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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말씀 2012년12월30일[일] - 2013년 1월4일[금] | |||
요일 |
제 1 독서 |
화답송 |
영성체 송 |
복음 | |||
30[일] (백)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
[1독] 집회서 3,2-6.12-14<또는 1사무,1,20-22.24-28> |
주님,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
우리 하느님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사람들과 함께 사셨네. |
[2독] 콜로새서 3,12-21<또는 1요한3,1-2.21-24> | |||
[복] 루카 2,41-52 | |||
31[월] (백)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 |
요한 1서 2,18-21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 |
요한 1,1-18 | |||
1[화] (백)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1독]민수기 6,22-27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시다. |
2독] 갈라티아서 4,4-7 | |||
복] 루카 2,16-21 | |||
2[수]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주교 학자 기념일 |
요한 1서 2,22-28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다. |
요한 1,19-28 | |||
3[목] (백) 주님 공현 전 목요일 |
요한 1서 2,29─3,6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요한 1,29-34 | |||
4[금] (백) 주님 공현 전 금요일 |
요한 1서 3,7-10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네. 하느님이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 |
요한 1,35-42 |
이 가설에서는 사도와 그 지방의 여러 교회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른 서간들과 여러 면에서 구별되는 골로사이서를 작업하는 데에 소요되었을 기간은 더 이상 고려되지 않는다. 아울러 에페소서가 일반적으로 바오로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골로사이서와 에페소서를 떼어 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3) 이 두 견해에 반대하는 쪽에는, 골로사이 교회의 상황이라든가 이 서간의 내용과 형식을 볼 때에 이를 사도 이후의 세대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전에 생생하였던 종말에 관한 관심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교회는 영지주의적인 공격에 맞서 사도의 권위를 내세운다. 이는 특히 바오로의 이름으로 수행된 에바프라의 사도직과 설교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설에 따르면, 골로사이서는 1세기 말엽, 곧 바오로가 사후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잘 보여 준다는 것이다(2베드 3,15-16 참조).
5. 서간의 의미
골로사이서의 집필 시기와 필자에 관해서는 이렇게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리지만, 이 서간이 근본적으로는 바오로가 다른 계기에 표명한 메시지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는 생각을 같이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완전히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부이시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인정을 받는 데에서도 그렇고(갈라디아서와 로마서), 우리의 운명, 우리의 죽음과 우리의 영원한 삶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율법이라는 체제의 아주 조그마한 톱니바퀴에도 손가락 하나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예전의 종살이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갈라디아서). 골로사이서도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의 절대적 주권 곁이든 위든 밑이든 다른 어떠한 세력도 첨가시키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강조한다. 이 역시 다시 노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서간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자유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율법 같은 데에서 구원의 방도를 찾을 필요가 없고(갈라디아서, 로마서), 그리스도 아닌 다른 존재에서 구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골로사이서). 물론 바오로 서간들의 언어가 전에는 주님의 재림 시기와 그에 대한 고대로 특징을 이루다가, 골로사이서에서는 우주의 으뜸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좌정하신 사실과 또 그와 관련된 공간이 지배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둘 다 똑같은 사실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단 한 번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리하셨으므로, 우리 역시 그분과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과 연결되어, 악의 세력들이 분주히 움직이면서 우리의 해방을 방해하던 그 ‘천상 세계’에 승리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현실을 도외시하는 도피 생활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이 서간 끝 부분이 보여 주는 것처럼, 우리가 참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천상 세계에서 사는 천신들, 곧 행성들의 운행과 운명을 지배하는 천사들과 세력들에 관한 이야기가 언뜻 보기에는 우리와 너무나 동떨어진 것 같다. 골로사이 신자들이 따르고 싶은 유혹을 느꼈던 음식 규정이라든가 종교 의식 같은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고 사도에게서 유래하는 대답을 깊이 생각하면, 이 서간이 일으키는 메아리를 알아듣게 된다. 이제 악의 세력들도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한 것들과 다시 타협하려는 우리의 시도나 그러한 것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노력도 이제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골로사이 신자들은 우리와 똑같은 믿음의 형제들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21세기의 인간으로서, 골로사이인들과 비슷하게 자기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닫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지구와 다른 행성들을 되돌릴 수 없는 진화의 길로 이끌어 가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구원은 이제 더 이상 배척을 받기도 하는 법이라든가 도덕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를 위협하고 소외시키는 속박을 벗어나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우주의 관계라는 결정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이 우주에서 바라보는 것과 온 세상에 선포되어 우리도 받아들인 복음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골로사이서의 본보기에 따라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그 해답에 따라 구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지니는 사명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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