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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魚
곽 학 송
낚시질이 유일한 취미요, 생활이요, 일종의 신앙이기까지 한 김 경수(金敬洙)는 철저한 대어주의(本魚主義)이다. 세 치 이하의 치어는 도로 놔 주는 것이 낚시꾼들 간에 불문율로 되어 있지만 그는 네 치, 다섯 치 짜리마저 거들떠보지 않는다. 적어도 일곱 치는 돼야 당길 맛이 난다는 것인데, 경수의 표적이 언제나 월척(越尺)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인지 경수는 여간해서는 세 칸 이하의 대를 펴 놓지 않는다. 세 칸 반 대가 노상이고 상포에도 없는 네 칸과 다섯 칸짜리를 특별 주문해 가지고 그 몽둥이처럼 육중한 놈을 두 손으로 기세 좋게 휘둘러 대는 것이었다.
그러한 경수와 중어주의(中魚主義=차라리 小魚主義)인 나는 20여 년 간의 초우(釣友)이지만 저절로 동행이 뜸해질밖에 없었다. 자주 동행 못 하는 이유를 들자면 또 있긴 하다. 경수는 ㅅ 낚시회 회장으로 조행(釣行) 때마다 수십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호남, 영남 등지의 원정도 서슴지 않는다. 비해서 경비가 여의치 못한 나는 한 달에 겨우 한 차례 꼴인데 그나마 행동 반경이 기껏 백여 리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그 날 우리가 오랜만에 흥행케 된 것은 세 차례에 걸친 경수의 끈덕진 권유의 결과였다. 목적지는 ㅇㄷ 저수지였다. 비바람이라도 세찬 날씨엔 바다를 연상케 하는 넓은 호수였지만 그 날은 가을 날찌답지 않게 수면이 잔잔했다. 으례 덕〔座臺〕을 타던 경수가 뭍, 그것도 포인트가 없는 하류(下流) 아무 데나 자리하였고, 낚싯대를 펴놓기가 바쁘게 물쑥 엉뚱한 질문을 던져 저으기 나를 당황케 했다.
“과오를 범한 사람이 진심르로 회개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그런 말을 자네 믿나?”
그 때 마침 걸려든 세 치짜리 봉어를 손바닥에 조심스레 안았다가 도로 놔 주며 나는 경수의 낚시 자세부터 살피었다.
두 칸과 칸 반 두 대를 폈을 뿐이다. 그건 내 18번이 아닌가. 그리고 불쑥 이야기를 건네는 태도는 무엇인가. 그 내용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말이다. 경수는 낚시터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을뿐더러 호주가인 주제에 음주도 절대 삼갔었다. 입질이 뜸해지면 으례 소줏병을 따는 나 따위에 비하여 경수는 그만치 낚시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참으로 지금의 태도는 이변이 아닐 수 없었지만 결정적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태도이기에 나는 되는 대로 씨부렁거렸다.
“글쎄……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용서되지 않을까? 과오라 하여도 내용을 모르고는 단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과오의 경중 여하에 좌우된단 말인가? 자네 소설가답지 않게 공식 적이고 수학적이군 그래.”
무심결에. 뱉은 상식적인 대답이 못마땅한 듯 경수는 입질도 아니한 두 칸 대를 당겨 말짱한 미끼를 갈아 끼우며 투덜대듯 말했다. 경수답지 않은 그런 태도가 나 역시 못마땅했지만 그러기에 더욱 주석을 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오해네. 내 말은 과오의 경중이 아니라 질을 말한 거야. 살인자가 사형 선고를 받고도 용서받을 수 있고 경범자가 무죄 선고로 석방되어도 용서되지 않는 경우가 있쟎나.”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생각할 필요는 읽어. 내가 묻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것이니까. 주관적인 심리 상태는 집어 두고 객관적인, 즉 삼자가, 이 세상 사람들이 그런 범법자를 용납하는가 안 하는가―— 그런 말이네.”
“결국 처음 한 대답을 되풀이하게 되는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용서 안 될 까닭이 없지.”
“헌데 요즈음 세상이란 그 죄는 용서하여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 결단코 죄악 쪽이 아니라 사람을 용서 안 한다, 그 말이네. 죄라 해도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몸을 판 여인의 경우지만.”
