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맑음
우리 제주 오름 팀 20명은 전날 묵었던 청벽 비발디펜션을 떠나 식사를 끝내고 계룡산 갑사(甲寺)를 향했다. 갑사나 동학사에 몇 번 답사 갔으면서도 기회가 닿지 않아 못 갔던 계룡산을 오늘은 드디어 오르는 것이다. 어디든 올라갈 의지만 있으면, 인연이 닿는 한 언젠가는 오르게 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로 ‘정감록’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예언했고, 조선초에는 계룡산 신도안에 왕도를 건설하려 할 정도로 좋은 곳이 아닌가.
동학사 주차장 옆 식당에 점심을 준비했다기에 갑사로 출발해서 동학사로 내리는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동학사로 오르는 길이 가파라서 느슨하게 올라가는 갑사 코스가 더 편할 것이니 오히려 잘 되었다. 9시 30분 갑사 주차장에 이르러 삼다수 한 병씩을 지급 받은 다음 출발이다. 일주문 앞에는 장들이 서서 익살맞은 얼굴로 우리를 배웅한다.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자연생태관찰로가 숲 옆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이곳의 나무는 고목이 많아 모두 대형이다. 사월초파일이 다가오는지라 등도 간간히 매달았다. 부도밭을 지나 사천왕문을 통과하고 절로 들어갔다. 한쪽에 금낭화와 흰매발톱꽃이 피어 우리를 반긴다. 여기서부터 인원을 점검하고 제대로 출발이다. 벌써 5명은 절을 거치지 않고 올라가는 중이라 했다.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갑사는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백제시대에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했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 인호대사가 다시 중건한 걸로 알려져 있다.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와 부도(보물 제257호), 구리가 8천근이나 들었다는 동종(보물 제478호)을 비롯한 보물 6점 외에도 지정문화재 9점, 비지정문화재 10점 등이 보존되어 있다.
♧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
이곳으로 오르면 용문폭포를 거쳐 신흥암 - 금잔디고개 - 삼불봉 정상 -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내리게 된다.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라 하여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룡산. 대전광역시와 충남 논산시, 공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높이는 845m. 차령산맥 서남부에 솟아 있으며, 금강에 의한 침식으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연천봉, 삼불봉, 관음봉, 형제봉, 도덕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두 줄기, 서쪽으로 한 줄기를 뻗치고 있어, 전체의 모습이 마치 닭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했다 한다. 산세가 험하며, 노성천, 구곡천, 갑천 등이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느티나무, 참나무, 서나무류 등과 너구리, 여우, 뻐꾸기 등 동식물 1,160여 종이 자라고 있다. 예로부터 신라 5악에 속해 서악으로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중악단을 세워 산신제를 지낼 만큼 신령스러운 산이다. 19세기말부터 나라가 혼란해지자 신도안을 중심으로 무속신앙과 각종 신흥종교가 번성하고 수도장으로 이용되어, 계곡 곳곳에 교당과 암자, 수도원, 기도원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은 종교정화운동으로 시설물들이 철거되고 주변을 정리해 깨끗하게 되었다.
1968년 12월 지리산에 이어 두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의 총면적은 61.1㎢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산봉우리와 계곡, 폭포 등의 특출한 자연경관을 비롯해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의 고찰과 암자, 유물유적이 많다. 주봉인 천황봉의 일출을 제1경으로 삼불봉의 설화(雪花), 연천봉의 낙조, 관음봉의 백운(白雲), 동학사 계곡, 갑사계곡의 단풍, 은선폭포, 청량사지쌍탑(남매탑) 등 계룡8경이 유명하다.
♧ 삼불봉의 시원한 풍경
용문폭포를 지나면서 시원한 물소리와 울창한 나무 그늘이 이어진다. 나무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올라가다 멋진 풍경 속에 안겨 있는 신흥암에 이르러 조금 쉬고, 다시 올라간다. 어쩌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 꼭 어울리는 암자가 있었는가 싶다. 암자를 지나면서부터는 별로 가파르지 않아 능선인 금잔디고개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헬기장이 있는 고개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며 쉬었다. 앞에 간 팀도 있고 마지막 그룹도 있어 적당히 거리를 두어 출발하자고 하여 길을 나선다. 작은 디카를 못 가져갔기 때문에 불편해도 100mm 렌즈로 바꾸어 길섶에 널려 있는 애기나리를 찍고 가는데, 이번에는 벌깨덩굴 군락이다. 그냥 갈 수 없어 서둘러 찍고 올라가니, 한 사람이 남았다가 삼불봉에 올랐다고 전해준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봉우리에서 사방을 바라보니, 안개는 조금 끼었지만 멋진 산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천황봉과 동학사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세 부처님이 모습을 닮아 삼불봉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해발 775m. 삼불봉의 정상에 서면 동학사와 더불어 동화사 계곡, 갑사 계곡이 친근하게 내려다보이며,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과 쌀개봉, 천황봉이 솟아올라 그 위용을 자랑한다. 삼불봉 사계(四季)의 조망은 언제나 아름다우나, 특히 흰눈으로 장식한 계룡산의 풍광이 백미(白眉)로서 계룡산의 제2경으로 손꼽는다.
