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구간(보성-남원)-다섯째 날(7월7일 월요일 맑음)
06:05에 강촌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노치지 않으려고 05:40부터 정류장에 나와 앉았다. 오늘도 안개가 자욱한 걸 보니 몹시 무덥겠구나. 남원의 시내버스 운전수는 아주 친절하다. 어제도 느꼈지만 여러 가지를 물어도 항상 부드럽게 대답해주어서 고맙다. 자리마다 부채가 매달아 놓았다. 손님에 대한 배려가 훌륭하다. 오늘은 손님이 나 하나뿐이다. 완전 자가용인 셈이다. 내가 내릴 때까지 아무도 타지 않아서 결국 내가 내린 후에는 빈차로 떠났다. 운전수 봉급이며 기름값, 자동차 감가상각비는 어떻게 채울까? 더구나 운행간격도 20분 정도로 비교적 자주 있는 편이다. 15분이 걸려 강촌까지 왔다. 더 덥기 전에 많이 걸어야지. 오늘은 2구간의 마지막 날이다. 집으로 돌아 갈 생각을 하니 신이 절로 난다. 여행을 떠날 때는 기대와 두려움으로 가슴이 설레고 돌아 갈 때는 뿌듯함과 느긋함으로 행복하다.
출발해서 불과 500미터도 가지 않아 ‘황토민박(063-635-5570,남원시 이백면 내기리)’을 발견했다. 여기에 민박이 있는 줄 알았다면 어제 굳이 남원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뻔했다. 아늑하고 정갈한 마을이라서 민박도 깨끗하고 친절하지 않을까? 곧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지리산 북단을 통과하는 도로라서 구불구불 고갯길이 계속된다. ‘자연생태 이동통로’가 보인다. 그 앞에 안내문이 흥미롭다.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방지하기위한 목적이란다. ‘로드킬’이라. 참 유식하기도 하지. 길을 건너다 차에 치어 죽는 경우를 말하나보다. 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일부러 차를 세우고 이 안내판을 볼 리야 없고 나같이 걸어서 지나가는 나그네나 봄직한데 나도 ‘로드킬’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구나.
07:30, 여원재의 마루턱(이백면 장교리 장동마을)에 도착했다. 이 곳은 백두대간 코스다. 이런 산골 마을에도 어김없이 교회는 있다. 전국 방방곡곡 마을마다 교회 없는 곳은 없다. 이 곳에는 민박집도 있다. ‘하늘아래 편안한 집(063-634-7169)’. 이름처럼 예쁜 통나무집이다. 장동마을 버스 정거장 긴 의자에 앉아 미리 준비한 김밥을 먹었다. 어제 마시다 남겨서 가져온 소주도 한 잔 했다. 오늘은 구간이 짧으니 한 잔 쯤이야 괜찮겠지. 불안할 정도로 너무 조용하다. 멀리서 뻐꾸기가 운다.
08:10, 해가 반짝 나더니 푹푹 찐다. 땀은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흐른다. 도보여행을 할 때는 좌측통행을 해서 오는 차를 마주보고 걸어야 한다지만 이렇게 더운 날에는 가로수 그늘이 진 쪽으로 걸을 수밖에 없다. 가로수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이제 알겠다. 08:30, 시골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과 서구식 목장 울타리가 보인다. ‘한국 경마 축산 고등학교’. 참, 별난 학교도 다 있다. 그야말로 특목고인 셈인가. 운봉 삼거리에 도착할 때까지 주유소가 몇 개 있었지만 편의점이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간판이 있어도 이미 오래 전에 걷어치운 모양이다. 길옆에는 여기저기 감자 수확이 한 창이다. 우리 집 감자도 캐야겠구나.
운봉읍에 도착해서 우선 농협을 찾아갔다. 여기 농협에서는 커피를 100원 받는다. 전남지역은 공짜였는데 전북지역이라서 돈을 받나? 나는 농협만 보면 즐겁다. 에어컨이 시원해서 좋고 커피도 마시고 시원한 물도 병에 가득 채우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땀을 식히며 전화도 걸 수 있어서 좋다. 눈치가 보여서 일어서 나오니 바로 옆에 새마을 금고가 있다. 또 들어갔다. 여기는 커피가 공짜다. 한 잔 더 마셔야지. 편히 앉아서 썬텐크림까지 바르고 신문도 보고 조금은 염치없지만 더운 걸 어쩌랴.
