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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도행전을 묵상할 때나 사도행전 말씀을 들을 때..... 사도행전의 핵심인 1:8말씀을 조금도 떠나서는 안되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의 지상명령이요 이 땅에 계실 때 마지막 이 말씀을 하시고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의 진원지.... 복음의 시작이 예루살렘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유언대로 예루살렘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안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저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행1:8절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로 옮기게 하셨습니다.
19절...... 말씀처럼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이것은 이미 행7장-8장에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사마리아에 가서 일곱집사 중에 한사람인 빌립을 통하여 복음이 처음 전파 된 후입니다. 그러니까 빌립 외에도 핍박 때문에 사마리아 외에 다른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핍박속에서도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된 부흥의 열기가 안디옥까지 식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시작은 예수님을 기점으로 12제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70명....120명 그리고 3천명....5천명 그리고 허다한 무리가(유다지역) 그러나 오늘 말씀은 수다한 사람이(이방지역) 믿고 주께 돌아 왔더라.
즉 셀 수 없을 정도로 큰 무리가 된 지점이 바로 안디옥입니다. 이런 복음의 확산은 어떤 선교전문가의 치밀한 전략때문이 아닙니다. 누구의 선교 열심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전략이 사람을 통해서하는데 사람의 어떤 지식과 물량을 통한 것이 아니라 ‘핍박’이라는 어려운 전략이었습니다. 환난과 핍박---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고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전략,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서 선교는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안디옥이란 도시를 잘 보아야 합니다. 매우 중요한 이방선교지역거점이기 때문입니다. 안디옥은 당시 로마의 셋째 가는 도시입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가 안디옥입니다. 2천 년 전 그 당시로는 세계 3대 도시의 하나인 것입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을 보면 그 당시에 벌써 인구가 오십 만 명이었다고 해요. 굉장한 수준입니다. 특기할 것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 오십만 명의 7분의 1이 유대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곧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거기에 살았어요. 당연히 회당도 많고 유대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도하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지요. 여기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시가 크므로 그만큼 영향력이 크고, 여기서 복음이 전파될 때 에 그것은 온 세계로 복음이 확산되는 데에 아주 유리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디옥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이방사람들이 예수 믿게 되었다는 소문이 나니까 예루살렘교회에서는 교회의 일치성을 위하여, 교회 연합을 위하여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23절 바나바가 어떤 사람인가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바나바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찬 사람이요 좋은 사람입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볼때 몇 사람이 믿는가, 어떤 일이 생겼는가, 과거가 어떤 사람들인가 따위는 묻지 않았습니다. 이방사람이냐 유대사람이냐-----이런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혜를 보세요. 사람을 보아도 은혜부터 먼저 보세요. 사람을 사귈 때에도 은혜를 보고 사귀세요. 은혜 있는 사람과 사귀면 여러분도 은혜 있게 됩니다. 목회를 해오면서 느낀 것은 심방 때 어느가정 심방한다하면 권사님 집사님들을 모시고 갑니다. 가끔 보면 먼저 성도의 모습을 보고 은혜로 인사를 나누며 서로 감사의 하답을 서로 나누면 좋은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집에 무엇이 있는가 아파트 몇 평인가 희기한 물건이 있으면 그것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성도 집에 가면 서성되며 먼저 집 구경하지는 않습니까? 목사는 끝까지 예배자리에 앉아있는데 이방 저방 서성되는 것 좋지 않더라구요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성도들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밖에 보지 않았어요. 이것이 바나바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안디옥에 살고 있는 구원받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오직 23절하반절입니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주님을 열심히 섬기세요. 굳게 붙어서 주님과 함께 하십시다-----이런 위로의 권면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적인 이야기 다른 말을 하지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바나바임을 24절에 보면 바나바의 신앙의 성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4절입니다. 바나바는 착한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했습니다. 바나바는 첫째....착한 사람 즉 선한 사람입니다. 둘째.....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처음 등장한 사람은 아닙니다. 행 4:37절을 보면 오순절 성령이 강림해서 모두가 은혜 충만 할 때에 바나바는 자기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어 구제했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를 마음에만 간직하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 사람에게 특별히 나타나는 것은 사도 바울의 옹호자였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아직도 큰 사도로 역사하기 이전에 먼저 예루살렘에 갔고,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고 전도하고자 했지마는 심지어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 도 만나주지 않았어요. 바울을 보고 '이 사람이 한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다메섹까지 가던 사람인데 지금은 또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하는 것인가'싶어 무서워서 사람들이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모두가 피하고 있을 때에 바나바가 나타났었고, 바나바는 바울에게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행9:26-30)에도 등장하는데 이때도 바나바가 등장하는데 그는 바울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고, 그리고 다메섹에서 아나니아를 만났고, 세례를 받았고 하는 이야기를 전부 듣고는 '아, 은혜가 거기 있었구나, 하나님께서 역사 하셨구나' 하고 바울을 믿었습니다. 믿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추천을 했어요.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오, 하고 말입니다. 바울 스스로가 자기를 증명할 수 없지 않습니까? 바나바가 먼저 바울의 사람됨과 그리스도인 됨을 알고, 알아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전도하고 옹호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바나바는 이렇듯 중요한 사람이요, 덕망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 의 덕을 다시 분석해 말씀드리지요. 그는 우선 남의 장점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장점을 못 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름지기 믿음의 사람, 은혜의 사람은 남의 장점을 봅니다.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약점도 있고 강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덕 있는 사람은 그 중에서 장점을 봅니다.
