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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에 누가 죽으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 왜 그럴까. 옛날에는 가족 중에 누가 상을 당하면 다른 가족은 죄인이라고 하여 그 해에는 농사일에서 손을 떼는데도 왜 풍년이 든다는 것일까.
이영문 씨에게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화두였다. 나이든 농부들에게 물어봐도 속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죽은 가족의 영혼이 농사를 도와준다는 유교적인 관점의 답변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해답을 찾았다고 할 수 없었다.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았다.
농사를 잘 짓는다는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해답을 찾던 이씨는 어느 시점에 이르자 문득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씨는 곧 새로운 농법을 개발했고, 이 농법에는 ‘태평농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이 농법이야말로 환경친화적인 미래의 농법이라고 믿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태평농법을 주목하고 있으며, 외국으로도 전파되고 있다.
* 3만6000평 일년 농사, 일주일이면 끝난다
1970년대 이영문 씨는 원래 농기구를 수리하는 일을 했었다. 수입 농기계들은 고장이 잦았다. 그런데 농기계를 수리하면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고장난 부분을 보완해서 고장이 안 나게 해놓으면 다른 부분이 고장나는 것이었다.
마냥 고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실제로 농사를 지어봐야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면서, 농기계가 왜 고장나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씨에게는 궁금한 게 또 생겼다. 흙을 여러 번 갈아 부드럽게 해주면 작물이 잘 자라야 하는데 오히려 병충해만 심한 것이었다. 반면 소로 써레질한 이웃 논은 농사가 잘 되고 있었다.
이듬해에는 기계가 아닌 소로 써레질해도 농사가 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웃 농부에게 1.5미터 정도 폭으로 길게 밭을 갈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 농부는 1미터 폭으로 밭을 갈아 놓아서 50센티미터는 농기계로도, 소로도 써레질을 안 한 곳으로 남았다.
그러다 보니 각각 농기계와 소로 써레질한 논과 써레질을 안 한 논까지 세 종류의 논이 생겼다. 세 곳 모두에 모를 심었는데 뜻밖에 전혀 갈지 않은 논에 심은 벼가 제일 잘 자랐고, 알곡도 많이 맺혔다. 이씨는 경운기를 쓰지 않는 무경운 농사에 뭔가 매력을 느꼈다.
그 다음해에는 아예 밭을 갈지 않았다. 묘판도 만들지 않고 씨만 흩어놓았다. 그래도 벼가 잘 자라났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니까 잡초가 자라나기 시작했고, 가을쯤에는 논을 온통 뒤덮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이씨는 농사는 짓지도 못하고 잡초만 짓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농사를 지은 당초 목적은 기계를 시험하는 것이었지만, 농사가 엉망이 되자 기계 생각이 싹 달아났다. 그보다는 농사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나이든 농부들을 찾아다니면서 농사비결을 물어봤다.
그 때 ‘상을 당하면 그 해 풍년이 든다’는 말을 들었다. 옛날에는 상을 당하면 죄인이라고 해서 농사고 뭐고 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관리를 안 하면 풀밭이 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서 다른 지역 어른들에게 답을 찾기도 하고, 그들의
부친이 농사짓던 방식을 찾아 나갔다. 그랬더니 답이 나왔다.
이씨가 내린 결론은, 벼는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자생력이 길러져 병충해나 기후의 변화에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을 당해서 아무도 논을 돌보지 않으면 벼가 스스로 자생력을 가져서 풍년이 들었던 것이다.
농약이나 비료는 아예 필요가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농약과 비료에 길들여진 땅을 먼저 회복시켜야 했다. 땅이 살아나면 자연생태계가 복구되기 때문에 병충해를 막을 수 있었다.
파종할 때 볏단이나 보릿단을 위에 덮어주면 햇빛이 차단되기 때문에 잡초도 자라지 않았다. 씨앗은 그냥 뿌리기만 해도 알아서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자라났다. 초여름에 보리를 수확하면서 벼를 파종하고, 가을에는 벼를 수확하면서 보리를 파종했다.