10:00, 황산 대첩비 앞을 지난다. 여기에는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의 생가가 있다. 그래서 국악의 성지라고 한다. 정말 덥다. 오늘 한 낮은 36도란다. 너무 더워 사우디 생각이 난다. 철판에 계란 프라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그 더위 속에서 뜨거운 아스팔트 포장공사를 했으니 그 고통이 어떠했을까? 어차피 국토순례를 계획할 때 이 정도의 고통은 예상했지만 정말 덥다. 오늘은 다행히 인월면까지 5킬로미터만 가면 되니까 오전 중에 끝날 수 있을 게다. 10:30, 대덕 리조트(063-634-6706)에 도착했다. 대덕 리조트의 맞은편에 ‘황산정’이라는 활터가 보인다. 과연 우리나라는 곳곳마다 역사적인 배경이 있구나. 조금 더 인월면에 가까워지니 지리산 공비를 토벌을 하다가 희생된 의용전투특공대의 추모비가 보이고 누군가 그 앞에 포도주를 가져다 놓았다. 야, 이제는 제주도 포도주를 쓰는구나. 참, 세월도 변하고 풍속도 많이 변했다.
11:20, 드디어 목적지인 인월면에 도착했다. 오늘의 고생도 끝이다. 우선 ‘지리산 새마을 금고’에 들려 공짜 커피를 마시고 한 숨 돌린다. 인월은 면 소재지 이지만 운봉읍보다 훨씬 컸다. 미리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인월에는 남원 시내버스 외에도 시외버스가 있어서 남원, 함양으로 직접 갈 수 있다. 이제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남원으로 돌아가서 서울로 돌아가자. 정류장 옆의 두 평도 안 되는 허름한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시켰다. 그리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가 서울에 가려면 남원으로 갑니까, 함양으로 갑니까?’ 아주머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여기서도 서울 가는 직통이 있는데 왜 남원이나 함양으로 가느냔 다. 뭐? 여기에 서울 직행이 있다고? 그렇다면 우선 시간 먼저 알아보는 게 순서다. 과연 11:55 차가 있고 두 시간 간격이란다. 지금이 11:45이니 서둘러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속절없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아주머니에게 5천원을 주며 먹은 셈 치자고 하고 급히 차표를 샀다. 야, 과연 놀랍다. 이 시골 면 소재지에 서울 직행 버스가 있다니…. 이 버스는 지리산 함양 고속버스로 지리산 백문동-함양-동서울을 운행한다. 참 세상은 편리하기도 하지. 전국이 1일 생활권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이번 2구간에서는 계절이 한 여름인 탓에 덥기는 해도 발에 물집도 생기지 않았고 소화도 잘 되어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서울에 도착해서 버스에 밀짚모자를 두고 내린 것이 못내 아쉽다. 그 밀짚모자는 지난봄에 친구들과 중국에 갔을 때 모자를 잃어버리고 천원에 사서 쓰고 다니던 것인데 아주 가볍고 시원해서 좋았었다. 이 번 여행에서도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좋은 길동무였는데 기어코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긴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닌다면 그거야말로 기적이지.
오늘 걸은 길 : 전남 남원시 이백면 강촌마을-24번 국도-여원재, 운봉읍, 대덕 리조트-24번 국도-인월면. 16.2킬로미터.
첫댓글 濟州道 葡萄酒? 하여간에 2구간 건강하게 주파. 축하하네.
祭酒도 포도주야. 그래서 한글을 써야 한다니까. 한문으로 쓰면 곤난해요. 제주:젯술, 제사용 술. 귀신에게 바치는 술=귀술. 어느 게 좋을까?
요즘 열사병으로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뉴스가 연일 보도 되는데 이박이 살아 돌아 온게 기적 같으이.천행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같이 살아야 심심하지 않으니까 만용 부리지말고 즐겁게 만만한 데나 다닙세다.
감샤, 걈샤, 또 감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