기다리고 있었단 듯이 받아넘기고 수면을 응시하는 경수의 거동을 훔쳐 본 나의 눈앞에는 어떤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낚시터로 올 때 전세 고속 버스 안에서 본 낚시꾼 상대의 잡화 판매원이었다. 돈을 받고 물건을 내주거나, 물건을 내주고 돈을 받거나 할 뿐 그 여인은 웃지를 않았다. 서른 몇 살쯤 되어 보이는 계란형의 그 여자의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독신주의자인 김 경수가 오십 고객에 이른 마당에 결혼할 의사를 밝혔다는 어느 벗의 말이 생각나서 나는 여인의 거동을 유심 히 살폈던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오늘 낚시는 글렀다고 나는 체념할밖에 없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단신 월남해 온 후 건축 설계사 20년에 몇 동(棟)의 빌딩을 소유하게 된 경수는 만사에 철저한 사나이였다. 아무리 친한 벗에게 돈을 빌려 줄 경우에도 은행 이자를 계산하는 식이었다.
그러한 경수가 진심으로 결혼을 결심했고, 그 대상이 창녀 출신의 미인이라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 너무나도 뻔해서였다. 과연 경수는 윤 명희(尹明姬)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 작하였다.
명희는 이른바 콜걸이었다. 그것도 관광객쯤을 상대하는 실속파도 못 되고 아주 천하고 값싼 사창굴 출신의 밤 여자였다. (명희가 창녀 노릇을 하게 된 경위는 구태여 설병할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와 그닥 상관이 없어서이기도 하려니와 수많은 창녀가 그러하듯 그녀 역시 그 외의 생존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열일곱에서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뭇 사내의 품에 안기는 사이에 명희는 성생활의 실태를 알게 되였고 그 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는 의욕이 강하게 솟았다. 20 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 남자를 섬길 생각을 전혀 못 했다. 자기 따위는 그럴 자격이 없을 것 같아서라기보다 구태여 그렇게 할 욕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른바 살림에 나갔던 동료들이 한 달이 멀다 하고 되돌아오곤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온 때문이기도 했다. 번거롭게 드나들 필요가 무엇인가. 그랬던 것이 차차 나이가 들면서 성생활의 쾌락적인 면과 그 다른 면의 의의를 깨달은 명희는 하루하루가 욕스럽고 무섭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일 주일에 한 번 꼴로 들르곤 하던 어느 잡화점 주인인 순구(純九)의 품에 안기어 누운 명희는 그날따라 더욱 뒤숭숭해졌다. 그것은 전혀 동물적인 본능에서 비롯된 것인지 몰랐다. 순구가 명희의 체취를 잊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찾아오곤 하는 것처럼 명희 역시 순구와 같이 싫지 않은 한 사내에게 정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 정 말 살림을 차리자구.
― 헛소리를 잘도 하셔.
―헛소리가 아니야. 농담도 아니구. 이제 난 명희를 떠나서는 못살 겻 같아.
―무엇이 그럴라구요. 세상에 여자가 없어서 나 같은 걸 가지고.
다소 새침한 표정으로 튕긴 명희에게는 상대의 진심을 다짐하는 본능적 꾀가 개재해 있었다. 그러지 말고 내일부터라도 살림을 차리자고 순구는 졸랐다. 우리가 무슨 호화롭게 살기를 바랄 순 없고 그저 명희가 내 가게에 달린 단간방으로 옮겨오면 된다는 그마흔 살짜리 이북 태생 홀아비의 말이 그럴싸했었다. 뭘 그래 열흘도 못 가서 싫증이 날 것을 가지구——하고 명희는 만만히 응하지 않는 척하였지만 결국 승낙했었다.
순구는 가게에 달린 단간방으로 옮기면 된다고 말했지만 실은 남산 중턱에 규모는 작으나 아담한 독립 가옥을 마련해 두었을 정도로 알뜰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정도로 명희는 순구가 인생의 전부로 되었다.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게 마련인 것을. 나의 속성을 빤히 알고서 받아들인 순구이기에 더욱 믿음직스럽지 뭐야. 명희는 희망에 찬 나날을 보냈다. 남과 같이 일터로 나가는 남편을 보내고,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빨래를 하고 저녁을 지어 놓고 남ㅁ편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ㅡ— 이러다가 어린애라도 낳게 되면, 하고 그런 생각이 미치자 행복이 뚜렷하게 의식될 정도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처음 사창굴에 빠졌을 때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씨를 두어 번 배었으나 포주의 권고대로 떼어 버린 날, 그 알 수 없는 슬픔에 젖어 울음으로 밤을 새운 체험이 명희는 우스꽝스러위지기도 했다.
제법 새살림 냄새가 풍기는 방에서, 창녀 시절에 푼푼히 모은 돈을 찾아 구입한 경대와 마주 앉아 머리를 고치며, 그 경대 속에 비친 의롱을 흐뭇한 마음으로 힐끗힐끗 살피며 벌렁 누운 채 말하는 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ㅡ물론 이북에 두고 온 마누라가 낳은 아들이 하나 잇기는 하치뱐 아무 소용이 없이 된 것이고 정말 어서 아이를 하나 낳으라구.
ㅡ그런 게 마음대로 되나요. 또 뭐 그리 바쁘다구요.
