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가거대교냐, 거가대교냐?’ 라는 논쟁이 불붙었다. 소주 한 병이 걸린 문제다. 술집 주인이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이럴 때는 우기는 놈이 장땡인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가본 사람의 증언으로 ‘거가대교’로 일단락을 지었다. 월목회(月木會)의 이번 1박 2일 나들이 종착지가 거가대교이기도 하다. 그 바람에 소주 한 병 축낸 친구도 있다. 월목회의 거가대교 팀이 결성되었다. 도합 9명이다. 회장 심상호, 사무총장 박정일, 추진위원장 겸 베스트드라이버 오시우, 베스트드라이버 김기선, 수습드라이버 이규형, 그 외 정수길, 전원명, 심재혁, 정영인 이상 9명이다. 1박 2일 일정은 통영, 남해, 거가대교 근처를 휘둘러볼 예정이다. 아마 지금쯤 남도에는 보리와 밀이 익어갈 것이다. 엊그제가 소만(小滿)이었으니깐. 내남없이 어려웠던 시절, 이맘쯤이 ‘보릿고개’가 턱에 차있을 때다. 아직 덜 익은 보리나 밀을 풋바심하여 곡기(穀氣)를 채웠다. 우리들은 밀탄지, 콩탄지로 허기진 뱃구레를 채웠다. 노릇하게 여문 밀이나 콩을 풀잎에 불살라 잿더미를 뒤져가며 열심히 주워 먹었다. 마주 보면 허연 이에 새까매진 주둥이를 보면 서로 웃던 배고픈 시절! 그 당시 군것질 거리는 삘기, 찔레순, 칡뿌리, 소나무순, 송기(松肌), 메뿌리, 땅꽈리, 올망댕이, 사탕수숫대 등. 단백질 보충용은 메뚜기, 미꾸리, 개구리 뒷다리, 우렁이 등이다. 단물이 오른 송기를 아이스케키처럼 훑던 시절의 입맛이 되살아난다. 다 칠순안팎의 중늙은이지만 ‘노티’는 내지 말아야 하겠다. 노티를 내면 몸이나 맘이 늙는다고 한다. 아침은 망향휴게소에서 유부우동으로 간단히 때웠다. 지난번처럼 부평시장역에서 차를 타고 1박 2일 나들이는 시작되었다. 논쟁이던 거가대교는 일정이 빠듯하여 빠졌다. 삶은 달걀에 쑥개떡, 다들 쑥떡쑥떡하며 잘들 먹는다. 더구나 불미나리전과 자두술, 막걸리로 한 잔 하니, 세상이 즐거워지기도 한다. 차는 조계산(曹溪山 ) 송광사(松廣寺) 닿는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대가람이다. 입구에는 오래 묵은 편백나무가 줄을 서고 있다. 천년의 고찰이라 그런지 나무들도 우리들처럼 노티를 자랑하고 있다. 배롱나무, 매실나무, 회화나무들이 어떤 나무는 수백 년의 연륜을 간직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은 100살이면 최장수이지만 나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낙안성읍(樂安城邑)의 민속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린다. 휘둘러 보고, 오늘의 최종 기착지인 남해로 달린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현수교(懸垂橋)인 남해대교를 건넌다. 길지는 않지만 붉은 빛 다리는 남해의 명물이기도 하다. 차츰 한려수도(閑麗水道)의 풍광이 어우러진다. 도처에 마늘밭이 즐비하다. 논밭 거의다가 마늘밭이다. 마늘을 캐고 모내기가 한창이다. 난 이렇게 많이 펼쳐진 마늘밭은 생전 처음이다. 밭 위에는 뽑아 놓은 마늘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로 알려진 금산 보리암(菩提庵)에 다다른다. 숲은 편백나무가(扁柏) 주된 숲을 이루고 있다. 편백나무는 나무 중에서 가장 피톤치드를 내뿜는 수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숲 치료에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곳에서는 ‘편백나무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다. 보리암에서 내달린 숲과 쪽빛바다, 그리고 올망졸망한 섬들, 굽이진 포구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한국의 선경(仙境)이라는 말이 허투루 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태리의 카프리섬이 생각날 정도이다. 돌계단을 내려 쌍홍문에 이른다. 커다란 바위에 두 개의 두 개의 큰 구멍이 뚫려 있다. 마치 해탈(解脫)의 문을 지나 열반(涅槃)에 접어드는가? 인생은 고집멸도(苦集滅道)라 하지 않던가! 속세의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떠나온 이번 여행도 아주 조금은 그러하리라. 