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애완수필】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지환이 할아버지
【글 순서】
◆ 제1화 생명 키우기 1 ― 손자와 나누는 귀여운 ‘햄스터 이야기’
◆ 제2화 생명 키우기 2 ― 두 아들과 함께 키운 예쁜 ‘병아리 이야기’
◆ 제3화 생명 키우기 3 ― 두 아들과 함께 키운 귀여운 ‘토끼 이야기’
◆ 제4화 생명 키우기 4 ― 어떤 고양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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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화
생명 키우기 1
― 손자와 나누는 귀여운 ‘햄스터 이야기’
윤승원 수필문학인, 지환이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가 뭘 샀는지 아세요?”
초등학생 손자가 보내온 반가운 카톡이다. 손자의 문자에서 약간의 흥분이 묻어난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일상적인 언어에서 기분 상태가 어떤지 금세 알아차린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손잡고 다닌 손자다. 숨소리에서부터 말투까지 기분 상태가 느낌으로 전해 온다.
뭘 샀는지 할아버지에게 맞혀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손자의 기분이 고조돼 있음을 짐작게 한다.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한 질문이다.
“뭘 샀는데?”
할아버지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퀴즈. 손자도 급하다. 힌트도 주지 않고 답을 먼저 말해 버린다. 그만큼 빨리 할아버지에게 전해할 ‘긴급 속보’다.
“햄스터!!!!!”
카톡 문자에 느낌표가 자그마치 다섯 개나 붙었다. 손자의 들뜬 기분을 짐작하게 하는 느낌표 다섯 개.
곧바로 보내온 ‘햄스터’ 모습!
▲ 손자가 카톡으로 보내온 귀여운 햄스터(사진=손자 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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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도 놀라웠다.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바쁘기만 한 손자가 ‘햄스터’라니. 할아버지의 궁금증이 증폭됐다.
“와, 햄스터 키우기가 쉽지 않을 텐데, 아빠가 사줬니?”
영리한 손자는 ‘엄마’를 빼놓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사줬어요.”
할아버지는 무언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손자와의 대화는 이렇게 즐겁다.
“햄스터 귀엽다. 먹이를 어떻게 먹고 잠은 어떻게 자는지 관찰 일기를 써봐. 할아버지에게도 보여주고. 응?”
“네”
손자의 대답은 짧았지만 즐거움이 넘친다. 앞으로 전개될 흥미로운 ‘햄스터 이야기’에 할아버지는 기대감이 넘친다.
하루가 지났다. 월요일을 맞으니 손자의 일상은 또 바쁘다.
따로 떨어져 사는 할아버지는 궁금한 게 많다. 손자가 햄스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하지만 물어볼 방법이 없다.
주중에는 학습에 방해가 될까 싶어 손자에게 일체 카톡도, 이메일도 보내지 않는다.
그 대신 인공지능과 대화한다. 먼저 햄스터 그림을 부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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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대한민국 초등학교 5학년생 손자가 가정에서 반려동물인 햄스터를 귀여워하면서 먹이를 주고 사랑스럽게 대화하는 장면을 그려줘요.
▲ 그린 장면입니다. 손자가 햄스터를 사랑스럽게 대하며 먹이를 주는 따뜻한 순간이 잘 담긴 것 같아요. 마음에 드시나요? (그림=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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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햄스터를 손으로 만지면 물리거나 달아나기 쉽고 관리가 어려우니까 햄스터 우리를 만들어 쳇바퀴 돌리기 장비를 설치해준 장면을 그려줘요.
▲ 새로운 장면입니다. 손자가 햄스터 우리에 쳇바퀴를 설치하면서 정성스럽게 돌봐주는 모습이 잘 담긴 것 같아요. 수정할 부분이 있을까요?(그림=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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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햄스터를 흰색 털로 수정해줘요.
▲ 햄스터의 털을 흰색으로 수정했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괜찮으신가요? (그림=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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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잘 그렸어요.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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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이야기를 이어오다가 할아버지는 문득 과거 두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 떠올랐다. 지환이 아빠와 삼촌 이야기다.
<생명 키우기> 제목의 수필도 썼다. 방송 수필이다. 암, 그렇지! 손자에게도 들려줘야지.
지환 아빠와 삼촌이 초등학교 다닐 때 <생명 키우기>를 어떻게 했는지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당시 할아버지는 30대 후반, 지환 아빠는 열 살, 지환이 삼촌은 여덟 살. 두 아들이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사 온 병아리 두 마리를 어떻게 키웠는지 살펴보자.