ㅡ그래두 심심하구, 따분하지 않아. 내가 나간 뒤 혼자 있기가?
ㅡ 조금도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어째서 따분하구 심심하겠어요. 당신 하나면 부러울 것두 바랄 것두 없어요.
진정 그랬었다. 명희는 참으로 행복했고 보람찬 나날을 보냈으나 그러나 그러한 그것은 너무나도 짧은 기간이었다.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해 명희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그 날도 순구를 거리로 보내고 나서 방 안을 치우던 명희는 질서 없이 뜰안으로 뛰어들어오는 사내를 보았다.
“저, 저놈의 개가…….”
전기 요금을 받으러 다니는 전기 회사 사람이었다. 바로 몇 채 아래애 있는 어느 부자집 세퍼드에 쫒기어 아무 데로나 뛰어든 것이었다.
영문을 곧 알아차린 명희는 우스운 생각이 들어 한바탕 깔깔 웃었다.
“아주머니.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읍니다. 무슨 놈의 개가 그다지도 사나운지 원…….”
이마의 땀을 씻으며 연신 꾸벅거리는 그 사내의 태도가 또 우스워 명희는 계속 깔깔대는데 집에 둔 상품을 가지러 온 순구가 들어선 것이었다. 뜰안의 광경과 명희의 웃음 소리—— 순구의 얼굴빛은 확 달라졌다.
아무런 죄도 없지만 명희는 소리내어 웃어 댄 스스로의 방심 상태가 가책이되어 암말 못하고 머리를 수그린 채 있었다. 별나게 되어버린 정면이 어색하였다. 전기 회사 사람도 말없이 나가버리었다.
——누구지?
——아무도 아니야요.
——왜 감춰? 우리 사이에 비밀이 다 뭐야. 솔직히 말해 봐.
——뭣을 솔직히 말해요?
——전에 상관한 사람인가?
명희는 어처구니가 없어 더 이상 대꾸도 못했다. 그래 순구는더욱 화가 나서, 얼마든지 속여 봐라——고 외치듯 말하고 밖으로 나가 버리었고, 명희는 장승처럼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그 날 밤 순구는 술에 만취되어 들어와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어 댔다. 그 다음 날도 그랬고 또 그 다음 날도 그랬다. 가끔 화가 풀리는 듯도 했으나 술만 들어가면 강짜를 부렸다. 그리하여 한 달 쯤 지난 어느 날 참고 또 참은 명희의 입에서 말대답이 튀어나오게 되자 드디어 종막이 닥친 것이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옳군. 이 더러운 년, 하고 악을 쓰는 순구에게 질세라 명희의 목소리도 앙칼져졌다. 그래, 난 더러운 년이다. 어쨌단 말야. 살자곤 왜 했어. 더러운 년하고 살자고는 왜 했어. 이 쓸개빠진 년이 뭘 잘 했다고 말대꾸야. 나가, 썩 나가, 너 같은 똥XX를 맞아들인 내가 미친놈이지. 이 더러운 년, 라고 순구는 정말 미친 듯이 달려들어 명희를 문 밖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온 동네에 들릴 만치 고함을 질러 대며 나가라고 닦아대는 것이었다.
하늘에 뜬 초생달을 바라보며 명희는 발이 움직이는 대로 밤거리를 헤매었고, 새삼스럽게 ‘살림’에 나갔다가 철새처럼 되돌아오곤 하던 동료들의 경우가 짐작됐었다.
기껏 두 치 반 정도의 붕어 새끼를 소중한 물건처럼 낚시에서 떼어 살릴망에 넣고 난 경수는 새 미끼를 끼우고 있다. 낚시에 미친 초기의 버릇이라고 k는 생각했다.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후 경수는 붕어를 먹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걸리는 메기, 자가사리, 그리고 피라미로 튀김 따위를 만들어 먹는 수가 있었지만 붕어는 먹지 않았다. 몸뚱이에 비해서 순발력이 엄청나게 센 붕어의 존재는 인간에게 낚시를 즐기라는 조물주의 계시의 부산물일 거라고 하며 경수는 웃어 댄 적이 있었다. 잡은 붕어는 으례 정원에 마련된 못에 넣었고 수도물 기운을 이겨 내지 못하고 흰배를 드러내는 놈을 건져서 땅 속에 정중히 묻었었다. 비하여 나는 초기부터 붕어에 맛을 들였었다. 매운탕, 졸임뿐 아니라 튀김용에도 붕어가 십상이다. 두세 치짜리 새끼는 피라미보다는 뼈가 연하기 때문이었다. 낚시꾼이 엄청나게 늘어난 10 년 쯤 전부터 일기 시작한 방어(放魚) 운동에 밀리어 세 치 이하는 도로 놔 주게끔 버릇된 후에도 나는 곧잘 잔 붕어 튀김을 소주 안주로 즐기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치어를 놔 주는 데 반하여 경수 쪽에서 살릴망에 간수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일곱 치 이상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게끔 버릇되었던, 경수의 그와 같은 동작은 그와 나의 조력(釣歷)만큼의 시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착각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그 따위 생각에 잠겨 있는데 또다시 걸려든 한 마리의 치어를 살릴망에 간수하고 나서 그는 토해 버리듯 말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나?”
