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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분류 |
예 |
(가) 인물호칭어 및 신체어 |
1) 인물 호칭어 : 나, 엄매아배,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고무, 딸, 李女, 홀아비, 후처, 예수쟁이, 아들, 承女, 承동이, 과부, 洪女, 洪동이, 작은 洪동이,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엄매, 시누이, 동세, 2) 신체어: 얼굴, 별자국, 눈, 살빛, 입술, 젖꼭지, 코, 눈물, |
(나) 대지어 |
대지어 : 우리집, 큰집, 마을, 山, 해변, 섬, 배나무동산. |
(다) 생물어 |
1)동물 : 개, 홍게닭, 2) 식물 : 배나무, 잔디, 고사리 |
(라) 음식 관련어 |
매감탕, 반디젖, 송구떡, 콩가루차떡, 두부, 콩나물, 잔디, 고사리, 술, 도야지비계, 무우징게국 |
(마) 농촌 공동체 어 및 노동어 |
토방돌, 오리치, 안간, 외양간섶, 밭마당, 집안, 아르간, 웃간, 화디, 사기방등, 심지, 문창, 텅납새, 부엌, 샛문틈, 장지문틈, |
(바) 지명어 |
여우난골, 新里, 土山, 큰골. |
(사) 민속어 및 놀이어 |
명절날, 쥐잡이, 숨굴막질, 꼬리잡이,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이, 말타고 장가가는 놀이. 조아질, 쌈방이, 바리께돌림, 호박떼기, 제비손이구손이, 아릇묵싸움 자리싸움, |
(아) 한자어 |
族, 新里, 李女, 四十, 土山, 承女, 承, 山, 六十里, 洪女, 洪, |
(자) 동일시어 |
고무 고무의 딸(3), 따라(2), 내음새(3), 아이들은(2), 나고(2), 하고(9), 밤이(2), 멫번이나(2). |
(가)의 인물 호칭어 및 신체어는 백석의 시 창작 원리의 중요한 요소로 작
용합니다. 식민 체제의 시대 상황 속에서 민족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해 주
는 전형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 별자국이 솜솜난∼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新理고무, 열여섯에 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
가∼土山고무,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큰골 고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
정을 하면∼반디젖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등은 한결같이
못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살림살이의 정황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역설
적으로 이들은 하나같이 인정스런 인물들로 묘사되어 있지요. 가족을 지탱
하고 있는 삶의 뿌리들은 부족함이 많아 보이지만 자족했던 삶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피폐한 민족 구성원의 삶의 모습이면서도 풍요
로웠던 민족적 삶의 원형을 동경하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이겠지요.
(나)의 대지어는 이 시의 시적 공간이 큰집을 중심으로 한 어느 농촌을 배
경으로 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백석의 전 편의 시
적 공간이 대체로 농촌 공동체적 삶의 근간인 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거합니다.
(다)의 생물어는 백석의 시어 사용 중 또 하나의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합
니다. 즉, 이들 시어는 다양하게 구사되고 있는데, 이는 원형적인 삶의 모
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시 창작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의 시 편편
에 보이는 이들 시어는 공동체 삶을 영위하는 요인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라)의 음식 관련어는 이 시의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매개 역할을
합니다. ‘송구떡, 콩가루차떡, 두부, 콩나물, 잔디, 고사리’등에서 보여주
는 음식어는 바로 토속적이고 민중적이지요. 그런 면에 있어 이들 시어는
바로 민족적인 삶을 지탱해 주는 전통적인 식문화를 보여줍니다.
(마)의 농촌 공동체어 및 노동어는 농촌 공동체, 즉 민족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일상적인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시어 중 ‘안간, 외
양간섶, 아르간, 웃간, 화디, 사기방등, 심지, 문창, 텅납새, 부엌, 샛문틈,
장지문틈’등은 당대의 삶의 양식인 주거의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시적 공
간입니다.
(바)의 지명어는 이 시의 시적 공간이 농촌임을 보여줍니다. 즉「여우난
골族」이 ‘여우난골’에 사는 가족이면, 이들 시어는 씨족 공동체적 의미를
포괄적으로 내포하고 있지요. 따라서 이들 지명어는 민족적 삶의 토대와
근간이 유지되고 있는 지역을 드러내줍니다.
(사)의 민속어 및 놀이어는 민족적 삶의 원형, 즉 민속놀이입니다. 백석은
민족 고유의 놀이를 통해 당대의 부조리한 삶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합
니다. 따라서 그가 차용한 민속놀이는 민족 공동체적 삶의 원형을 회복하
고자 한 시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의 한자어는 이 시에서 인명과 지명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 의미와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데 있습
니다.
