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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ley Hauerwas 1940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사우스웨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오거스태나 대학, 노터데임 대학교를 거쳐 2013년 은퇴할 때까지 듀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다. 2001년 인문학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타임」 지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선정되었다. 존 하워드 요더의 영향을 받은 평화주의자이자 비폭력 운동의 지지자이며, 장애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글을 써 왔다. 20세기 후반에 가장 폭넓은 독자를 가진 신학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현재는 듀크 대학교 신학부 및 법학부의 길버트 로우 명예 교수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건축 현장에서 일을 도우며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그러한 삶의 방식과 넘치는 에너지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 데도 영향을 끼쳤지만, 무엇보다 정신 질환을 앓는 아내와 24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우정을 나눈 사람들, 공부하고 연구해 온 신학의 흐름, 삶의 깊은 상처들마 저 있는 그대로 담... 1940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사우스웨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오거스태나 대학, 노터데임 대학교를 거쳐 2013년 은퇴할 때까지 듀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다. 2001년 인문학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타임」 지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선정되었다. 존 하워드 요더의 영향을 받은 평화주의자이자 비폭력 운동의 지지자이며, 장애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글을 써 왔다. 20세기 후반에 가장 폭넓은 독자를 가진 신학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현재는 듀크 대학교 신학부 및 법학부의 길버트 로우 명예 교수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건축 현장에서 일을 도우며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그러한 삶의 방식과 넘치는 에너지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 데도 영향을 끼쳤지만, 무엇보다 정신 질환을 앓는 아내와 24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우정을 나눈 사람들, 공부하고 연구해 온 신학의 흐름, 삶의 깊은 상처들마 저 있는 그대로 담겨 있는 『한나의 아이』는, 이제껏 출간된 그의 많은 저서 가운데 가장 다양한 독자의 공감 어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퍼블리셔스위클리」가 선정한 2010년 종교 분야 최고의 책, 「허핑턴포스트」가 선정한 2010년 최고의 종교 서적 10권 가운데 한 권으로 꼽혔다.
국내에 소개된 다른 저서로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IVP), 『십계명』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이상 복있는사람), 『십자가 위의 예수』(새물결플러스), 『교회됨』(북코리아) 등이 있다.
어머니는 한나가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한 이야기를 들으셨다. 한나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어머니도 비슷한 기도를 하셨고 내가 그 결과다. 그러나 나는 스탠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내가 태어나기 일주일 전에 부모님이 〈스탠리와 리빙스턴〉(Stanley and Livingstone)이라는 영화를 보셨기 때문이다.
---「1장. 구원받기」중에서
나는 ‘현실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비계에 벽돌을 올리다가 손가락을 찧는 일이 많았지만 통증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좋은 처방은 아니었지만, 그럴 때면 손가락을 테레빈유에 담갔다 뺀 다음 하던 일에 충실했다. 내가 정신 질환이 있는 배우자와 24년을 살 수 있었던 것도 그저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법을 일찍 배웠기 때문이었다.
---「2장. 일과 가족」중에서
나는 늘 ‘외부자’로 머문다는 평판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대학교 세계 안에 있는 노동 계급 사람이다. 순응한 교회에 도전장을 던지는 급진적 그리스도인이다. 이런 유의 목록은 계속 이어질 수 있고, 자기기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실, 나는...어머니는 한나가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한 이야기를 들으셨다. 한나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어머니도 비슷한 기도를 하셨고 내가 그 결과다. 그러나 나는 스탠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내가 태어나기 일주일 전에 부모님이 〈스탠리와 리빙스턴〉(Stanley and Livingstone)이라는 영화를 보셨기 때문이다.
---「1장. 구원받기」중에서
나는 ‘현실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비계에 벽돌을 올리다가 손가락을 찧는 일이 많았지만 통증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좋은 처방은 아니었지만, 그럴 때면 손가락을 테레빈유에 담갔다 뺀 다음 하던 일에 충실했다. 내가 정신 질환이 있는 배우자와 24년을 살 수 있었던 것도 그저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법을 일찍 배웠기 때문이었다.
---「2장. 일과 가족」중에서
나는 늘 ‘외부자’로 머문다는 평판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대학교 세계 안에 있는 노동 계급 사람이다. 순응한 교회에 도전장을 던지는 급진적 그리스도인이다. 이런 유의 목록은 계속 이어질 수 있고, 자기기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외부자’, 비판자, 반체제 인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고향을 찾고 싶다.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하지만 내가 배우게 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에 고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5장. 가톨릭 신자들」중에서
내가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내게 지독히도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이해하게 해 준다.
---「9장. 폴라」중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는 묵시록적 특성이 있으므로, 우리는 평범한 것의 놀라운 비범함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는 것은 이 시대 한복판에서 새 시대의 시민이 되는 일이다. 새 시대의 시민으로 이 시대를 살다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폭력으로라도 만들어 내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받은 시대를 배반하는 일이다. 여기에 위대한 역설이 있는데, 우리 신앙의 묵시록적 특성은 일상을 가능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일상의 비범함을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우정이라 부르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비범한 일이다.