명희라는 여인의 이야기에 열중한 경수의 낚시 행동은 순전히 건성이었음을 알아차린 나는 도시 못마땅해져서 대꾸조차 않자 그는 말을 이었다.
“결국 명희는 동료들이 신음하고 있는 함정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네.”
50 고개에 다다른 피차의 나이를 셈하고 있던 나는 명희라는 여인의 무지와 어리석음만큼이나 경수의 감상(感傷)이 엉뚱하게 여겨져 혼잣말처럼 씨부렁거렸다.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흔한 이야기군 그래.”
“가만 있어, 그것으로 그쳤다면야 자네 말이 옳지. 하나 명희의 이야기는 또 있다네.”
호심(湖心)쯤의 수면에, ㅇㄷ 저수지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두 자 가까운 잉어란 놈이 그 찬란한 비늘로 뒤덮인 동체를 태양빛 아래 한 번 슬쩍 드러내었다가 사라져 갔다.
포주의 집으로 되돌아온 명희는 오히려 속이 편했었다. 동료들이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겨 주고 울어 주었다. 다시는 속지 않을 테야, 사내 녀석들에게…· 차라리 여기가 사람 사는 곳답지 뭐야. 인정이 있고 눈물이 있고·…· 동료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실컷 울고 난 명희는 그 날 밤부터 사내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하루하루는 그 전처럼 심상할 수가 없었다. 겨우 두 달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평생 처음 가정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맛본 명희는 마치 손에 넣었던 보물을 놓친 것처럼 허전했다. 순구와 같이 생생하고 떳떳한 사내 말고 아주 병신이라도 좋으니 진정으로 나를 아껴 줄 사람, 이런 데 있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탓하지 않을 사람, 그리하여 몇 달 후 명희는 두 번째의 남정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아마비를 앓은 불구자였다. 왼쪽다리는 성하였지만 오른편다리는 오가리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역시 열흘에 한 번쯤 명희의 육체를 즐기러 찾아오는 사내였다. 그녀보다 일곱 살이나 아래인 사내의 이름은 성호(成浩)라고 했다. 젊은 나이 때문인진 몰라도 그는 동물적 교섭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세찼고 명희 쪽에서 비슷이 응해 주자 제편에서 결합을 제의해 온 것이었다.
ㅡ——흔한 게 여잔데 하필 나 같은걸.
―——나 같은 병신에게도 흔한 줄 알아? 너두 역시 내 한쪽 다리를 깔보는구나.
―——어머,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마음 하나면 그만이지.
―——제법 신통한 소릴 하는군. 그렇다면 살아 볼까? 너 하나쯤 굶기진 않을 테니까. 매달 시골서 송금해 오거든. 집에선 내가 아직도 박사 과정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줄로 알거든.
명희는 급격적으로 성호에게로 기울어졌다. 첫번과는 달리 함부로 정을 주지 말고 생리적 거래도 요령껏 지낼 속셈이었는데 거꾸로 마음부터 쏠리었다. 첫 번째의 순구와는 달리 자기를 거칠게 다루는 점이 오히려 사내다와 믿음직스러워진 것인지도 몰랐다. 잠자리에 들 적마다 오가리처럼 말라 비틀어진 오른쪽 다리가 의식되면 소름이 끼치곤 하였지만 작심을 하고 나니 심상해졌다. 미구에 둘은 도심에서 아예 멀리 떨어진 박석 고개 너머에 셋방 한 칸을 얻어 가지고 살림을 꾸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뚝뚝하지만 성호는 본바탕이 착한 사람이었다. 진심으로 명희를 위해 주었다. 자기가 불구자임을 더없이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 같은 병신도 살 길이 있었군. 당신 마음만 변치 않으면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야요. 불구자는 사람이 아닌가요. 더구나 당신의 다리는 자기 불찰로 빚어진 것도 아니지 않아요.
