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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69) 2024. 6. 12
다윗의 회개와 재앙
사무엘하 24:10-17
<다윗의 인구조사>
지난 우리는 다윗의 ‘인구조사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인구조사 그 자체를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인구조사를 합니다. 그것은 국력을 가늠하는 일이며, 세금을 걷고, 전쟁에 나가 싸울 사람의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 곡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심각한 죄로 간주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의 마음에 교만한 마음이 가득 찬 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군사력을 의지하고 자랑하려는 동기를 보신 것입니다.
예전 다윗은 어땠습니까? 항상 하나님만을 자신의 힘으로 삼은 믿음의 사람,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전쟁을 해오면서 늘 하나님 앞세우고 치렀습니다. 군대의 숫자로 이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힘을 얻고, 안정이 되는 순간)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입니다. 자신이 부릴 수 있는 군대의 숫자를 알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돌이킬 자가 없었습니다. 요압이 반대했지만, 다윗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결국, 요압을 비롯한 사령관들은 군사들을 데리고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을 다니며 인구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홉 달 스무날 만에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압이 왕에게 칼을 빼서 다룰 수 있는 용사가, 이스라엘에는 팔십만이 있고, 유다에는 오십만 명이 됨을 보고하였습니다.
<다윗의 회개>
이렇게 인구를 조사하고 난 다음에, 다윗은 자신의 마음에 교만함이 깃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10절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자신의 마음에 숨어있는 동기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을 ‘통계’로 바꾸는 일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숫자’로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유혹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목회자가 언제 유혹을 받습니까? 맨땅에 헤딩하듯이 개척하여 고생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고 자신의 위치가 공고해지면 교만한 마음이 자리를 잡습니다. 어느 순간, 교인의 숫자와 예배당의 크기를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부흥시켜주신 하나님은 어디로 가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지혜와 노력의 결과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다가 그만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자, 다윗은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큰 잘못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책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전에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을 사지로 몰아넣은 일이 있었을 때에도 다윗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죄인 것은 알았지만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으로 능히 입막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의 죄를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셨습니다(성경을 읽는 모든 인류가 그의 죄를 알게 됨).
그때 다윗이 깨달은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절대로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회개하면, 용서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대가는 치러야 했지만(집에 칼이 떠나지 않는), 그의 왕조는 지켰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의 죄를 깨닫자마자,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순간 원망과 변명하기보다는 즉시 회개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장점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자마자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담을 보십시오. 그는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의 죄를 지적하셨을 때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하여, 그 책임을 하나님과 여자에게 전가하였습니다(창3:12, 20).
또, 가인도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벌을 내리시기 전까지는 아벨을 죽인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창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다윗의 장남 암논은 자신의 이복 동생 다말을 범하고도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삼하13:15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결국 압살롬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를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은 더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9:12)라면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10, 23)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원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때때로 알게 모르게 짖는 ‘자범죄’를 깨닫는 순간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세 가지 징계>
다윗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11~13절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갓(Gad)에게는 두 개의 호칭이 붙어있습니다(‘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선지자’(先知者, 히 han-nabi, the prophet)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대언자’입니다.
‘선견자’(先見者, 히 chozeh, a seer)는 말 그대로 ‘먼저 보는 사람’입니다.
이 두 명칭을 정확하게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지자’는 환상이나 이상을 통한 경험을 강조하는 반면, ‘선견자’는 사건의 본질을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뜻합니다.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이란 표현은 평소 갓이 다윗 왕의 눈이 되어 사물이나 사건의 본질을 파악해주는 역할을 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갓이 다윗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오래전에 모압으로 피신했을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삼상22:5). 그 후에 갓은 다윗을 떠나지 않고 줄곧 그 곁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선지자 갓이 전해온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 심판의 내용을 말씀하시고는 다윗에게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첫째는 칠 년 기근의 시련입니다.
그런데 역대기 평행 본문에 따르면, ‘칠 년의 기근’이 아니라 ‘삼 년의 기근’으로 되어있습니다(대상21:12).
뒤이어 나오는 재앙의 내용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면(‘석 달’이나 ‘사흘’), 3년이 더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다윗은 이미 사울 왕의 기브온 학살 사건으로 인해 삼 년간의 기근을 겪었던 터입니다.
기근이 가져오는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7년의 기근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면 그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다윗이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둘째는 석 달 동안 원수에게 쫓기는(전쟁) 시련입니다.