이씨는 수확하면서 동시에 파종이 가능한 기계를 만들어서 농사를 더 수월하게 짓고 있다. 다른 작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3만6000평 땅에 농사를 짓는 데 일년에 일주일만 일하면 농사 끝이었다.
“쌀농사를 지으려면 농부가 여든여덟 번 손길이 간다고 하는데, 그 말은 일본 농법이 들어온 이후에 생긴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쌀농사가 쉬웠습니다.
우리는 일본과 독일에서 선진 농업기술을 들여오고 있는데, 기후와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쌀농사만큼은 선조들의 지혜를 찾아서, 그 당시에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 비료와 농약이 필요없다
태평농법을 적용한 결과, 벼는 정말로 주위 환경을 극복하면서 튼튼하게 자라났다. 풍년이 들 때는 다른 논과 수확이 비슷하지만, 병충해가 심하거나 태풍 같은 기상이변이 있을 때는 다른 논보다 수확이 훨씬 많았다.
가격은 다른 쌀보다 25% 정도 비싸다. 비료·농약 등 부대비용이 안 들기 때문에 가격은 더 싸게 할 수도 있지만, 수요자가 많아서 가격은 자연스럽게 올랐다. 영양가와 미질은 월등하게 낫다고 한다.
태평농법으로 출하된 쌀은 수확하기 이전에 이미 주문이 끝난다. 그러면 매월 주문된 쌀을 도정하여 택배로 발송한다고 한다. 지난 가을에는 모 제약회사가 여기서 제공한 찹쌀로 고추장을 만들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태평농법이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하자, 이씨를 따르는 농부들도 점차 늘고 있다. 태평농법을 도입하려는 농부들은 동호회를 결성했는데, 8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300여 농가구에서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어떤 회원은 이미 8년 동안 태평농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농약과 비료도 필요없고 밭을 갈 필요도 없는 농법이 어떻게 가능하느냐고 하다가도,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이론적으로는 납득한다고 한다. 그래도 모두 태평농법을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농법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또 태평농법 자체가 국가에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 농민이 개발한 것이라는 점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료와 농약을 많이 팔아야 하는 측에서도 당연히 안 된다고 합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내 논에서 농사가 잘된 곳을 보지 않고, 아직 토양이 회복되지 않아 잘 안 되는 부분만 보고, 태평농법이 안 된다고 비판합니다.”
태평농법을 시작한 이후로 여유시간이 많아지자, 이씨는 나이 많은 농부들을 찾아다니면서 옛날의 농법을 연구하고 있다. 어떤 지역에 가면 며칠씩 차나 텐트에 머물면서 농법을 배웠다. 전통 농법은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말을 들어봐야 했다.
또한 우리 땅에 적합한 농기계를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 이미 파종하면서 수확하는 농기계는 개발을 끝내고 양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최근에는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탈착식 농기계를 개발하고 있는데, 여름에 완성된다고 한다.
이씨가 농기계 연구에 매달리는 이유는, 수입 농기계가 이 땅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외국 제품에만 의지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벼 이외의 작물도 재배할 계획인데, 밀감·커피·오렌지 재배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도 커피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옥수수 꽃가루와 벼 꽃가루를 섞어서 수정하는 시험도 하고 있다.
“태평농법은 기술이라기보다 식물 생태에 대한 이해입니다.
제주도에서 밀감 가격이 안 맞아서 버리곤 했던 사람이 태평농법으로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당도가 높아서, 다른 밀감은 안 팔려도 거기서 수확한 밀감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합니다.”
태평농법 확산의 또 하나의 걸림돌은, 농약과 비료를 공급하는 쪽의 입장이다. 이 농법이 도입되면 농약과 비료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또 기존의 농기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 뻔하다.
“비료와 농약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까, ‘돈 1억만 풀면 촌놈 한 놈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다’라는 협박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정부(농림부)는 환경농업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정부에서 말하는 환경농업은 비료를 70%만 쓰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태평농법은 지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틀 안에서만 지원하는 것입니다.
