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정] 길에 대한 사색
아광(阿光) 고광록
“불교는 길(路)뿐 아니라 법(法)까지 도(道)라고 여긴다”
“단순히 이름을 명명(命名)하는 것이 아닌 서사(敍事)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길을 나선다. 봄길은 걷기에 더없이 좋다. 그동안 무심코 다니면서 지나쳤던 풍광이 새롭게 다가온다. 강릉 바우길 이사장을 맡으면서 변화된 내 일상이다.
지난번에는 고향마을을 통과하는 코스였다. 길숲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생명을 깨우는 듯했고, 얼굴에 와닿는 바람은 아이의 숨결 같았다. 어릴적 함께 놀던 친구들이 금방이라도 산모퉁이에서 뛰어나올 것 같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건강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길옆에 피어있는 야생화의 이름을 알아가고, 각종의 나물이나 약초의 구분과 민간요법을 배우는 것은 바우길 걷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제부터 토요일은 다른 일정을 잡지 않으려고 한다.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순례자>는 걷기 열풍을 불러왔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지친 사람들에게 영혼의 쉼터가 되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한 달씩 걸으러 가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카미고 데 산티아고’는 기독교 3대 성인인 성(聖)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다.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 서부까지 이어지는 가장 긴 코스는 무려 800km나 된다. 그 여정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성찰하는 순례자가 된다. 단순히 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제주 올레’도 이제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하나의 문화이자 트렌드가 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코스를 이어가며 올레길이나 해파랑길을 걷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지자체도 앞장서 길 만들기 경쟁에 나섰으며, 독특한 색채가 담긴 이름의 길 대부분이 이때 생겨났다.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길과 인연이 많다. 길(路)뿐 아니라 법(法)까지 도(道)라고 여긴다. 우리나라 절집은 어디나 할 것 없이 빼어난 길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곳에 서면 어떤 형식이나 기도에 관계없이 그윽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월정사 ‘전나무길’과 ‘선재길’, 해인사의 ‘가야산 소리길’ 등 산문을 잇는 다양한 길들은 이미 절집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불교가 우리 삶에 스며든 것이 2000년 가까운 시간이다. 산하에 배인 절(寺)과 산사(山寺), 고승(高僧)들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가슴에 와닿는 서사(敍事)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산티아고 가는 길도 서사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감동을 준 다큐가 있었기에 지금과 같을 수 있었다. 월정사 선재길에 나옹선사, 한암스님, 세조의 순행, 조선왕조실록 봉안 행차 등의 스토리가 입혀질 때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길이 될 수 있다.
▣오대산 선재길
불교의 명상은 현대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걷기명상은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불교 이야기가 담긴 길이 명소가 되고, 사람들에게 종교를 초월한 로망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주말에도 길을 나설 계획이다. 384.3km 바우길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명상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저절로 가는 길에서 절(불교)로 가는 길을 안내받을 것이다. 일본 시코쿠의 1200km 사찰순례길 ‘오헨로’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대표하는 불교의 길을 생각 속에 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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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광(阿光) 고광록(1961~) 강릉 출생
강릉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법무법인 율곡/대표 변호사
·불교신문 논설위원
·오대산 월정사 신도회장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환수
위원회 집행위원장
·강릉시 사회갈등조정위원회 위원장
으로 활동 중...
첫댓글 아광(阿光) 고광록님의 [수미산정] 길에 대한 사색
예향도 불자이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글을 많이 봅니다
수미산 하면 부처님이 되신 분들이 계시는 곳으로 압니다
요즘은 영상을 하면서 걷는 사람이 많아져서
산티아고의 순례자들도 많지만
우리 불자들도 명상을 하며 걷는 길이 많아져서
참으로 좋은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완연한 겨울 날씨입니다
추위에 건강 유의하시기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