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로베니아의 어느 시가지 풍경, 시인 박물관
블레드 호수의 환상적인 물 위를 유람하고, 비행기 예약시간이 좀 남아 어느 시가지에 갔다. 지명은 정확히 모르지만, 슬로베니아의 어느 중소도시인 듯 하다. 제법 도시 냄새를 풍기는 곳에서 슬로베니아 여자 가이드는, 20세의 다마르라는 이름의 그녀는 우리들보다 더 신기한 눈으로 도심 풍경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가로수도 없고 볕은 따갑고, 마땅한 쇼핑가도 없는데 그녀는 연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우리를 끌고 다닌다. 그러다가 슬로베니아 시인 박물관(프레쉐렌.민족시인) 앞에 멈추었다. 고인이 된 이 국가의 한 남자 시인이라며,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흉상과 유품을 둘러보았다. 바로 곁의 교회 마당에는 그 시인의 생시 모습이 거대한 상으로 세워져 있다. 어느 곳에서는 문인은, 생시든 사후든 추앙받는 대상임을 새삼 깨달으며, 나 또한 이 지구상의 한 문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끼며, 아울러 사명에 충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혼혈족이 많다. 가이드인 다마르도 부친은 이탈리아인이고 모친은 오스트리아인이라 한다. 스스로 자인한다. 한국인은 단일민족이지만, 자기네 나라는 여러 나라의 피가 섞인 혼혈족이라고. 와인과 쵸콜렛을 좋아하고, 그래서 국민성이 낙천적이라고, 모두 맞는 것 같다. 지금도 그녀는 보헤미안 집시처럼 웃으며 혼자 싱글벙글이다. 한국으로 치면 어느 면 소재나 읍 소재지 정도의 작은 시가지인데, 그녀의 낭만적인 걸음으로 우린 괜스레 골목을 쏘다닌다. 상가에선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아 불편했다.
은행에 가서 슬로베니아 화폐로 환전해 오라는데 절차가 불편하여 그냥 나오곤 했다. 날씨가 상당히 덥다. 거리에는 한 그루의 가로수가 없다. 어느 상가의 야외 의자에서, 박영자 사인님이 남은 슬로베니아 동원을 다 쓰고 가려고 직원에게 주며 쥬스를 달라 하니 4개 중 3개를 집어가고 1개는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원하는 아이스 오렌지 쥬스를 가져다 준다.
정직하고 순진하며 평화로운 국민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모두들 하찮은 일이지만 한 마디씩 그 청년을 칭찬했다. 그것은 대충 계산으로 인구 밀도가 한국보다 3배나 낮아 한적하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생활에서 형성된 관습인 듯하다. 마지막 아름다운 기억으로 슬로베니아의 여행은 막을 내렸다.
슬로베니아의 어느 시가지 풍경..목가적인 가이드, 그녀가 우리보다 더 행복한 걸음으로 끌고다닌 곳
슬로베니아 시가지, 시인 박물관-재등록(2017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