---「10장. 좋은 사람들」중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중심 행위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잇는 중심이며, 내가 하는 일은 그런 연결성에 관한 것이다. 나는 결혼하여 같이 사는 일, 자녀를 갖는 이유와 방식, 친구가 되는 것, 정신 장애자들을 보살피는 일이 우리가 전쟁의 대안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 노력했다. 전쟁의 대안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전쟁 폐지를 위한 노력은 전쟁이 폐지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만큼 시간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전쟁은 조급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조급한 세상에서 인내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믿는다.
---「11장. 인내와 기도」중에서
나는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데 평생이 걸렸다. 하지만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신학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신학자가 된 이유는 신학의 일이 매우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신학의 일이 기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솔직히 말해, 기도는 내게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기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방식이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 임재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 굳게 확신하고 있다.
---「12장. 마지막 이야기」중에서
삶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응시하는
한 그리스도인 신학자의 내밀한 회고록
「타임」 지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신학자”, 인문학 분야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 듀크 대학교 명예 교수 등,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제법 화려하다. 그런데 그는 이 회고록을 시작하며 그 수식어들을 조심스레 벗어 놓는다. “나는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될 의도가 없었다.”
그 대신 그는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네다섯 살 무렵부터 익숙해진 ‘일’에 관해서, 아내의 정신 질환으로 고통스러웠던 첫 번째 결혼 생활에 관해서,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살아남게 지탱해 준 우정과 교회에 관해서,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된 과정에 관해서 과장이나 왜곡 없이, 그러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채 진솔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모든 서술은 결국 그를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가리키므로, 이 삶의 여정을 따라가는 독자들은 한 영혼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깊고도 까다로운 인생의 질문들을 앞서 살아 낸
고통스러울 만큼 정직한 신학적 간증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밝음과 어두움, 평화와 고통이 공존하는 복잡다단한 삶에 대해 신학은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이런 깊고도 까다로운 질문들에 신학자 하우어워스는 단순히 ‘신학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고고한 학문의 상아탑에 머무는 대신, 치열하고 땀내 나는 인생의 흙길을 한 발 한 발 걸으며 이 질문들을 앞서 살아 냈다. 그야말로 고통스러울 만큼 정직한 이 신학적 간증을 통해, 그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학자로, 신학과 삶이 통합된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가 50여 년간 공부하고 연구해 온 신학과 윤리학의 핵심 내용들은,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21세기 신학의 지성적 풍경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밑그림이다. 또한 그가 경험한 교회, 즉 한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가 고통을 함께 나누고 지지할 뿐 아니라, 한 몸으로 성찬을 나누며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 공동체의 모습은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예시한다. 그가 신학 수업에 앞서 때로는 강의...삶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응시하는
한 그리스도인 신학자의 내밀한 회고록
「타임」 지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신학자”, 인문학 분야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 듀크 대학교 명예 교수 등,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제법 화려하다. 그런데 그는 이 회고록을 시작하며 그 수식어들을 조심스레 벗어 놓는다. “나는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될 의도가 없었다.”
그 대신 그는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네다섯 살 무렵부터 익숙해진 ‘일’에 관해서, 아내의 정신 질환으로 고통스러웠던 첫 번째 결혼 생활에 관해서, 그 시간 동안 자신을 살아남게 지탱해 준 우정과 교회에 관해서,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된 과정에 관해서 과장이나 왜곡 없이, 그러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채 진솔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모든 서술은 결국 그를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가리키므로, 이 삶의 여정을 따라가는 독자들은 한 영혼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깊고도 까다로운 인생의 질문들을 앞서 살아 낸
고통스러울 만큼 정직한 신학적 간증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밝음과 어두움, 평화와 고통이 공존하는 복잡다단한 삶에 대해 신학은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이런 깊고도 까다로운 질문들에 신학자 하우어워스는 단순히 ‘신학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고고한 학문의 상아탑에 머무는 대신, 치열하고 땀내 나는 인생의 흙길을 한 발 한 발 걸으며 이 질문들을 앞서 살아 냈다. 그야말로 고통스러울 만큼 정직한 이 신학적 간증을 통해, 그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학자로, 신학과 삶이 통합된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가 50여 년간 공부하고 연구해 온 신학과 윤리학의 핵심 내용들은,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21세기 신학의 지성적 풍경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밑그림이다. 또한 그가 경험한 교회, 즉 한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가 고통을 함께 나누고 지지할 뿐 아니라, 한 몸으로 성찬을 나누며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 공동체의 모습은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예시한다. 그가 신학 수업에 앞서 때로는 강의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했던 기도문은, 정직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신앙인의 태도에 관한 실제적인 예시다. 무엇보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이야기는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사려 깊은 시각을 제공해 준다.
첫댓글 이 땅에 내가 돌아갈 고향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가끔은 엄니가 서성이며 날 기다리는,
꿈에나 있는 그 집에 가고 싶어서,마음이 내려 앉으려 합니다.
'꿈에나 있는 그 집'...그리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