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도자기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성현의 '용재총화'에 백자는 경기도 이천이 첫번째고 다음이 경상도 상주다, 이런 말이 있던데 지금도 상주에 백자 굽는 분이 있나요? 전통방식으로 백토를 채취해서 화목을 때가며 가마를 하시는 분이 있나요다음 질문입니다. 관요가 아니었을텐데 진상품이 가능했었을까요? 진상품이라면 진상목록이 있을텐데, 혹시 시 소식지에서 이 부분을 확인해 볼 수 있나요. 시 소식지가 발간돼 있나요. 도요지에 대한 이런저런 기록이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현재의 백토가 그렇게 화도가 높다면 과거의 백토는 어느 쪽에서 가져왔을까요. 백토를 캘 수 있는 또 다른 지역이 있을까요. 문경은 지금도 도예지로 유명한데, 문경 흙은 문경쪽에서 채취한다고 하던가요. 가마터가 있다면 지금도 부근에 파편들이 많이 있을텐데, 혹시 그 파편들 쉽게 구할 수 있나요. 그리고 조선시대 가마터라면 발굴 작업을 하거나 보존의 필요성이 있을텐데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있나요. 혹시 시 문화관광과에 가면 최소한의 지표조사나 사적조사를 한 흔적, 혹은 문화재 지정여부를 검토한 기록이 있지 않을까요. 근처 학교나 시 등에 자그마한 박물관이나 전시장이 있나요. 상주 백자를 수집해서 가지고 있는 동네 분이나, 시의 문화계 인사는 전혀 없습니까. 백자나 백자 찻잔 등을 동네에서 가지고 있거나 기념으로 주고받은 일이 기억나는 건 없습니까. 집 근처가 가마터라고 그랬는데, 혹시 명문이 새겨지거나 아니면 무늬가 있는 도자기 파편을 일부라도 수습할 수 있을까요. 밭 갈다보면 도자기 파편이 우르르 나와서 한쪽으로 던져 놓은 적은 없습니까. 동네 근처에는 당연히 숲이 없지요? 거대한 가마터였다면 화목 때문에 온통 나무를 베어 버리고 없을텐데 그 동네 부근을 그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하여튼 다시 내 드리는 숙제입니다. 죄송..
16대 국회의원이셨고 현재 법무법인 한강의 대표 변호사이신 최재천님께서 저에게 주신 질문인데 제가 도자기쪽엔 전무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도움을 청합니다.아시는분은 꼭 글을 올려 주세요..
첫댓글 얼마전 새로운 자기소를 발견을 했고 상주 박물관 문화관광과에 신고를한 가마터가 있는대 자기 파편은 내게도 조금 잇으며 정의선 국장에게도 몆점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에 문외한이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다네.. 세종실록지리지에 명기한 자기소 두곳중 한곳으로 의심중이고 빠르게 지표조사가 진행되기를 히망하는 곳이라네..
얼마전 옹기를 굽는 이안의 경북도 무형문화재이기도 한 분의 말씀으로는 선대에서 소생이 공을 들이는 농장근처에서 조상들이 도자기를 구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계리나 수봉리, 신흥리 일대가 유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가마터흔적에 관한 역사적 고증을 저 역시도 외지에서 온 사람이지만 부단히 찾아가는 중입니다..
太宗 卷21, 11年(1411 辛卯 / 명 영락(永樂) 9年) 4月 29日(己未)
遣內竪安和尙于慶尙道中牟, 化寧等縣, 監做花器.
내수(內竪) 안화상(安和尙)을 경상도(慶尙道) 중모(中牟)·화령(化寧) 등의 현(縣)에 보내어 화기(花器)를 만드는 것을 감독하게 하였다.
경기도박물관에서 발행된 '경기도 광주관요 종합분석보고서'의 문헌사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백자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백토의 확보와 땔감 수급 문제 때문에 전국에서 백토를 채취를 했고,
아마 광주쪽에서 관요를 납품하기 전까지 전국에서 관요를 납품하였으니
상주에서는 모동이나 화령에서 만들었는데 아마 발굴이 되지않아서 위치파악이 모호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