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실내화의 말
이마트 1층에 가서 아이 실내화를 하나 사서 나오는 길에
내 실내화도 하나 샀다
내가 만 몇 천원을 하는 실내화의 문수를 따지고 있을 때
내 옆에서는 늙은 부부가 구두를 고르고 있었다
아들은 갓 대학을 입학한 듯 하여서
아버지가 들었다 놓았다 하는 구두는 아들의 것이었다
아들은 윤나는 새 구두를 신고 이제 넓은 곳으로, 바다 같은 곳으로 나서려는가 보다
그 아들에게 신겨 줄 구두가 한 켤레 있어야겠기에
아버지는 까만 구두를 신겼다가
갈색 구두가 더 좋다고 했다가
아들의 등을 쓸어내리며 섰는 그의 아내에게
수수한 말로 또 어느 것이 좋겠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아침에 나는 교무실에서 새 실내화를 꺼내 신었다
헌 실내화를 비닐봉지 안에 넣다가
납작하게 엎드려 삼 년을 내 발바닥을 모셔 온 그에게
내가 눈을 한 번 줄 무렵
그는 부르튼 입술을 하고 그 어느 한 쪽은 무너져서
피부에는 윤기가 없어진 채로
그 늘어진 듯한 눈꺼풀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더라
버려지고 말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나를 보고 있더라
사람들의 그것도 이렇게 낡아서 전체가 어디로 사라지거나
그 누군가에게서 버려지거나 …
닳은 실내화 한 켤레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나는 집으로 모셔오고 말았다
내 그에 대한 예의로 그를 모셔 온 셈이었다
아내도 모르게 신발장의 구석에 모셔두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신발장의 문을 열었는데 구두를 꺼내는 나에게
실내화가 말을 걸었다
너는 또 얼마나 멀리, 허방의 길을 돌다가 오려고
아침을 또 나서느냐, 그렇게.
첫댓글 허망하여 뭐라 할 말을 잃었습니다. 마음이 짠~ 하네요
삶이 허망하여 그런가 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느긋한 말씨와 표정과 몸짓을 생각나게 하는 시입니다. 낡은 실내화 한켤레로도 삶을 돌아보는 그 마음을 부러워합니다. 더운데 잘 지내시나요? 컴퓨터와 오래 등지고 살았습니다. 더운데 계곡에 놀러 한번 오시죠.
더위에 얹으셨네요. 저를 아직 잊지 않으시고 이리도 세세하게 기억해 주시고 … 별 뜻이 없는 것을 집착하며 시간을 조금 보내었습니다. 오랜만에 오니 <작은방>도 고요하네요. 유머가 넘치고 배려 깊은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긁적인 것 몇 개를 얹습니다.