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필자의 논문, 「수운 최제우 유적지의 풍수적 특성과 비보」, 동학학보 제54호,
동학학회, 2020년 3월.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최제우는 아버지의 삼년상을 마친 뒤 약 11년간에 걸쳐 전국을 유랑하며 무예와 장사, 의술, 복술 등을 배운다. 이후 그는 1854년(31세) 이곳 여시바윗골에 생활터전을 잡는다. 이곳은 처가도 멀지 않고 수도정진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이듬해인 1855년(32세)에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온 승려로부터 신인(神人)에게서 얻었다는 기서(奇書, 乙卯天書)를 받게 되는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
유곡동 유허지로 이어지는 산줄기(來龍)는 이동하는 과정에 위로 솟구치고 아래로 꺼지는 수직변화(起伏)와 좌우로 꿈틀대는 수평변화(之玄)를 하는 생룡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 모습은 현무봉(92m)의 후방인 <그림6>의 Ⓐ지점에서 확인된다. <그림7>은 Ⓐ지점에서 내룡이 내려오는 북쪽을 바라 본 모습이다. 내룡이 과협(過峽)을 형성한 다음 솟구쳐 봉우리를 형성하는 모습(기복)과 좌우로 변화(지현)하면서 변화지점에 지각(枝脚)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산줄기의 기운(地氣)이 유허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향을 90°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형태를 풍수에서는 ‘횡룡입수(橫龍入首)’라고 한다. 이러한 방향전환을 위해 산 뒤편에 작은 산줄기나 암석이 받쳐주는 경우가 있는데, 풍수에서는 이를 귀성(鬼星)이라 한다. 이곳은 현무봉 뒤쪽(서쪽)이 전체적으로 두툼한 둔덕의 형태로서, 산의 기운을 유허지로 밀어 넣고 있다.
유허지의 사신사(四神砂)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그림6>을 보면, 동쪽과 서쪽의 두 개의 산줄기가 남북으로 각각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유허지가 자리해 있다. 즉 지도상으로는 유허지가 단지 길게 발달한 두 개의 산줄기 사이 골짜기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유허지 마당에 서 있으면, 주위 사방의 산줄기가 유허지를 잘 감싸고 있어 아늑한 환포감을 느낄 수 있다.
유허지의 사신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풍수에서는 터의 뒤를 받치고 있는 산을 주산(主山, 현무봉)이라고 하며, 현무봉의 형태와 역량을 터의 풍수적 길흉을 판단하는 첫 번째 요건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만약 터의 뒤로 산이 없이 골짜기가 있다면 가장 흉한 터의 하나로 평가한다.
<그림8>은 유허지의 동쪽에서 바라 본 모습이다. 뒤의 산줄기가 아래로 꺼졌다가(伏) 위로 솟으면서(起) 진행하고 있다. 유허지, 특히 초당은 그 중 위로 솟아 있는 봉우리 부분에 기대고 있다. 비록 뒤의 봉우리(현무봉)가 높지는 않지만 단정한 형태이다. 이로써 유허지의 현무봉은 풍수적 길격으로 평가된다.
유허지의 안산은 동동남쪽의 104m봉이다(그림8 우측 하단 그림). 안산은 외청룡의 산줄기가 전체적으로 남쪽으로 달려가는 도중에 유허지 앞쪽에서 살짝 봉우리를 일으킨 지점이다. 초당은 바로 그 살짝 솟은 봉우리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나라 많은 전통마을 주택들의 방향이 길상의 산봉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 또한 유허지에서 가장 중심 건물인 초당이 작지만 옹골차게 솟은 안산을 향하고 있다.
유허지의 청룡은 북동쪽에서 터를 유정(有情)하게 감싸고도는 산줄기다(그림9). 이곳에는 묘소 한 기가 있다. 청룡은 비록 높이가 낮지만 <그림6>에서 보는 것처럼 외청룡의 좌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과 바람으로부터 유허지를 보호해주는 풍수적으로 중요한 산줄기다. 외청룡은 청룡 너머로 보이는 북쪽의 단정한 산봉우리다. 외청룡 봉우리의 형상이 한자 ‘일자(一字)’인데, 풍수에서는 이런 형상을 오행(五行) 중 토형산(土型山)으로 분류해, 대단히 길한 형태로 여긴다.
유허지의 백호는 초당의 오른쪽(남쪽)에서 초당을 살짝 감싸고 있는 작은 산줄기다. 백호는 비록 길이가 짧지만 왼쪽(북쪽)에서 오른쪽(남쪽)으로 흘러가는 물을 거두어주는 역할로서, 풍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산줄기다. 외백호는 유허지로 이어지던 산줄기가 계속 남쪽으로 이어져 주차장(그림6의 B지점) 인근에서 크게 과협을 형성한 다음 74m봉을 일으키는 산줄기다. 외백호는 유허지 앞 명당의 물을 최종적으로 거두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허지에 풍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물(水)은 외청룡 좌우 골짜기에서 발원해 유허지 동쪽에서 합수(合水)한 다음 남쪽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다. 수구(水口)는 74m봉과 안산이 남쪽으로 이어져 내려온 산줄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물줄기의 풍수적 장점은 유허지 앞에서 크게 감아 돌며 흐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물줄기의 단점은 수구가 명확히 닫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산을 일으킨 산줄기가 남서쪽으로 하나의 산줄기를 뻗어 내리고, 주된 산줄기가 명당 바깥으로 휘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만약 안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나 외백호 산줄기 중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감아주었다면 수구가 완벽히 닫히게 되었을 것이며, 유허지의 풍수적 격이 한층 더 높아졌을 것이다.
유허지에서 풍수적으로 취약한 지점은 유허지와 청룡 산줄기 사이의 작은 골짜기이다(그림10). 이곳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고갯마루에서 시작된 작은 골짜기가 형성된 지점이다. 그래서 골짜기 상단 부위에는 바람을 막기 위해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땅 속으로는 미세한 물줄기가 흘러 골짜기 하단 지점(유허비 북쪽)에는 땅이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추가로 대나무를 더 식재해 비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허지 동쪽 간이화장실 인근에는 작은 대나무 숲(그림6의 Ⓒ지점)이 더 있다(그림11). 이 지점은 외청룡 좌우 골짜기에서 시작된 바람이 유허지를 향해 불어오는 지점이다. 청룡 산줄기가 기본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끝이 낮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물이 합수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유허비 등의 조성으로 대나무 숲이 일부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유허지를 바람의 피해로부터 막기 위해서는 청룡 하단부에서부터 현재 남아 있는 대나무 숲까지 추가적으로 대나무 숲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