※ 1991.1.28. KBS 1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에서 방송된 할아버지 수필 『생명 키우기』이다.
▲ 윤승원 방송 수필 녹음테이프(1991. KBS 1라디오)
▶ ‘생명 키우기 - 제2화’(병아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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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화
생명 키우기 2
― 두 아들과 함께 키운 예쁜 ‘병아리 이야기’(1991)
윤승원 경찰관, 두 아들의 아버지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라면 한 식구같이 좋아했던 내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왠지 귀찮게 느껴졌다. 손쉽게 기를 수 있는 강아지 한 마리도 사다 놓지 않았다.
물론 도시의 주거 여건이 가축을 가르기엔 적합하지도 않지만, 그보다는 고만고만한 두 아이 때문에 바깥에 있는 동물까지 신경 쓰기가 싫었다.
이젠 그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다닌다. 그런데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가게에서 노란 병아리 두 마리를 사 가지고 왔다.
▲ 학교 앞에서 두 아들이 사온 병아리 두 마리(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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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갓 깨어난 아주 작은놈은 2백 원, 그보다 좀 큰놈은 3백 원을 주었다고 한다. 노란 솜털이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아이는 라면상자에 구멍을 뚫어 놓고 보듬어 주면서 한번 잘 키워보겠다고 결심이 대단했다.
조금 큰놈은 형의 것이고, 작은놈은 동생의 것으로 하자고 하면서 각기 관리 책임자까지 지정했다. 밖에다 놓으면 쥐가 물어 간다고 마루에 들여놓았는데 놈들이 몹시도 삐악거렸다.
심하게 보채는 어린애 하나를 또 얻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처럼 그것들이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앙증스럽기만 하여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종지에 물을 넣어주면 한 모금 찍어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모습이란 정말 귀여운 것이었다.
그런데 사흘이 안 되어 큰놈 한 마리가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것을 본 아이가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말을 잊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윽고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병아리가 죽은 이유를 내게 물었다. 하지만 이 어린 생명의 돌연한 죽음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어린 것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극히 상식적인 말로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그 뒤로 살아남은 어린 생명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다. 어찌 보면 하찮은 생명이다. 그러나 행여 또 어떻게 될까 봐 애지중지 보살피는 동심이 그저 가상(嘉尙)하기만 했다.
어느덧 중닭이 다 되어 라면상자로는 부족했다. 좁은 공간이지만 화단의 가장자리에 닭장을 지어주기로 했다. 철물점에 몇 차례 다녀오는 날더러 재룟값이 더 많이 들겠다고 아내는 한마디 했다.
그래도 나는 동심처럼 즐거웠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못 여기 있어요. 망치는 여기 있고요.”라고 하면서 거들어주었다.
아마추어 실력으로 온종일 매달려야 했지만, 아이들이 더 열심히 도와주었으니 기실 나 혼자 지은 닭장이랄 수도 없다.
홰까지 하나 걸쳐 놓으니 닭이 껑충 뛰어오른다.
▲ 화단에 닭장을 만들어 놓고 두 아들이 키웠던 장닭(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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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손뼉을 쳤다. 그러나 나는 부질없는 걱정을 해보았다. 이놈을 언제까지 키워야 할 것이냐 하는 생각이었다.
아내는 벌써 잔털이 날리고 배설물 치우기가 귀찮다고 성화다. 하지만 아이들 보는 앞에서 나는 닭을 잡아먹지는 못할 것만 같다.
살생을 금하는 불자(佛子)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키운 저 생명을 내 손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난 안다. 옛 어른들의 가르침은 얼마나 엄격하였는가.
닭 한 마리 잡을 때도 아이들을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고, 아이를 데리고 칼질하는 고깃간 앞을 돌아서 다니기도 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심성이 어릴 때부터 키워진다고 할 때, 잔혹한 장면을 무심코 보고 자란 아이들의 충동성 범죄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천명(天命)을 다할 때까지 닭을 기를 수는 없다. 갑자기 그런 작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제안했다.
“아빠, 닭이 좀 더 크면 예쁜 토끼 새끼와 바꿔다 길러요. 토끼 기르는 내 친구가 있거든요.”
기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토끼 다음엔 또 어떤 생명을 키워야 하나? 아직 거기까지 걱정하진 말기로 하자.
아이들이 생명 귀한 줄 알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심성 착하게 커 주면 그뿐이니까. ♣ (1991.1.28. KBS 1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
▶ ‘생명 키우기 - 제3화’(토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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