명희는 밤마다 성호의 병든 다리를 무슨 귀중한 보물처럼 어루만졌던 것이었는데, 그러나 역시 두 번째의 살림도 몇 달이 못 가서 깨어질 판국에 이르렀다. 참으로 청천에 벼락이었다. 아들에 관한 뜬소문을 듣고 시골서 모친이 찾아 올라온 것이었다. 병신이라고 아주 깔봤구나, 그래 이년아, 너 같은 상것 밖에 못 볼 줄 알았더냐, 시골에 어엿한 처녀가 기다리고 섰다. 알아듣겠느냐? 고, 고향애선 제법 양반 행세를 한다는 성호 모친은 첫마디부터 불호령이었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좀 진정하시구 제 이야길 들으세요.”
“들을 것 쥐뿔도 없다! 그래, 공부하라는 돈을 몽땅 이 따위 년 밑××에 처박아.”
“글쎄, 과거야 아무렴 어때요. 난 이 사람 없이는 하루도 못 살겠어요. 마음대로 하시구료. 아들 죽기를 바란다면 마음대로 해요.”
처음에는 성호도 어머니에게 지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차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시골서 기다린다는 처녀가 그리워지기라도 하였음인가, 말만은 좀 기다려 보라고 하며 어머니를 따라 시골로 내려갔지만 열흘이 지나도, 스무 날이 되어도 편지 한 장 없었다. 오로지 그 절룩거리는 성호의 뒷모습이 명희의 뇌리에 깊숙이 못박혔을 뿐이었다.
경수는 어느 새 세 칸과 세 칸 반 두 대를 더 펴 놓고 있다. 짧은 대의 입질이 뚝 그친 것이다.
호면에는 성급히 자리를 옮기려는 낚시꾼들을 태운 목선들이 물살을 이리저리 베이고 있었고, 어디엔가 숨어 있던 고무 보트들이 흡사 복병처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때까지 겨우 십여 수의 잔챙이를 건졌다가 놔 주었을 뿐인 나는 긴 대를 차려 놓고 경수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명희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 주면서 언제 긴 대를 펴 놓을 겨를이 있었단 말인가. 고무 보트를 안 갖고 나설 정도로 오늘은 붕어 낚시가 목적이 아니었던 경수의 그러한 극성이 나는 못마땅해졌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정열이 부럽기도 하였다. 과연 경수의 짐작은 적중했다. 세 칸 반 쪽의 찌가 꿈틀하더니 뼘치(7, 8 치짜리)는 실히 될 놈이 꿈틀거리며 끌려오고 있었다. 줄이 두어 번 팽팽해지고, 글래스 롯드 대가 활처럼 휘이기도 하였지만 뜰망도 사용하지 아니하고 능숙하게 건져 낸 경수는 붕어를 왼손에 감싸 쥔다. 그리고 잠시 우물우물하더니 투덜대듯 말하는 것이다.
“자에서 세 치나 빠지는군.”
경수의 도구 박스에는 자눈(尺目〕이 그려져 있었다.:
못 본 체, 못 들은 체하는 것이 오늘따라 나는 쑥스러워졌다. 경수의 중얼거림이 노상 혼잣말이 아닐는지 모르지만 피차 타인이 낚시에 관여할 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지 그냥 잠자코 있기가 자꾸만 쑥스러워져서 입을 열었다.
“꼭 월척이어야 하나?”
“낚을 바에야.”
북어를 살릴망 속에 가두고 난 경수는 봄볕처럼 따스한 가을의 태양을 우러러보며 말을 잇는다. '
“자네, 명희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는가? 도로 원위치로 돌아갔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나? 명희의 뇌리 속 깊숙이 못박힌 절룩거리는 성호의 뒷모습은, 그게 명희 스스로의 모습이었다네. 말하자면 그녀는 죽기로 한 것이지.”
이번에는 세 칸 대 쪽의 찌가 수욱 솟아오른다. 눈길을 잠시도 떼지 않고 있던 경수는 민첩하게 또 한 마리의 뼘치를 낚아 올린다.
“큰 놈은 반드시 쌍지어 다니거든……. 보금자리를 잃고 죽기로 결심은 섰지만 명희는 아무렇게나 죽을 순 없었네. 자기가 지니고 있던 것이라면 실오라기 하나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고 그러자니 흐르는 밤의 강물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 하나 명희에게는 죽음 또한 자유롭지 못 했다네. 홍수가 채 가시지 않은 밤의 한강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뛰어들려는 순간, 등 뒤에서 꽉 붙드는 손이 있었던 거네. 뒤돌아다보니 육십 가까이 된 부인이었는데 한쪽 손에 성경책이 들려 있는 것을 보아 대뜸 전도 부인임을 알아차렸다는군.”
“전로 부인이라·…·.”