또한 바나바는 사람을 알아보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그 사람 못 믿겠다 하고 의심하지만 바나바는 변화한 사울을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변화하고 중생한 것을 인정할 줄 압니까? 우리는 때때로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된 것을 보면서도 과거에 그 사람이 전과자였는데, 과거에 이런 실수를 범한 사람인데…… 하고, 변화한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인정하지 아니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 기는 회개하고 새사람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사람의 회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변화한 모습을 알아달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변화한 존재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남의 족보까지 들먹이면서 이러쿵저러쿵 합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능력을 더 크게 알고 있어요. 예수로 말미암아 변화하고 중생한 바울임을 그는 믿고 있어요.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변화한 바울을 믿어요. 그런고로 그는 자기의 명예를 걸고 사도 바울을 천거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나바는 허물을 용서할 줄 압니다........ 지난날에 큰 허물이 있었으나 이것을 용서하고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덕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나바의 전 생애를 보면 그는 그렇듯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점점 높아지는 데 반하여 그 자신은 존재가 희미해집니다. 바나바는 질투가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에 대하여 추호라도 내가 추천한 사람이다. 내가 천거한 사람이다, 내가 돌아본 사람이다, 내가 키운 사람이다, 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법이 없어요. 하나님의 큰 사역 앞에서 인간적인 질투며 좁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세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착한 사람인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 바나바는 다소까지 가서 바울을 만납니다. 25-26..... "바나바 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고향에 가서 묻혀 있는 바울을 데려옵니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세웁니다. 함께 복음을 전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선교사로서의 발동이 걸려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장에 넘어가면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할 때에 바울과 바나바의 두 사람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바나바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하면서 요샛말로 말하면 적성검사에 합격한 것입니다. 선교사로서의 실력검사에 합격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합니다. 그리하여 선교사로 파송됩니다.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바나바가 1년 동안 바울의 후견인이 되어준 것입니다. 매우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기의 권위로써 그의 신분을 보장했고 동사 동역 하면서 주의 일을 어떤 의미에서는 가르치기도 하고 권고도 하고 인도하는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게 서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저렇듯 바울이 바울 되게 되는 데는 바나바의 추천이 절대적으로 힘이 되었습니다. 그의 후원과 그의 공로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별명이 붙여집니다. 크리스티아누스 곧 크리스찬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됩니다. 크리스티아누스-----그리스도의 사람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 자신이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비방하면서 붙여준 것입니다.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들, 예수쟁이들, 예수 도당-----이런 투로 붙여준 것입니다. 교만한 유대인들이 자기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결국은 이 때부터 유대종교에, 유대교라고 하는 종교의 한 분파인 양 되었던 기독교가 비로소 기독교로 독립하게 됩니다. 사실은 그 때까지 기독교는 유대교의 하나로 취급되었습니다. 유대교 안에 속한 기독교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들, 예수 도당, 예수에 속한 사람들이라 호칭하게 되니까 여기서 기독교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한, 예수만을 높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가 생깁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마침내 새로운 의미의 교회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종교학적으로 독립하는 때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 수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밖에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만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2천 년-우리는 다같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입니다
27-30절입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시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아가보라고 하는 선지자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에 내려 와서 "큰 흉년이 들것이다."라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유다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도탄에 빠져 끼니를 때울 것이 없어 굶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에서는 흉년이 들지 않았는지라 양식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안디옥에서는 구제헌금 즉 부조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이 부조를 보낼 때 첫째로...... 힘대로 실천했습니다. 둘째로...... 작정한 것을 실천했습니다. 셋째로...... 이름 없이 실천했습니다. 자기들의 이름을 내지 않고 바나바와 바울의 손을 통해 그 곳의 장로들에게 주어 구제하게 하였습니다. 즉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실천하였습니다...... 역시 바나바는 하나님의 사역에 큰 일꾼으로 쓰임 받은 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바나바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교회를 섬기는 일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