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우린 살아남았구나
정혁용 작가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야당의 박근혜에 대한 공격 말이다. 시대착오적이고 멍청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아예 핵심을 짚지 못하고 헛발질을 한다는 뜻이다. 전략자체가 타성에 젖어 있어서인지 아니면 참모들이 머리가 나쁜지 모르겠지만 공략법이 틀려도 한 참을 틀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딸보고 아버지를 욕하라고 할 셈인가 말이다.
7인의 사무라이 중에서
역사인식? 중요하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 중요하다. 역사관은 미래의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가치관이기 때문에 논쟁의 소지가 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 방식이 틀렸다. 당신은 공인이니 아버지의 관계를 떠나서 가치관을 밝혀라? 물론 민주사회에서 구국의 혁명이니 불가피한 선택이니 하는 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헌법 제 1조도 이해 못하는 소리인데 들을 게 뭐가 있나. 다만 그에 대한 야권의 공세방법이 틀려먹었다는 말이다.
박근혜의 말을 빌자면 구국의 혁명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건 본인은 그래도 된다. 자충수를 두었건 본인의 확신이건 말이다. 하지만 공격하는 야당 쪽에서는 역사인식의 부재라느니 독재자의 딸이라느니 인신공격 따위를 해서는 씨도 먹히지 않는다. 국민이라고 바보 아니고 그걸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투표라는 건 미묘해서, 그렇기 때문에 다른 후보를 선택하는 표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는 표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변인들의 발표문은 어찌 그리 다 구태의연한 표현들만 넘실대는지. 대변인이 직접 써서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써주는 비서가 정치권에만 너무 오래 있어서 정치용여만 머릿속에 남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문장들에 아무런 감흥이 없더라. 만약 나 같으면 이렇게 쓰겠다.
“강도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기 위해 역사의 판단을 기다리진 않는다. 헌법만 봐도 쿠데타가 민주주의의 반역행위 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허물이 있다면 숨겨주는 것이 효라고 공자도 말씀하셨다. 야당의 역사인식은 박후보와 정반대에 있지만 박후보의 사견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한다. 설령 강도라고 해도 아버지를 욕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박근혜 후보를 효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딱 그 정도로 끊었어야 되는 거다. 굳이 야당이 쿠데타고 비합법이고 역사인식 부재고 떠들지 않아도 아는 국민은 다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지지하는 후보는 지지를 하는 법이다. 박정희 때문에 먹고 살게 되었다는 사람에게 쿠데타가 아니라고 떠들어봐야 어차피 듣지도 않을 테고, 야당을 지지한다고 해도 당연한 얘기를 너무 떠들면 소모적인 곳에 쓸모없는 에너지를 쓰는 것 같아서 야당의 역량부재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일관된 방식 한가지만 쓰면 되는 거다. 쉽게 말해
딸이니 그럴 수 있겠지, 라는 거 말이다.
좋지 않은가? 그 한마디면 틀린 가치관을, 국민정서는 해치지 않으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도 되고, 또 상대가 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공인으로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쿠데타를 합법적으로 인식하는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비추어지니 말이다(하긴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담프로에서도 뻔뻔하게 박근혜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마는).
언젠가 대선에서도 후보들 간에 토론을 하겠지만 박정희를 직접적으로 거론할 필요는 없는 거다. 위의 식으로 가볍게 건들기만 해주면 아량은 넓어 보이면서 상대방이 집착할수록 공인이라기 보단 제 식구만 감싸는 소인으로 보이기에 딱 좋으니 말이다.
게다가 국민들은 좀 더 간단하고 선명한 비전의 지도자를 원한다. 저녁이 있는 삶? 사람이 먼저다? 슬로건은 얼마나 멋진가? 문제는 멋지기는 하지만 먹히지는 않는다는 거다. 네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 그렇게 만들 건데? 라는 게 대개의 심정일 테니.