기념사진을 찍고 갖고 간 막걸리로 정상주를 나눠 마신 후 하산한다. 삼불봉 고개에서 남매탑까지는 300m, 내려가는 길이라 가파르긴 하지만 한 20여분 걸려 도착했다. 남매탑 주위는 등으로 장식되었고, 많은 등산객과 참배객으로 북적인다. 남매탑은 청량사지 쌍탑으로 7층탑은 보물 제1285호, 5층탑은 보물 제1284호로 고려때 세워진 백제계 탑이다.
♧ 애틋한 남매탑의 전설
옛날 추운겨울, 암자에 불경을 읽는 스님이 있었는데, 한밤중에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보니 커다란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어흥거리고 있었다. 스님은 침착하게 “나를 잡아먹고 싶으냐?” 하고 물었으나 아니라는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호랑이가 괴로워하는 듯해 가까이 가서 벌린 입을 들여다보니 커다란 뼈가 목에 걸려 있었다. 스님은 팔을 걷어붙이고 조심스럽게 호랑이 목구멍에 손을 넣어 그 뼈를 꺼내 주었다.
호랑이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암자에 눈이 쌓인 어느 날 자정 무렵,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에 문을 열고 보니 며칠 전에 왔던 그 호랑이가 다시 왔는데, 등에는 댕기를 딴 처녀를 업고 있었다. 처녀는 춥고 두려워서 정신을 잃고 기절하였다. 스님은 호랑이가 은혜를 갚으려 이런 일을 했구나 생각했고, 호랑이는 가 버렸다.
스님은 기절한 처녀를 더운 물로 언 몸을 녹이며 극진히 간호하여 건강이 회복되었다. 며칠 후 스님의 권고로 처녀의 친가가 있는 상주로 처녀를 데리고 가서 그 부모들에게 그 연유를 설명했다. 처녀의 부모들은 딸의 생명의 은인이니 자기 딸과 결혼 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스님은 결혼할 수가 없다고 거절을 했다. 처녀는 정 그러시다면 제가 스님을 따라가서 밥을 짓고 빨래수발을 하겠다고 애원해 어쩔 수 없이 처녀를 데리고 돌아왔다.
스님은 안방에서 자고 처녀는 윗방에서 자기로 하고 호칭은 오라버니와 동생으로 부르기로 했다. 오랫동안 도를 닦다가 나이가 들어 오누이 모두 세상을 떠나자. 후배 스님들과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그 정결함과 애틋한 정을 후세까지 기리고 전하여 귀감을 삼으려 탑을 세웠는데 그게 바로 이 남매탑이라 한다.
♧ 동학사로 내리다
남매탑에서부터 동학사까지는 1.7km인데 매우 가파라 그곳으로 오르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워 몇 번이고 그런 말을 하며 내렸다. 동학사 입구에 이르러 커다란 고목이 있는 냇가를 따라 동학사로 갔다. '대웅전'이라 새긴 바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보니, 마당엔 나지막히 등을 많이도 매달아 놓았다. 굽어 들어가 대웅전을 보고 뜰에 있는 함박꽃을 찍었다.
비구니들의 불교 전문 강원(講院)인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동쪽에 학바위가 있어 동학사라 했다 한다. 고려말~조선초 삼은(三隱)의 위패를 모신 삼은각과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냈던 숙모전 등이 있다. 고려조에 와서 도선국사가 중수했으며 태조의 원찰로 삼아 국태민안을 빌었고, 그 뒤 순조와 고종원년(1864년)에 크게 중건 개수되었다.
동학사에서 동학사 주차장까지는 평평한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걸으며, 탐방로를 따라 동학사계곡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간다. 전에 왔을 때는 냇가에 평상을 놓고 어지럽게 장사를 하고 있던데, 이제는 일주문 밖에 크게 집을 지어 영업을 하고 있다. 많이 정돈된 셈이다.
옛날 가는 곳마다 도를 닦거나 기도하는 곳이 많고 어지러웠던 계룡산이 아니라 아주 잘 정리되고 깨끗한 계룡산을 보면서 국립공원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걷다보니 가이드가 마중 나와 있다. 절에 들르다 보니 모두 4시간쯤 걸렸다. 우리는 계명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으며, 막걸리 한 잔으로 피로를 풀고 산행을 마쳤다. 다시 멋있는 산 하나에 족적을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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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