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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호면 장천리 효성마을은 서호면소재지 중심마을로 150여명의 마을주민들이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다. |
24절기중 20번째 절기인 소설(小雪)이 지나면서 한낮의 기온도 10도이하로 떨어지는 추위가 시작되고 있다. 절기상으로도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유난히 짧았던 올해 가을이 차가운 빗소리에 떨어지는 낙엽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 하다.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지난 23일부터 내린 비가 월요일인 25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찾아간 곳은 서호면 장천리 효성마을. 효성마을은 서호면소재지의 중심가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호면소재지에서 학산면 방면으로 향하다보면 면소재지를 벗어나기 직전에 좌측에 효성마을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50여m 이동하다보면 효성마을 경로당이라는 간판이 걸린 마을회관이 보인다. 마을회관 2층에는 마을주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는 정자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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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목포대 박물관에서 발굴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모습을 간직한 장천리 선사주거지. |
겨울철 여느 농촌마을처럼 효성마을도 벼농사를 모두 마무리한 탓인지 들녘과 마을주변에는 지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 고요한 모습이었다. 이 곳 효성마을은 면소재지 중심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마을회관 바로 옆에는 조그만 하천이 흐르고 있고 하천변에는 몇백년은 되어보이는 오래된 고목이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마을회관으로 향했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회관은 굳게 닫혀있었다. 발길을 돌려 회관 바로 옆에 살고 있는 김점성(77)씨의 집을 찾았다. 처음 보는 기자의 방문에도 친절한 미소로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효성(曉星)마을은 예전에는 도리정(桃李停) 마을로 불렸다. 이 곳은 면소재지에 위치한 중심마을이지만 인근 마을에 비교하면 농경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효성마을 전체의 농경지는 80여마지기로 서호면 화송리에 한 농민이 220마지기의 논에서 벼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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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마을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지석묘. |
사를 지었던 것과 비교하면 경작지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봐도 무방한 곳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곳 마을은 가난한 빈촌이었다. 장동마을을 비롯한 주변 마을들은 은적산을 비롯해서 산과 인접해 있어서 벼농사를 짓지 않아도 산을 이용해 먹고 살아갔지만 효성마을은 인근에 산도 없어서 그 마저도 힘들었다.
이처럼 넉넉한 형편의 마을은 아니었지만 효성마을의 역사는 영암의 그 어느 곳보다 깊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장천리 선사주거지이다. 장천리 선사주거지는 1984년 목포대 박물관이 실시한 지석묘 발굴조사 중에 발견된 청동리 시대의 집자리이다. 발굴조사에서 항아리병, 민무늬토기, 화살촉, 가락바퀴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돼 역사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발굴된 유물을 보면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이 곳에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으며 농경과 어로생활을 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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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들의 쉼터인 회관. |
또 이 곳 선사주거지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한반도 중북부 지역과는 달리 서남부지방을 대표하는 집터양식을 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마을주변에는 35기의 지석묘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영암에서도 가장 먼저 마을이 발달한 곳이 이 곳 효성마을 주변이었다.
마을주민들은 이 주변 지세가 평평해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기 쉬웠으며 ‘배들 냇갈’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근처에 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하천이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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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회관 앞 팽나무. |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간직한 효성마을이지만 현재는 여느 농촌마을처럼 빈집이 늘어가고 있다. 마을내에 사람이 살고 있는 집도 대부분 70대이상 고령의 주민들이 홀로사는 곳이 많은 형편이다. 이는 서호면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지만 면소재지내에 약국, 병원 등의 부재와 먹고살 길을 찾아 도시나 영암읍, 삼호읍 등으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빠져나간 탓이 크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효성마을 주민들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귀농자를 비롯한 젊은 인구가 유입돼 다시 활기에 넘친 마을이 되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오기안 기자
■ 인터뷰/마을에서 만난 사람 - 김점성씨
“활기찬 효성마을이 되길…”
추운 날씨로 인해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마을주민 김점성(77)씨를 만났다. 김 씨는 효성마을에서 낳고 자란 마을토박이로 마을의 발전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다. 김 씨는 “효성마을은 면소재지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농토가 부족해 가난한 빈촌이다”며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마을주민들끼리 우애는 누구보다 깊다고 자부한다”고 설명했다.
또 김 씨는 “어렸을 때 마을주변에 300년정도 된 팽나무와 커다란 소나무가 여러그루 있었다”며 “하천정비사업을 하면서 소나무들이 없어져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예전에 도리정마을로 불렸다가 1970~80년대쯤에 당시 서호면우체국장이던 김명채씨가 마을이름을 효성으로 새로 짓게 됐다”며 “새벽별이라는 뜻을 가진 효성이라는 지명은 마을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 씨는 “현재는 마을내에 빈집도 많아 썰렁한 느낌마저 주지만 젊은 사람들이 유입돼 활기찬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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