서민을 대표하겠다, 국민을 통합하겠다, 가계부채를 해결하겠다, 국민을 섬기겠다, 뭐 이런 틀에 박힌 소리만 하니 여당에 밀리는 거다. 거기다 보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를 하는 계층이지만 흔히 말하는 진보는 조금만 잘 못해도 가차 없이 버리는 속성을 보여 왔다. 자신은 탁한 주제에 남의 눈은 티는 못 보는 족속들이 많은 동네 아닌가. 지지를 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현실가능성의 여부를 떠나 공약은 더 확실하고 직접 피부로 느끼는 핵심만 미는 게 좋다. 경제민주화? 민주화란 자체가 얼마나 광범위하며 오독의 여지가 많은가. 그러니 박근혜도 경제민주화라고 하지 않는가. 서로 개념이 일치할 수 없으니 아무나 갖다 쓸 수 있는 거다. 이런 상황에 토론을 해봐야 여야가 구분이 안될 뿐이다. 차라리 좀 더 선명하게 나가는 게 좋다. 부자증세, 셀러리맨 세금 감면, 임의 구조조정 반대 법규 제정 및 정년보장.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직접적으로 대다수의 국민과 연관된 것을 강조하는 편이 낫다는 거다.
선을 분명히 긋는 거다. 저 후보가 되면 부자들은 세금을 엄청 맞지만 나머지 95%는 세금이 확 준다며? 법규가 제정되면 함부로 구조조정 못한다며? 사대보험이 내년부터 10%로 준다며? 뭐 그런 분명한 논쟁을 들고 나와야 된다는 뜻이다. 이런 사항이면 여야가 부딪칠 수 밖에 없다. 차이가 나야 누구를 선택할지 눈에 확 드러날 것 아닌가. 문제는 야도 여와 그 기조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안철수?
첸카이거의 현위의 인생을 보면 마지막 장면이 이렇다. 현을 연주하면 전쟁마저 그치게 하는 소년의 스승이 죽자 마을 사람들이 소년을 가마에 태우고 스승처럼 숭배하자 소년이 나는 스승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촌장에게 말한다. 그러자 촌장이 이런 말을 한다.
네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냐. 그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나는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없다(물론 개인적으로 박근혜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뭐 알려준 게 있어야지. 그리고 그의 인터뷰나 여태껏의 모습을 보면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의 나라라고 해도 본인의 능력을 떠나 과연 정치적인 기반이 없이 국정을 수행해 나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올 때도 서울시정은 정치와 다르다며 정치를 불신하던 모습의 정치관은 가카와 크게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최근에는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출마를 하던 안하던, 의도했던 안했던 간에 정치게임을 하는 방식을 아주 출중하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다. 기존의 정치권처럼 출마선언을 하고 검증을 받고 이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기야 법에 그렇게 하라고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필요도 없다. 지지는 여전한데 무엇때문에 출마선언을 해서 혹여 있을 피해를 본단 말인가? 똑똑하다면 똑똑한 거다.
하지만 그 방식은 치사하다. 적어도 일국의 대통령으로 출마를 종용받는 사람이 책 한권 달랑쓰고 자신의 뜻에 동조하면 고려하겠다고? 물론 처음부터 자신이 원했던 길은 아니었으니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여기까지 왔다면 국민에게 검증할 시간도 줘야 되는 것 아닌가? 무슨 가까운 지인이니 어쩌니 하면서 주변인물들이 나와서 본인에 대해 해명해 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취미가 신선놀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모습이야 말로 구태스런 정치인들이 하던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특히나 박근혜 말이다. 온갖해명은 밑에서 하고 자신은 원칙을 집킵니다 같은 뜬금없는 말로 마무리 하는 행태 말이다.
게다가 이런 식이면 국정운영할 때, 고비마다 국민에게 책 한 권 달랑 던지고 물어볼 생각인가?그것도 대담집 내면서? 자신의 생각이 국민을 위한다면 관철시키는 것이 정치지, 지지해주면 고려해 보겠다니? 나처럼 소문자 a형인가?
그의 책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아마 좋은 말들이 많겠지. 하지만 분명 공평, 정의, 뭐 이런 좋은 말들도 들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문에 난 간략한 소개만으로도 그런 얘기들로 넘쳤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과연 대선후보로서 공평이나 정의의 자세를 갖고 있는 모습인가는 모르겠다. 어느 교수의 말처럼 멋진 장소에서 기자불러서 발표하는 것만이 대선후보 선언이냐, 이미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기성 정치인처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낡은 사고다, 라고 하던데 그 말도 일견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발표형식의 문제고 적어도 대선에 뛰겠다면 국민에게 알 권리에 대한 충족은 시켜줘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다른 후보들이 난타전을 할 때 본인은 뒤로 빠져 있다가 그 후보들이 기진맥진했을 때 나오겠다? 이건 보수도 진보도 아닌 그냥 비겁한 짓이지 않는가? 기회주의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것들은 공직자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예의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안철수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다. 그의 말처럼 출마하지 않더라도 양진영을 긴장하게 하면서 발전시키는 것만이 목표라면 그래도 되지만. 그렇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 할 밖에. 하지만 출마를 한다면 이런 방식은 분명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의 정책은 별개의 문제겠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별로 믿음도 가지 않는다.