쌍홍문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 풍광은 과연 선경(仙境)이로다. 우리가 묵을 펜션에 다다른다. 아무리 우리 방문을 열려고 해도 막무가내다. 기선이가 간단하게 열어 접힌다. 과연 김막가이버답다. 저녁은 자그만 포구에서 활어회에 소주로 여독(旅毒)을 푼다. 나는 여기서 난생처음 멸치회를 먹어 본다. 거나하게 고개를 넘어 펜션으로 돌아오는 밤길에는 검푸른 밤바다에서 시원하고 비릿한 해풍이 분다.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광경인가? 언제 이런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것인가. 나는 행복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밤하늘을 본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이 행복했다. 누구 말마따나 천장무늬만 바뀌어도 뒤척이는데, 한쪽에선 코골고 다른 쪽에선 잠꼬대하고, 그것도 한국어와 영어 2개 국어로. 새벽의 동쪽바다가 아슴푸레 밝아온다. 서둘러 아침을 먹으러 "윤이상" 음악의 고향 통영으로 내달란다. 창선 삼천포대교를 건넌다. 굽이진 남해 해안도로 옆 풍경은 아름다운 풍광 속에 묻혀있다. 편백나무숲, 마늘밭, 죽방멸치를 잡는 죽방렴, 바닷가 방풍림, 아기자기한 포구를 지나 창선 삼천포대교를 지나 고성에 접어든다. 여기는 보리밭이 누렇게 물결치고, 멀리 공룡유적지가 오랜 세월의 이야기해주고 있다. 고성을 지나 통영대교를 넘으니 통영이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곳이다. 너무 일찍 가니 아침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 물어물어 아침을 해결하고, 미륵산케이블카에 오른다. 케이블카와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조망(眺望) 또한 아름답다. 통영에서 진주라 천리길로 내닫는다. 진주성의 촉석루(矗石樓)를 휘둘러본다. 남강은 말없이 흐르고, 의기(義妓) 논개(論介)의 한이 서리서리 감고 돈다. 논개사당에 있는 방명록에 몇 자 적는다. 내 윗간에 적은 방명록을 보니 아연(啞然)해진다. 아마 초등학생이 적은 연필 글씨다. “씨발년, 개년 엿이나 쳐 먹어라!” 이게 바로 우리 교육의 현주소이고, 역사교육의 실체이다. 과거가 없는 민족은 없다. 이즈음의 좌파식 교육은 지신(知新)만 있지, 온고(溫故)가 부재다. 역사교육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육이 아닌가.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진주에서 유명한 진주냉면의 명가를 찾는다. 1945년부터 했다는 냉면집에서 진주냉면을 맛있게 먹는다. 그길로 인천을 향해서 렌터카는 내달린다. 어제는 규형이와 기선이가, 오늘은 시우가 운전대를 잡는다. 휴게소에 가끔 들러 커피 한 잔에 화장실. 거기다가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까지 한 봉다리씩 안겨주니 감개가 무량하다. 생각보다 덜 막혀 제 시간에 인천에 이른다. 인천에서 국물이 시원한 해물탕집에서 뒤풀이를 한다. 술 한 사발에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전체를 총괄하고 뒷바라지한 회장 상호, 규모 있게 살림하려고 치부책을 적으며 애쓴 총무 정일이, 실질적인 기획 및 진행자 시우, 운전대에 신경을 쓴 기선, 규형이! 먹을거리 가져와 즐겁게 해준 회장, 수길, 원명, 재혁이, 특히 몸이 불편해도 같이 간 재혁이도 고맙다. 입만 달랑 가져간 영인이. 특히 수길이가 가져온 호박고지 넣은 쑥개떡과 불미나리전은 월목회 공식 음식으로 지정하야 하지 않을까? 사실 그렇다. 나는 주변머리가 없어 혼자서는 어디 여행을 못 간다. 그저 지푸라기처럼 묻어서 간다. 그래서 두루두루 고맙다. 우리의 삶은 제대로 보려면 있던 자리를 벗어나 보아야 한다. 보리암을 제대로 보려면 보리암을 벗어나야 하듯이……. 이번 여행도 자꾸만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특히 섬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수습(修習) 드라이버였던 규형이가 수습딱지를 뗀 것도 축하한다.! ( 남해 여행을 끝내며 ...! )
출처: 인천교대64학번 원문보기 글쓴이: osh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