나의 중얼거림을 지워 버리기라도 하듯 호수 저 쪽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한 시골 교회의 종소리가 호면(湖面)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한강변 언덕에 있는 교회에 적을 둔 전도 부인 댁이 명희에게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생활 양식이 달라지자 그녀의 성격마저 변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 집 식모가 된 셈이지만 가족이라곤 대학에 다니는 딸 하나뿐이어서 고단하기는커녕 심심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남이 물어 오면 으례 일가집 동생이라고 대답해 주는 전도 부인의 말처럼 명희는 정말 언니 집에라도 와 있는 착각이 들기도 했었다. 물론 시초 얼마 동안은 답답했었다.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까다로운 성경을 읽고―― 그것뿐이 인생이라면 숫제 죽는 편이 나을 성싶도 했었다. 그러나 차차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동생, 주님께 기도를 드려요.”
까다로운 성서는 반 년이 지난 후에도 해독이 전혀 불가능했지만 하루에 몇 차례씩 거듭되는 전도 부인의 기도 시간은 마음이 차분해져서 좋았다. 전도 부인은 명희가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고역을 치렀다는 것이었다. 마귀의 장난이라는 것이다. 명희는 그러한 부인의 말이 차츰 어렴풋하게나마 믿어졌다. 부인을 따라서 열심히 ‘주여, 주여’를 외고 있노라면 마음이 잔잔해지고, 정말 자기를 부르는 그 어떤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부인이 말하는 ‘주님의 음성’은 아니었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자라났느닞도 모르는 명희이긴 하지만 그녀의 기억에도 진달래 피는 동산과 서낭당 고갯길은 있었다. 그래서 명희는 자기를 불쌍히 여기고 불러 주는 음성의 주인이, 희미한 기억 속에 있는 서낭당의 귀신인지도 몰랐지만 아무려나 쑥스럽고 부끄럽기만 하던 교회에 나가는 일이 즐거움이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뒤의 명희는 겉으론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진 것이었다.
그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동생은 아직 젊었으니 개가를 해야지.”
하고, 전도 부인은 명희의 과거 따위는 잊어버렸단 듯이 말하였다.
명희는 이상한 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의외였던 때문이었다. 교회 출입이 생활화한 명희는 어느 새 ‘결혼’조차도 무슨 죄악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전도 부인은 열심히 권하는 것이었다. 두 차례나 실패한 것은 신앙이 없었던 탓이라는 것이다. 명희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와 인연이 맺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침 신자 중에 부인을 잃고 아직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는 명희보다 십여 년이나 위이고 또 전실의 자식이 둘 있긴 하지만 워낙 신앙이 두터운 사람이라 염려할 건 조금도 없다는 것이었다. 명희는 은근히 마음이 동하였다. 과거의 몹쓸 체험이 염려되긴 했으나 전도 부인의 말대로 그 동안의 신앙생활로 이미 씻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리하여 얼마 후 명희는 교회의 신차들이 베풀어 준 간소하지만 열렬한 축연을 받으며 세 번째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남편 오 길도(吳吉道)는 독실한 신자일뿐더러 착실한 직업인이기도 했다. 규모는 그리 크지는 못하지만 제법 수지가 맞는 양복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과묵산 사람이어서 아기자기한 맛은 덜했지만 은근한 점은 전사람들에 비할 바 아니었다. 명희 같은 젊고 아리따운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 분에 넘치는 일로 생각하는 길도는 늘 미안감을 나타냈었다. 길도의 원숙한 사랑 속에 명희는 진정 행복수러웠다. 초등학교 육 학년과 삼 학년에 다니는 아이들도 명희를 친엄마처럼 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거운 것은 남편과 더불어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일이었다. 지난날의 상처와 두 번째 걸친 마귀( ? )와의 인연 같은 것이 꿈인 양 희미해지기도 했었다.
길도의 아내가 된 지 반 년쯤 지난 뒤였다. 일요일이었다. 그 날도 명희는 남편과 더불어 두 아이의 손목을 잡고 교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더위도 한물 가신 한강 강변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지극히 조용한 마음으로 걷고 있던 명희는 그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내와 시선이 교차되자 흠칫 놀랐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 사내는 씨이 하고 조소도 홍조도 아닌 괴상한 웃음을 남긴 채 바람처럼 지나갔는데 남편 길도가 알아차린 것이 화근이었다. 집까지 오는 동안 그들 부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간 뒤 단둘이 되자 비로소 남편 길도는 조용히 묻는 것이었다.
― 아까 길에서 만난 사람 누구요? 누구길래 그리 당황했소?
명희는 더욱 얼굴이 붉어질 뿐 아부 말도 못 했다. 또 불행(이별)이 닥치는구나, 하는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었기 때문이었다.
―왜 말을 아니 하오? 당신을 책하자는 게 아니오. 나로서는 궁금한 일이 아니겠소?
―묻지 말아 주세요. 제발 그것만은 묻지 말아요!