기사가 아닌 칼럼이니까 나의 사견을 쓴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난 안철수의 그런 모습이 비겁해 보인다. 그리고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어쩐지 첸카이거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정치에 국민들이 얼마나 환멸을 느꼈으면 정치인만 아니면 된다라는 생각과 철저한 검증없이 저 친구라면 괜찮겠네 라는 묻지마 지지가 나올까? 도대체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시멘트 지지율이라 표현하면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가 왜 묻지마 지지가 아닌지 둘의 차이를 나는 정말 모르겠다. 하기야 검증한다고 해서 그 지지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지만. 다만 경쟁의 룰이라는 면에서는 틀렸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철수던 문재인이던 두 사람 중 하나를 찍을 생각이다. 단일화되면 더 좋을테고. 정확히 얘기하면 그들을 지지한다기 보단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다. 가카의 집권하에 가카의 정책에 대개 찬동했던 사람이 가카와 운영기조가 다를 거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오년 더 가카치하와 같은 생활을 하라고?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난 정말 몸서리치도록 싫다. 나라가 나아지는 건 두 번째고 더이상 괴롭히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구라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에는 인상 깊은 마지막 대사가 나온다. 산적들과의 싸움이 끝나고 한 농부가 외친다.
“(산적들은) 다 죽었다. 또 우린 살아남았구나.”
그러면 주인공 역의 시무라 다카시의 이런 독백으로 영화가 끝난다.
“이 번에도 우린 졌군. 이긴 건 저 농민들이지 우리가 아냐.”
그렇다. 우린 또 살아남을 거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나라가 어떻게 되던 말이다. 국호가 바뀌고 지배층이 바뀌어도 민초란 이름으로 국민은 살아남을 거다. 하지만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얼마나 괴로운 삶인가. 은근과 끈기의 한국인임을 증명하라는 것도 아니고 매 순간을 교육과 취업과 정년과 육아와 부동산 장만에 남과 비교해가며 불안에 떨면서 말이다.
또 우린 살아남았구나, 라는 말 따위는 정말이지 이번으로 마지막이었으면 하는데 말이다.
P.S.
1. MBC 백분토론, 민주당 후보 경선토론을 뒤늦게 보고 있다. 다들 광고는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문제는 광고는 잘 만들었는데 후보와 전혀 매치가 안된다는 거다. 일급 광고쟁이들이 만들었음이 분명한데 안와닿는 이유가 뭘까. 포장만 예쁘게 한 탓이다. 서민 이해한다고 시장가고 광부일 체험하는 사진 봐봐야 난 서민 코스프레로 밖에 안보이더라. 기껏 그래가지고 서민의 삶을 안다는 것도 서민을 우습게 아는 거고. 가카야 말로 서민이 아닌 빈민의 삶까지 겪으셨던 분이지만 빈민은 고사하고 서민에게 물대포나 쏴 주시던 분 아닌가. 서민의 삶 몰라도 된다. 좀 더 선명한 정책을 들고 나와서 국민의 가슴에 돌을 좀 던져 보란 말이다.
2. 어떤 댓글이 올라올 지 대충 예상이 된다. 날도 덥고 현장 일이 지지부진 한 것도 짜증인데 보나마마 양쪽에서 쌍으로 욕먹겠군. 새누리당 지지자들부터(도대체 성전이라도 치루려는 것인지 왜 여기에 와서 그러는 지 모르겠지만) 네가 그렇게 똑똑한 줄 아느냐는 빈정상한 야당 지지자나 안철수 지지자 까지…… 에고, 내가 정치에 뭔 빚진게 있다고 이런 글을 쓰는지. 이게 다 토론프로 보다가 욱해버린 내 성격 탓이지 누구를 탓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