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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한국기독교의 교파, 교단 현황
조직신학의 “교회론”에 의하면 교회의 속성에는 통일성이 있다. 즉 예수님을 머리로 한 각 지체로서의 교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왜 많은 교단과 교파로 분열되어 서로 모순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가? 이에 대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신학적인 문제에 대한 입장의 대립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교단과 교파가 존재한다고 해서 교회의 통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교단과 교파(이단을 제외한)들은 서로의 다양성에서 서로 보완하며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통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선 교파와 교단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단: 같은 교의(敎義)를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든 종교 단체. 교파: 같은 종교의 갈린 갈래.
1) 장로교 해방 후 한국장로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로 재건했지만, 재건과정에서 고려신학교(현재 고신대), 조선신학교(현재 한신대), 장로회신학교를 중심으로 분열하게 된다. 첫 분열은 1948년 과거 신사참배 등의 잘못을 회개할 것을 촉구하다 밀려난 재건파가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분열해 예장 고신을 형성하게 됐다. 2차 분열은 1954년 보수파로부터 김재준 박사의 진보신학이 정죄를 당하자 조선신학교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를 창립했다. 3차 분열은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문제를 놓고 총회신학교(현 총신대)를 중심으로 반대하는 승동측(합동측), 장로회신학교(현 장신대)를 중심으로 지지하는 연동측(통합측)으로 분열됐다. 4차 분열은 1979년 교권과 지역갈등으로 예장 합동에서 정규오 목사를 중심으로 한 호남권 인사들이 탈퇴, 개혁교단을 설립하면서 장로교 분열은 가속화 됐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예장 통합,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대신, 예장 개혁, 기장 등 100여개의 교단이 형성되어 있다.
2) 감리교 해방 후 교회의 친일문제로 교단이 ‘재건파’와 ‘부흥파’로 양분되다 1949년에서야 통합된다. 그러나 1954년 교회헌법 수정을 놓고 ‘호헌측’과 ‘총리원측’으로 분열됐다가 1959년 재통합하게 되었고, 1974년 감독선거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갱신총회’, ‘연합총회’, ‘중부중립’ 등 3개파로 분열된 후 1978년에 재통합해 현재의 ‘기독교대한감리회’를 형성했다. 교단들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예수교대한감리회 등이 있다.
3) 침례교 해방 후 다시 재건된 침례교는 1949년 총회에서 ‘대한기독교침례회’로, 1952년 미국 남침례회의 선교지원을 받으면서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으로 교단명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1959년 교단 분열을 야기시켰고 1968년 ‘한국침례회연맹’으로 통합되었고, 1976년에 지금의 교단명칭인 ‘기독교한국침례회’ 변경되었다.
교단들로는 기독교한국침례회, 대한기독교침례회, 한국성서침례회, 대한선교침례회연합회 등이 있다.
4) 성결교 성결교는 해방 이후 교회를 재건하고 1948년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로 개칭하였다. 1950년대 후반 한국교회에 몰아친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 조선기독교연합회(NCC)와 복음동지회(NAE) 가입문제에 대한 대립으로 성결교는 1961년 서울신학교측의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와 성결교신학교측의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로 분열됐다. 교단들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등이 있다.
5) 루터교 한국에서의 루터교 선교는 1958년에 미국의 미조리 시노드 루터교회에 의해 시작됐으며, 72년 7월 루터교 세계연맹에 가입해 세계 루터교회의 일원이 됐다. 사회선교를 위해 66년 3월 사회사업부를 개설해 구호사업을 벌였고 문서선교를 위해 59년 컨콜디아 출판사를 세웠다. 루터교회는 다른 개신교회들과 외면적으로 약간 색다른 예배의식을 갖고 있으며, 교회력에 따라 예배를 준비하며 예배의식문을 사용한다. 또 하나의 특색은 성찬식을 자주 거행하는 것이다. 교단으로는 기독교 한국 루터교회가 있다.
6) 성공회 성공회는 선교초기부터 한국문화의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린 교회가 되고자 토착화에 힘썼으며, 한국건축양식으로 지은 성당들이 강화읍, 진천, 청주 등에 남아 있다. 예전에 있어서는 카톨릭에 가깝지만(7가지 성사, 성찬례 등), 신학적 경향은 개혁교회에 가깝다. 교단으로는 대한성공회가 있다.
7) 구세군 감리교는 일제말기에 신사참배반대와 군복착용으로 인해 박해를 받았다. 창설자 부드가 감리교 목사였다는 점에서 신학적 경향은 웨슬레 교파와 비슷하며 중생, 성결, 봉사를 중요시한다. 구세군은 전통적으로 성탄절이 되면 거리에 자선냄비를 걸어 놓고 모금을 하여 그 기금으로 빈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단체로 알려졌다. 교단으로는 구세군대한본영이 있다.
8) 오순절교(순복음) 60년대에 오순절계통의 미국 교단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개의 교단을 형성하게 된다. 오순절교회는 교리보다는 성령세례와 은사체험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오순절 신학은 인식론적이기보다는 경험적이고, 사변적이기보다는 행동적이며, 분석적이기보다는 실천적이다. 또한 사도와 선지자, 방언하는 자의 계시적 은사를 포함해 성령의 은사들이 오늘날 교회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교단들로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예수교대한하나님의 성회, 기독교한국하나님의 교회, 한국연합오순절교회, 기독교한국성서하나님의 교회 등이 있다.
9) 복음교회 한국의 자생적 교파인 복음교회는 최태용 목사와 그의 신앙노선을 동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1935년 12월 ‘기독교조선복음교회’(현 기독교대한복음교회)로 창립된다.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은 최태용 목사는 한국적 기독교와 영적 기독교를 주장했다. 또한 당시 구미 선교사에서 맹종하는 교회 지도자를 규탄하며, 한국의 교회는 신앙과 경제권에 있어서 한국인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음교회는 복음적이고 생명적인 신앙과 신학의 학문성, 조선의 주체적 교회를 표어로 삼았다. 교회사가들은 복음교회에 대해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운동과 달리 반 선교사적 색채가 짙다”고 평가했다.
10) 정교회 정교회는 동유럽과 비잔틴지역(그리스, 터키, 중동지역)을 배경으로 성장했으며, 현재 전세계적으로 4억명의 교인이 있다. 한국 선교는 1897년 대한제국 주재 러시아 공사였던 블라노프시키 공사가 러시아 정교회에 선교사 파송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1903년 러시아 공사관이 있는 정동에 성당을 축성하면서 선교를 본격화했지만, 선교초기(1904년 러일전쟁, 1910년 한일합방 등)부터 일본의 영향으로 선교적 탄압을 받았다.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한국 선교부는 폐쇄되는 등 일제시대에는 위축되었다. 정교회가 한국에서 재기하게 된 것은 6.25사변 직후인 1953년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그리스 군대의 군종신부들에 의해 성당이 재건되었다.
교단으로는 한국정교회가 있다. 이외에도 많은 교파들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자 한다. 그리고 필자가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143 가지 종류의 교단(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을 아래와 같이 도표에 작성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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