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오던 날 장판에 살던 꽃들 봄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벽지에 핀 꽃들도 봄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채 무작정 봄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의 봄은 반 지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늘 주변만 서성이다 돌아간다 어느 여름 날 향기를 품지 못한 장판과 벽지에 꽃들이 기지개를 켰다 그 동안 벽지에 갇혀 숨을 쉬지 못했던 나비와 벌들 알을 부화하기 위해 부산스럽다 갑자기 찾아 든 봄, 나비와 벌들 검은 곰팡이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그들만의 잔치를 연다 결혼사진 액자에도 습기가 스물스물 기어올라 꽃들로 채워진다 아이의 봄 소풍 사진에 살고 있던 나비와 벌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암술과 수술을 연결해 주기 위해 분주하다 나비의 나풀거림이 빨라질수록 벌의 윙윙거림이 방안을 가득 메울수록 곰팡이 꽃은 반 지하방을 수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