위의 시「여우난골族」에서 보이는 시어는 백석의 시 전반에서 두루 사용
되는 언어들입니다. 백석은 이들 시어를 통해 일제식민지치하의 부조리한
현실을 자신의 독특한 시적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한편 백석
은 유년기의 기억과 여행 체험을 통해 민족의 삶이 살아 숨쉬는 ‘고향’이라
는 이상적인 공간을 현실 속에 재현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었습
니다. 그의 시에서 재구되고 있는 각종 민속놀이 및 민속체험, 가족과 이웃
에 대한 관심과 애정, 자연 친화력 등이 백석 특유의 화법과 언어를 통해
시적 외연과 내연의 폭을 확장시켜 준 것이지요. 이런 점이 독자들에게 과
거의 풍요로웠던 공동체적 삶의 원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적 진실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3
백석 이후 풍요로운 언어로 생명력 넘치는 시의 숲을 일군 시들을 따라
읽고자 합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 신경림,「 파장」전문
이 시는 신경림의 초기 시편 중에서「농무」와 더불어 가장 빼어난 시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서정과 서사, 서경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소외 계층의 삶의 세목들을 구체적으로 묘파해내고, 공동체 의식을 시의
행간 속에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시 속에 숨어서 드러나 있
지 않지만 ‘못난 놈들’과 함께 하면서 시골 장터의 풍물을 객관적으로 그려
냅니다. ‘못난 놈들’에 대한 정서의 결속력은 우리의 삶의 원형인 공동체
의식을 드러내 줍니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물질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합니
다. 전통적 삶의 덕목인 우리의 공동체 의식이 해체되면서 일회적이고 소
비적인 문화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민중들의 모습을 공동체 의식
으로 육화시킵니다. 그가 사용한 시어들이 이를 증거합니다. 인물 호칭어
및 음식어, 대지어, 지명어 등 다양한 시어를 통해 시골 장터의 단순한 풍
물 묘사나 넋두리 차원의 요설이 아닌 삶의 구체적 실상을 생생하게 재현
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에서 드러나듯이 쓸쓸함
속에서도 따뜻한 정감이 선명하게 배어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지요. 전체적인 시적 전개가 평이한 진술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고도
의 압축과 절제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어릴 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었다
객지를 떠돌면서 나는 태평추를 잊지 않았으나 때로 식당에서 메밀묵무침
같은 게 나오면 머리로 떠올려보기는 했으나 삼십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하였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가
루를 혀끝으로 떼어먹으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저 쌀쌀맞던 80년대에, 눈이 내리면, 저 눈발은 누구를 묶으려고 땅에 저
리 오랏줄을 내리는가? 하고 붉은 적의의 눈으로 겨울을 보내던 때에, 나는
태평추가 혹시 귀한 궁중음식이라는 탕평채가 변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허나 세상은 줄곧 탕탕평평蕩蕩平平하지 않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탕
평해야 태평인 것인데, 세상은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기울기 일쑤였고 그
리하여 탕평채도 태평추도 먹어보지 못하고 나는 젊은 날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술집을 찾아 예천 어느 골목을 삼경三更에 쏘다니다가 태평추,
라는 세 글자가 적힌 식당의 유리문을 보고 와락 눈시울이 뜨거워진 적 있었
던 것인데, 그 앞에서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다가 대신에 때마침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말았던 것인데,
그날밤 하느님이 고맙게도 채 썰어서 내려보내주시는 굵은 눈발을 툭툭
잘라 태평추 한 그릇 먹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 안도현,「 예천 태평추」,『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2008)
안도현은「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래 줄곧 민족의 면면한 생명력과 결 고
운 서정을 한 몸에 담아내는 역량을 발휘하는 시인입니다. 인간다움의 아
름다움이 자본에 함몰된 시대, 안도현은 민족의 시원으로 되돌아가 살림살
이의 즐거움을 시로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2006년 계간『시에』가을호부
터 시작된 기획 연재시가 그것입니다. 안도현은 기획 연재시를 통해 사람
이 입으로 먹은 것, 시인이 과거에 먹은 것, 마신 것, 뱉은 것을 비롯해 음식
이 환기하는 기억과 풍경을 추억하며 호명한 바 있습니다.
