 가득, 입 안 가득 찬다.
법당에서 삼배를 하고 바쁠 것도 없지만 바쁘게 움직여 고소산성 오르는 길에 내려 바람 한 번 맞고 잠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저기서 날씨를 원망하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섬진강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모두 투덜투덜 몸도 마음도 차 안에 널브러진다. 잠집 가득 투덜거림이 둥둥 떠 있다. 제 때 꼭 필요한 비가 내렸지만 아이들에겐 너무 슬픈 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