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의 정원을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였다.
나도 화가 모리처럼 늘그막엔 정원을 벗 삼아 살아야겠다고
모리의 정원은 2018년에 일본에서 만든 영화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도시의 팽창과 개발 그로 인한 과거의 흔적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갈 때 모리씨의 집도 개발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 앞에 대단위 공동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주변 건물도 신식 주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모리씨는 오래된 고택을 고집하였다.
그의 집은 오래된 고택답게 울창한 정원수가 가득하고 그 사이에 아기자기한 식물들이 아름다운 집이다.
주변 사람들의 집요한 권유와 유혹에도 꿈쩍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집하는 모리씨의 하루는
엉덩이에 가죽털 뭉치를 매달고 정원을 나선다.
걷다가 뭔가 눈에 보이면 그 자리에 털쩍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들여다본다.
작은 돌멩이 하날 들고 반나절을 꼼짝 않고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괴이하기까지 하다.
젊은 사진작가가 그의 행적을 취재하기 위해 모리의 동선을 따라간다.
처음엔 모리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점점 모리의 입장에서 주변 사물을 바라보면서 모리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나중엔 그도 모리처럼 하루를 보내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감흥에 사로잡힌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리의 괴이한 하루하루를 일상에 담는 것이 다다.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대단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아가 나 역시 그처럼 작은 벌레와 풀꽃들 그리고 연못에서 헤엄치는 별스럽지 않은 물고기를
바라보며 노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요즘 시간 날 때마다 모리의 연못을 흉내 내고 있다.
마을 공용 물탱크가 있었던 곳인데 주변 지형에 비해 움푹 파여있어 연못 자리론 최적의 장소라 생각했다.
일단 도로와의 차단을 위해 석축을 쌓고 그 위에 헌기와를 쌓았다.
도로에선 약 1.5m 남짓해서 어른 기준으로 까치발을 들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안에서 보면 기와담 아래에 쌓은 석축까지 합하면 2m가 넘는다.
조금은 높다는 생각이 들지만 담장 아래에 식물을 가꿔 타고 올라가도록 하면 더 없는 운치가 될 것으로 본다.
끄적 꺼리듯 구상한 정원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걸 실현하는 일은 엄청난 노동이 요구된다.
장비를 불러다 시키면 사나흘 만에 끝날 일이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섬세한 부분을 놓친다.
석축 겸 돌담이 될 하부 재료는 기존에 물탱크와의 한옥과의 경계 담을 헐어 사용하고 있다.
헌 기와는 오래전부터 보관하고 있던 것을 재활용하고 있다.
오후 5시에 퇴근해 한옥에 도착하면 오후 6시다.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하면 오후 6시 30분쯤 된다.
돌담을 헐고 그것을 원하는 장소로 옮기고 구상한 대로 돌담을 쌓는다.
돌담의 높이는 외부 도로면에 맞췄다. 안쪽에선 평균 90cm 정도가 된다.
그 위에 헌 기와 중 수키와를 담장 폭에 맞춰 일정한 높이로 쌓았다. 바깥 도로가 C커브 경사로여서
거기에 맞춰 담장을 쌓다 보니 자연스럽게 층단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생각처럼 쉽진 않다. 돌담을 쌓기 위해선 거기에 적합한 납작하고 뒤뿌리가 긴 것들이어야 좋은데
14년 전 한옥을 지으면서 급하게 구하다 보니 발파석을 굴린 돌들이다. 그야말로 돌담으론 도무시 쓰지 못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한 줄 한 단 쌓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나마 그동안 돌담을 쌓고 부수고 다시 쌓고 하였던 터라 나름
어떻게 쌓아야 무너지지 않을지는 안다. 그래도 돌은 돌이다. 무겁고 거칠고 자칫 발등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늦은 오후에 시작된 일이니 가로등과 옥외등에 의지해 밤중에 주로 작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한낮이었다면 뜨거운 태양을 피할 방법이 없고 더위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겠지만 그나마 그런 것을 모면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한 열흘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진행되는 정원확장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팔다리 허리 어디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아프고 당긴다. 자고 나면 관절이 뻣뻣해져 잘 구푸려지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중단할 수 없는 일이어서 오후가 되면 다시 몸을 풀고 일에 전념한다.
힘든 일은 거짐 끝났다.
이제부턴 섬세하고 세밀한 공정이 남았다.
물을 끌어들이고 연못을 파고 방수포를 까는 일이다.
물은 이우재 달못으로 유입되는 물을 파이프를 통해 끌어왔다.
물이 파이프를 타고 확장 연지로 들어오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연지를 원하는 깊이로 파 내는 일인데 이건 삽질에 이골이 나서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일단 연지를 파고 거기에 물을 가두기 위해선 방수포를 깔아야 한다.
그것을 쓰지 않고 물이 새지 않으면 금상첨화지만 뻘이 아닌 이상 첨부터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연지 바닥에 먼저 토목 전용 부직포를 깔고 그 위에 단열용 부직포를 한 겹 깐다. 다시 그 위에 방수포를 깔고 다시 단열용 부직포를 깔아준다. 여기서 말하는 단열용 부직포란 건물용이 아니라 우사나 닭장 같은 지붕이나 벽면에 덮는 산업용 부직포를 말한다.
이걸 깔아주는 이유는 마지막에 연지 내벽에 돌을 쌓아야 하는 데 돌을 쌓다 보면 충격에 의해 방수포가 찢어질 수 있다.
이때 완충재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제대로 된 방수포는 연지나 습지 조성 시 사용하는 토목용 방수포를 사용하거나 또는 일반
가정용 연지를 조성할 때 사용하는 잘 찢어지지 않는 수입 방수포를 쓴다. 하우스용 비닐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잘 찢어지고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본인은 현장에서 목재 훈증을 위해 사용하는 특수 포장비닐을 재활용한다.
앞으로 남은 공정은 연지를 파고 앞에서 설명한 대로 방수처리를 하는 일이다.
이 일은 급하게 서둘러선 안 되는 과정이라 앞으로 시간 될 때마다 천천히 진행할 계획이다.
연지라고 뭐 거창할 것까지는 없다. 깊은 곳은 3자 정도고 가장 자린 습지로 조성할 예정이다.
한쪽 가엔 여름철 몸을 담글 수 있을만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더위를 피할 전용 공간을 염두하고 있는데 잘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만 더 나이 들어 힘들기 전에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위로받는다.
첫댓글 와우 사람의 표현력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싶어요. 글을 읽고 있는데 그림을 보는것 같고 그림을 보고 있는데 사진을 보는것 같은데요. 둘레담으로만도 안과 밖이 너무 멋집니다. 밖을 거니는 이들의 시선도 고려하신것을 알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