명희는 울부짖듯 뇌까리며 남편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느껴 울기만 했다. 남편이 더 이상 물어 오지만 않는다면 이별을 하지 않고 무사할 수 있다는 일념뿐인 명희는 그냥 울음을 계속할밖에 없었다. 진정 하느님 (서낭당 귀신 같은 것이라 해도 무방했다.)이 계신다면 남편이 더 이상 입을 벌리지 않도록 조처해 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명희의 그와 같은 태도는 길도의 궁금증을 더욱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낮에는 그 이상 더 묻지 않고 그치었지만 밤이 되어 이불 속으로 들어간 후 남편은 또다시 묻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 못 할 말이 무엇이겠소. 어떠한 말이라도 상관 없어요. 가령 당신이 나를 만나기 전에 결혼했던 일이었다 해도 나는 이해하겠소. 우리에겐 신앙이 있지 않소.
남편 길도는 격하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편을 힘껏 끌어안고 울면서 명희는 생각했다. 이처럼 인자스러운 사람에게 털끝만치라도 숨긴다면 죄악이 될 것만 같았다. 평생 그것 때문에 내심으로 고민하게 된다면 겉치레의 행복이지 뭔가.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눈물을 거두고 나서 명희는 고백키로 결심하였다.
밤이 이슥하여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음을 확인한 뒤 명희는 남편의 가슴 속에 더욱 깊숙이 안긴 채 지난날의 일들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낮에 막난 사내가 그 몇 번 상관한 사람임도 깨끗이 말하였다. 명희는 그 사내가 누구인지도. 나이가 몇 살이고, 직 업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처럼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기에 낱낱이 털어놓을 수가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남편은 짧은 순간 얼굴빛이 달라졌으나 금방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우리 그런 맡 두 번 다시 맙시다.
어디서인지 낙엽지는 소리가 명희의 두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그 후부터 길도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말수가 한결 더 적어지고 외출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쯤은 예사로 돌릴 수 있었지만 좀처럼 잠자리를 같이 안 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때로 어색하게 다정스러운 말을 던지는 것으로 보아 명희의 과거를 용서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밤이 되어 한이불 속에 들어가면 역시 돌아눕는 것이었다.
그 해 가을이 가고 겨울도 지난 어느 날 밤, 명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제남편에서 남편을 요구하며 따져 물었다.
―당신, 절 용서할 수 없으신가요? 당신도 역시 용서 안 하시는군요?……
왜 암말도 안 하시는 거야요? 제발 무엇이라 말씀 좀 해 주세요. 당장 나가라는 그런 말이라도 해 줘요!
명희가 대답을 다그칠수록 남편은 괴로운 표정이 더욱 짙어졌고 결국은 들아눕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되풀이되자 명희의 고뇌는 절정에 달하였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발광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해하고 용서해 주리란 일말의 기대로, 앙탈기가 섞여 있었지만 바위처럼 꼼짝 않는 남편의 태도가 거듭되자 명희에게도 반발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ㅡ 결국 용서할 수 없으시군요? 그러시담 어째서 속시원히 말씀 안 하시는 거예요? 왜 시원스럽게 내쫓지 않는 거죠? 체면 때문인가요? 죽이고 싶도록 미우면서 세상에 대한 체면 때문이죠?
명희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가고 말았다. 갈 곳이 있을 리 없었다. 멋대로 거리를 헤매다가 교회로 들어가기로 했다. 통금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열심히, 열심히 ‘주님’을 연발하였다. 그러나 전에 들려오는 것 같았던 ‘신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동녘이 훤해질 때까지 열심히 기도를 드렸지만 ‘주의 음성’도 ‘서낭당 귀신의 환청’ 따위도 들려오지 않았고 텅 비인 교회 안은 그저 어둠이 꽉 차 있을 뿐, 아무런 빛도 깃들지 않는 것이었다.
경수는 네 칸과 다섯 칸 대를 차려 놓고 있었다. 세 칸과 세 칸 반으론 성이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실제로 입질이 완연히 그치는 정오가 다 된 지금까지 경수는 뼘치도 채 안 되는 한 쌍의 붕어를 보태었을 뿐이다. 기어코 월척을 낚고야 말 작정인가. 일곱 마디나 되는 앞받침대 두 대를 꽂고 나서 이마의 땀을 닦는 경수의 거동을 홈쳐보며 그 따위 짐작을 하고 있는 바로 그 때였다. 다가서는 여인의 그림자가 있었다. 양손에 있던 소주 한 병과 통조림 한 통을 경수 곁에 조용히 놓고 나서 여인은 곧 뒤돌아선다. 낚시터에서 음주한 적이 없는 경수의 심경은 헤아릴 겨를도 없이 나는 여인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줏빛 잠바에 회색 바지를 입은 차림새야 별것 아니었지만 잠깐 비치었던 수정처럼 투명한 얼굴빛이 내 안막에서 사라지지 않아서였다. 천상 경수가 일러두었던 것일 테지만 일 초도 어김없는 정각 정오에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여인은 분명 수변(水邊) 길을 걸어가고 있었지만 물 속으로 사라져 가는 엉뚱한 착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가에서 자네와 술 마시는 것, 이십 년 만인가 보군.”
