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수년 전에 개봉된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라는 영화가 있다.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온 이 영화에서 톰은 척 놀랜드라는 인물로 나온다. 그는 세계적인 물류배송회사인 페덱스의 직원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고 해외출장을 가는데, 그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해상에 추락하고 만다. 그가 표류하다가 상륙한 섬에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무인도 였다.
그느느 한 사람도 없는 절대 고독 가운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지독한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 친구를 만든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 바다에 떨어져 해안에 떠밀려온 배구공을 친구로 삼는다. 윌슨(Wilson) 회사의 배구공이었다.
그는 거기에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배구공의 이름을 윌슨이라고 부른다. 그는 대화할 때마다 윌슨을 앞에 놓고 대화를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그의 몫을 떼어놓고 밥을 먹고, 심지어 윌슨과 싸우기도 한다.
그는 구조받을 때까지 약 4년간(1500일)을 거기서 보낸다. 그리고 땟목을 만들어 타고 탈출할 때까 역시 윌슨을 뗏목 앞에 태우고 탈출한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커다란 파도에 윌슨을 묶었던 밧줄이 풀리고 윌슨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윌슨을 다시 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대 척 놀랜드는 절규한다.
"윌슨, 윌슨 미안해" (Wilson, Wilson, I am sorry!)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뼛속 깊이 떠오르는 생각은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교재가 필요한 존재이다.
오늘날 성도의 삶에 교제가 필요한 이유와 어떻게 그 교제를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마음을 나누고 싶다.
1. 성도의 교제란 무엇인가?
교제는 성도가 서로 사귀는 것을 말한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교제였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이 말씀을 보면, 건강한 교회의 모습 중의 하나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언어인 헬라어(Greek)로는 '코이노니아'이다. 그 뜻은 연합(association), 교통(communion), 교제(fellowship), 가까운 관계(close relationship), 참여(participation), 나눔(sharing) 등이다. 여기서 교통과 교제의 차이는 교통이 교제보다 친밀한 교제 또는 공감적인 관계(intimate fellowship or rapport)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통(communion)을 대문자로 쓰면 '성찬'(Communion)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으로써 성별된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행해지는 성찬을 의미한다. 또 성찬에 참여하는 자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하나 됨을 실현하는 상징이다. 그런 차원에서 교통은 교제보다 아주 깊은 연합을 의미한다.
'코이노니아'의 뜻이 여러 개 있지만, 이 '교통'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쏠린다. 왜냐하면 성경이 원하는 성도의 교제의 수준이란 그저 일상적인 친구가 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아주 친밀한 교제, 공감적인 관계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이런 교통이 있는 교회에는 나눔(sharing)이 있다.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나누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진정으로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나눌 친구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성도들은 진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 불교에서 개종한 한 여성도가 간증을 했다. 그녀의 아들은 국가대표 농구선수이기도 하다. 그녀는 "친구가 그리워 계모임을 다섯 개나 하면서 쫓아다녔지만 진정한 친구가 없었다. 나의 아들이 잘될 때 말로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질투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 목장모임(소그룹)에 가니까 나의 모든 것을 진정으로 받아주고 축하해 주는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그 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목사로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 교회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이 있지만 친밀한 교제와 공감적인 관계를 가진 교통이 살아있는 성도들이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 성도는 성령안에서 누리는 성도의 교통을 통해서 잘 성장하고 있다. 또한 이 교통이 있는 교회는 참여가 있다. 교제가 잘되면 많은 성도가 예배에 잘 참여하고, 훈련에 잘 참여하고, 봉사에 잘 참여하며, 전도에 잘 참여함으로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성도의 교제란 코이노니아를 말한다. 코이노니아의 가장 중요한 해석은 교통이다. 그 교통은 세상 사람보다 친밀한 교제, 공감적인 관계를 말한다. 그곳에는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나누며, 나아가 머리되신 주님의 가르침대로 그분의 몸인 교회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