또 농림부는 태평농법이 있다고 해도 이에 대한 조사를 하부기관에 지시하는데, 하부기관에서는 절대로 태평농법이 좋다고 하지 않습니다. 농림부가 정말 한국의 농법을 생각한다면, 나를 직접 불러서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 거지 성자 페터 노이야르, ‘저 분이야말로 정말 수행하는 자’
태평농법을 시행한 지는 이미 20년이 넘는다. 이제는 외국에서도 태평농법이 보급되고 있다. 원불교의 미국 지부는 현지에서 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이씨는 인도네시아에도 몇 번 파종했는데, 비료·농약·농기계를 파는 강대국들의 제재가 상당히 심하다고 한다.
한편, 지난 1999년에는 독일의 거지 성자 ‘페터 노이야르’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나무 밑에서 이를 잡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보러 왔다”고 통역자를 통해 밝혔다.
그는 “자기 몸에 이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씨는 “해충은 다들 나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충이 장 속을 오르내리면서 산소 구멍도 만들어주고, 몸의 저향력도 길러주니, 나쁘다고만 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밭에 같이 나가서 태평농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페터 노이야르는 통역을 통해 “저 분이야말로 정말로 수행하는 자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년에 일주일만 농사일을 하는 이씨. 그는 자신을 ‘게으른 농사꾼’이라고 말한다. 한번은 아침 7시에 그를 찾아온 사람이 이씨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농기계를 연구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한가하게 잠을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씨가 과연 게으른 농사꾼일까.
“사람이 부지런하면 흙도 괴롭히고 곤충도 괴롭히고 작물도 괴롭히게 됩니다. 작물을 재배할 때, 부지런한 것은 식물과 공생하는 미생물이어야 합니다. 농부는 게을러야 합니다. 그래야 농사가 잘됩니다.”
출처 : 다음신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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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30년차, 연구하는 이영문씨
경남 하동에서 농사 짓는 이영문(李永文.51.옥종면 청룡리)씨는 '게으른 농부'다. 3만7000평의 논, 밭을 소유하고 있지만 농번기가 다가와도 느긋하기만 하다.
모를 심지 않고 논을 갈아 엎지 않는 독특한 농사법 때문이다. 농약, 비료, 제초제까지 사용하지 않으니 들에 나가봐야 할 일이 거의 없다. 이 처럼 태평스레 농사를 짓는다 해서 그는 자신의 농법을 '태평농법'(taepyeong.co.kr)으로 부른다.
그는 30여년째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농법을 국내외에 보급하고 있다. 이 농법은 미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 수출돼 있고, 국내서 500여 농가가 이 농법을 활용하고 있다. 모 TV방송의 '골든벨' 프로에 퀴즈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그의 농장은 자연농법에 관심 있는 전국 농민단체나 개인의 견학코스가 된지 오래다.
그가 생산한 '태평쌀'등 곡식은 400여 회원들의 직거래를 통해 팔려 나간다. 태평쌀 80㎏ 1가마가 30만원으로 보통쌀 16여만원 보다 2배쯤 비싸지만 부족한 실정이다.
그가 새 농사법에 눈을 뜬 것은 스물살 무렵.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유달리 손재주가 좋아 농기계 수리점을 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에 갔다가 쓴맛만 톡톡히 보고 고향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수리점을 운영하면서 당시 국내에 보급 중이던 농기계들이 모두 서양 농기계를 모방해 만든 것을 알게 된다. 옥수수 등 사료작물 수확에 맞춘 서양 농기계가 개조되지 않은 채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수입 농기계가 논.밭을 필요 이상 깊게 갈아 토양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리 실정에 맞는 농사법은 없을까'고민에 빠진 청년은 틈만 나면 평생 농사를 지은 노인들을 찾아다녔다.
경남 밀양의 어느 들녘을 지날 때 노인이 논두렁에서 풀을 베어 어린 모 사이에 까는 것을 본 그는 "잡초가 말라 죽는 데다 거미들이 생기면서 병충해도 없어져"라는 노인의 말을 듣고 손바닥을 쳤다.
