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회안전성 부상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2000년 사망
북한의 군인, 정치인.
사회안전성 정치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심화조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3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나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일과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1983년 10월, 사회안전부 부부장 임명이 확인되었으며, 1985년 10월, 평양시 안전국장 재임이 확인되었다. 당시 평양시 책임비서 서윤석과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겸 본부당 책임비서 문성술이 채문덕의 인성을 곱게 보지 않고 그를 혁명화를 보내 분주소장으로 강등을 시킨 일이 있는데, 이 때문에 채문덕은 문성술과 서윤석에게 대단한 원한을 품었다고 알려져 있다. 보도에 따라 함흥이란 말도 있고 평안남도 북창군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친분이 있던 장성택의 도움으로 3년만에 다시 중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1995년 내무군 상장 계급장을 달고 장성우의 후임으로 사회안전부 정치국장 재임이 확인되었으며, 조선로동당 창건 50주년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대의원자격심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97년 농업비서 서관히를 미제 간첩으로 몰아 총살시킨 것을 시작으로 심화조 사건을 주도하여 대공포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성술을 고문해서 죽이고 서윤석은 정신이상자로 만들었으며 그외에 그의 희생자로 많은 사람들이 지목되지만 소문만 무성하지 검증하긴 어렵다. 심화조 사건을 주도한 공으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카더라.
이후 1999년까지 많은 행사를 다녔으나 2000년 1월 6일, 사회안전성 군무자 궐기모임에 백학림과 참석한 이후로 실종되었다. 그리고 2000년 4월, 최고인민회의 10기 3차 회의에서 사회안전성이 인민보안성으로 개칭되더니 인민보안성 정치국장이 심원일로 교체된 것이 확인되었다. 심화조 사건이 북한의 사회불안으로까지 이어지고 김정일의 최측근인 문성술까지 마구잡이로 죽여버린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2000년 1월, 조직지도부 4과에서 사회안전성을 죽탕을 쳐놓고 채문덕을 공개총살해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제강의 유고 <혁명대오의 순결성을 강화해나가시는 나날에>에 박남기, 정하철과 더불어 채문덕의 처형 사례가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