이 시는 계간『시에』기획 연재시 가운데 한 편으로 예천의 고유 음식 태
평추를 시로 옮긴 것입니다. 태평추는 태평탕 등으로 불리는 요리로서 '돼
지묵전골'의 일종이라 적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지방에서는 별식으로 매우
유명한데, 이 지역의 일설에 따르면 궁중음식인 탕평채가 경상북도에 전해
지면서 서민들이 먹는 태평추가 되었다고 합니다. 태평추는 메밀묵에 돼지
고기, 미나리, 지단채, 김 등을 넣고 은근한 불에 끓이면서 먹는 음식으로
칼칼하고 개운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음식어를 통해 이루어진「태평추」라는 우리의 고유음식
하나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 잊혀져가
는 것을 시로 접하게 될 때 그 새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문태준의 시 역시 마찬가지 감동으로 다가서게 합니다.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문태준,「 역전 이발」(『맨발』, 창비, 2004)
문태준의 시편들은 대부분 ‘사라져간 것’, ‘ 낡은 것’, ‘ 사라져갈 운명에
놓인 것’ 등의 오래된 것들을 시적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빛바랜 흑백사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흑백사진은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인용시의 밑바탕에도 그것이 깊게 자
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이발소를 소재공간으로 활용하여 유년의 행복했던 삶의 여정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역전 이발’의 간판은 곱사등이 이발사의 내력
을 함의하는 단적인 물적 토대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동네에 갇
혀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외부지향적인 욕망을 소통시키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중요한 사실은 역전 이발소를 통해 시적 화자가 대단히 자족했던
어린 시절을 재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의 시인들의 시에서도 밝혔듯
이 구체적인 삶의 실재가 풍요로운 시어를 풍해 재현되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는 이발소를 통해 두 가지 장면을 추억합니다. 하나는 머리를
깎고 나서 곱사등이 이발사가 머리를 감겨주는 것으로, “머리통을 박박 긁
어주는” 행위가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으로 전이시키
는데 있습니다. 또 하나는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들켜선 헤헤헤 웃는”
행위입니다. 하여튼 이발소는 보잘것없는 허름한 공간이지만 “세상에서 가
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공간
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따라서 곱사등이 이발사는 “구정물에 담
긴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문태준은「역전 이발」의 자족했던 공간을 통해 행복했던 유년을 재구하고,
우리는 문태준의 시편들을 통해 잃어버렸던 소중한 그 무엇을 다시금 추억
합니다.
4
문학이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언어로 창조하는 행위지만, 요즘 우리 시
들은 알맹이가 빠진 속 빈 강정처럼 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시를 이루고 있는 언어가 남발되는 관념어들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시의 위기라는 것을 바로 이러한 언어의 궁핍, 관념어의 남발
에서 오는 공식적인 문화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신경림 시인은 우리시의 경향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 자기
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내용을 주절주절 혼잣말처럼 지껄이는 시, 의도적
으로 왜곡하는 시가 좋은 시의 표본으로 내세워져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
지않는다.”(『시평』(2003.봄호), “ 독자들로부터 무슨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시들이 너무 많다는 불평을 자주 듣는다. 또 젊은 시인들의 시
가 서로 비슷비슷하다는 불평을 듣기도 한다. 한 평론가는 ‘저도 모르고 남
도 모르는 시’라고 폄훼하고 ‘이 사람이 저 사람 따라 하고 저 사람이 이 사
람 따라 한다.’고 혹평한 바 있지만, 이 두 서로 다른 불평의 내용은 어찌
보면 뿌리가 같다. 앞의 경우 좋게 말하면 종잡을 수 없는 오늘의 정신세계
를 표현하자니까 부득이 그런 결과로 나타난 것일 테고 험담을 하자면 말
장난이 지나쳐 그런 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뒤의 경우 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결과니까 말이다. 어쨌든 요즈음 시가 읽기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다.”(『유심』, 2010, 3-4호)
이는 우리 고유의 언어가 사장된 채 언어가 남발되고 있는 것에 대한 경
계이며, 이런 문화적 현상의 관념/추상적 언어에 의해 행해지는 문학적 행
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에 대한 우려일 것입니다.
현대시가 태동하면서 도시적이고 이질적인 언어에 의한 새로운 시적 양
식과 내용을 추구하는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근래에 발표되는 시들
은 그 정도가 지나쳐 보입니다. 극단적으로 도시적 삶만이 현대적이라 믿
고 이를 좇아가기에 분주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불
확실성을 주장하며 삶과 유리된 언어, 이미 생기를 잃은 기호화된 언어로
구축된 시들이 더욱 새로운 시들이라고 박수를 받는 현실이 증거입니다.
시는 우리의 정신과 사물을 연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언어를 사용하
며, 사실을 보다 더 사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가치화된 언어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삶의 실재와 밀착된 언어를 통해서 구체적인 삶의 결을 형상화
시키는 것은,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우리 시의 왜소화를 막고 위기
에 처한 현대시를 구하는 대안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백석 시를 비롯한 신
경림, 안도현, 문태준 등의 시에 사용된 시어가 얼마만큼 독자들과 시인들
에게 설득력을 가져다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실재적인 언어의 활용으
로 관념/추상적 언어 범람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풍요로운 언어
로 생명력이 넘치는 시를 창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석 시를 다시 읽으면서 우리 시가 얼마나 옹색해져 가고 있는지를 깨
달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 삶과 동떨어진 관념적인 언어의 도식에서 벗어
나야 합니다. 자유롭고 구체적인 삶의 원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적 진
실을 높여주는 풍요로운 언어의 숲을 가꿀 때가 되었습니다.
양문규 시인
* 충북 영동 출생.
* 청주대학교 국문과 졸업.
*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박사).
* 1989년《한국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 시집『벙어리 연가』『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집으로 가는 길』.
* 논저『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 평론집『풍요로운 언어의 내력』등.
* 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총무국장. 실천문학 기획실장.
* 대전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 현재 계간《시에》편집주간.
*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