그는 자신의 논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엔 풀을 베어 벼 사이에 덮어 주다가 나중엔 벼 논엔 보릿짚.밀짚을, 보리.밀밭엔 볏짚 을 깔았다. 이모작 논에서 수확한 뒤의 부산물을 활용, 일이 수월해졌다. 신기하게도 노인의 말처럼 풀이 자라지 않았고 병충해도 끓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계를 1995년에 만들었다. 농사비를 크게 줄인다는 의미로 '농비(農費))0기(機)'라는 이름을 붙여 특허를 획득했다.
이 농법을 적용한 주곡 생산이 본궤도에 오르자 그는 우리 종자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3년전 독지가의 도움으로 사천군 서포면 비토리 별학도를 사들여 토종종자의 대량 생산법을 찾고있다. 고향서 실험 중인 모종과 종자를 도난 당하는 일이 잦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이 섬을 택한 것이다.
그는 우리 토종 종자가 있다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한국의 전통 쌀 종자를 일본 종자회사에서 구입했고, 고추종자도 몽골의 조선족에게서 찾아냈다.
그는 "오랫 동안 우리 토양과 환경에 적응된 토종 종자들이 병해충에 강하고 우수한 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어 종자 복원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섬에서 태평농법을 마늘.상치.양파.고추.감자.참깨 등에 적용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은 쌀.보리.밀.콩 등에 주로 활용했다.
두 가지 밭작물을 함께 심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잘 자라게 하는 '농작물 짝짓기'도 마무리 단계다. 자외선을 싫어하는 고구마와 자외선을 좋아하는 참깨를 같이 심을 경우 서로 잘 자라고, 고구마 덩굴 때문에 참깨가 쓰러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혼작 작물로 마늘.상치, 양파.시금치, 고추.열무, 감자.콩 등을 짝짓는데 성공했다.
그는 내친 김에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는 우리나라 기후에 맞춰 외국산 열대 과일의 토착화에도 도전장을 냈다.
이 섬에는 체리.롱간.리치 등 외국산 열대 과일이 온실이 아닌 야외에서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가 씨앗을 심어 어릴때 부터 환경에 적응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준호(28).준부(27)등 두 아들을 농부로 만들었다. 고교 성적도 괜찮았던 두 아들을 농촌진흥청 부설 한국농업전문대를 나오게 한 뒤 농부 수업을 시키고 있다.
"농업을 제대로 배운 두 아들과 힘을 합치면 외국산 농산물도 두렵지 않아요. 농업을 자손대대로 물려줄 참입니다."
그는 태평농법을 개발하면서 체험한 자신의 자연주의 철학을 '모든 것은 흙 속에 있다''이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등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 태평농법
▶ 마늘과 상추를 같이 심어 잡초의 발생을 억제하는 태평농법의 혼작.
농약.비료.제초제.퇴비 등을 사용하지 않고 땅도 갈아 엎지 않는다. 벼농사는 초여름 밀.보리 수확과 동시에 논에 볍씨를 뿌린 뒤 보릿짚.밀짚 등을 덮는다. 가을엔 벼를 거두면서 밀.보리를 파종한다. 모내기를 하지 않아 물을 거의 대지 않는다. 벼 생육 집중기에 2~3번 물을 댈 뿐이다.
퇴비를 넣지 않고 보릿짚.밀짚이 퇴비가 된다. 이런 농법이 오랫 동안 적용된 논은 부엽토층처럼 씨앗이 뿌리 내리기 좋게 푸석푸석하다. 씨앗 위에 덮힌 짚.보릿대가 잡초 생육을 억제하며 온갖 미생물.천적들을 생겨나게 한다.
땅을 갈아 엎지 않는 것은 미생물이 죽거나 흙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땅의 본래 주인인 미생물들이 써래질 해주기 때문에 물을 대지 않아도 씨앗은 습기를 찾아 뿌리를 깊이 내린다.
경상대 최진룡 교수팀의 조사결과 이 농법의 3백평당 평균 수확량은 498㎏로 기존 농법의 413㎏보다 85㎏이나 많다.
농사비도 싸다. 기존 농법은 한 마지기(200평)에 13만~18만원 들지만 1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이 농법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1편, 석사 4편 등 5편이 나와 있을 정도로 학계도 효능을 인정하고 있다
출처 : 다음카페 꿈꾸는 유람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