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멋진 반전을 꿈 꾸기도 하지.
새로 이사한 집 거실에 걸었던 벽시계가 얼마 전 바닥에 떨어졌다.
어릴 때부터 조금씩 느렸다. 다음 조가 또 출발하였고 멀리서 보면 소년이 1등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래도 소년은 반장노릇을 계속했다. 반장 노릇 하면서도 소풍 날 선생님 도시락 한번 싸가지 못했다. 여름이 되어 해가 일찍 떠도 어머니는 그 십리길도 넘는 길을 고구마나 마른장작을 이고 장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밭을 메도 하루,장에 가도 하루,뭘 해도 하루씩이었다. 서울 간 형님들 편지는 하루가 여러 날 가도 잘 오지 않았다.
빠른 것도 있었다. 아버진 빨리 가셨다. 소년의 나이 7살 때다. 밭고랑같은 주름살은 빨리 패었다. 팥죽을 쑤기도 했다. 최소한 연고대 법대 아니면 아니다고 깝죽대다가 한방에 떨어지고 일찍 포기했다.
세상은 돌부리 천지였다. 소년을 무너뜨리기 위해 세상은 있는 듯 했다. 소년은 거미줄 쳐진 길 보다 가망 없는 길에서 오로지 체념과 좌절밖에 알지 못했다. 희망이란 또 어떤 놈과 맞닥드려 깨질 것인가였고 하다못해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사랑도 청춘도 10리 밖 썰물 소리처럼 아득했다. 단칸방에 함께 누운 홀어머니 귓전에 들리지 않을만큼 소쩍새가 되어 밤마다 배겟니를 적셨다. 소년이 먼저 전깃불을 껐다. 젊음은 홍역과도 같았다.
소년은 바보가 되었다. 외로움도 슬픔도 냉소도 가슴 안에 우물처럼 고였다. 울부짖고 싶을수록 입을 다물고 달팽이가 되었다. 그러다 부나비가 되지 않을 법을 찾았다. 산에 오를수록 끓는 피의 역류를 막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을 고문하듯이 내몰아 진을 다 뺀 다음엔 잠도 들었다. 온 몸은 상채기 투성이였다. 고개를 숙이면 코피가 쏟아질 것 같아 하늘만 쳐다 보았다.
머뭇거릴 때도 길을 잘못 들었을 때도 해는 갔다. 돌이킬 수 없는 해는 자꾸만 갔다. 아차 싶어 늦장가를 들었다. 그 마눌은 한 수 더 떴다. 친사촌 똑같이 16남매에 15번째,유복녀다. 그녀의 아버지 돌아 가시고 일주일만에 세상에 났다.
소년의 16번째 사촌 여동생은 일찍 시집가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뒀다. 제일 큰 아인 대학교도 졸업했다. 사람들은 저 아이가 태어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학교에 들어갔냐며 아는 체 하기 바쁘다.
그 아인 소년이 결혼한지 햇수로 7년만에 세상에 왔다. 하늘의 별을 따 온 것이다. 100년을 뛸 뜨거운 심장이다. 밤마다 졸음과 싸우며 마눌 단전에 소금을 깔고 쑥뜸을 뜨다가 잠들어 불에 데기도 일쑤 잇단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까지 실패로 돌아가자 소년은 또 체념하였고 호평에 아파트 청약 당첨으로 계약하고 돌아 오는 길, 입양하자.. 그러고 나니 그 말이 우주를 돌아 아이가 왔다. 처절하게 체념해야 기껏 뭔가가 이뤄진단 말인가? 너무 불공평하고 가혹하지 않은가? 하지만 무엇이 공평하였고 가혹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도 감사할 일이니 감사헌금 했다.
아이가 또 생겼다. 이번엔 아이 엄마가 직접 꿈도 꿨다. 맥박 소리까지 듣고 오곤 했다. 그런데 또 스러졌다. 아이 엄마는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 그의 마눌이 그랬다. 자꾸 눈물이 나.. 바람 쐬러 제주도로 갔다. 딸 아이 세살이 채 안 됐을 때다.
미련을 버리러 갔지만 또 다른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한번 더 시술할 수 있는 시험관 수정란을 쓰기로 하였다. 마지막 기회였지만 대번에 실패했다.
그리고 시간은 지났다. 아이는 영리하고 건강하게 자라 주었다. 아이 혼자 두고 가게 아침 일 보고 들어 가면 저 혼자여도 울지 않고 있었다. 아이 18개월 때 비 한방울 없는 여름, 제헌절에 가게 불이 났다. 불나기 일주일 전에 놀랍게도 젖을 뗏던 아이. 네살 때 부터 자기 침대에서 혼자 자는 아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인 꿈이 많다고 했다. 선생님 간호사 소방대원 경찰관 화가 디자이너 피아니스트 발레리나 진즉 아버지도 되었고 이제 학부모가 된 소년의 꿈은 아들의 아버지도 되어 보는 것이었다. 진즉에 끝난 예비군이지만 혹여 지금이라도 동원훈련 몇 년치 면제해 준다해도 정관수술은 안 했을 그였다. 젊은 날 어느 스님이 시줏돈을 챙기며 하던 소리가 있다. 아들 둘에 딸 하나,그 중에 크게 될 아이가 있소. 소년은 성철스님이나 법정스님 보다 그 땡초의 말을 믿고 싶었다.
기회는 왔다. 오랜 끈기는 승리의 제일 요소라 했던가? 하지만 아니었다. 추어탕과 매운 쭈꾸미가 땡겼을 뿐 옆가게 젊은인 지난 주 금요일 둘째 아들을 낳았고 소년의 마흔 아홉번째 생일날이었던 어젠 그제 있었던 손주의 백일떡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이사턱에 생일 겸 한잔 약속도 취소해야 했다. 최종 선언..탈락 오늘 그의 마눌은 수술대에 올랐다. 개떡같은 날이었다.
지난 토요일(5.21)은 부부의 날이었다. "이미 하나 되어 있으므로 열이 되고 싶었는데 열만 받습니다." 그리고 미 신흥종교단체 ‘패밀리 라디오’가 예언한 지구 종말의 날이기도 했다. "지구 종말의 날이라고 하는데도 미련을 떨칠 수 없음에 이보다 바보가 있을까? 지는게 꽃인가 별인가..? 봄날은 간다." 그런 대책없는 인사나 했다.
이제 소년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여전히 길은 아득한데 돌이킬 수 없이 해는 기울었다. 예비군 동원훈련도 받을 일 없고 시계 불알 탓만 하고 있을 계제도 아니다. 다만 막다른 골목도 낭떠러지도 아닌 길을 가고 싶다.
2011.5.23(월) |
출처: 푸른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