이것은 이방 민족의 침입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부의 반란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다윗 왕은 이미 블레셋을 비롯한 수많은 이방 민족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또 압살롬의 반역과 세바의 반란을 경험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이 심판이 다윗 개인을 향한 것이기에 가장 쉬운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은 개인적인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반역)은 온 민족의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비록 석 달 동안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나이가 든 다윗의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셋째는 사흘 동안의 전염병 시련입니다.
가장 짧은 시간이기는 하나, 전염병은 하루에도 수만 명이 죽을 수 있기도 선택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기근과 전쟁과 질병은 인간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대표적인 원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때, 이 세 가지 수단을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의 선택>
다윗은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요?
14~15절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고통스러워합니다. 어느 것 하나도 선택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애매모호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14b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일인칭 복수 주어(우리)와 단수 주어(나)가 동시에 섞여서 나오고, 표현 방법이 낯서니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하면, ‘사람의 손보다는 긍휼이 크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모든 재앙이 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이시니 어떤 것이든 달게 받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해석은, 물론 기근과 전쟁도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기는 하지만, 자연이나 사람을 통해 심판하시는 것이고, 질병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심판하시는 것이기에 마지막 세 번째 재앙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이 선택을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은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심판하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실 것을 기대하며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 번째 수단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3일 동안 이스라엘 땅에는 전염병이 내려지고 무려 7만 명이나 죽고 말았습니다.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까 너무 과한 벌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다윗이 잘못한 일인데 왜 백성들이 애꿎게 죽어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를 벌하시기 위해 다윗을 시험에 들게 하신 것입니다(1절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백성의 죄로 인해 벌을 받은 것입니다.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다윗은 판단은 옳았습니다.
16절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성경 속 천사들의 역할> 천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분 가까이에서 그분을 섬기는 천상의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본래 영적인 존재들이며 많은 능력과 지식을 갖고 있고, 죽음 등 인간적인 한계로부터도 자유로운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거룩한 이들이라는 표현이 천사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전해 주는 내용을 토대로 천사들이 하는 일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분의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해줍니다(창16:7-12, 출3:2, 눅1:11-20 등) •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거나 돕고 인도합니다(창19:15-22, 출14:19-20, 마18:10 등). •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것을 수행하는 대리인 역할을 합니다(창19:1-13, 삼하24:16-17, 행12:23 등). •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 때도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마13:41. 49, 계8:5-9 등). |
천사가 예루살렘 쪽으로 손을 뻗쳐서 그 도성을 치는 순간에, 주께서는 재앙을 내리신 것을 뉘우치시고, 백성을 사정없이 죽이는 천사에게 그만하면 됐다고 하십니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실행하는 '멸하는 천사'(출12:23)를 가리킵니다.
‘뉘우쳤다’는 것은 하나님이 뜻을 바꾸셨다는 말입니다. 아직 심판의 기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흘 동안 전염병을 내리셔야 했는데, 하나님은 급히 돌이키시고 천사에게 “네 손을 거두라”고 명하셨습니다. 긍휼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다윗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사흘 내내 전염병을 돌게 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때, 주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었습니다. 아라우나는 이방인입니다. 이처럼 천사의 모습을 자세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이 전염병 재앙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참된 지도자 다윗>
백성을 치는 하나님의 사자를 본 다윗은 고통스러웠습니다.
17절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다윗은 너무나도 비통한 마음으로 “하나님이여, 내가 범죄하였으니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라고 엎드렸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아뢰었습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백성은 양 떼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합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을 치고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이렇듯 참된 지도자는 자기 자신보다 백성을 더 아끼고 사랑합니다.
한편, 병행구절인 대상21:16을 보면, 다윗은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일국의 왕이라는 처지에 절대 연연치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최대한의 겸손과 회개의 모습을 보여 드린 것이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한 분씩 연상됩니다.
구약에서는 모세가 생각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타락했을 때.
출32:31~32“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32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다윗이 비록 실수하는 왕이었어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듣고,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모습을 예시한다는 칭송을 받는 것은 바로 이런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범죄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죄의 삯은 누구에게나 일반이라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도 죄 가운데 머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죄를 깨닫는 순간 속히 돌이킬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죄뿐 아니라 백성의 죄까지도 책임지려 하였고,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결국, 다윗처럼 우리에게 있는 죄가 깨달아지면 변명하려 들지 말고, 그 허물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손들고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힘입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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