네 칸과 다섯 칸 대를 차려 놓고 난 경수는 소주병을 쳐들어 보이고 나서 나의 시선의 촛첨을 알아차리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바로 윤 명희라는 그 여인이네. 명희가 어째서 내 곁에 있게 되었는가는 짐작이 될 테지? 명희는 바로 이 호수에 몸을 던졌던 거네. 이승에 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가장 넓은 저수지를 택한 거지. 그리고 고무 보트에서 밤낚시하던 내 손에 구조된 설명은 필요 없을 거네.”
“참, 자네 고무 보트 밤낚시로 월척을 십여 수나 건졌다는 것은 신문의 낚시 보도란에서 알았었지.”
나의 대꾸는 엉뚱한 것이었다. 나는 윤 명희가 물 속으로 사라져 간 것처럼 착각한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경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에 이미 짐작하였던 결말을 비로소 다짐한 것이다. 경수가 밤낚시로 월척을 십여 수가 아니라 백여 수를 낚았다 해도 그런 따위는 이제 나의 관심 밖이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20여 년간의 나의 조우이며 독신주의자인 김 경수의 달라진 여성관이었던 것이다.
“자넨 과오를 범한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용서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논리에 지나지 않아. 명희의 경우가 증명하고 있지 않나. '첫번째 두 번째 사내는 물론이려니와 세 번째 사내 역시 명희의 과거, 즉 과오는 이해하고 용서한 것이야. 그 과오를 범한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을 뿐이네. 안 그런가?”
경수는 담담한 어조로 묻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이미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긍정을 바라는 것이었고, 그러한 그의 속셈이 너무나 빤히 짐작이 되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말 할 나위도 없어 나는 경수의 의견을 긍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첫 사내와의 관계를 들었을 때 명희를 어리석게 여긴 마음이 두 번째 사내와의 관계를 알고 나서는 동정으로 변하였으나 세 번째 사내와의 이야기를 듣고는 도로 그녀의 어리석음이 나는 미워졌다. 경수의 설명대로 오 길도가 명희를 내쫓지 않은 이유가 체면 때문인지 모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째서 잘못이란 말인가. 오히려 나는 죽음만 쫓는 여자 쪽이 마땅치 않았다. 그만한 용기가 있다면 오 길도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인종(忍從)하는 것이 참회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명희의 과거로 해서 받은 오 길도의 괴로움은 그녀의 괴로움에 못지않았을 것이며, 그것은 그의 신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결국 나는 경수에게 그 여자를 도로 오 길도에게 돌려보내라고 권하고 싶어졌다.
‘경수, 나는 자네가 윤 명희란 여자를 오 길도에게 돌려보내기를 권하네. 여자 쪽 사정보다, 일사 불란하게 살아 온 자네를 위해서네. 자넨 억척스럽게도 월척 붕어를 노렸고, 많이 낚기도 했지. 하나 자넨 그 월척을 단 한 마리도 살리지 못하고 모두 흙 속에 묻어 버리지 않았는가. 원형을 남기려고 알콜이 든 유리병에 넣어서 자네 방에 보관하고 있는 놈도 퇴색했더군. 월척 붕어를 비롯한 모든 존재는 제자리가 있는 거지. 자네의 경우도 마찬가지네. 자네 곁의 한 모서리를 여자가 차지하는 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군. 그리고 그리 되면 자네 낚시질을 못 하게 될 것 같네. 경수, 자네 낚시질을 버리려나? 자네의 말대로 죄는 용서하되 사람을 용서치 않는, 어차피 어수선한 이 세상에서 말이네.’
그러한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나는 입을 별릴 겨를이 없어졌다. 두 칸 대의 찌가 수물수물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낚아챘다. 와들와들 요동치는 품이 월척이 틀림없는 듯했다. 십여 분의 실랑이 끝에 가까스로 끌어냈다. 한 자 두 치는 실히 될 놈이었다. 자눈이 박힌 경수의 도구 박스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나는 경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수의 성품으로 보아 내 곁으로 달려올 리야 만무하겠지만 고개를 한 번쯤 돌릴 만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확인이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깨달았다. 낚시질이 유일한 취미요, 생활이요, 일종의 신앙이기까지 한 경수는 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동안에 이미 붕어의 크기는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였겠기 때문이다. 나는 월척 붕어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조용히 도로 물가로 내려섰다. 그리고 수초 가까이에 붕어를 담그고 살짝 두 손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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